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정 우 민
아이들이 한가히 노는 강변에 바람은 없어도 물살은 빠르다.
한 아이가 놀다가 문득 강물을 바라보니 상류에서 무언가
떠내려 온다. 그것은 교복을 입은 여중생의 시체로 엎어진
채로 떠내려 오고 있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양미자(윤정희 분)는 66세의 할머니로
한강을 끼고 있는 경기도의 작은 도시(이천)에서 중학교 3학년인
손자 종욱(이다윗 분)과 같이 연립주택에 살고 있다. 이혼한
딸은 부산에 살고 있고 생활 보호대상자인 미자는 시에서 나오는
보조금과 중풍 든 노인을 목욕시켜주고 간병해주고 받은 돈으로
힘겹게 살고 있다. 이 노인(김희라 분)은 슈퍼마켓 2층에 살고있는
사장으로 뇌졸중으로 말도 잘 못하고 한쪽 수족이 마비되어 걷기도
힘든 노인이다.
어느 날 미자는 목이 아프고 어깨가 결려서 병원을 찾는다.
아마 목디스크 증세나 오십견 증세 같은데, 미자가 요즘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자 (예를 들면 ‘비누’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분’이라는 옛날식 이름은 생각나는데) 이를 유심히 지켜 본 의사는
서울에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 보라고 한다. 그 병원에서
나오다가 병원 입구에서 미자는 119구급차에서 실려 나오는 시신위에
흰색 천이 덮힌 운반용침대를 보게된다. 그리고 그 옆에 실성한 듯이
울고불고 하는 한 여자를 보게 된다. “니가 그렇게 가면 안되는데...”를
외치는 그녀는 다리위에서 떨어져 자살한 여중생 박희진의 어머니였다.
이 이야기를 미자는 슈퍼 아주머니에게 이야기 하지만 아주머니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중이라 그런지 들은 척도 안한다.
남루한 생활과는 달리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미자는 꽃장식 모자를
쓰고 치장하길 좋아하며 마음은 아직도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이다.
어느날 동네 문화센터에 시 강좌를 들으려 갔지만 마감이 되어 등록이
안된다는 것이다.어린시절 문예반에서 글을 써보고 한 번도 쓴 적이
없지만 언젠가는 시를 써보고 싶던 미자는 조르고 졸라서 그 강좌를
듣게 된다.
강사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다.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이란
사물을 보는 것이고 연필을 깎는 것이라고 한다. 사물을 제대로
보는 것이란 예를 들면 사과가 있을 때 이리저리 만져보고 뒤집어도
보고 그 그림자도 보고 한입 베어 물어도 보는 것이라 한다.
시는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연필로 한줄 한줄 써 내려가며
흰 종이의 여백을 채워감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미자는
조그만 공책을 들고 다니면서 바람에 날리는 나뭇가지를 보거나
할 때마다 메모를 한다. 그러나 좀처럼 시어를 찾는 일이 쉽지않아
힘들어 한다.
어느 날 손자 종욱의 친구 아버지(안내상 분)가 갑자기 미자를 찾아온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종욱을 포함한 중3생 6명이 자살해
죽은 여중생 희진이를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희진이는 괴로워 하다
그 기록을 일기장에 남겼는데 교감선생님이 6명 모두를 불러 알아보니
모두들 사실이라고 시인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희진이 어머니와 빨리 합의를 해서 고소를 막고 조용히 넘어가기
위해 6명의 학부모가 대책회의를 한다는 것이다. 종욱의 부모자격으로
참석한 미자는 그 모임자리 식당앞 화단의 화사한 꽃에 정신을 팔려
조그만 공책에 메모하기 바쁘다. 합의금 3천만원을 모으기로 하고
각자에게 5백만원의 돈이 할당된다.
미자는 끝까지 부산의 딸에게 연락하지 않고 주변에서 돈을 빌리려 하나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다.
미자가 집에 와보니 손자인 종욱은 아무렇지도 않게 제멋대로 지내고 있다.
