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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데카르트 <방법서설>?
밍널(배성주) 추천 0 조회 64 14.04.20 09:4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데카르트 방법서설

 

윤 선 구

 

서울 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3

 

 

머리말

 

근대철학 아니 철학사 전체와 관련하여 데카르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중요하고 또 가장 기본적인 사항일수록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은 한국 철학계에서 그간 근대 철학에 대한 연구가 소홀히 되어 왔던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한국 철학은 근대철학을 소홀히 하고 바로 현대철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탈근대사회인가 또는 전근대사회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설령 우리 사회가 많은 측면에서 탈근대 사회로 접어들었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우리 지식사회에서는 근대성에 대한 담론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누구나 시인할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필요하고 또 중요한 과제이다.

 

데카르트의 많은 저서 중에서도 ?방법서설?은 가장 기본적인 저서에 속한다. 이 책은 철학만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 학문 전체를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고, 무엇보다 절대적인 진리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합리론자로서 데카르트의 신념과 이성을 신뢰하고 자신의 이성에만 의지하겠다는 근대적 정신이 명확히 표출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을 포함한 일반 학문의 연구자 그리고 일반교양인들 까지도 반드시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다.

 

본 연구서는 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 육성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주관한 “철학 텍스트들의 내용 분석에 의거한 디지털 지식 자원 구축을 위한 기초적 연구”의 일환으로 연구되었다.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철학도 새로운 매체를 이용하여 독자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이 연구의 취지였다. 단순히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XML이라는 새로운 컴퓨터 언어가 제공하는 기술을 이용하여 철학 텍스트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독자가 원하는 정보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서는 ?방법서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기보다는 “토핍 맵 Topicmap”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하여 철학 텍스트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철학적 컨텐츠는 어떤 형태와 내용을 갖춰야 하는가에 중점을 두어 연구되었다.

 

현재 “토핍 맵 Topicmap”의 구축과 활용은 세계적으로도 아직 초보단계에 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미흡한 상태로 남아 있다. 미흡한 부분을 계속적으로 보완하여 확대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 “토핍 맵 Topicmap”의 특징이라고 한다. 앞으로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갈 것을 약속드리며, 이 작은 연구가 철학의 대중화, 정보화에 기여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2003년 5월 12일
철학사상연구소에서 윤 선 구

 

 

목차

 

제1부 ?방법서설? 저자 및 작품 해제 ··················································· 1
1. 데카르트의 생애 ················································································· 1
2. ?방법서설? 해제 ················································································· 3
3. ?방법서설?의 내용체계 ······································································ 6

제2부 주요 개념 체계 및 개념 연관도 ·············································· 15
1. 주요 개념 체계 ················································································ 15
2. 주요개념 연관 관계 ········································································· 16

제3부 ?방법서설? 주요 개념 분석 ······················································ 19
1. 방법 ·································································································· 19
1.1. 기존학문과 관습에 대한 비판 ················································ 22
1.1.1. 기존 학문에 대한 비판 ··················································· 22
1.1.2. 선례와 관습 ····································································· 29
1.2. 참된 인식의 가능성 ································································ 30
1.2.1. 인식능력: 양식 bon sens, 이성, 자연의 빛 ················· 30
1.2.2. 인식의 대상 ····································································· 33
1.3. 오류 ························································································· 34
1.4. 진리인식 방법 ········································································· 36
1.4.1. 진리인식 방법의 필요성 ·················································· 36
1.4.2. 진리인식 방법의 개발 ····················································· 37
1.4.3 올바른 이성 사용을 위한 규칙 ········································ 38
2. 형이상학 ··························································································· 45
2.1. 방법적 회의 ············································································· 48
2.1.1. 회의의 목적 ····································································· 49
2.1.2. 회의 과정 ········································································· 51

2.2. 나 ····························································································· 53
2.2.1. 나의 존재 ········································································· 53
2.2.2. 나의 본질 ········································································· 54
2.2.3. 철학의 제일원리 ······························································ 56
2.3. 신 ····························································································· 56
2.3.1. 신의 본성 ········································································· 57
2.3.2. 신 존재 증명 ··································································· 60
2.4. 물체 ························································································· 65
3. 자연학 ······························································································· 67
3.1. 보편적 자연법칙 ····································································· 69
3.1.1. 창조론 ·············································································· 71
3.1.2. 자연법칙의 연역적 도출 ·················································· 71
3.2. 특수한 자연법칙 ····································································· 72
3.2.1. 실험의 역할 ····································································· 72
3.2.2. 가설 연역적 방법 ···························································· 74

 

참고문헌 ··································································································· 76

 

 

제1부 ?방법서설? 저자 및 작품 해제

 

1. 데카르트의 생애

 

데카르트는 1596년 3월 31일 프랑스 중서부지방 투렌의 라에이(LaHaye)라는 마을에서 브르타뉴 지방 고등법원 법관인 조아셍 데카르트(Joachim Descartes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지 1년 남짓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할머니와 유모의 손에서 자랐고, 18세가 되던 1606년에 제수이트 교단이 설립한 라 플레슈 학원에 입학하여 학업을 시작하게 된다. 라 플레슈 학원에서는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몸이 허약했던 데카르트는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이 허용되었고 데카르트는 침대에 누워 사색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라 플레슈를 졸업한 후 그는 푸아티에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과 의학을 전공하고 1616년
동 대학에서 법학사 학위를 취득한다.

 

22세 되던 1618년부터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에 대해 탐구여행을 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네덜란드의 모리스 드 나소가 지휘하는 군대에 입대한다. 여행이 일반화되어 있지 못하던 당시로서는 군대에 들어가는 것이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그는 의학자이자 수학자인 이삭 베크만(I. Beeckman)을 만나 교류하면서 자연 현상을 수학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같은 해 데카르트는 ?음악개론?(Compendium musicae)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베크만에게 헌정하였다. 1618년에 30년 전쟁이 발발하자, 이듬해에 데카르트는 독일구교의 군대인 바이에른부대로 들어갔고, 같은 해 11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거행된 페르디난드 2세의 대관식을 관람하고 돌아오는 도중 독일 남부 울름 근교에서 머물며 따뜻한 난로 가에서 사색에 잠기다가 보편학문의 정립을 위한 방법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된다. 이때 고안된 방법은 1628년에 저술하다 중단된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과 ?방법서설? 제2부의 내용을 이룬다. 데카르트는 울름에서 진리의 인식을 위해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기 위한 규칙과 완전한 도덕학을 수립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지도할 잠정적인 도덕규칙을 마련한 후, 다시 9년 동안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히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동안 그는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로 여행하다가 1628년에 여러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고 한적한 사색의 시간을 갖기 위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여 이후 20년 동안 거주하게 된다.

 

암스테르담에 정착하자마자 그는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을 집필한다. 이 저작은 미완성의 유고로 있다가 1701년에서야 비로소 출간되었다.
?방법서설? 4부에서의 고백에 의하면 데카르트는 네덜란드에 이주한 직후에, 8년 후에 ?방법서설?을 통하여 비로소 개략적으로 소개되고, 1640년에 상세히 서술되는, 이른바 “오랫동안 연기되어 왔던” 작업인, 모든 의심스러운 것을 허물고 단단한 형이상학의 토대를 구축하는 일에 착수한다.
1630년부터는 메르센 신부와의 서신교류가 시작되는데, 이 편지에 그의 새로운 형이상학의 구축작업에 관한 얘기가 소개되고 있다. 1631년에서 1632년 사이에 데카르트는 해석기하학, 굴절광학, 해부학 등에 관한 연구
에 몰두한다. 그리고 1633년에는 그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연구한 ?세계 및 빛에 관한 연구?를 집필하였는데, 같은 주제에 관한 저서로 갈릴레이가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출간을 보류하였다. 1636년에는 그의 진리탐구를 위한 방법과 형이상학, 그리고 자연학적 연구를 개괄적으로 소개한 ?방법서설?을 집필하였고, 이 책은 다음 해에 저술된 ?굴절광학?, ?기하학?, ?기상학?함께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 그리고 이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이란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1640년에 ?제일철학에 대한 성찰?을 탈고하고 이 원고를 루뱅대학교의 신학자 카테루스(J. Caterus)에게 보내 검토를 받았으며, 이후 메르센, 홉스, 아르노, 가상디 등으로부터 반론을 받고 이에 대한 답변을 추가하여 1641년에 출간하였다. 다음 해인 1642년에 부르댕(P. Bourdin) 신부가 성찰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자 이에 대한 답변을 추가하여, 총 일곱 번의 반론과 이에 대한 답변을 포함한 ?성찰?의 정본을 암스테르담에서 출판하였다. 같은 해 위트레히트 대학의 학장인 보에티우스(G. Voetius)가 데카르트를 무신론자라고 공박
하며, 데카르트에 반박하는 팜플렛을 돌리자, 데카르트는 ?보에티우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1644년에는 데카르트의 철학을 총 집대성한 ?철학의 원리?가 암스테르담에서 출판되었다. 1643년부터 보헤미아의 왕녀인 엘리자베스와 서신을 교환하면서 데카르트는 윤리학과 심리학적인 문제에 몰두하게 되고 엘리자베스 왕녀의 요청으로 ?정념론?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1649년에 출간한다. 같은 해에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그를 초대하자, 데카르트는 여러 차례의 사양 끝에 스톡홀름으로 가서 여왕의 철학교사가 된다. 그러나 원래 몸이 약했던 데카르트는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고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폐렴에 걸려, 스웨덴에 간 다음 해인 1650년에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이로 인해 그가 모든 학문의 궁극적 목적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던 윤리학적 저술은 실현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2. ?방법서설? 해제

 

?방법서설?은 데카르트가 1636년에 쓴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 그리고 이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이라는 다소 긴 제목이 붙어 있는 책의 첫 번째 부분이다. 원래의 책은 제목이 말해 주듯이 방법서설,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 등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세 부분은 주로 자연학과 수학에 관한 내용이므로, 통상 첫 번째 부분만 독립적으로 떼어내어 ?방법서설?이라 이름하여 출판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방법서설?의 원 제목은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인 셈이다. 책의 제목으로만 보면 이 책은 방법에 관한 논고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단순히 방법에 관한 논고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 까닭은 이 책이 6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철학의 방법, 즉 이성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규칙에 관한 내용은 2부에서만 다루어 질 뿐이기 때문이다.

