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르신을 모시는 데 지역 사회 전체가 필요합니다!
정보원카페 공통게시판 1976번 글, 김진원, 2006.04.27 00:29
* 정보원 제6차 복지순례단 김진원 님이 대학 졸업 후에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할 때 쓴 글입니다. 소식지 구상이 들어있어 여기에 옮깁니다.
2006년 3월 14일 화이트데이
어르신께서 시설로 입소하게 되면 전입신고를 하기 위해 동사무소로 간다. 자전거를 타고 동사무소로 가는 길에 자리잡은 지역사회를 둘러보는 일은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시설, 지역사회, 지역주민, 네트워크, 선함과 의로움의 공유, 그리고 비디오 대여점, 목욕탕, 미용실, 슈퍼마켓, 문구점, 학교, 한의원, 치과, 케이크전문점, 동사무소, 쌀집, 음식점, 국악원 등 지역주민의 삶이 서려있는 곳들.
곧 복지를 소통하고 내장하고 공유하고 바이러스처럼 퍼트릴 수단과 목적인 곳이다. 3월 1일부터 정식 출근한 새내기 생활복지사이지만 어떻게든 지역주민을 만나고 지역사회를 감지하고 싶어졌다.
수십 번 동네와 거리를 둘러보면서 문득 비디오 대여점(드림뱅크)이 눈에 들어와서 연락처를 휴대폰에 저장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드림뱅크로 전화를 돌렸다. 나의 신분을 밝히고 내가 근무하는 기관을 설명해드렸다.
치매 및 중풍을 앓는 중증 어르신이 생활하시는 곳인데 일주일에 1편씩 무료로 비디오를 대여해주신다면 시설 어르신에게 즐거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사모님은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만날 날짜를 정하고 동사무소에 용무가 있는 날 기관 소식지를 갖고 드림뱅크 사모님을 직접 찾아뵙게 되었다. 지역주민과의 첫 대면으로 설레었다.
전화상으로 드렸던 말씀을 다시 풀어냈다. 사모님도 마침 선행에 관심이 있었는데 크게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어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돕고 싶다'는 마음을 충분히 갖고 있었으나 형편상 여의치 못했고 그러한 기회가 없었던 듯 했다.
사람들 속에 내재된 선한 마음과 행위를 이끌어내는 재미가 이거구나 싶었다.
덤으로 사모님께서는 상동 지역사회에 대한 설명과 함께 '복지 여기서는 남을 돕는 일'에 대한 관심 있거나 활동하고 계시는 지역 주민을 소개해주시기도 했다.
상동지역 통장이면서 지역 주민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는 '서울 우유' 사장님. TV 방청객으로 참가하여 받은 방청료로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 '덕화 노래방' 사장님.
사모님께서는 이런 아이디어도 주셨다.
"저는 복지사 선생님의 이야길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보통 노래방은 오후 2시에 문을 여는데 대개 손님이 없어요. 그 때 어르신들을 모시고 노래방에서 즐기실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어떨까요?"
비디오도 무료로 빌리고, 지역사회의 설명도 듣고, 복지에 관심 있는 지역주민도 추천해주시고, 게다가 복지 아이템까지 주셨다. 지역 사회에 얕은 첫발을 내딛는다.
'각자의 삶과 직업 속에서 복지를 풀어내도록 공작하고 지원하고 걸언하고 거들어드리기.'
아주 천천히 사람들 속에서 선함과 의로움을 이끌어내는 설득과 유혹을 하고 싶어졌다.
과제 1 : 한 달간 어르신이 좋아할 만한 비디오를 내가 직접 가서 대여했지만 5월부터는 어르신을 모시고 간다. 미리 사모님께 어르신이 보실만한 비디오를 살펴주시고 직접 어르신께 차근차근 설명해달라고 부탁드린다.
과제 2 : 좋은 아이템을 생각해보자...
2006년 4월 25일 지역 주민과의 만남2
어르신의 삶에서 노래가 없으면 무료하다. 시설 내 노래방이 설치되어 있지만 시설 내에 모든 것이 갖춰지는 것은 복지 감옥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나들이도 하고 지역사회도 거닐고 노래도 부르는 것이 더 상쾌하지 않는가?
4월의 어느 날 드림뱅크 사모님께서 추천해준 덕화 노래방 사장님께 사전에 전화를 드리고 오후 4시에 사장님이 계신 노래방에서 만났다. 이미 복지에 지극히 관심을 갖고 계신지라 만남에 어려움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화성전문요양원 생활복지사 김진원입니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난 나이 좀 있는 분인 줄 알았는데 아주 젊은 사람이네요. 거기에 좀 앉으세요. 차 한 잔 드릴까요?"
