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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하고싶을 때까지 기다린다” | |
특별하지않은 서형숙씨의 ‘별난 교육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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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병에 시달리지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미루지도 않았다. 수시모집에 합격하기 전 수능시험을 앞두고도 홍원이는 <웰컴 투 동막골>을 봤다. 집에 와서는 아버지와 탁구를 치고, 애완견 ‘깜깜’의 목욕도 자주 시켜준다. 7월에는 국토순례를 떠난 진행을 맡은 후배 열 명에게 편지를 썼다. 시간을 꽤 투자한 ‘암호편지’였다.
홍원이는 ‘고3병’을 몰랐고, 가족들도 수험생 때문에 숨죽이고 살지 않았다. 더구나 홍원이네 가족은 고3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먼 강북으로 이사를 했다. 뜰이 있는 집에 살고 싶어서다.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홍원이를 ‘신화’라고 부른다. 그는 3년 내리 학년 대표와 학생회장을 했다. 3학년이면 입시 때문에 학생회 일에서 손을 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는 고3 1학기 전반부를 개교 20주년 축제 준비에 바쁘게 보냈다. 그럼에도 성적은 3학년 1학기 전교 1등을 하는 등 최상위권이다.
홍원이는 운동을 잘한다. 초등학교 6학년때인 1999년 그는 28회 전국소년체전 800m 달리기에 서울 대표로 나가 육상부문에서 유일하게 금메달을 땄다. 중학교때는 서울시 대회에서 200m, 400m, 800m를 휩쓸었고 고교에서도 입상했다. 길거리 농구대회 2위를 하기도 했다. 육상과 운동으로 그는 “지구력이 생겨 마음먹은 일은 포기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고3생활에 대해서도 “더 재미있는 일이 많지만 공부도 참 재미있다”고 말했다.
홍원이네 가족에게 고3 시절은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2학년인 누나 태경(21)이도 그랬다. 수능 한달 전에도 집에 오신 나눔의 집 할머니들 저녁식사 시중을 자연스럽게 들 정도였다. 스카우트 활동을 8년 동안 한 태경이는 고3을 앞둔 2002년 겨울 제20차 세계 잼버리에 국제봉사대로 한달 동안 봉사활동을 했다. 주위에서는 고3인데라며 혀를 찼지만 그는 “봉사는 특별한 게 아니라 일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태경이는 외국어에 소질이 있다.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말을 쉽게 배워서 쓴다. 중3때 필리핀에서 열린 아·태 잼버리에서는 타갈로그어를 익혀서 쓰고, 타이에서 열린 세계 잼버리대회에선 타이 말을 배워 미국과 타이 요원 사이에 ‘통역사’로 구실했고 타이어로 방송 인터뷰까지 했다. 그 나라 말을 배워 다가가는 태경이는 인도네시아, 타이, 필리핀,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 친구들이 있다. 아쉬운 점도 있다고 한다.
“여러 언어를 조금씩 알지만 깊이 있는 대화나 토론이 어려워 이제는 몇 개 언어를 깊이 배워보고 싶어요.”
태경이는 중3때 유일하게 다닌 영어 회화 학원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교재로 쓰던 미국 8학년 교과서에 우리나라 공용어가 영어와 한국어라고 쓰인 것을 보고 곧바로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관광지나 교통안내판에 영어나 한자어를 덧붙여 쓸 뿐 어떤 공식문서에도 영어를 쓰지 않는데 어떻게 이런 오류가 발생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조처할 것인지를 조목조목 따져 묻는 편지였다. 출판사는 즉시 회의를 열고 사실을 확인한 뒤 이를 바로잡겠다는 편지를 사과글과 함께 보내왔다고 한다.
홍원이는 초등학교부터 고교때까지 전교 학생회장을 하면서 남에 대한 배려가 몸에 뱄다. 중학교때는 축제를 꾸미며 공부때문에 주눅든 친구들을 주로 무대에 세워 자신감을 갖도록 했다. 고교 1학년때는 지휘자로 반 합창단을 이끌어 남학생반 최초 1등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지역 대회에서도 최우수상을 타는 데 역할을 했다. 중1때 여수에서 서울까지 국토종단을, 고1때 연천에서 강화까지 204㎞, 고2때는 강화에서 당진간 212㎞의 국토순례에 참여했다. “친 형제 자매같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조국강산에 대한 사랑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키울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친구가 많다. ‘범생이’도 있고 ‘꼴찌’나 ‘부적응 학생’도 있다.
두 남매는 어머니 서씨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남을 해코지하는 일이 아니면 어떤 일을 해도 이해해주셨어요.” 서씨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맡겨두고 있다. 태경이의 꿈은 동양 사상을 접목한 사회학을 계속 공부하는 것이다. 홍원이는 쑨원같은 “정치가”가 꿈이다. ‘인민의 안위만을 위해 공산당, 국민당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끌어안은, 대의를 위해 자신의 지위까지 버릴 수 있는 인품’에 매료됐다고 한다. 두 남매의 10년 뒤가 궁금하다. <한겨레> 문화부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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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특별하지 않다구요? 특히 중계동에서 살라치면..... 좋은 엄마네요! 아그들이 연세대 안갔어도 기사 났을랑가 모르것네요. 그치만 신나긴 하네요.좋은얘기 감사합니다
남매가 둘 다 범스카우트랍니다. 더 특별하지요? ^^
백호에서도 이런 대원들이 탄생할 것입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중계동에서도 이런 아이들 분명히 나옵니다! 이미 백호에서 깃발 꽂았으니 말입니다!!!
행복을 꿈꾸-는 백호에서도 인재들이 양성될 수 있도록 힘써 봅시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