제1부에서는 기존학문과 관습에 대하여 비판하고, 참된 인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져 있는 이성을 올바로 사용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2부에서는 참된 인식을 얻기 위해 이성을 인도하는데 적용되어야 할 규칙, 즉 이성의 올바른 사용을 위한 방법과 이 방법을 어떻게 고안하였는지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고, 3부에서는 이 방법을 적용하여 참된 지식을 얻기 전에라도 실천적인 행동은 해야 하므로 이때 필요한 임시방편적인 행동원칙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4부에서는 후에 ?성찰? 에서 상세히 서술하게 될 철학의 제일원리, 정신으로서 자아의 존재, 그리고 신존재 등 형이상학적 주제에 대한 인식과정이 간략히 서술되고 있고, 5부에서는 ?방법서설?저술 당시에는 출판되지 않았지만 이미 저술이 완료되어 있던 ?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에 대한 내용과 혈액순환 등 동물학 관한 내용 및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대한 내용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6부에서는 ?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는 출판하지 않았으면서, 마찬가지로 자연학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책인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 그리고 이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이라는 책은 왜 출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명이 담겨있다.

분명히 3부의 임시방편적 행동규칙은 진리탐구의 방법에 속하지 않으며, 4부의 형이상학도 그 자체 방법이 아니라, 방법을 적용하여 획득한 철학적 인식이고, 5부는 자연에 관한 인식이다. 그렇다면 ?방법서설?은 어떤 의미에서 방법론에 관한 논고로 볼 수 있을까? 이것은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 그리고 이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이라는 책의 구조를 살펴봄으로써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방법서설?은 첫번째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뒤 부분은 굴절광학, 기상학 등 자연학에 관한 부분이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을 좁은 의미에서 철학에 대한 방법론이 아니라 자연학 나아가 학문 일반의 방법론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데카르트는 이성을 인도하는 규칙에 따라, 방법적 회의를 통하여 철학의 제일원리로 불리는 최초의 확실한 인식인 자아의 존재를 인식하는 과정과, 자아의 존재와 정신 안에 존재하는 신과 물체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신의 존재와 본질에 관한 인식, 그리고 물질세계의 존재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을 도출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확실한 인식으로서의 자연에 관한 인식을 획득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1636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그 다음해에 출판되었는데, 이 책에는 그에 앞서 1628년에 저술된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과 1633년에 저술된 ?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뿐만 아니라, 4년 뒤인 1640년에 비로소
저술된 ?성찰?에 대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성찰?의 내용이 책으로 저술된 것은 1640년의 일이지만, 데카르트가 이러한 내용의 성찰을 직접 행한 것은 ?방법서설?이 집필되기 이전임을 알 수 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1619년 독일 울름 근교의 한 난로가 있는 병영 막사에서 학문의 체계를 새로 구축하는데 대한 영감을 받은 사건에서 시작하여 ?굴절광학?, ?기상학?, ?대수학? 등을 저술한 1637년까지의 자신의 학적 체험을 전기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가 1619년 병영 안의 난로 가에서 한 사색은 ?방법서설?의 1부 후반부 기존학문 및 관습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2부의 이성사용을 위한 규칙에 관한 사색, 3부 잠정적 행동원칙에 관한 사색까지이다. 그 후 데카르트는 전통적인 신앙의 진리와 잠정적인 행동원칙만을 견지고, 전통적 학문을 통해서 배운 것과 선례 및 관습을 떨쳐버리기 위해 긴 여행에 나섰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가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홀란드에 정착한 것은 9년 후인 1628년의 일이다. 이 해에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이 집필되었다. 이 내용은 ?방법서설? 2부에 간략히 소개되어있지만, 이미 1619년 병영에서 어느 정도 구체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640년에 집필된 ?성찰?의 내용에 해당하는 사색이 이루어진 것도 1628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데카르트가 ?방법서설? 3부 끝 부분에서 병영사색 이후 9년이 지난 시점에서 철학의 토대를 새로 구축하는 시도에 착수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고, 4부 모두에서 홀란드에서 최초로 행한 성찰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성찰?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633년에 집필된 ?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는 형이상학적 토대가 마련된 이후에 이를 토대로 도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데카르트는 모든 확실한 인식은 철학의 제일원리인 자아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신 존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모든 자연법칙들은 신이 자연세계에 창조를 통해 부여한 것으로서 인간의 정신에 각인시켜 놓았기 때문에 충분히 반성만 한다면 경험의 도움 없이 신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자연학에 있어서 실험의 중요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가 원리적 규칙이라고 부르는 운동량보존법칙이나 관성의 법칙과 같이 근본적인 자연법칙들은 실험의 도움 없이 신에 관한 인식으로부터 선험적으로 연역이 가능하지만, 개별적인 법칙들은 원칙적으로 연역적 도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다양성 때문에 실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데카르트가 제시하는 방법은 갈릴레이의 가설연역적 방법과 유사하다. 즉 특수한 자연법칙들은 원리적으로는 신으로부터 연역하여 그 확실성을 증명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설이라고 부른다. 이 가설로부터 연역을 통하여 개별적인 현상들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만일 이러한 설명내용이 실험결과와 일치한다면 가설은 실험을 통하여 입증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순환논증이 아님을 데카르트는 ?방법서설? 6부 마지막에서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자연법칙들을 실험을 통하여 입증하려면 많은 실험이 필요한데, 이 실험은 한 두 사람의 손에 의해 완성될 수 없고 누적적인 성과가 중요하므로 데카르트는 자신의 실험결과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 그리고 이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을 출판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3. ?방법서설?의 내용체계

 

1부 서론

1) ?방법서설?의 출판 목적

- 양식 혹은 이성은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다
- 인식의 획득여부는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
- 데카르트는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만들어, 이미 많은 인식을 얻었다
- 따라서 자신의 방법과 인식에 도달하는 과정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공론화하기 위해 ?방법서설?을 서술한다

2) 기존학문 및 세상 선례와 관습의 비판

 

(1) 기존학문 비판
a. 데카르트는 당대 최고의 학자들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였으므로, 자신의 판단을 토대로 모든 기존 학문을 비판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함
b. 그러나 기존 학문의 유용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님. 언어, 우화, 역사적 사건, 양서의 독서, 웅변, 시, 수학, 도덕, 신학, 철학 등은 나름대로 유용성이 있음
c. 다만 기존 학문의 확실성과 이를 통한 인식획득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임
- 언어, 우화,역사적 사건, 양서 독서 등은 어느 정도 배우면 도움이 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비현실적이 됨
- 웅변, 시 등에 대한 재능은 배워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임
- 수학은 다른 학문의 든든한 토대가 될 수 있기는 하지만, 실용적인 부분이 없음
- 도덕은 겉은 화려하지만, 인식론적 토대가 없음
- 신학은 계시에 의하는 것으로 가장 무식한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가능함
- 철학은 많은 유식한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것이 없음
- 기타 학문은 철학에 토대를 두고 있는데, 철학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역시 불확실함

 

(2) 세상의 선례와 관습에 대한 비판
- 학문에 확실한 것이 없으므로 세상의 실생활 속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세상 경험에 나섰음
-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도 아주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므로 확실한 진리가 존재하지 않음을 발견하였음
- 따라서 세상의 선례나 관습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진리를 탐구하기로 결심함

 

2부 학문의 방법

1) 데카르트는 자신의 기존 견해를 버리고 새로 구축하기로 함

a. 여러 사람들의 견해가 종합되어 만들어진 학문보다, 혼자 체계적으로 구축한 학문이 더 완전하다고 생각함
b. 공공에게 속하는 학문체계를 허물고 다시 구축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지만, 사적으로 받아들인 의견을 모두 버리고 새로이 받아들이는 것은 정당한 일임
c. 데카르트의 작업 성격
- 데카르트의 작업은 사적 견해인 자신의 생각을 개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음
- 데카르트는 자신이 성격상 생각을 철저하게 개혁하는 일에 부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함
- 그러나 학자들 간에 의견의 차이가 다양하고, 민족들 간에 관습이 다양한 것을 경험하였고, 자신이 추종할 만한 다른 사람이 없기 때에 자신이 이 일을 수행하기로 하였음
- 이 일을 위해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참된 방법을 찾기로 하였음

 

2) 견해 재구축 작업을 위한 방법

(1) 진리탐구를 위한 규칙
- 논리학, 해석기하학, 대수의 방법론에서 장점을 취하여 새로운 규칙을 발굴함
- 명석 판명하게 통찰하는 것 외에 어떠한 것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함
- 검토할 대상을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눔
- 단순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으로 순서에 따라 인식함
-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열거와 검토를 실시함

 

(2) 데카르트 방법의 우수성
- 자신의 방법을 기하학의 증명에 적용할 때, 모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짐
- 이 방법은 모든 학문에 적용할 수 있지만, 철학이 다른 학문의 원리이기 때문에 우선 철학에 적용하기로 함

 

 