오락실에서 본 종욱의 친구들도 아무런 가책없이 잘 놀고 있다. 미자는
성당을 지나다 죽은 여중생 희진(세례명 아네스)을 위한 미사에 참석해서
또 가슴 아파한다. 성당에서 아네스의 사진을 몰래 가져다가 집에 종욱이
밥먹는 식탁에 올려 놓았건만 종욱은 아무런 가책을 안 느낀다. 서울에는
있는 병원에서 정밀검사한 뒤 이미 알츠하이머 병 초기라고 진단 받은 미자는
자신의 기억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에 더욱 더 괴로워한다.
아네스가 떨어진 다리위에서 다리밑을 바라보다 꽃무늬 장식 모자가
바람에 떨어진다. 모자를 찾으러 다리밑으로 내려간 미자는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흠뻑 젖는다. 미자는 생각난 듯 일전에 갑자기 비아그라를
먹여줄라고 하고 목욕시키는 미자에게 ‘살아 생전에 한번만 할 수 있게
해달라’던 슈퍼 사장집으로 간다. 그리고 중풍걸린 노인에게 비아그라를
먹이고 ‘그것’을 해준다.
안내상에게 떠밀려 희진이 엄마를 위로하러 간 미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러간 줄도 모르고 올해 농사 얘기며 들에 핀 꽃 얘기를 하다 그냥 온다.
자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과 그것을 시로 쓰고 싶은 갈망, 그리고 현실에
닥친 고통스러운 상황과 차츰 잃어가는 기억의 조각들이 미자를 힘들게 한다.
슈퍼 노인에게 협박 아닌 부탁을 해서 500만원을 받아낸 미자는 그것을
학부모 모임에 전달하고는 이것이 끝이냐고 묻는다. 미성년자가 관련된
사건이라 제삼자가 신고를 하면 수사는 할 것이란 말을 듣고는 조용히
그 자리를 뜬다. 미자는 그날 오락실에서 손자를 데려 와서 피자를
사주고 발톱을 깎아준다. 짐승도 지 흔적은 지운다면서...
그리고 미자는 시 강의실에 생애 처음 쓰는 시와 꽃다발을 놓고 사라진다.
손자는 경찰서로 조사받으러 잡혀가고 부산에서 급히 올라온 딸은 주변을
수소문해도 미자는 간 곳이 없다.
강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전히 흘러간다.
다음은 미자의 첫 작품이자 유작인 시 ‘아네스의 노래’이다.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 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 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 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 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이 시는 죽은 소녀의 노래이자 미자의 노래이다.
원로 배우 윤정희의 본명이 ‘미자’라 한다. 그녀의 살아 숨쉬는 연기가
빛을 발한다. 또 한명의 원로배우 김희라의 중풍 든 노인역할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꽃다운 나이에 죽은 소녀보다 자식
챙기기에 바쁜 못난 부모들 ,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그들의 죄가는 치루어야 된다.
손자의 죄를 자신의 죄인양 아파하는 미자. 무심히 흐르지만 때론 사정없이
세차게 흐르는 강물 속에 희진이가 있고 그 속에 미자도 있다.
다리위에서 떨어져 자살한 희진이, 바위에서 떨어진 전직 대통령.
‘아네스의 노래’는 이창동감독의 시이고 그의 마음같다.
감독은 노무현시절에 문화부 장관을 지냈고 ,인터뷰에서
“그를 위한 시입니까?”라고 기자들이 물었을 때 “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영화는 2010년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였다.
추가:
이 영화에서 시를 좋아하는 일반인들이 모여 ‘시 낭독회’를 카페에서 모여
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주옥같이 아름다운 시들을 더듬더듬 읽는 모습이
생소하지만 그들이 읽는 시가 좋은 시가 많았다.
정호승의 ‘그리운 부석사’,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조영혜의
시들.
그중에 제일 짧은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를 소개한다.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첫댓글 열불나는 사람이었던 적은 많았던것 가튼데.... 우민아 반갑다 별일없으면 20일날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오랜만에 글을 올렸네..그 동안 좋은 영화가 없엇나 보다..20일날 올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