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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여행] 소문난 냉면집들, 정말 맛있을까? | ||||||||||||||||||||||||||||||||
이북에서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것에서 유래한 탓에 냉면은 겨울에 제격이라는 정설이 있지만 그래도 더운 여름이 되어야 냉면을 찾게 되는 게 사실이다.
여름만 되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냉면에의 끌림. 과연 어느 집에서 먹어야 그 끌림을 한 방에 해갈 시켜 줄 것인가의 고민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각종 매스컴에서는 "여기가 맛있단다." " 저기가 끝내준단다" 라는 식의 냉면 기사도 넘쳐난다.
이런 기사를 보고 슬그머니 드는 생각, 진짜 맛있긴 맛있는 거야? 혹은, 이거 돈 받고 광고해주는 짓거리 아냐?
그런 생각 들었다면 지금부터 본 기사를 필독하시라. 업소에 땡전 한 푼 안 받고, 노매드 명랑 식도락 커뮤니티 때깔단원과 함께 그 유명하다는 맛집 9곳을 직접 체험한 결과물을 지금부터 공개한다.
지금의 롯데백화점 강남점이 그랜드백화점이던 시절. 지하 식품매장에서 시작해 서울 전역에 그 명성을 떨친 냉면집이 있었으니, 그 이름 산봉냉면...이라고 한다.
지금은 지상(?)으로 올라와 백화점 옆 건물에 터를 잡고, 최근엔 5곳의 지점을 퍼뜨릴 정도로 인기가 좋은 곳. 특히 무교동 파이낸스센터 지하의 산봉냉면에선 점심시간만 되면 길고 긴 직장인들의 줄서기 행렬을 볼 수 있다나.
우선 주전자에 담아나오는 뜨끈한 육수. 기름지고 고소한 맛을 기대한 육수에 독특하게도 진한 마늘향이 뒤덮여 있다.
육수와 섞는 동치미국물을 맑게 쓰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은 약간의 고추가루 양념이 섞여 있다.
우선 물냉면의 육수 맛부터 시식. 육수는 적당히 시원하고 달며 고소했지만 면을 씹는 순간 앞서 맛본 뜨거운 육수에서보다 훨씬 더 진한 마늘향이 코와 입을 '습격'했다. 그 마늘 향은 회냉면쪽의 면에서는 느낄 수 없어서 혹시 비빔용과 물냉면용 면을 따로 반죽하는가 싶어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그건 아니란다. 물냉면을 씹을 때 육수에 포함된 마늘향이 살아나는 모양이다.
면발은 보기에 그렇듯 역시 전형적인 '강남 스타일'의 대형 냉면집처럼 절반 이상이 투명해보일 정도로 윤기가 나고 가늘었다. 씹히는 맛 역시. 회냉면에 뿌린 참기름은 지나치다 싶다. 매운 맛을 압도하는 달달한 양념에 참기름까지 더하니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냉면에서 기대하는 산뜻함은 얻을 수 없을뿐더러 속이 니글거리기까지 한다.
계산을 하면서 지배인에게 얻은 대답. 육수에서 나는 냄새는 마늘이 아니라 생강이고 참기름은 면이 붙지 않게 하고 고소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회는 간재미가 아니라 진짜 홍어를 쓴다고.
다녀온 적 있는 독자 여러분 의견은 어떠신지.
안국동 북촌 평양냉면
메밀제분공장을 운영하기도 하는 이곳 사장님은 70년대 유명했던 평래옥의 냉면 주방장이었단다. 여느 동네 고깃집같은 평범한 식당 안쪽에 자리하면 메밀과 냉면에 대한 정보와 자부심이 물씬 풍기는 액자를 볼 수 있다.
평범한 식당풍경만큼이나 소박해 보이는 냉면들.
액자에 그렇게 써 있다.
평양식 물냉면을 먹을 때는 반드시 육수 맛부터 봐야 한단다. 그리고 면을 씹을 때에도 육수와 함께 입안 가득 머금고 그 향과 감촉을 음미하는 것이 포인트란다. 그리고 면은 가위로 자르지 말고 반드시 앞니로 끊어 먹어야 좋다고.
한우로만 우려냈다는 육수와 메밀면 치고는 상당히 부드럽고 차진 면이 씹을 때마다 뒤섞이면서 강한 메밀 향을 채운다. 비교적 유명세 면에서 소외된다 싶을 정도로 취재리스트 중에서는 가장 약소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가격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발견이다' 싶을 정도로 소박하면서도 저력이 있는 맛이다.
비빔냉면도 그렇다. 고추가루나 양념 입자가 거칠고 면발은 굵지만 맵거나 짜거나 달지 않으면서 은은한 메밀향을 전한다. 보통 비빔냉면으로는 평양식보다는 함흥식의 매력이 압도적인데 북촌냉면의 평양식이라면 한 번 맛볼 가치가 있겠다.