3부 잠정적 도덕 규칙

1) 잠정적인 도덕

-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는 동안에도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를 위해 4가지 잠정적인 도덕규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봄
- 내 나라의 법률과 관습을 존중하고, 전통 종교를 견지하며, 온건한 견해를 따르기로 함
- 일단 어떤 의견을 택하기로 결정하였으면 행동에 있어서는 가능한 한 확고하고 결연한 자세를 취할 것
- 내 능력 외부에 있는 불가능한 것은 신의 섭리로 인정하고, 내 능력안에 있는 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
- 다양한 직업 중에 최선의 것을 선택할 것

2) 의견의 재구축 작업에 착수함

- 잠정적 도덕과 종교만 견지하고, 다른 의견을 모두 버리는 일을 더 잘 수행하기 위해 여행 떠남
- 회의의 목적은 회의주의가 아니라 확고한 토대를 발견하기 위한 것임
- 여행에서 경험한 것은 나중에 확실한 토대 위에 재구축 할 인식의 재료로 삼기로 함

 

 

4부 형이상학의 구축

1) 방법적 회의

-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고, 이렇게 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남아 있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함

- 감각 대상: 감각은 종종 우리는 기만하므로 감각이 제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함
- 기하학: 단순한 증명에서조차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나 역시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전에 증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거짓으로 간주함
- 꿈과 생시를 구별할 수 없고, 꿈에 나타나는 것은 참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에 들어 온 내용에 대응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함

2) 제일의 원리 발견

(1) 나의 존재에 대한 인식
- 그러나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함
-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릴 수 없는 진리임
- 이것은 철학의 제일원리임

 

(2) 나의 본질
- 나의 존재는 물질적 사물에 의존하지 않음
-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를 중단하면 나의 존재를 믿게 할 아무런 근거도 존재하지 않음
- 따라서 나는 실체이며, 본질은 생각하는 것임

3) 진리의 일반적 규칙 확립
- 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명석 판명한 생각에만 근거함
- 따라서,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참이라는 것을 진리의 일반적 규칙으로 삼음

 

4) 신 존재 증명

(1) 제1증명

- 나는 의심하는 존재이므로 불완전한 존재임
- 보다 완전한 존재의 관념은 불완전한 존재의 관념에서 나올 수 없음
- 따라서 가장 완전한 존재의 관념은 나로부터 올 수 없고, 신이 나에게 넣어 준 것으로 봐야함
- 따라서 신은 존재함

(2) 제2 증명
- 내 안에는 나보다 더 완전한 것에 대한 관념이 있음
- 만일 내가 나 스스로에 의해 존재하였다면, 나는 이 완전성을 모두 갖춰 신이 되었을 것임
- 그러나 나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 존재하지 않았고, 나외에 나의 존재 근원인 신이 존재함
- 합성체는 불완전성이므로 신은 정신과 물체의 합성체일 수 없다

(3) 제3 증명: 존재론적 증명
- 내각의 합이 두 직각과 같다는 사실이 삼각형의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음은 명석 판명함
- 마찬가지로 가장 완전한 존재의 개념 속에는 존재가 포함되어 있음도 명석 판명함
- 따라서 가장 완전한 존재인 신은 존재함

 

 

5) 정신적 존재의 인식이 물체의 인식보다 더 확실하고 쉬운 이유

- 상상력이나 감각도 오성이 개입하지 않으면 진리성을 보장해주지 못함
- 감각에 나타나는 것은 꿈속에서도 나타나며, 꿈과 현실을 구분할 확실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감각적인 것은 불확실함
- 진리의 기준조차 우리를 속이지 않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만 보장됨

6) 정신 안에 있는 관념의 대상에 대하여

 

- 꿈속에서나 깨어 있을 때나 우리는 이성의 명증성에 따라 판단해야 함
- 신은 완전하고 진실되기 때문에 우리가 명증적으로 통찰하는 관념은 토대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음

 

 

5부 자연학

1) ?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에 대한 설명

(1) 세계에 관한 인식의 성격
- 이 논문은 제일원리와 신 존재로부터 연역되는 자연에 관한 진리임
- 이 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관한 법칙임

(2) 서술 범위
- 빛에 관하여 설명하는 것이 궁극 목적임
- 빛은 태양과 항성에서 나오기 때문에 태양과 항성에 관하여 설명함
- 천공이 빛을 전달하기 때문에 천공에 관하여 설명함
- 유성, 혜성, 지구는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유성, 혜성, 지구에 대하여 설명함
- 물체는 색을 가지고 있으므로 물체에 대해 설명함
- 인간은 물체를 바라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하여 설명함

 

2) 내용

(1) 무생물에 관하여
- 물질은 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영혼에 본래적인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물질의 성질을 논했음
- 자연의 법칙을 신의 무한한 완전성의 원리에 의거하여 증명함
- 물질의 배치에 관하여, 물질의 큰 배치가 우리의 천공과 유사해야함을 설명함(지구, 유성과 혜성, 그리고 태양과 항성이 형성되게 된 이유를 설명함)
- 태양과 항성에서 나오는 빛의 성질, 전파, 반사에 관하여 설명함
- 천공과 천체의 위치, 운동에 관하여 설명함

- 지구에서 발생하는 현상 중 중력, 간만현상에 대하여 설명함
- 불과 빛에 관하여 설명함

(2) 동물 및 인간에 관하여
- 인간은 물질과 이성적 영혼의 결합체이다
- 그러나 처음에는 단순히 심장을 가진 물질적 육체로만 설명했음

a. 심장과 혈액순환에 대하여
- 혈액순환의 원리는 심장기관의 배치, 열, 혈액의 본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귀결된다고 봄
- 심장에서 동물의 정기가 발생하여 뇌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신경근육을 통하여 신체 각 부분에 운동을 전달한다고 봄

b. 인간과 동물의 구별에 관하여
- 동물은 자동기계임
- 동물과 인간은 구별기준은 인간은 말이나 기호를 사용할 줄 알고, 보편적 도구인 이성 을 통하여 모든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줄 안다는 것임

 

c. 이성적 영혼에 대하여
- 이성적 영혼은 물질에서 이끌어 낼 수 없고 독립적으로 창조된 것임
- 이성은 선원이 배 안에 있는 것과 유사하게, 그러나 보다 밀착되어 육체 안에 존재함
- 영혼은 물질과 전혀 다르고, 따라서 육체와 더불어 소멸하지 않고 불멸임

 

 

6부 “방법서설과 에세이들”을 출판하게 된 이유와 에세이에 대한 해명

1) 책의 출판이유

(1) 처음에 자연학에 관한 책의 출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유

- 자연에 관한 각자 개인적인 견해 외에 일반개념이 있음
- 이것은 기술과 의학의 토대가 되므로 일반에 공개하면 여러 사람들이 우리 삶에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음
- 인간의 수명이 짧고, 실험은 많이 필요하므로, 먼저 발견한 사람이 그가 발견한 지식을 세상에 전하여, 후에 연구하는 사람에게 더 발전 시킬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음

(2) 생전에 자연학에 관한 책의 출판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
- 책을 출판하여 반대논쟁에 휘말리면 연구할 시간을 빼앗길 수 있음
- 다른 사람들의 비판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장점도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함
- 자신의 연구성과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이익도 아직은 많지 않다고 생각함

(3) 다시 자연학에 관한 책을 출판하기로 한 이유
- ?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의 출간을 중단한 것에 대하여 오해를 씻기위해 ?시론?을 출간키로 함
- 자신의 연구계획 수행이 점점 늦어짐에 따라, 후세 사람들이 데카르트가 연구결과를 발표했더라면 자신들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는 비난을 사지 않도록 하기 위함

 

2) ?에세이들? 대한 해명

(1) ?굴절광학?과 ?기상학?에서 가설을 입증하지 않았다는 데에 대해
- 가설은 원칙적으로 제일원리로부터 입증이 가능하지만, 데카르트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음
- 가설은 특수 사례를 설명할 수 있고, 특수사례들이 실험을 통해 증명되면, 가설은 특수사례들을 통해 검증되는 것임

(2) 기타 해명
- ?굴절광학?에서 제안한 발명품은 당장 제작할 수 는 없지만 기술을 개발하면 제작이 가능함
- 이 책을 라틴어가 아닌 불어로 서술하는 이유는 옛날 책만을 신봉하는 전통 철학자보다, 자연적 이성을 사용하는 일반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임

 

 

제2부 주요 개념 체계 및 개념 연관도

 

1. 주요 개념 체계

 

 

 

 

 

 

 

제3부 ?방법서설? 주요 개념 분석

 

1. 방법

 

<해설> 데카르트는 당시 유럽의 명문학교에서 많은 분야의 학문을 섭렵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기존 학문의 연구를 토대로 얻은 결론은 대부분의 학문들이 근거가 의심스러워 받아들일 수 없거나, 논리학이나 수
학과 같이 확실한 학문들은 새로운 인식을 획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거나 현실적인 유용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또한 학문뿐만이 아니라 세상사람들이 확고하게 믿고 있는 선례(l'exemple)와 관습(la
coutume)도 그렇게 확실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이러한 사실이 확실한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인간이 진리를 인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두 번째 규칙에 대한 해설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모든 대상에 대하여 확실한 인식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확실한 인식 내지는 확실한 인식을 얻어낼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인간이 확실한 인식에 도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능력을 양식(bon sens), 이성(la laison), 또는 자연의 빛(lumini?re naturelle)이라고 부르는데, ?방법
서설?의 서두에서 “양식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방법서설?, 제1부 146)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인간이 확실한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오류에 빠지는 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식이 존재하지 않거나, 그것이 존재한다하더라도 이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인간은 누구나 이성사용을 올바로 인도하기만 하면 확실한 진리의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고, 이성사용을 인도하는 규칙을 마련하고 이를 진리를 인식하는 방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원문> “그러나 나에게는 운이 많이 따랐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즉, 청년 시절에 나는 어떤 길을 발견했는데, 이 길을 따라 몇몇 고찰들과 격률들에 이를 수 있었고, 또 이로부터 하나의 방법(une m?thode,
Methodus)을 만들어 내었으며, 이 방법을 통해 내 인식의 폭은 점차 증대되어, 마침내 평범한 내 정신과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애가 허락하는 최고의 정점에까지 조금씩 내 인식이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이미 이 방법을 통해 여러 열매를 거두었기 때문이다.”(?방법서설?, 1부148)

