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여행기(1)마카오 가는 길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 갇힐 것 같아서 새벽까지 눈을 뜨고 있었다. 여행은 늘 새롭게 다가오고 설렘을 가져다주지만 이번은 다른 여행과 다른 것이 있어서 그런지 어둠 속에서 머물다가 집을 나섰다. 여행용 가방을 밀고 작은 가방 하나를 메고 집을 나서 함께 여행을 떠나는 동료의 아파트로 갔다. 세상은 고요에 묻혀있었고 가방 바퀴에서 나는 소리가 어둠을 깨우는 것 같아 무겁지 않은 가방을 들고 갔다. 잠시 기다려 동료를 만났고 우리들은 가방을 트렁크에 싣고 다시 다른 동료를 태우기 위해서 다른 아파트로 갔다. 그 곳에서 인사를 나누고 드디어 인천으로 출발했다. 한 달 이상 기대 속에서 꿈꾸던 여행이 시작된 것 이었다.
예산을 떠나 당진을 거친 후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우리들은 서해안 고속도로 서평택 IC에 진입했다. 원래는 송악 IC에서 진입해야 했지만 지리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또 어둠 때문에 이정표를 확인하지 못한 결과이고도 했다. 하루 전에 인천에서 묶는 것 보다는 훨씬 더 나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시간 정도 달렸는데 이번에 공항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서울의 강북으로 달렸다. 우리들은 미로 게임을 하는 듯 했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서울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의도와는 달리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도로변경찰차에서 잠자는 경찰을 깨워서야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을 알 수 있었다.
인천국제공항 전용도로에 접어들은 후 마음이 편안해졌지만 밤을 새웠음에도 불구하고 긴장이 되어서인지 잠은 오지 않았다. 여러 번 인천공항에 갔었지만 모두 버스를 이용했고 승용차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어둠 속의 공항 가는 길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승용차가 육천 원이 넘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지하에 장기주차를 시키기로 했다. 하루에 12,000원인데 버스를 타고 오는 것 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장기 주차자를 위해서 국가에서 좀더 싸게 주차시킬 수 있는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들이 가는 곳이 동남아시아이시에 날씨가 덥기에 겨울용 점퍼만 벗고 긴 티셔츠와 청바지만 입고 주차장을 벗어나 공항으로 들어갔다. 약간 춥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점퍼가 짐이 될 것이 뻔하기에 그렇게 했다. 여행사 직원과 만나기로 한 출국장 지정된 지점에 가니 직원이 우리들에게 비행기 표와 여행일정표 그리고 출국신고서 용지를 나눠준다. 우리들은 먼저 출국신고서를 작성한 다음에 마카오 항공 대행사인 아시아나 창구로 가서 가방을 보내고 비행기 표를 받았다. 그 뒤에 출국보안 검색 대에서 휴대품을 검사받았는데 ‘삑’소리가 나서 보니 손톱 깎기가 문제를 일으켰는데 그 부분이 칼날이 붙어있어서 열쇠꾸러미에서 그것만 빼고 통과할 수 있었다.
세관 검색 대를 지나고 탑승권, 여권, 출국신고서를 내밀어 출국심사를 받은 후 여권에 스탬프를 받은 후 면세구역 구역으로 나왔다. 탑승 시간이 남아있어 면세점에 들렸지만 물건을 살 마음은 없었다. 7시 30분이 넘어 탑승이 시작되어 탑승 게이트로 이동했다. 비행기 티켓을 내밀어 좁은 부분을 돌려받고 우리들은 탑승구를 통해서 비행기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항공사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신문을 한 부 들고 좌석을 찾았다. 우리들은 NX825편 이용했는데 좌석은 11C였다.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 항공기가 아니라는 것 이었는데 여행사의 전세기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행기는 국내선을 오가는 정도의 소형비행기였고 8시 5분이 되자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지난 후 활주로로 나갔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비행기가 서서히 하늘로 오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솟아오를 때 마다 나는 늘 작은 현기증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도 과정이니 온몸으로 감수해야하고 나만의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가 안정을 찾자 아침식사가 제공되었다. 배가 고픈 때 여서 맛있게 먹었는데 메뉴는 쇠고기 덮밥이었다. 해외여행의 첫 식사가 기내식인 것이 보통인데 사실 약간 느끼한 면이 있었다. 