우래옥
비싸기로는 대한민국 최고로 악명높은 이곳의 냉면 맛은 과연 어떨까. 인쇄소며 각종 영세한 공장들이 가득한 을지로 4가 골목 안에 자리잡은 본점의 위용부터 부조화스러운 것이 위화감을 느끼게 만든다.
옳다구나, 어디 한 번 보자 하는 심정이 된다. 무슨 냉면을 8천 5백원이나 받아야 하는지, 얄밉다.(이집 등심 가격은 150g에 32,000원이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메밀 함량이 더 높은 전통하고도 더 전통평양냉면 맛을 보려면 '순면 주세요' 해야 한다는 동행 때깔단원의 귀띔. 나중에 알고 보니 순면이 5백원 더 비싸더라.
순면과 함께 비빔냉면 대신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김치말이 국수를 추가했다.
없는 트집도 잡아낼 기세로 육수 한 모금에 이어 면발을 끊어 씹다가 삼킨 기자와 때깔단원은 그러나, 젓가락을 놀려 계속 먹기만 했다. 뭐라 할 말이 없도록 맛있다. '입 닥치게 만드는 맛'이라고 해야 하나.
전통이라고는 하지만 분명히 대중화된 맛이다. 외국인들이나 '대접해야 할 손님'을 '모시고'갔을 때 나오는 고급스러운 대중화된 맛 말이다. 분명히 내 취향이 아닌 맛이었음에도 설득당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트집을 잡고 싶었는데 잡을 수 없게 만드니 더 얄미워지는 이런 심정, 여러분은 느껴본 적 있으신지.
자신감의 상징인 듯 보이는 액자의 저 영롱함이라니. 다시 오라고 하지만, 너무 비싸잖아?
평양면옥
역시 역사가 오랜 전통 평양식 냉면집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밍밍해서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주인장께서 10번은 먹어봐야 진맛을 알게 될거라고 서슴없이 매스컴에 말씀하시던 이 곳. 새로 세운 주차타워보다도 궁색해보이는 입구. 한창 공사중이다.
거의 맹물에 가까울 정도로 투명한 육수를 보면 과연 밍밍하기 그지없을 듯 하다.
한 그릇만 시키고 덜어먹을 대접을 청하니 육수와 오이 무절임을 채워 갖다 주신다. 나눴더니 그냥 두 그릇이 되어버릴만큼 양이 많다.
과연 맛이 밍밍할까? 그렇지 않았다. 맛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 아예 동치미를 넣지 않는다는 이곳의 독특한 육수는 놀랄만큼 진했고 그 육수와 함께 씹는 거칠고 투박한 메밀면은 고소하기 이를 데가 없다. 메밀향이 입안을 채우다 못해 코 밖으로 뿜어 나오는 듯 했다. 만약 메밀로도 마약을 만들 수 있다면 이런 기분에 들뜨게 만들지 않을까 싶도록.
그렇다고 해서 기자가 이곳의 냉면을 10번 먹어본 건 아니다. 4-5년 전에 딱 한 번, 그것도 우연히 들렀던 적이 있는데 그땐 밍밍하고 아무 맛도 안 난다고 느꼈더랬다. 그때와 맛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닐테니 분명 평양식 물냉면은 먹는 방법에 따라 맛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
평래옥
예전의 명성에 비해 최근 들어서는 우래옥이나 을지/필동면옥 등에 비해 잘 언급되지 않는 곳이지만 굳이 평래옥을 찾은 건 특이하게 닭육수에 꿩고기를 쓴다는 사실 때문이다. 평양 음식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냉면도 그렇지만 꿩고기를 많이 썼으니, 그 맛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식전에 내오는 육수마저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기름진 닭육수다. 특유의 느끼한 냄새를 없애진 못했지만(그닥 없애려고 애쓰지도 않는 것 같다) 나름대로 구수하다.
경단처럼 뭉친 고기고명이 꿩이다. 통째로 삶아 뼈째 다져 뭉쳐놓아 딱딱한 뼈가 씹히니 염두에 둘 것.
분명히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맛은 아니다. 뜨거운 육수에 비해 놀랄만큼 깔끔하게 걸러내 진하면서도 달고 시원하긴 하지만, 닭 육수의 굴레라고나 할까. 기자는 전혀 거슬리지 않았지만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미세하게나마 닭 국물 특유의 비린내를 맡을 수도 있겠다.
강서면옥
이 곳의 냉면을 평양식이라고도, 개성식이라고도 한다. 미국에 지사를 4곳이나 가지고 있고 각종 매스컴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등 유명세에 있어서는 우래옥 못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가격도 우래옥 못지 않다. '수십근의 한우를 우려 만든 육수와 구수한 메밀면의 맛이 어우러진 최고의 평양식 물냉면'이 8천5백원이다.