 

<해설>그가 여기서 방법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인식은 철학에만 한정된 인식은 아니다. 오히려 철학은 다른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서, 철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은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철학의 원리? 불어 판 서문에서 데카르트는 학문을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뿌리는 좁은 의미에서의 철학, 즉 형이상학에 해당하고 줄기는 물리학, 가지는 모든 나머지 다른 학문들인데 그들은 크게 기계학, 의학, 윤리학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방법은 철학의 방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 일반, 내지는 진리 인식 일반에 대한 방법인 것이다. 그는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첫 번째 규칙에 대한 해설에서도
“모든 학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따로 분리해서 하는 것보다 그 것들을 함께 탐구하는 것이 훨씬 쉽다”(?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제1규칙)
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학문을 한꺼번에 탐구하는 것이 쉽다는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이 모든 학문을 동일한 원리에 따라 탐구하는 것이 더 쉽다는 말이다.

?방법서설? 제2부에서도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여러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보다 완전성에 있어 종종 떨어진다”(?방법서설?, 제2부 159)라고 말하고 있다. 즉 동일한 사람이 일관성 있는 방법에 따라 모든 학문을 체계적으로 탐구할 때 보다 더 완전한 인식 체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 제2부에서 전통 논리학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전달하거나 설명하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새로운 인식을 발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대수학 및 기하학은 전혀 쓸모 없는 문제에만 관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이들의 장점을 취하면서 결함을 갖지 않는 방법을 개발하여 4가지 규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규칙들은 그가 이미 ?방법 서설?보다 8년 전에 저술한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방법서설?에서는 이들 규칙을 보다 단순화시킨 것이다. 그 규칙들은 다음과 같다.

 

 

<원문>

“첫째,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드리지 말 것, 즉 속단과 편견을 신중히 피하고,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석 판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지 말 것.
둘째, 검토할 어려움들을 각각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셋째, 내 생각들을 순서에 따라 이끌어 나갈 것, 즉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대상에서 출발하여 마치 계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올라가서 가장 복잡한 것의 인식에까지 이를 것, 그리고 본래 전후 순서가 없는 것에서도 순서를 상정하여 나아갈 것.
끝으로, 아무것도 빠트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열거와 전반적인 검사를 어디서나 행할것.”(?방법서설?, 168 이하)

 

<해설>첫 번째 규칙은 진리의 기준에 대한 일반적 규칙이다. 명증적으로, 즉 명석 판명하게 참이라고 인식되는 것만을 진리로 받아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명석 판명하게 참으로 인식되는 것은 직관에 의한 인식과 연역에 의한 인식이 있다. 직관에 의해 파악되는 것은 명증적이다. 연역에 의해 파악되는 인식이 명증적으로 참이 되는 이유는, 그 자체로는 명증적이지 않지만 연역의 각 추론 단계가 명증적으로 직관되는 연속적이고 단절되지 않는 사유 운동을 통해 참되게 인식된 원리들로부터 연역되기 때문이다.

둘째 규칙은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이 직관하기 쉽기 때문에 가급적 사태를 단순한 것으로 분해하여 파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규칙은 분해된 것들을 파악함에 있어 가장 단순한 것부터 시작하여 점차 복잡한 것에로 순서에 따라 파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규칙은 가장 단순한 것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파악된 모든 것을 빠짐없이열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식이란 이렇게 파악된 것들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방법을 형이상학의 탐구대상인 자아와 신의 존재, 그리고 물체 존재의 인식에 적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연현상에 대한 탐구인 자연학에 적용하여 자연법칙에 대한 확실한 인식에 도달하였다고
장담하고 있는 것이다.

 

 

1.1. 기존학문과 관습에 대한 비판

 

1.1.1. 기존 학문에 대한 비판
<해설> 데카르트의 학문탐구 방법은 그의 기존학문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개발되었다. 즉 그의 방법론은 기존학문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확실한 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따라서 그의 기존 학문에 대한 비판
을 살펴보면 방법에 대한 데카르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그의 기존학문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세 가지의 기준에 따른다.

첫 번째 기준은 일상적 삶에의 유용성이고, 두 번째 기준은 이성을 통한 학습가능성, 그리고 세 번 째 기준은 확실성이다. 데카르트는 기하학이 확실한 인식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당시의 기하학이 실제적인 목적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웅변과 시가 실생활에 유용하기는 하지만, 이들 분야에 대한 능력은 학습을 통하여 획득되기보다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재능이라고 본다. 그리고 윤리학은 매우 유용하고 학습을 통하여 습득할 수도 있지만, 당시의 윤리학이 토대가 빈약하여 마치 모래 위에 세워진 궁전과 같다고 비판한다.

 

1.1.1.1. 고전 및 역사
<해설> 데카르트는 어느 정도의 언어학습이나 고전 또는 우화의 독서는 일상적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우화나 지난 역사에 대한 지나친 독서는 오히려 일상적 삶에 해를 준다고 생각한다. 그가 우화나 역사에 대한 독서가 일상생활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 것은 우리의 관습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지나친 독서는 오히려 비현실적인 생활태도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원문>

“그러나 나는 언어를 공부하고, 고전을 탐독하며, 이 책 속에 있는 사건이나 우화를 익히는 데 충분한 시간을 투자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시대의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은 여행을 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민족의 관습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것은 우리의 관습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 좋은 일이고, 또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우리의 생활양식에 어긋나는 것은 모두 우스꽝스럽고 불합리한 것으로 생각지 않도록 하는 데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여행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자기 나라의 사정에 대해 어둡게 되고, 또 지난 시대의 일에만 너무 몰두하면 현재의 일에 대해서는 대체로 모르게 된다. 나아가 우화는 있을 수 없는 것을 마치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상상하게 하고, 또 아무리 충실한 역사라도, 이것이 비록 보다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사태의 본질을 바꾸거나 늘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비교적 보잘것없고 하찮은 상황들은 거의 대개 생략해 버리는 것이 보통이고, 이렇게 해서 나머지 부분들은 있는 그대로 나타나지 않게 되며, 또 이것에서 끌어낸 것을 본보기로 삼아 자신의 품행을 지도하는 사람은 소설 속의 기사처럼 엉뚱한 짓을 일삼고, 자신의 힘이 미치지도 못하는 것을 기획하게 되는 것이다.”(?방법서설?, 152 이하)

 

1.1.1.2. 수학
<해설> 데카르트는 수학이 확실성과 명증성에 있어서는 다른 어떠한 학문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수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수학에 대하여 전적으로 만족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이 학문이 토대가 확고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다른 보다 유용한 학문이나 기술에 응용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당시에 수학은 기계학에 응용되는 데에 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또한 대수와 기하학같은 수학의 분야가 확실하고 명증적인 근거들에 기초한 증명을 통하여 정신으로 하여금 진리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고 잘못된 근거에 만족하지 않게 하는데 익숙하도록 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극히 추상적이고 실제적인 목적에 전혀 무용한 문제들에만 관계하여, 정신을 계발하는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을 당황하게 만드는 모호한 기예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비판한다.

 

 

<원문> “나는 특히 수학에 마음이 끌렸는데, 이는 그 근거의 확실성과 명증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아직 수학의 참된 용도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기계학에만 응용되고 있음을 보고서는, 그 토대가 그토록 확고부동함에도 불구하고 왜 아무도 지금까지 이 위에 더 탁월한 것을 세우지 않았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했다.”(?방법서설?, 154)

 

<원문> “다음으로 고대인의 해석과 근대인의 대수에 대해 말한다면, 이 것들은 극히 추상적이고 전혀 무용하게 보이는 문제에만 관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인의 해석은 도형을 고찰하는 일에 매달려 있어 상상력을 지치게 하지 않고서는 오성을 활동시킬 수 없으며, 근대인의 대수는 몇몇 규칙과 기호에만 우리를 잡아매고 있기 때문에 정신을 계발하는 학문이 아니라 정신을 당황하게 만드는 애매 모호한 기예로 전락하고 말았다.”(?방법서설?, 168)

 

<해설> 따라서 그는 논리학과 기하학 그리고 대수학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여 그의 이른바 진리 탐구를 위한 방법을 개발하였다고 하는데, 그가 특히 주목하였던 것은 기하학적 증명의 엄밀성이었다. 기하학
의 증명은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것을 증명할 때에도 쉽고 간단한 논거들의 필연적인 연쇄로 진행된다. 따라서 각각의 논거가 참이고 이들의 연결 과정이 또한 참이라면, 이들의 연쇄가 아무리 길다 하더라도 결국 참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이러한 증명의 출발점은 가장 단순하고 그래서 가장 쉽게 인식되는 것에서 출발한다. 데카르트는 기하학자들이 한 문제를 증명하는 과정의 명증성에 착안하여 이러한 원리를 전체 학문의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 적용하여 발견의 논리학을 고안해 냈던 것이다.