따뜻한 녹차 한 잔을 내어주셨다. 마치 준비된 봉사자처럼 말씀하신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네, 어쨌든 선의를 베풀어주시는 마음에 먼저 고맙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이고, 고맙긴요. 가진 건 별로 없어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좀 도와드리고 싶어요. 이래봬도 30년 동안 봉사활동을 해왔거든요."
사장님께서 천천히 말씀을 풀어놓으셨다.
개인적으로도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계시면서도 사단법인 한국부인회 수성구 지회장을 맡고 계시고 대구 수성구 노래방연합회 활동도 하고 계셨다.
1. 직업 속에 풀어내도록 유도하기
먼저 기관을 차근차근 설명해드린 다음 시설 어르신께서 이 곳 노래방을 이용하도록 해주실 수 있는지 여쭈었다.
"아이고,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오후 1시에 오셔서 얼마든지 놀다가세요. 다과도 준비해 놓을게요. 무료로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손님이 많이 몰리는 저녁 시간대를 피해 6시 이전까지만 마쳐준다면 언제든지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다는 말씀에 기쁜 나머지 조심스런 마음이 일었다. 무턱대고 호의를 받아들였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크건 작든 그 어떤 호의라도 오래가며 인격을 기르는 것이어야 한다.
2. 공짜는 없다.
'복지병病'은 '공짜병'이다. 땀흘린 대가 없이 무조건 받는 것은 거지가 될 수밖에 없다. 아무런 대가 없이 받도록 지원하면 어르신의 자존심은 구겨진다. 무조건적 정성은 사람의 자존심과 주체성, 인격을 갉아먹는다.
"무료로 이용해주시게 해주고 다과까지 제공해주신다는 말씀 참으로 고맙습니다. 호의는 고맙습니다만, 공짜로는 안됩니다. 비록 시설 어르신이지만 어르신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도록 작은 돈이라도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건 어떨는지요?"
"아, 무료로도 해드릴 수 있는데요. 굳이 돈을 내실 것까지야..."
"제 생각입니다만 무료로 이용하신다면 어르신께서 당당하게 이용하실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 부담되지 않게 값싸게 이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가령, 기분이 좋은 날 덕화 노래방에 놀러간다고 했을 때 한 어르신이 '오늘은 내가 한 턱 낼께.' 하면서 노래방을 이용하신다면 한 턱 쏘는 사람도 좋고, '지난번엔 자네가 돈을 냈으니 이번에는 내가 낼께'하며 다른 어르신도 다음에 올 때 한 턱 낼 수 있어서 좋고 또 그렇게 놀이 공간을 제공해드릴 수 있는 사장님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
사장님께서는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그런데 이용요금을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해야 상호간에 부담이 없을까? 홀로 하는 생각은 고민에 그치지만 고민을 공유하는 것은 해결에 가까워진다.
"이용요금을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네요"
"글쎄요, 그야 편하실 대로 하시지요."
"요금함을 만들어서 이용요금은 자유롭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음. 혹시나 하는 생각이지만 요금을 자유롭게 하면 이용료를 몰라서 어느 정도로 내야할지 어르신께서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요? "
이용료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사모님께서도 어쩔 줄 몰라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면 이용료를 천 원 혹은 이천 원 정도로 하는 건 어떨까요? "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으니 그렇게 하시지요. 대신 음료수는 무료로 드릴게요."
" 아닙니다. 음료수도 돈을 내고 마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싸게 해주시면 어르신께서 돈을 쓰는 맛, 기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음료수를 사줄 수 있는 기회도 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하여 노래방 이용료는 천 원으로, 음료수는 100원~200원으로 책정했다. 음료수 가격은 어르신이 오실 때마다 잘 알아볼 수 있도록 냉장고 앞에 가격표를 붙여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그것도 흔쾌히 승낙하셨다.
사장님은 관변단체 활동도 하고 계셔서 한 달에 한 번 야외나들이, 식사공양까지 해주실 의도를 갖고 계셨다. 스케일이 크고 관변단체와 함께 움직이는 것은 때가 이르고 조심스러워서 다음에 차근차근 논의하자고 말씀드렸다.
어느 덧 이야기가 1시간 이상이 지나버렸다. 30여 년 동안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신 것도 존경스럽지만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은 선의의 마음을 내주셔서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수 년 전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셨던 사장님께 감사한다.
과제 1 : 어떻게 하면 보통 사람들처럼 어르신들이 지역사회문화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까?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도 어르신을 직접 모시고 놀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길 법하기도 하지만 궁금하기도 하다.
