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대 머물면서 사기친 것 고백하라"
먼저 포문을 연 사람은 <BBC>에서 <알자지라>로 옮겨간 라기흐 오마르(Rageh Omaar)였다. <알자지라 인터내셔널>의 영어방송 앵커로 스카우트된 그는 <인디펜던트>에 실린 인터뷰 기사(5월17일)에서 <BBC> 특파원 시절을 회상하며 "우리들 중 일부는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사기를 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서방기자들이] 안전지대인 그린 존에 머물면서 익명의 이라크 프리랜서들이 제공하는 영상에 많이 의존해 온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고 까발렸다. 그는 이어 "이라크전 보도에 경보를 울리지 않는다면 언론 스스로 정당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며, 오도되고 있는 전쟁보도를 성토했다.
반격에 나선 사람은 <BBC> 세계뉴스의 에디터인 존 심슨(John Simpson)이다. '<BBC>의 오늘'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마디 해명한 것으로는 직성이 안 풀렸는지, <가디언>에 '무슨 안전지대?'라는 제목의 기고문(5월 29일)까지 실었다. 심슨이 발끈한 것은, 오마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BBC> 소속이었기에 그가 말한 '사기'의 주체로 <BBC>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심슨은 "이라크 상주 <BBC> 요원은 현지채용 기술자 등을 빼고도 9명이나 된다"며 "그들은 미군과 영국군의 보도자료나 챙기면서 그린 존에만 머무는 겁쟁이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특파원들은 SAS(영국 공군 특수부대) 출신 경호요원들과 함께 이라크의 위험지대를 누비며 생생한 뉴스를 전한다는 것이다. 심슨 자신도 6주 간격으로 이라크에 체류하면서 마이크를 잡는다.
이들의 공방전 뒤에는 중동 문제에 관한 한 어느새 <BBC>를 넘보게 된 <알자지라>와 <BBC>의 경쟁의식이 깔려있다. <알자지라>의 모태는 사실 <BBC>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 투자한 <BBC뉴스 아랍TV>가 왕실을 비우호적으로 보도하자 투자금을 회수한 게 발단이었다. 직장이 폐쇄돼 실직한 20여 명의 방송인들을 영입해 <알자지라>를 설립한 것은 카타르 왕실이었다. 카타르 왕실은 이들에게 이례적으로 '<BBC>에서 하던 대로만 하라'는 것 외에는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 아랍 방송이면서도 때로는 오사마 빈 라덴과 코란의 문제점까지 거론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자본의 불개입 원칙'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알자지라>가 처음 떴을 때만 해도 <BBC>는 뉴스교환 협정을 체결해주는 등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라크전이 터지고 <알자지라>의 명성이 자자해졌을 때 <BBC>가 방영한 '<알자지라> 특집'은 <BBC>가 얼마나 기획에 강하고 시야가 넓은지를 보여주었다. 개전 당일 세계 모든 언론이 바그다드 폭격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을 때 <BBC>는 특집팀을 <알자지라> 본사와 지국에 보내 그들이 전쟁보도를 어떻게 하는지를 기획취재했다. 당시 <BBC> 취재팀의 질문에 쾌활하게 답하던 <알자지라> 특파원 타레크 아유브는 나중에 바그다드 지국이 미사일을 맞는 바람에 폭사했다. 미군의 고의폭격 여부가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그의 일상생활 모습까지 보여준 <BBC> 화면은 '전쟁에서 죽는 사람 모두가 선한 이웃들'이며 결국 '전쟁은 사라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했다.
"저리 비키시오. 난 지금 방송 중이란 말이오"
두 방송사의 밀월관계는 상대방 영역에 서로 침투하게 되면서 금이 갔다. <알자지라>가 영어 위성방송을, <BBC>가 아랍어 위성방송을 각각 시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알자지라 인터내셔널>은 <BBC>의 간판 진행자 데이비드 프로스트 경과 명특파원 오마르를 전격 스카우트했다. <알자지라>가 프로스트에 대해 최근 재직한 미국 대통령 7명과 영국 총리 6명을 모두 인터뷰한 유일한 인물이라고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냈을 때, <BBC>는 웹사이트에서 그의 프로필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심슨과 오마르는 과거 존경하고 총애하는 선후배 사이였으나, 개인적인 경쟁심 또한 없지 않았던 듯하다. 이들의 공방전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화려한 이력들을 모자이크해볼 필요가 있다. <BBC> 뉴스룸은 국내 담당 기자 수와 맞먹는 150명의 특파원 또는 기자들을 '국제국'에 배속시켜 놓은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뉴스를 대단히 중시한다.