 

 

<원문> “아주 어려운 것을 증명하기 위해 기하학자가 흔히 사용하는 아주 단순하고 쉬운 근거들의 긴 연쇄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즉,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참이 아닌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간주하지 말며, 어떤 것을 다른 것에서 연역할 때 항상 필요한 순서를 지키기만 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결국 도달할 수 있고 또 아무리 숨겨져 있어도 결국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가 하는 점은 별로 문제로 되지 않았다. 나는 이미 가장 단순하고 쉽게 인식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한 사람들 가운데 그래도 몇 가지 증명을, 즉 확실하고 명증적인 근거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수학자들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는 그들이 검토한 대상들 때문에 가능했으리라는 점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방법서설?, 169)

 

 

1.1.1.3. 웅변과 시
<해설> 데카르트가 웅변과 시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은 이들 분야가 인간의 이성으로 습득할 수 있는 학문 또는 탐구분야라기보다는 선천적으로 그에 대한 능력을 타고나는 것이라는데 있다. 즉 웅변이나 시는 자기 주장을 남에게 납득시키는데 유용하기는 하기만, 이들은 배워서 습득할 수 있는 재주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역사 및 우화와 함께 웅변과 시를 보편적인 학문체계에서 제외한다. 이로써 그는 전통적으로 인문학의 분야에 속하는 거의 대부분의 학문 분야를 배제하게 된다.

 

 

<원문> “나는 웅변을 아주 존중했고, 시를 사랑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배움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정신의 타고난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예리한 추리력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하는 사람은, 설령 그가 브르타뉴 지방의 사투리밖에 말할 줄 모르고 수사학을 배운 적이 전혀 없다고 해도 언제나 자기 주장을 가장 잘 납득시킬 수 있다. 그리고 아주 감미로운 착상을 갖고, 또 이것을 아주 우아하고 고상한 말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시학을 전혀 모르더라도 가장 훌륭한 시인임에 틀림없다.”(?방법서설?, 153 이하)

 

 

1.1.1.4. 신학
<해설> 데카르트는 신학에 대하여 그것이 계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이지 지성에 의해 탐구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것은 중세시대 이래 철학이 그 시녀역할을 했을 정도로 모
든 학문의 여왕노릇을 해왔던 신학의 지위를 부정하는 것이다.

 

 

<원문> “나는 우리의 신학을 존경했고,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천국에 이르길 바랐다. 그러나 거기에 이르는 길은 가장 유식한 사람못지 않게 가장 무식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열려져 있다는 것을, 또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계시 진리는 우리 지성의 역량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다음에는, 이 진리들을 내 빈약한 추리력으로 감히 포착하려고 하지 않았고, 이것에 있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하늘로부터의 각별한 도움이 있어야 하며, 또 우리들은 인간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방법서설?, 154 이하)

 

 

1.1.1.5. 도덕
<해설> 데카르트는 유용성의 측면에서는 아주 탁월하지만 확실성의 토대가 부족한 학문들에 대해서 비판하는데, 이런 분야에 속하는 대표적인 학문이 도덕이다. 그는 도덕을 아주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모래와 진흙 위에 세워진 궁전에 비교한다. 웅장한 궁전은 도덕의 현실적 중요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모래 또는 진흙 위에 세워졌다함은 도덕이 토대가 약함을 의미한다.

 

 

<원문> “이와는 반대로 도덕을 다룬 고대 이교도들의 저서를 나는 아주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모래와 진흙 위에 세워진 궁전에 비교했다. 그들은 덕을 가장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더 존중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덕이 어떻게 인식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알려 주지 않고 있으며, 또 그들이 덕이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도 종종 냉혹이나 교만, 절망이나 친족살해와 다름 아닌 것이다.”(?방법서설?, 154)

 

<해설> 데카르트는 무엇보다도 학문의 실용성을 중요시했고, ?철학의 원리? 불어 판 서문에서는 응용학문인, 기계학, 의학 윤리학이 모든 학문의 최고의 목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학문은 나무의 비유에서 나뭇가지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이들 학문이 지엽적이고 덜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열매가 나뭇가지에서 열리듯이 형이상학을 뿌리로 하고, 자연학을 줄기로 하는 학문체계의 가지에 해당하여 열매를 맺는 부분이 바로 이들 기계학, 의학, 윤리학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데카르트는 도덕을 이렇게 중요시하였던 까닭에 보편적인 회의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도덕적 실천은 한시도 중단될 수 없는 것이라 하여 잠정적인 도덕규칙을 설정하기도 했다.

그가 세운 잠정적 도덕규칙은 네 가지인데, 첫 번째 규칙은 자기 나라의 법률과 관습, 그리고 종교를 존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 실 생활에서 취하는 온건한 입장을 따르자는 것이고, 두 번째 규칙은 아무리 의심스런 것이라도 일단 따르기로 결정했으면, 확고하고 결연한 태도를 취할 것, 세째 운명이나 세계의 질서보다는 나 자신과 내 욕망을 바꾸려고 노력할 것, 네 째는 세상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업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자는 것 등이었다.

 

 

<원문> “첫 번째 격률은, 내 나라의 법률과 관습에 복종하고, 어렸을 적부터 신의 은총에 의해 배워 온 종교를 확고하게 견지하며,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는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사려 깊은 사람
들이 실 생활에서 보통 취하고 있는 가장 온건하고 극단에서 먼 의견에 따라 나를 지도하자는 것이었다.”(?방법서설?, 173)

“두 번째 격률은, 행동에 있어서 가능한 한 확고하고 결연한 태도를 취하고, 아무리 의심스런 의견이라도 일단 그것을 취하기로 결정했다면 아주 확실한 것인 양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방법서설?, 175)

“세 번째 격률은, 언제나 운명보다는 나 자신을 이기려고 노력하고, 세계의 질서보다는 내 욕망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생각밖에 없으므로, 우리
외부에 있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여전히 이루지 못한 것은 우리에게 전혀 불가능한 것이라고 믿는 데 익숙해지는 것이었다.”(?방법서설?,176)

“끝으로 이러한 도덕의 결론으로서, 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종사하고 있는 다양한 직업을 살펴보고, 그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했다. 남들의 직업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으며, 나는 다만 내가
지금 종사하고 있는 일, 즉 내 이성을 계발하는 데 전 생애를 바치고, 진리 인식에 있어 내가 규정한 방법에 따라 가능한 한 계속 나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방법서설?, 178)

 

<해설> 데카르트는 이렇게 보편적인 회의의 과정에서도 한시도 실천의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도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아무리 중요한 학문이라 하더라도 토대가 빈약하면 마치 모래 위에 세운 궁전과 같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도덕을 확고한 토대 위에 세우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다른 모든 학문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전제로서만 가능하다. 피코와의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수립될 도덕을 최고 단계의 지혜로서 가장 고차적이고 가장 완벽한 도덕학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만 이러한 윤리학적 저작을 저술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완벽한 윤리학이 담게 될 윤리사상에 대한 단편적인 내용들은 보헤미아의 왕녀 엘리자베스에게 보낸 편지와 가장 후기 저작에 속하는 ?정념론?에 나타나고 있다.

 

 

1.1.1.6. 철학
<해설> 데카르트는 당대의 철학에 대해서도 도덕과 같은 이유로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 철학은 다른 모든 학문들이 그 위에 세워지게 될 토대 역할을 해야 할 학문인데, 오랜 세월에 걸쳐 뛰어난 철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논쟁 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보았다.

 

 

<원문> “철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만 말하고 싶다. 즉, 오랜 세월에 걸쳐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에 의해 철학이 연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보고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철학을 더 잘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한가지 것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참된 의견만 있을 터인데, 아주 많은 의견들이 학자들에 의해 실제로 서로 주장되고 있음을 보고서, 단지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모두 거의 거짓된 것으로 간주했다.”(?방법서설?, 155)

 

<해설> 데카르트는 철학이란 용어를 이의적으로 사용한다. ?철학의 원리?에 대한 불어 판 서문에서 철학의 체계를 말하면서 나무의 비유를 들고 있는 데, 여기서 철학이란 용어는 학문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그가 ?방법서설?에서 다른 학문의 토대역할을 해야 할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언급할 때, 그는 좁은 의미로서의 철학,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형이상학을 의미한다. 데카르트의 철학에 대한 비판은 후의 흄과 칸트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흄이 형이상학이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어 온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불가능한 학문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데 대해, 데카르트와 칸트는 이전의 형이상학적 탐구가 방법에 있어 문제가 있다고 보고, 방법을 개선함으로써 확고한 형이상학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원문> “나는 오히려 이런 학문의 원리는 모두 철학에서 비롯되고 있지만, 철학에 있어 나는 아직 아무런 토대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무엇보다도 우선 철학에 있어 확실한 원리를 설정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했다.”(?방법서설?, 172)

 

 