과제 2 : 노래방 이용이 자연스런 일상으로 접어들면 덕화 노래방을 이용한 어르신과 문화공간을 대여해주신 사장님의 이야기를 그들의 언어를 중심으로 소식지에 담아낸다. 지역주민의 이야기를 시설 소식지에 담아 내가 아는 지역주민들에게 배포한다. 어르신들이 직접 드리도록 공작하면 더 좋겠다.
자연스럽게 이웃이 하는 일이 기관 소식지를 통해 전파된다. 소식지를 받은 주민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오, 여기 내가 아는 이웃이 이런 일을 하네. 화성요양원이라...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하네.'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소식지는 화성요양원을 홍보하기도 하고, 주민의 선한 활동을 알리기도 하고, 선의를 유도하기도 하고, 화성요양원의 이미지 및 브랜드가 지역주민의 입소문을 탈 수도 있다.
훗날 시설 소식지가 시설 어르신과 지역주민의 참여로 만들어지면 더 좋겠다.
위의 일을 상급자에게 차근차근 설명 드리고 논의했다.
개인적으로는 지역주민과의 첫 만남이라 참으로 조심스럽고, 첫 단추를 잘 끼우고 싶다고 했다. 당신의 도움과 조언이 필요하다고 지혜를 나눠달라고 요청했다.
17년의 산 경험을 갖고 계신 상급자의 말씀.
'일단 한 번 해봅시다.'
백 권의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더욱 좋다. 백 가지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한 사람과 함께(+ ONE), 여러 사람과 함께(+ MANY) 누리는 일은 더욱 좋다.
*
한 때는 시간과 때를 기다리는 것을 신뢰했다.
그러나 시간을 이기는 한 가지를 알게 되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진심은 시간을 초월한다.
세진형이, 시현형이, 동찬형이 또 다른 복지인들이 그렇게 했고 그렇게 하고 있고 그렇게 할 것이다.
나는 비로소 알 것만 같다. 사회사업가는 천국에 가장 늦게 들어간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이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거들고 공작하고 지원해서 그들 스스로 선하고 의로운 삶을 이룰 때까지 사회사업가는 천국에 들어가지 않는다.
사회사업가는 모두가 천국에 입성한 다음 천국의 문 구석에서 잠자리를 펼칠 것이다. 누군가 덜 온 사람이 없는지 반쯤 눈을 감은 채 말이다. 어쩌면 살과 뼈까지 내어주어 잠자리가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전우익 선생님이 지은 책 제목이 생각난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교?'
첫댓글 "덕화 노래방을 이용한 어르신과 문화공간을 대여해주신 사장님의 이야기를 그들의 언어를 중심으로 소식지에 담아낸다.
지역주민의 이야기를 시설 소식지에 담아 내가 아는 지역주민들에게 배포한다.
어르신들이 직접 드리도록 공작하면 더 좋겠다."
"자연스럽게 이웃이 하는 일이 기관 소식지를 통해 전파된다.
소식지를 받은 주민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오, 여기 내가 아는 이웃이 이런 일을 하네. 화성요양원이라...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하네.'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
"훗날 시설 소식지가 시설 어르신과 지역주민의 참여로 만들어지면 더 좋겠다."
이 글을 쓴 사회사업가 김진원 선생은, 홍보사회사업론 강좌를 진행하는 김종원 선생의 동생입니다. 친동생은 아니고, 제6차 복지순례단 동생입니다. 순례하면서 김종원 선생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자연스럽습니다. 정성이 보입니다. 자신의 삶으로 이루어내는 행복...
가능합니다. 정이 있고 살맛이 납니다. 진원 선생님을 글 참고하고 사례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진원이가 2006년에 썼던 글인데 다시 읽어봐도 글이 재미있네요.
교훈이 깊게 느껴집니다.
진원이의 표현들을 제 마음에 담겠습니다.
진원이가 2006년 4월에 쓴 글이니 저는 홍보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을 때였습니다.
진원이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선생님게서 다듬어 주셔서 가능한 것 같습니다.
제 영향은 아닙니다.
이글도 그렇고, 추창완 선생님의 활동도 그렇고, 동찬이형의 활동을 보면서 저의 활동을 되돌아봅니다.
어떻게 하면 담박하게 자연스럽게 할 것인가?
아마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홍보! 담박한 홍보! 로
홍보사회사업이 자연스럽게 변할 것 같습니다.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이 글을 예전에 읽었지만, 다시 읽어도 감동입니다. "한 때는 시간과 때를 기다리는 것을 신뢰했다. 그러나 시간을 이기는 한 가지를 알게 되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진심은 시간을 초월한다." 이 구절이 깊이 다가옵니다.
직원들과 함께 읽으며 그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기 보단 제대로 하는 사회사업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