총사령관 격인 심슨은 은퇴한 할머니 종군기자 케이트 에디(Kate Adie)와 함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심슨은 30개 전쟁지역을 취재한 베테랑으로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이라크에서 미군 차량행렬이 미 공군의 오폭으로 불길에 휩싸이자 동승하고 있던 차에서 뛰어내려 얼굴에 화염과 피를 묻힌 채 그대로 마이크를 잡은 장면은 유명하다. 황급히 위생병이 달려오자 "저리 비키시오. 난 지금 방송 중이란 말이오"라고 외치는 일종의 '방송사고'가 그대로 전파를 탔다.
아프간전쟁 때는 여자들이 입는, 눈만 남기고 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덮어쓰고 동맹군에 앞서 카불에 잠입할 정도로 심슨은 취재를 위해서라면 위험을 무릅쓴다. 그는 당시 "이 도시를 해방시킨 사람은 <BBC> 요원들뿐"이라는 '멘트'를 날렸다가 '해방'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했다'는 내부 지적을 받은 적도 있지만, 대체로 서방의 시각에 치우치지 않게 세계뉴스를 요리한다. 보스니아전쟁 보도를 둘러싸고 영국정부와 <BBC>가 충돌하자 "정부는 대중이 객관적 정보를 얻을까봐 겁낸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언론인은 선수(player)가 아닌 관찰자(observer)"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천안문 시위 때 두 명의 군인을 죽인 군중이 세 번째 군인을 살해하려 하자 이를 뜯어말리기도 했다.
소장파인 오마르(39)는 종군기자로서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을 공정하게 보도해 아랍세계는 물론 미국에서까지 <BBC>의 시청률을 높였다는 평판을 들었다. 그가 다른 서방기자들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소말리아 출신에 무슬림이어서 취재가 용이하기도 했지만 미군 사령부가 내놓는 보도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쓴 채 현장을 누빈 덕분이었다. 카불에 입성한 것도 실은 심슨보다 먼저였다. 당시 <인디펜던트>는 이런 사실을 보도하며 '누가 영광의 메달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썼다.
케임브리지 출신의 지식인이자 현장을 중시하는 심슨에게 <BBC> 웹사이트는 '활동 중독자(Action Addict)'란 별명을 붙여 소개한다. 1991년 걸프전 때는 바그다드 폭격이 임박해 본사에서 철수 명령이 내려졌는데도 이를 거부했다. 결국 전화송고를 하다가 그의 호텔에 크루즈 미사일이 날아드는 아찔한 순간을 겪어야 했다. 이라크전에서는 오마르가 바그다드 팔레스타인 호텔 옥상에서 리포트를 하다가 폭탄이 떨어져 죽을 고비를 넘겼다. <비즈(Viz)>라는 잡지는 옥스포드 출신이면서 7년 간 전쟁터를 누빈 오마르에게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총탄도 피해가는 매력남'이라는 칭호를 헌정했다.
"한국언론을 통해서는 세계가 안 보인다"
물론 총알과 폭탄이 종군기자들을 피해갈 리 만무하다. 이라크전에서는 이미 언론인 71명이 목숨을 잃었다. 언론인 사망자 수로는 이라크전이 사상 최대의 전쟁이 된 셈이다. 부상자 한 명 나오지 않은 한국 언론계는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그것은 안전지대에조차 특파원을 보내지 않고 있는 한국 언론계의 부끄러운 현실이기도 하다. 30여 개 파병국 언론들은 모두 정부의 보도통제를 거부했지만, 한국 언론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현지에 다녀온 한 지인에 따르면 "너무 많은 병력이 혈세를 축내면서 사막 한가운데서 별 일도 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게 자이툰 부대의 현실"이라고 한다. 그는 "민병대의 보호를 받는 정규군도 다 있냐"고 꼬집었다. 파병 당시 명분의 하나였던 우리 기업의 재건사업 참여도 거의 없다고 한다.