1.1.2. 선례와 관습

<해설> 데카르트는 기존 학문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에 혹시 실생활에 속하는 것에서 확실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학자들이 서재에서 추리하는 것은 실생활에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니
기 때문에, 그 추리가 잘 못되어도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그 추리가 상식에서 벗어나는 경우 오히려 더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온갖 기지와 기교를 부릴 수 있지만, 실생활에 속하는 것은 잘 못되면 즉시 손해
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잘 못된 추리에 대해서는 즉시 시정하려고 할 것이며, 따라서 학문에서 보다 실생활에 속한 것에서 더 확실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학교를 마친 후 세상을 여행하면서 여러 나라와 지방의 생활관습들을 경험하게 되는 데,이를 통해 그가 얻은 결론은 나라나 지방마다 생활 관습이 다르다는 것이 었고,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라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며, 따라서 확실하게 보이는 관습이나 선례도 실은 확실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데카르트는 확실한 진리를 발견하려면 전통이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이성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원문>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관찰해 보았을 때 나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철학자들의 의견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이때도 아주 다양한 생활방식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이로부터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우리에게 우주 엉뚱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인정되고 있는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이고, 이로써 나는 선례와 관습을 통해 확신하게 된 것을 너무 굳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방법서설?, 158)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스승이 나에게 한 사람밖에 없었거나, 학자들 간의 의견 차이가 어느 시대에나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묘하고 믿기 어려운 것이라도 철학자들이 이미 주장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이미 학창시절에 알게 되었고, 또 그 후에 여행을 하면서 우리와 반대되는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야만스럽고 미개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많은 사람은 우리 못지 않게 혹은 우리 이상으로 이성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아가 동일한 정신을 지닌 한 인간이 어려서부터 프랑스인이나 독일인 사이에서 자랐을 때, 가령 줄곧 중국인이나 식인종 사이에서 생활해 온 경우와 얼마나 다른 인간이 되는가를 생각해 보았고, 또 옷의 유행에 있어서도, 10년 전에 우리 마음에 들었고 또 아마 앞으로 10년이 가기 전에 다시 우리 마음에 들 바로 이 옷이 지금은 얼마나 기묘하고 우스운 것으로 보이는가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를 설득하는 것은 확실한 인식이 아니라 선례라는 것, 그리고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진리에 대해서는 그 발견자가 민족 전체라기보다는 단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으므로, 그 진리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 진리성이 만족스럽게 증명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이 사람의 견해를 따라야겠다고 생각할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방법서설?, 166 이하)

 

 

1.2. 참된 인식의 가능성

 

<해설> 데카르트는 전통적인 학문과 관습들을 모두 비판하고, 이들 중에 어느 것에서도 확실한 인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확실한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확실한 인
식이 가능하려면 확실한 인식을 위한 대상이 존재해야 하고, 주관 안에 이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해야 한다. 데카르트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인정한다. 그는 이러한 의미에서 전형적인 합리론자인 것이다.

 

1.2.1. 인식능력: 양식 bon sens, 이성, 자연의 빛
<해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의 서두를 “양식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란 말로 시작하고 있다. 그가 의미하는 양식이란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하는 능력, 다시 말하면, 참된 것, 즉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은 누구나 이 인식능력을 동등하게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진리를 인식하기에 충분한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지금까지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워온 모든 학문이 진리가 아니라 의심스러운 것들이거나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보았는데, 많은 학자들이 지금까지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양식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적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양식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성이란 소유하고 있는가 소유하지 않는가를 구별할 수 있을 뿐 더 많이 소유하는가 더 적게 소유하는가에 대해서는 말할 수없는 능력이다. 따라서 이성은 지능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지능이란 많이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적게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 원숭이와 같은 동물도 지능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문> “양식(bon sens)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는 좀처럼 만족하지 않는 사람도 그것만큼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 모든 사람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이는 잘 판단하고,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하는 능력, 즉 일반적으로 양식 혹은 이성으로 불리는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천부적으로 동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셈이다.”(?방법서설?, 1부 146)

“이성 혹은 양식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고 짐승과 구별되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므로,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온전히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싶고, 또 이런 점에서는 철학자들의 통상적인 견해, 즉 동일한 종
의 개체들은 그 우연적인 성질들에서만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그 형상들 혹은 본성들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견해를 따르고 싶기 때문이다.” (?방법서설?, 147 이하)

 

<해설> 데카르트는 양식 또는 이성을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하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경험론자들처럼 이성을 단순히 논리적인 추론능력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이 감각의 대상이 아닌, 소위 신이나 정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에 대해서도 인식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각대상도 실은 이성의 개입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 전형적인 합리론자의 입장에 있다.

 

 

<원문> “그러나 신을 인식하는 것 혹은 정신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이 어렵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그들이 자신의 정신을 감각적 사물보다 위로 끌어올리는 일이 한 번도 없었고, 또 그들이 상상을 통해서만 사물을 고찰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데, 상상한다는 것은 물질적 사물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유의 한 양태일 뿐임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은 모두 인식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강단 철학자들이 감각 속에 먼저 있지 않았던 것은 지성 속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근본 명제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신의 관념이나 정신의 관념이 결코 감각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신과 정신을 인식하기 위해 상상력을 사용하는 사람은 소리를 듣거나 냄새를 맡기 위해 눈을 사용하는 사람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시각이 그 대상의 진리성을 우리에게 청각이나 후각보다 덜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고, 상상력이나 감각도 오성이 개입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결코 아무런 진리성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방법서설?, 192)

 

<해설> 데카르트는 이성의 소유를 인간과 기계 또는 다른 동물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이때 데카르트가 의미하는 이성의 개념은 주어진 여건에만 자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 대하여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능력은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언어 사용능력과 모든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를 데카르트는 인간을 기계 또는 동물 구별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으므로, 이 두 가지는 데카르트에게 있어 이성의 능력 또는 특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 자신이 인정하듯이 몇몇 동물에게서는 언어 사용능력이 있음이 관찰되고 있으므로, 얼마나 정교한 언어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은 언어사용능력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 문제일 수 있다. 데카르트는 정신의 존재가 확실하다고 간주할 수 있는 근거, 그리고 물체와 정신을 구별하는 근거로 내가 사유하고 있다는 사실, 즉 의식의 사실을 들고 있으면서, 동물 또는 기계와 인간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사유한다는 사실 또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지 않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원문> “여기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분명히 하려고 했다. 즉 원숭이나 이성이 없는 다른 동물들과 똑같은 기관과 모양을 가진 기계가 있다면, 이 기계가 저 동물과 동일한 본성을 갖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어떠한 수단도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 신체와 비슷하고, 우리 행동을 가능한 한 흉내낼 수 있는 기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인간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아주 확실한 두 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첫 째, 그 기계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우리 생각을 알게 할 때처럼, 말을 사용하거나 다른 기호를 조립하여 사용하는 일이 결코 없다는 것이다. 물론 기계가 말을 할 수 있도록, 나아가 그 기관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물질적 작용에 따라 어떤 말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질 수 있다. 가령 어디를 만지면 무슨 일이 일이냐고 묻는다든가, 혹은 다른 곳을 만지면 아픈 소리를 지른다든가 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그 기계는 자기 앞에서 말해지는 모든 의미에 대해 대답할 정도로 말들을 다양하게 정돈할 수 없지만, 아무리 우둔한 사람이라도 그런 것을 할 수 있다.

둘째는, 그 기계가 우리 못지 않게 혹은 종종 더 잘 많은 일을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무언가 다른 일에 있어서는 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며, 이로부터 그 기계는 인식이 아니라 기관의 배치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것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이성은 모든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보편적인 도구(un instrument universel)인 반면에, 이 기계가 개별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에 필요한 개별적인 배치가 기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우리 이성이 우리에게 행동하게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삶의 모든 상황에서 행동하기에 충분한 다양한 배치가 한 기계 속에 있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방법서설?, 5부 213 이하)

 

 

1.2.2. 인식의 대상
<해설> 데카르트가 전통 학문이 불확실하다고 비판할 때, 그는 또한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인간이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인 이성을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 못지 않게, 이 이성을 통하여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의 존재도 또한 인정하고 있다. 물론 데카르트는 인간의 이성이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대상을 완전히 인식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대상이고 무분별하게 인식하려고 하여서는 안 된다.

그는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두 번째 규칙에서 “난해한 대상들에 몰두해서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하지 못한 채 의심스러운 것을 확실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연구를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19)고 말한다.

데카르트가 인간 이성이 인식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은 신과 같은 초월적 대상이 아니라, 복잡하여 한 번에 인식할 수 없는 대상이다. 따라서 확실한 인식에 도달하려면 인간이성이 인식하기에 적당한 단순한 대상을 다루던가, 복잡한 대상은 가급적 단순한 것으로 분해하여야 한다. 데카르트는 단순한 대상의 종류로 산술과 기하학의 대상을 든다. 그러나 “산술과 기하학이 탐구할 유일한 학문이라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산술 및 기하학적 증명이 지닌 것과 대등한 확실성을 얻을 수 없는 대상과는 씨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22) 수학의 대상 외에 어떤 대상들이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확실히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인가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안는다. 이것은 그가 방법의 규칙을 적용하여 실제로 확실한 인식을 추구하여가는 과정에서 찾아 진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대상들은 나의 존재, 신 존재, 물체의 존재와 같은 것들이다.

 

 

<원문> “지금까지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한 사람들 가운데 그래도 몇가지 증명을, 즉 확실하고 명증적인 근거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수학자들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는 그들이 검토한 대상들 때문에 가능했으리라는 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방법서설?, 169)

 

1.3. 오류

<해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 1부에서, 그가 학업을 마치고 학문 세계에 들어서자마자, 명석하고 확실한 인식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생각이 바뀌었고, 공부로부터 그 어떤 이득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많은 의심과 오류에 빠져 곤혹스러웠다고 고백하고 있다(?방법서설?, 150쪽 참조). 그러나 데카르트는 그 이유가, 인간이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이러한 인식능력을 통하여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인식능력도 가지고 있고 인식대상도 존재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로 하여금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도록 인도할 규칙 또는 방법을 개발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문> “또 우리가 각각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이성적이어서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길을 따라 생각을 이끌고, 동일한 사물을 고찰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정신을 지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것을 잘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는 엄청난 덕을 행할 수 있는 반면 엄청난 악행도 할 수 있으며, 천천히 걷되 곧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뛰어가되 곧은 길에서 벗어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먼저 갈 수 있는 것이다.”(?방법서설?, 146)

 

<해설> ?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는 아직 오류와 의심스러운 인식에 대하여 명확한 언급을 하고있지 않다. 여기서 그는 참된 인식이 아닌 것, 또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의심스러
운 것 또는 오류로 보고 있다. 그에 의하면 어떤 인식이 의심스럽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참임에 대한 명석 판명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오류는 명석 판명한 근거를 통하여 어떤 판단이 참이 아님을 제시할 수 있는 경우이다. 데카르트는 ?성찰?과 ?철학의 원리?에서 오류의 근원이 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성찰?, 86 참조).

