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침 강둑길을 걷고, 해거름 산을 오른다. 강둑길을 걸으며 온갖 풀꽃들과 나누는 아침 인사로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재잘거리듯 윤슬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에 마음을 헹군다. 석양의 빛살이 고운 산을 오르며 반기는 나무들의 손짓을 받고, 바람소리 새소리의 청량감 속에 온몸을 삽상하게 적신다.
물과 풀꽃을 따라 강둑길을 걷고, 숲속으로 바람 속으로 산을 오르곤 한 지도 어느덧 수년이 흘렀다. 내가 산책길을 걷고 산길을 오르는 것은 그 아늑한 정밀감 속에서 사색에 잠기는 것이 좋아서이지만, 육신의 건강을 돕기 위한 운동의 기능 또한 적지 않다.
한 생애를 마감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설 때, 나처럼 한 세상을 물러난 다른 이들은 어딜 가서 새로운 무엇을 익힌다든지, 무슨 운동에 몸을 붙여 새 힘을 기른다든지 하는 길을 택하기도 했지만, 나는 단연코 물이 있고 나무가 있는 곳을 택하여 떠나왔다. 말하자면 다른 이들은 새로운 ‘사람의 일’을 찾을 때, 나는 자연으로 오는 길에 몸을 맡긴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강이 흐르는 산 아래 호젓한 마을에 조그만 집을 짓고, 새소리에 잠을 깨고 바람소리에 잠을 청하는 나날을 맞고 보내고 있다.
나와 같은 처지와 뜻을 따라 내 사는 마을에 먼저 와 살고 있는 이웃이 있다. 내 비록 번잡한 저자를 떠나 맑고 고요한 한촌을 찾아 왔다 하나, 사람을 영 떠나서야 어찌 살 수 있으련가. 유유상종, 같은 처지의 이웃이 있다는 것이 여간 반갑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웃은 아침이면 차를 몰고 마을을 나서 무슨 운동 시설이 있는 곳으로 간다. 때로 그 이웃은 조금은 고급 스포츠를 향유한다는 기쁨과 자부심으로 즐거워도 한다.
즐거우면 좋은 일이다. 남에게 폐 안 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일이면 그 또한 나름의 한 기쁨이 될 수 있기 바라며, 나는 강둑으로 간다. 강둑의 바람은 언제나 청량하다. 풀꽃의 미소는 늘 맑고 곱다. 이웃이 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무렵이면 나는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 나를 반긴다. 나뭇잎들의 저 푸름이며 손짓들이 나를 반기는 게 아니고 무엇일까. 새소리는 나를 향해 무슨 환영곡이라도 불러주고 있는 것 같다.
길을 걷고 산을 오르는 나의 운동은 내 이웃이 누리지 못할 즐거움이 더 있는 것 같다. 내가 부지런히 걷는 것으로 심신의 운동을 하고, 길이며 산이 나를 유쾌하게 운동을 시켜 주면서도 일절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운동하고, 아무리 많은 땀을 적셔도 치러야할 값이 있지 않다. 또한 내 운동은 남과 겨루지 않아도 된다. 이기고 져야 할 일 없이 혼자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누굴 제쳐야 할 일도 누구의 힘을 시기해야 할 일도 없는 스포츠다.
그 기쁨과 상쾌함으로 나는 오늘도 풀꽃 미소가 있는 강둑길을 걷고, 생기로운 바람 속에서 잎 피고 지는 산을 오른다. 이 때 나는 한껏 즐거움에 부풀며 장자(莊子)가 들려주는 한 이야기를 문득 떠올린다.
공자가 숲속을 노닐다가 나무 아래 앉아 쉬면서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고 제자들은 책을 읽고 있었다. 수염과 눈썹이 하얗고 머리를 풀어헤친 어부가 강 언덕으로 올라와 공자 일행이 있는 곳에서 발을 멈추고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공자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어부는 공자의 제자 자공과 자로를 불러, 저 분이 누구며 뭐하는 분인가를 물으니, 노나라의 군자로 충성과 믿음을 본성으로 삼고 인의를 몸소 실행하며 예악으로 마음을 닦고 오륜으로 분별의 도를 세워 위로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가르쳐 천하를 이롭게 하려는 분이라고 했다.
어부는 제자들에게 공자가 군주도, 신하도 아니라는 말을 듣고, “어질기는 하겠지만 아마도 그의 몸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음을 괴롭히고 몸을 지치게 하여 진실함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아, 그는 도로부터 멀리도 떨어져 있구나!”고 하며 강가로 내려가 버렸다고 한다. 그 뒤에 공자는 그 어부가 성인임을 알고 제자 되기를 간청하였다고 한다. 《장자(莊子)》 잡편 <어부(漁父)>조에 나오는 우화다.
어부는 누구일까. 바로 장자 자신이랄 수도 있고, 장자가 늘 강조하는 무위요, 자연의 화신이랄 수도 있겠다. 어부가 공자를 보고 ‘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 것은 또 무엇인가. 공자가 높이 받드는 인의와 예악이란 모두 사람의 일이요 인위이며, 그 속에는 선악도, 시비도, 호오도, 미추도, 고저도 있기 마련이다. 장자는 그런 것에서 멀리 떠나고 싶은 것이다. 자연의 일, 무위의 세계에서야 어찌 높고 낮음이 있고, 옳고 그름이 있고, 어질고 어질지 못함이 있을까. 장자의 도(道)란 모든 구별과 차별을 떠난 무위(無爲)를 말한 것이 아니던가.
장자인들, 공자인들 내 어찌 그런 성인의 세계를 깨달아 안다 하며 외람을 떨 것이며, 그리하여 뉘 도를 따라 내 삶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고 언감생심 말할 수 있으랴만, ‘마음을 괴롭히고 몸을 지치게 하여 진실함을 위태롭게’하며 살기는 바라지 않는다.
누구와 겨루는 일도, 누구를 차별 삼는 일도 하고 싶지 않다. 이름에 연연하는 일도, 재물에 붙들리는 일도 멀리하고 싶다. 다만, 맑고 고운 것을 그리워하며 살고 싶을 뿐이다. 삶을 생기롭게 하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바람과 더불어 살고 싶어 이 한촌을 찾아오지 않았던가. 지금도 내 조그만 집 동창으로 새소리가 어우러지고 남창으로 푸른 숲이 다가서고 있다.
오늘도 무위의 운동 길을 나선다. 강둑길을 걷고 산을 오르며 심신을 다스린다. 풀꽃 강둑을 걷고 솔솔바람 숲속을 걷으며 몸을 다독이고, 다툼도 차별도 없는 맑은 길을 걸으며 마음을 씻는다. 무위의 운동 길에서-.♣(201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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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색의 숲길을 걸으시며, 건강도 챙기시며 무위의 운동길을 걸으시는
선생님을 뒤따라 걷는 느낌입니다. 다툼도 차별도 없는 길처럼
세상 사는 일도 그렇듯 맑고 온유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차별도 욕심도 내려놓고 가볍게 살아가기를 다시 꿈꾸어봅니다.
늘 좋은 글로 마음의 정화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안하소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으로 살아가고 싶은 소망을 그려 보았습니다.
오늘도 아침 산책길을 나서도 해거름 산길을 오르려 합니다.
늘 좋은 말씀으로 새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님께서도 늘 건승하시기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