월드컵 기간인데도 영국 방송과 신문들이 한 달 넘게 집중 보도하고 있는 것은 이라크와 아프간의 전쟁, 그리고 블레어와 부시의 실정과 관련한 기사들이다. 그들은 현지르포와 해설, 사설 등으로 이라크와 아프간에 파견된 군대가 어떤 사태에 직면해 있으며, 민중들이 왜 반미·반영 저항운동을 벌이는지 가감 없이 보도한다. 이라크에서 한 소년을 익사하게 한 병사들에게 군사법정이 무죄를 선고하자 <가디언>은 '영국군은 경찰군이 아니라 살인기계'(6월8일)라는 제목까지 붙여 비판했다. 이 해설기사에서 <가디언>은 "그런 범죄는 그들의 최고사령관에 의해 양해되는 분위기에서 저질러진다"며 "부시나 블레어, 럼스펠드가 법정에 섰더라면 유죄판결이 내려졌을 것"이라고 썼다.
<BBC>와 <알자지라>의 논쟁도 실은 언론의 감시가 소홀하면 명분 없는 전쟁이 쉽게 발발할 뿐 아니라 전쟁이 더 추악해진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영국 언론인 2명이 사망한 것과 관련해 <인디펜던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인은 현장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특파원을 보내지 않으면, 백악관과 펜타곤, 다우닝가 10번지의 직업적 선동가들이 전쟁 이야기를 독점하게 된다'(5월31일)는 것이다.
오마르는 나중에 "심슨이 화를 낸 것은 이해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뉴스거리"가 여전히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다고 분개한다. 그는 미 해병대가 24명의 이라크 민간인을 학살한 '하디타 사건'을 예로 들어, 지난 11월 이래 어떤 저널리스트도 하디타에 들어가 그것을 조사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그의 말을 의식했는지는 몰라도, 심슨은 19일 하디타에서 리포트를 했다. 그리고 그는 미국이 미라이 학살 등으로 민심을 잃고 패퇴한 베트남전을 상기시켰다.
월드컵에 '올인' - 철군 논의조차 없는 나라
월드컵 관련 보도로 시간과 지면을 때우는 일이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나라는 한국 말고는 없다. 개최국인 독일과 축구 종주국인 영국도 방송사들이 교대로 경기를 중계하고 '오늘의 경기' 시간에 각 경기의 주요 장면을 분석해줄 뿐이다. 축구가 뉴스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일은 물론 없다. <BBC>는 영국이 16강에 진출한 날에도, B조 1위로 확정된 20일에도 메인뉴스 중간쯤 3~4분 정도 축구 소식을 전했다. 신문들도 16강에 진출한 날 축구를 1면에 크게 올린 곳은 황색지인 <선>과 <데일리 미러>, 권위지의 길을 포기한 <더 타임스>뿐이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분석에 따르면, <중앙일보>의 경우 토고에 이긴 날 월드컵 관련 기사 비율이 61%에 이르렀다고 한다. 오로지 상업성만 추구하는 영국 황색지들이 무색해진다. 조금이나마 자제력을 보이는 신문으로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꼽을 수 있겠다.
명분 없는 전쟁의 참상이 세계 언론에 의해 조금씩 드러나면서 각국은 철군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은 육상자위대를 다음달 말까지, 이탈리아와 폴란드는 연말까지 완전히 철군할 계획이다. 미국 하원에서도 15일 격론이 벌어졌고, 영국군은 일부 지역을 이라크군 관할로 넘기면서 철군 인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21일자 <더 타임스>가 보도했다. 우리는 세계 3위 파병국이면서도 언론도, 정치권도 철군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 '한국 언론을 통해서는 세계가 안 보인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우리 언론이 외신을 조그맣게 옮겨 싣는 것 말고 자체 보도한 이라크 관련 기사가 최근에 있기는 있었다. 지난 7일 교대병력 환송식이 열렸을 때였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과 공분이 아니라 이별의 애틋함 정도로 전해지는 사진기사류가 대부분이었다. '신혼 4일째 자이툰 이별'(<중앙일보>), '잘 다녀오세요 서방님'(<연합뉴스>) 등이 사진의 제목들이었다. <국민일보>의 사진 제목은 '교대 앞둔 자이툰도 꼭짓점 신고'였다. 신나게 꼭짓점 댄스를 추고 해외여행을 떠나듯 교대병력이 다시 이라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