데카르트는 여기서 인식력 그 자체는 오류의 원인이 아니라고 한다. 오류는 사실과 다른 것을 판단하는 데 있는데, 판단의 주체는 의지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오성이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는데, 의지가 성급하게 판단을 내림으로써 오류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오성이 명석 판명하게 인식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한다면 오류를 피할 수 있다.

 

 

1.4. 진리인식 방법

 

1.4.1. 진리인식 방법의 필요성
<해설> 데카르트는 인간은 누구나 진리를 인식하기에 적합한 인식능력인 이성을 가지고 있고, 흔하지 않기는 하지만 이 이성을 통하여 인식할 수 있는 대상도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가 종종 진리의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고 오류에 빠지는 거나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확실한 진리가 아니라 의심스러운 이유는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인식의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진리 인식의 충분 조건은 아니며,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성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원문> “또 우리가 각각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이성적이어서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길을 따라 생각을 이끌고, 동일한 사물을 고찰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정신을 지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것을 잘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는 엄청난 덕을 행할 수 있는 반면 엄청난 악행도 할 수 있으며, 천천히 걷되 곧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뛰어가되 곧은 길에서 벗어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먼저 갈 수 있는 것이다.”(?방법서설?, 146)

<해설> 이러한 입장은 합리론의 특징적인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경험론자들에 의하면 철학이 대상존재의 인식에 있어 오류에 빠지거나 그 인식이 의심스러운 이유를 인간의 이성이 대상을 인식하기에 적합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에 반해 데카르트는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확실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원문> “그러나 나에게는 운이 많이 따랐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즉, 청년 시절에 나는 어떤 길을 발견했는데, 이 길을 따라 몇몇 고찰들과 격률들에 이를 수 있었고, 또 이로부터 하나의 방법을 통해 내 인식의 폭은 점차 증대되어, 마침내 평범한 내 정신과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애가 허락하는 최고의 정점에까지 조금씩 내 인식이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이미 이 방법을 통해 여러 열매를 거두었기 때문이다.”(?방법서설?, 148)

“그러나 내가 이 방법에 대해 아주 만족했던 점은, 이 방법을 통해 모든 일에 있어 내 이성을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힘이 닿는 한 가장 잘 사용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내 정신은 대상을 더욱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데 점점 익숙하게 되었으며, 또 이 방법을 어떤 특수한 문제에만 한정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대수 문제들에 있어서 했던 것처럼 다른 학문의 문제에도 마찬가지로 유효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방법서설?, 171 이하)

 

 

1.4.2. 진리인식 방법의 개발
<해설> 데카르트는 논리학이 이미 발견된 원리를 통하여 개별적인 사실을 설명하는 데는 적합하지만,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고, 수학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별로 쓸모 없는
사실에만 적용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 두 가지 방법에서 장점을 취하여 진리의 발견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였다.

 

 

<원문> “젊었을 때 나는 철학의 여러 부문 중에서 논리학을, 수학 중에서는 기하학자들의 해석과 대수를 조금 배웠다. 이 세 가지 기예 혹은 학문이 내 계획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검토해 보니 논리학에 있어서, 삼단논법 및 다른 대부분의 규칙들은 모르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설명해 주는 데 도움이 되거나 혹은 룰루스의 기예처럼 자신도 모르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데 도움이 될 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논리학이 아주 참되고 좋은 규칙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해롭고 불필요한 규칙들도 그 안에 많이 섞여 있으며, 그 좋은 규칙들을 해로운 것에서 분리시키는 것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대리석 덩어리에서 다이아나 상이나 미네르바 상을 깎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다음으로 고대인의 해석과 근대인의 대수에 대해 말한다면, 이것들은 극히 추상적이고 전혀 무용하게 보이는 문제에만 관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인의 해석은 도형을 고찰하는 일에 매달려 있어 상상력을 지치게 하지 않고서는 오성을 활동시킬 수 없으며, 근대인의 대수는 몇몇 규칙과 기호에만 우리를 잡아매고 있기 때문에 정신을 계발하는 학문이 아니라 정신을 당황하게 만드는 애매 모호한 기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세 가지 것의 장점을 겸비하면서 그 결함을 갖지 않는 다른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방법서설?, 167 이하)

 

<해설> 데카르트는 ?철학의 원리? 불어판을 위해 쓴 서문에서 그의 이러한 진리발견의 방법을 “논리학”이라고 부르는 데, 이것은 물론 연역추리 중심의 전통논리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발견의 논리학이다.

 

 

<원문> “그 다음, 그는 논리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논리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논리학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거나 혹은 전혀 알고 있지 못한 것들에 관해 무분별하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수단들을 제공하는 기술적인 변증법에 불과한 것으로, 정신을 풍요롭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타락 시키기 때문이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참된 논리학으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진리들을 발견하도록 하기 위해 이성을 올바르게 이끄는 방법을 알려주는 논리학이다. 그런데 이는 대부분 연습에 달려 있기 때문에, 논리학의 규칙들을 쉽고 간단한 문제들과 관련해서, 예를 들자면 수학에서처럼, 실제로 오랫동안 연습해 보는 것이 좋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적절한 훈련을 쌓은 다음에야 비로소 참된 철학에 몸담아야 한다.”(?철학의 원리? 불어판 서문, 536)

 

 

1.4.3 올바른 이성 사용을 위한 규칙
<해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보다 8년이나 앞서 집필했던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에서는 21개의 규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원래 이 책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장은 12개씩의 규칙을 포함하여 총 36개의
규칙을 제시하려고 했었는데, 저술이 미완성으로 끝나, 21개의 규칙만을 제시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마지막 3규칙은 설명이 없고 제목만 제시되고 있어 이 책이 미완성본임을 입증해준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는 단지 4개의 규칙만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데카르트가 이성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규칙이 필요하지 않고 단지 4개의 규칙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원문> “그리고 법률이 많으면 악행에 구실을 주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법률을 조금만 가지면서 아주 엄격하게 지킬 때 국가가 더 잘 다스려지는 것처럼, 내가 이탈하지 말자는 확고하고 지속적인 결심만 견지한다면
논리학의 그 많은 규칙들 대신에 다음의 네 가지 규칙만으로 충분하다고믿었다.”(?방법서설?, 168)

<해설> 이 네 개의 규칙은 첫째,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한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둘째, 검토할 어려움들을 각각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셋째, 내 생각들을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대상에서 출발하여 순서에 따라 이끌어 나아갈 것. 넷째, 순서에 따른 각 단계들을 아무것도 빠트리지 않도록 완벽하게 열거할 것 등이다.

 

 

<원문>

“첫째,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드리지 말 것,

즉 속단과 편견을 신중히 피하고,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석 판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지 말 것.

둘째, 검토할 어려움들을 각각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셋째, 내 생각들을 순서에 따라 이끌어 나갈 것,

즉 가장 단순하고 가장알기 쉬운 대상에서 출발하여 마치 계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올라가서 가장 복잡한 것의 인식에까지 이를 것, 그리고 본래 전후 순서가 없는 것에서도 순서를 상정하여 나아갈 것.

끝으로, 아무것도 빠트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열거와 전반적인 검사를 어디서나 행할것.”(?방법서설?, 168 이하)

 

1.4.3.1. 진리의 수용 기준
<해설> 첫 번째 규칙은 진리의 수용기준에 대한 규칙으로 “명증성의 규칙”이라고도 불린다. 이 규칙은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에서는 두 번째 규칙에 암시적인 형태로 표현되었던 것을 보다 명확한 형태로 규정한 것이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의 두 번째 규칙은 “정신이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인식을 족히 얻어 낼 수 있다고 여겨지는 대상만을 다루어야 한다”(?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19)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는 일차적으로 탐구의 대상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칙에 대한 설명에서 “모든 인식은 확실하고 명증적인 인식이다”(같은 곳)라고 말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기존학문의 내용이 진리인지 아닌지가 불확실하고 의심스럽다는 이유에서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이 규칙은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규칙이라고 볼 수 있다.

 

데카르트는 기하학적 인식의 확실성에 착안하여 이 규칙을 이성사용을 위한 규칙으로 도입하게 되었다. 그는 ?방법서설? 1부에서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그 근거의 확실성과 명증성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에서도 지금까지 발견된 학문들 가운데 명증적인 인식만을 포함하는 학문은 산술과 기하학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문>

“나는 특히 수학에 마음이 끌렸는데, 이는 그 근거의 확실성과 명증성 때문이었다.”(?방법서설?, 154)

 

“그리고 지금까지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한 사람들 가운데 그래도 몇가지 증명을, 즉 확실하고 명증적인 근거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수학자들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는 그들이 검토한 대상들 때문에 가능했으리라는 점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방법서설?, 169)

“그리고 나는 기하학적 대상들 가운데 가장 단순한 몇 가지 증명들을 살펴보았다. 이때 나는 모든 사람이 이런 증명에 귀속되는 저 커다란 확실성은 ― 내가 앞에서 말한 규칙에 따라 ― 우리가 그것을 명증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에만 근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또 그 대상의 현존을 나 에게 확신시켜 주는 것은 그 안에는 전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방법서설?, 190 이하)

“내가 신과 영혼의 현존을 증명하기 위해 앞에서 사용한 원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가정해서는 안 된다는, 또 기하학자들의 증명보다 더 명석하고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결코 참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결의를 항상 확고하게 간직했다.”(?방법서설?, 196)

 

<해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데카르트가 이 규칙을 통해 의미하는 바가, 명증성이 진리에 대한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필연적인 진리의 경우 어떤 명제를 부정하면 모순이된다거나, 사실명제의 경우에는 명제와 사실의 일치여부 등이 진리의 기준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도 최초의 인식은 판단과 사실의 일치를 그리고 연역에 의한 진리의 경우 추론의 필연성을 진리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명증성의 규칙”의 의미는 명증성이 진리 자체에 대한 기준이 아니라, 확실한 진리만을 수용하기 위한 수용기준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명증성은 참에 대해서만 적용할 수 있는 술어가 아니라, 거짓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명증적으로 참인 인식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명증적으로 거짓인 인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명증성 자체는 진리의 기준이 아니라, 인식의 기준, 또는 인식의 확실성의 기준이라고 볼수 있다. 데카르트는 이성의 올바른 사용을 위한 첫 번째 규칙에서 명증적인 것이 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진리체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명증적으로 참인 것만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내가 명석 판명하게 인식한 것만이 참이다”라는 명제를 “일반적 규칙”이라고 부른다.