특히 중국여행을 하면 질리도록 나오는 시금치와 비슷한 청정체(나중에 여행객중 한명이 알려줌)가 뱃속을 뒤집어지게 했으나 식사를 한 후 커피 한 잔으로 마무리 했는데 동남아 항공기에서 제공되는 커피는 약간 탄 듯한 냄새가 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식사를 한 후에 마카오 입국신고서를 작성했고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는데 잠깐 잠이 들어 눈을 뜨니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기내방송을 하고 있었다. 10시 50분쯤 마카오공항에 도착했다. 마카오 공항(Macau International Airport)은 타이파 섬(Taipa)의 동쪽 끝과 연결된 바다 위에 있는 공항으로 1994년 2월 공항 북동쪽에 4차선 고속도로와 다리를 건설해 타이파 섬과 연결했으며, 1995년 11월 9일 개항했다고 한다. 공항에서 수속을 했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고 까다롭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느 공항을 가든지 기본적으로 들르는 방역이나 세관 그리고 보안과 입국 심사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밀려든 승객들 때문에 단체 여행객들은 거의 모든 승객들이 빠져나가야 할 때 까지 공항에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리들도 여행사 피켓을 든 가이드의 안내대로 한참 기다린 후 버스에 오를 수 있었는데 현지 가이드와 마카오 가이드가 탑승을 한 후 버스는 타이파 섬을 지나 마카이 반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는데 연결다리는 ‘우정의 다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4.78km가 된다고 한다. 가이드인 이명수 양이 점심 식사를 하러 가는 도중에 마카오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카오는 중국 남동부 주장강 하구의 서쪽 연안에 있는 중국 특별행정구로 중국 이름은 아오먼(澳門)이고 면적은 21㎢, 인구는 2003년 기준 47만 여명인데 긴 마카오반도와 남쪽 해상에 있는 타이파·콜로안의 두 섬으로 이루어져있다. 마카오란 이름은 옛날부터 전해온 마가오묘라는 사원을 포르투갈인이 <마카오>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고 하는데 주민의 95%가 화교들이다. 그래서 중국어와 포로투갈어 영어가 사용된다고 한다. 그 곳의 온도는 250도 내외인데 그 날 18도 정도로 떨어져 가이드는 긴 옷을 입고도 '춥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마카오는 한국과 1시간의 시차가 있는데 내 시계를 한 시간 늦게 맞춰놓았다.
마카오는 원래는 마가오묘가 있는 작은 항구에 지나지 않았으나 1557년 포르투갈인이 명(明)나라 군대를 도와 해적토벌에 참가한 대가로 이곳에 거주할 권한을 얻었다고 한다. 중국과 포르투갈은 1986년 마카오반환교섭을 시작한 이후 1987년 3월 마카오주권반환협정에 조인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9년 12월 20일 442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아온 마카오는 중국에 복귀하였다. 마카오 경제는 전통적으로 도박과 관광산업, 대중국 중계무역에 의존하였다. 카지노에서 거둬들이는 국고수입은 전체 정부 세입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니 가히 그 위력이 어떤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이드는 다리를 건너면서 멀리 보이는 큰 건물은 거의 카지노라고 설명을 했다. 마카오에는 교민이 300여명 살고 있는데 식당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마카오 항이 홍콩에게 무역항으로서의 명성을 잃어버렸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다에 퇴적물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들이 한 식당으로 들어가자 한 테이블에 10명씩 앉도록 해 놓았는데 점심 메뉴는 딤섬이었다. 딤섬은 낙안 음식축제에서 본 적이 있고 북경에서 맛 본적이 있는 만두의 총칭이다. 한 입 크기의 작은 중국만두. 작은 음식의 정성스러운 맛과 멋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한자 <點心>의 광동식 발음으로, 중국 표준어로는 ‘디엔씬’라고 한단다. 총 7가지의 딤섬이 나오는데 각각의 다른 맛이 있는데 나는 먹을 만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국수와 야채볶음이 나왔는데 그것은 별로 입맛에 맞지 않았다.
첫댓글 새로움에 대한 탐색, 분명 즐거운 발걸음이었겠으나 여행을 가기 위해 계획을 잡고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 시간들이 더 즐겁고 행복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참 멋진 삶이네요. 새해 계획 모두 이루시길....
중간쯤 읽다가 가는데 바빠서 날잡아 다 읽어야 겠습니다, 무척 즐겁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