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들의 추방은 그 시대에는 불미스러운 일이었지만 오랫동안 열매맺는 많은 좋은 결과들을 영국과 세계에 남겨 놓았다. 그 시대를 겪은 위대한 비국교도 단체들은 국교 외부에서 조직되었고 형성 되었으며 그들의 양심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권리를 영국의 정치가와 통치자들로부터 겨우 얻어 냈으며, 그들은 국교 안에 남아 있기보다는 가능한 한 시민과 종교의 자유와 그리고 다른 고상한 일들에 커다란 공헌을 남겼다.
1) 때가 이르렀을 때, 청교도들이 바라고 투쟁한 의회 입법정부의 원리들은 혁명의 정착 가운데 영국 헌법으로 구현되는 방향을 찾았다. 가디너가 지적한 것처럼, “1688년의 혁명에서 청교도주의는 1642년에 실패했던 시민의 자유를 이루었다.” 브라이트, “종교개혁의 혼란은 장로교주의의 탄생을 가져다 주었으며, 신성하게 임명된 사제들에 의하여 조직된, 정치기구에 대조되는 회중에 의해 선출된 수행원들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교회직을 낳았다. 대표정치에 대한 관념은 신성한 권리에 기초한 권위의 개념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입헌적 왕권이란 말은 청교도들에 의하여 취하여진 견해였었고 나중에는 휘그당에 의하여 받아들여졌다.”
2) 18세기의 위대한 부흥
왕정복고로 중단되었던 신앙의 각성과 개혁운동은 18세기에 휫필드와 웨슬레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복음적 대부흥 운동 가운데 재개되었다. 국교회 내에 복음적인 학문이 일어났고, 그 가운데에서 윌리엄 로메인, 헨리 벤, 존 뉴턴, 그리고 토마스 스코트 같은 사람들이 탁월한 역할을 하며, 영국 국교회 내의 청교도주의의 부흥이라고 불리어졌던 일이 일어났다. 가디너, “청교도주의는 천천히, 그러나 침착하게, 엄격함과 순결함을 영국사회와 영국문학과, 영국 정치에 소개했다. 왕정복고 이래로 전체 영국의 진보의 역사는 도덕과 영적인 측면에서 청교도주의의 역사였었다고 말할 수 있다.”
3) 도우덴, “청교도주의는 영국의 영혼과 마음속에 성경의 탁월성을 전달해 주었다.”
세계의 영어를 말하는 모든 나라들이 청교도주의에 의해 성경으로 인도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대평가가 아닐 것이다. 청교도주의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 더욱 밀접하게 접촉시켰으며,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미국의 한 신문은 “그들이 마차를 별나라로 인도했다”라는 말로 청교도를 칭송했다. 도우덴은 청교도주의의 중요한 관념은, 독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람의 영혼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관계는 간접적인 것보다 오히려 직접적인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이 청교도주의의 사상을 강조하자면 청교도주의는 인간의 마음을 사제의 굴레에서 자유케 하고 신분을 높여 고상하게 만들기 위하여 많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4) 청교도주의는 내면적인 근원으로서, 세계에 여전히 살아 있는 능력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생존하고 번영하는 비국교도의 거대한 복음교회들, 곧 장로교, 회중교회, 감리교, 침례교 그리고 영국 국교도의 수를 훨씬 능가하는 그 밖의 다른 여러 교회공동체에서 청교도주의의 전통은 여전히 보존되고, 유지되고 있다. 청교도주의는 교회의 정신과 근본적인 원리들 속에서 여전히 능동적이고 살아 있는 것이다.
- 제임스 헤론, 「청교도 역사」, pp 234-237
첫댓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분명 청교도들은 주님의 말씀처럼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 그러나 신앙의 바른길을 걸어가면서 마침내 주님처럼 세상을 이긴 자들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일삼는 이 시대의 이름만 그리스도인인 이들의 삶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신앙의 높은 벽을 뛰어넘어 죽음도 불사하는 청교도들의 삶을 다시 보게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굉과 존귀를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