평양냉면의 정석을 보여준다는 둥, 밸런스 잘 잡힌 맛이라는 둥 온갖 호평에 기대한 바가 컸다. 당연히 우래옥과 같은 수준의 맛을 보게될 줄 알았다.
자태는 썩 고와 보인다.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딱 한번의 젓가락질로 우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아니면 빗물이 섞였던 걸까?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이 삼성 본관과 삼성화재 빌딩.
오장동 흥남집
하필이면 쉬는 수요일에 찾아가 한 번 헛걸음하고, 다음 날 다시 찾아가야 했다.
우래옥에서 받는 선불은 기분나쁜데, 이곳에선 왠지 정겹다. 아주머니 손에서 묻어난 양념이 그릇에 찍혀 따라오는 건 아직 찝찝해도.
위에 함흥식 물냉면은 별로 매력이 없다고 썼다. 그런데 흥남집의 물냉면은 예외로 해야겠다. 전분면임에도 국물 안에서 미끌거리지 않고 잘 어울린다.
하지만 비교적 굵은 면발은 빨리 불어버리는 듯했고 간장으로 간한 육수는 다소 강한 맛을 낸다. 흥남집의 육수에서 바로 마늘과 양파 향이 어슴프레 풍겨왔는데, 산봉냉면의 그것과는 수준을 달리한다.
필동면옥
메밀을 많이 쓰는 평양식 냉면집에서는 식전에 육수가 아닌 면수(메밀 삶아 우린 물)을 내준다. 낯선 분을 위해 알려드리자면 아주 가볍고 산뜻한 숭늉 맛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마 평양냉면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덩달아 이 면수 맛에도 빠져들게 될 거다.
주택가와 낮은 사무건물이 한적하고 조용한 거리 한 편에 자리잡은 필동면옥의 식당 분위기가 일단 마음에 든다. 오래된 건물이면서 처음부터 그랬던 듯한 고즈넉함이 잘 간직된 분위기.
한 번에 몰아서 냉면집 투어를 해서인지 평양식 냉면이야말로 집집마다 모두 독특한 스타일과 맛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필동면옥의 육수는 평양면옥처럼 투명한데, 면은 투명할 정도로 밝은 빛깔에 반질거리지 않으면서도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윤기를 띤다.
결정적으로 특이한 것은 육수맛이다. 역시 투명하면서도 진한 육수이면서도 시원한데 그 맛이 마치 냉장고에 차게 넣어두었다가 밥을 말아먹는 콩나물 국 맛과 같았다. 살짝 뿌려나오는 고추가루와 얇게 저며 띄운 청양고추가 더 그 맛을 연상케 하는지도 모르겠다.
고추가루에서 풍겨오는 톡 쏘는 향긋함이라는 느낌.
마포 을밀대
이곳의 냉면이야말로 정통 평양 옥류관 스타일이라는 등 주로 미식가와 최근 블로거들 사이에 극찬이 오가는 을밀대.
그런데 이미 평양면옥에 매료된 탓인지 기자 입맛에는 상당히 낯설고 특색없는 맛이었다. 지금까지 냉면집에서 최고의 굵기를 자랑하는 면은 메밀도 전분면도 아닌 중국집 수타면을 연상시켰고, 얼려 갈아 나오는 육수는 차도 너무 차서 맛을 느끼기도 전에 입 안이 얼어버린다.
면 스타일이 그래서인지 육수 맛마저 국물이 많은 중국식 냉면을 떠올리게 한다. 얼었던 입안을 진정시킨 후 찬찬히 맛 보아도 육수는 별 특색이 없었다.
어쨌든 막연한 예상과 기대를 뒤엎은 을밀대의 냉면. 앞서 말했듯 평양 냉면은 백면백색이라 이 을밀대의 냉면도 을밀대 스타일이라 명명해도 좋을 듯 하다.
이상 때깔단과 함께한 소문난 냉면집 1차 순례를 마쳤다.
2차 순례는 정통이니 진맛이니 하는 쪽이 아닌 싸고도 나름 일가를 이루기 시작한 변방(?)의 냉면집을 다뤄볼까 하는데, 며칠 연속 냉면만 먹다 보니 속이 불편한 탓에 망설여진다....만, 여러분이 원하면 해야지 뭐.
맛에 대한 평가는 어느 수준까지는 일반화할 수 있으나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시기 바라며, 여러분의 맛 평가가 이어져 뒤따르는 사람들이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냉면 순례에 함께한 때깔단원들께 감사드리며, 가장 많은 냉면 집을 함께 한 知眞我님과 기자가 뽑은 베스트 3를 정리하면서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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