 

 

<원문> “다음으로 나는 한 명제가 참되고 확실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반적으로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방금 참되고 확실한 것을 하나 발견했으므로, 이것의 확실성이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만일 생각하기 위해서는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명석하게 알지 못했다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에 있어 내가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확신시켜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고, 그래서 우리가 아주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참이라는 것을 일반적 규칙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방법서설?, 186 이하)

“내가 앞에서 규칙으로 정한 것, 즉 우리가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참이라는 명제의 진리성 조차도, 신이 존재 혹은 현존한다는 것, 그가 완전한 존재라는 것, 또 우리 속에 있는 것은 모두 신으로부터 나온
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만 보장되기 때문이다.”(?방법서설?, 193)

 

 

1.4.3.1.1 명증성 ?vidence
<해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명증성의 의미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이 용어가 마치 일반인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는 개념인 것처럼 말한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의 두 번째 규칙에서는 “완벽하게 인식된 것” 또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을 명증적인 것과 동일하게 보고있는 듯이 보인다. ?방법서설?의 첫 번째 규칙에서도 명증성의 의미를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보고 있다.

 

 

<원문>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드리지 말 것, 즉 속단과 편견을 신중히 피하고,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석 판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지 말 것.”(?방법서설?, 168)

 

<해설> 데카르트는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에서도 명증성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 외에 더 상세한 의미 규정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명증적인 것을 명석 판명한 것과 동일시한다는
사실로부터 명증성의 의미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의 첫 번째 규칙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명증적인 것을 명석 판명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 저작인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에서는 명증이라는 표현 외에 명석 판명이라는 표현은 나타나지 않는다. 주로 ?방법서설?과 ?성찰?에서만 명증성과 명석 판명을 동일한 개념으로 병행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후기 저작인 ?철학의 원리?에서는 명석 판명 외에는 명증성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로 보아 데카르트는 초기에는 확실성의 기준으로 명증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가 이 용어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고 보아 점진적으로 사용을 포기하고 명석 판명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원문> “왜냐하면 첫 째로, 내가 앞에서 규칙으로 정한 것, 즉 우리가 아주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참이라는 명제의 진리성 조차도, 신이 존재 혹은 현존한다는 것, 그가 완전한 존재라는 것 또 우리 속에 있는 것은 모두 신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만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귀결되는 것은, 우리 관념들 혹은 개념들은 명석 판명한 것인 한에서 실재적인 것이고, 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그래서 참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방법서설?, 193)

 

1.4.3.2.2. 명석 판명
<해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과 ?성찰?에서 명석 판명을 명증성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 규정을 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한 의미규정은 후기 저작인 ?철학의 원리?에 나타난다. 이 저작에서도 데카르트는 “단지 명석 판명하게 지각된 것만을 참이라고 판단한다면, 어떠한 거짓도 참이라고 판단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철학의 원리?, 1부 43절)라고 말함으로써 명석 판명의 의미를 ?방법 서설?및 ?성찰?에서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철학의 원리?에서는 ?방법서설?과 ?성찰?에서와는 달리 명석과 판명을 구별한다.
그는 집중하고 있는 정신에 현존하며 드러난 지각을 명석한 지각이라고하며, 명석하기 때문에 모든 다른 지각과 잘 구별되어 단지 명석한 것만을 담고 있는 지각을 판명한 지각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명석하기는 하지만 판명하지 않은 지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판명한 지각은 동시에 명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통증에 대하여 명석한 지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통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지각이 항상 판명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는 이 통증을 가려움증이나 간지러움 등과 같은 다른 감각과 혼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4.3.2. 분해의 규칙
<해설> 데카르트는 인간의 이성이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 능력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그 능력을 주의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
이다. 그는 인간의 이성이 복잡한 것을 인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의 두 번째 규칙에서는 “정신이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인식을 족히 얻어낼 수 있다고 여겨지는 대상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는 이러한 대상의 예로 기하학적 대상을 든다. 그러나 기하학적 대상들만이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인 것은 아니다. 단지 일반적인 인식대상들은 복합적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올바로 인식하기에 부적합하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복잡한 인식대상은 올바로 인식하기에 적합하도록 단순한 대상으로 분해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원문> “검토할 어려움들을 각각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작은부분으로 나눌 것.”(?방법서설?, 168)

 

1.4.3.3. 인식 순서의 규칙
<해설> 데카르트는 인식대상을 인식하기 쉽도록 단순한 것으로 분해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인식대상들은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인식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가장 단순한 대상을 제일 먼저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단순한 대상이란 기하학에서 공리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직관적으로 명확하기 때문에 증명이 불필요한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가장 단순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복잡한 것으로 순서에 따라 인식을 진행해야 한다고 본다. 순서에 따라 인식할 것을 규정한 ?방법 서설?의 올바른 인식을 위한 세 번째 규칙은 보통 “종합의 규칙”이라 불리기도 한다.

 

 

<원문> “내 생각들을 순서에 따라 이끌어 나갈 것, 즉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대상에서 출발하여 마치 계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올라가서 가장 복잡한 것의 인식에까지 이를 것, 그리고 본래 전후 순서가 없는 것에서도 순서를 상정하여 나아갈 것.”(?방법서설?, 169)

 

1.4.3.4. 열거의 규칙
<해설> 데카르트의 진리인식의 목표는 단일한 인식 또는 개별적인 인식이 아니라 체계적인 인식, 즉 학문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식대상을 단순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으로 복잡성의 순서에 따라 전개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식되어야 할 대상이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그는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열거를 하고 전반적인 검사를 하도록 요구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 인식대상에서 다음 인식대상으로 넘어갈 때 임의로 인식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근거에 따라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데카르트는 특히 그의 형이상학에서 이 규칙을 철저히 적용하고 있다. 즉 그의 ?성찰?에서의 인식과정에 의하면 나의 존재 인식에서 그 다음 단계의 인식으로 나아가려면 진리의 수용기준을 적용해야 하는데, 만일 신이 아니라 악마가 존재하여 나를 속인다면 일반적 규칙인 진리의 수용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그는 다음 단계로 우선 신 존재에 대한 인식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가장 단순한 것으로부터 인식이 시작되고, 이렇게 필연성에 따라 인식과정이 전개된다면, 그리고 더 이상 인식할 대상이 없다고 확신이 들 때 인식을 종료한다면 이는 완벽한 인식체계를 이룰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문> “아무것도 빠트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열거와 전반적인 검사를 어디서나 행할 것.”(?방법서설?, 169)

 

 

2. 형이상학

 

<해설> 데카르트의 학문체계에 있어서 형이상학은 가장 근본적인 토대에 해당한다. ?철학의 원리? 불어 판 서문에서 언급한 나무의 비유에 의하면 형이상학은 나무의 뿌리에 해당한다. 그리고 자연학이 나무의 줄기에, 기계학, 의학, 윤리학이 나무의 가지에 해당한다. 데카르트 형이상학의 내용은 관점에 따라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다.

첫 번째 측면은 인식의 측면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인식의 확실성을 확보하는 문제이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자아와, 신, 세계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인식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는 이 세 가지 대상에 대한 관념이 정신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정신 안에 세 가지 대상에 대한 관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명석 판명한 인식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에 대응하는 외적 대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받아 들이기에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진리탐구의 방법인 이성사용규칙을 적용하여 확실한 형이상학을 구축하고자 한다.

두번 째 측면은 존재론적 측면으로 무엇이 실체인가 하는 문제이다. ?방법 서설?과 ?성찰?에서는 두 번째 측면에서의 형이상학은 체계적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이것은 ?철학의 원리?에서 좀더 체계적으로 서술된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과 ?성찰?에서 실체의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채 사용하고 있는데, ?철학의 원리?에서 비로소 “존재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방법서설?, 1부 51절)이라고 규정되며, 이러한 실체는 정신과 물체 두 가지라고 보는 실체 이원론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은 한편으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확실한 인식을 통하여 확실한 보편 학문의 토대를 마련하며, 다른 한편으로 모든 존재하는 것은 정신과 물체의 두 가지 서로 다른 실체로 나누어진다고 봄으로서, 각각 의지의 자유와 자연필연성에 근거하는 윤리학과 자연학을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방법서설?과 ?성찰?에서 형이상학의 주요 과제는 자아, 신, 물체존재에 대한 인식의 확실성을 확보하는 문제이다. 데카르트는 그가 확립한 진리 인식의 방법인 이성사용을 위한 규칙을 적용하여 이들 세 관념에 해당하는 대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데 대한 확실한 인식을 얻고자 한다. 데카르트의 이성사용을 위한 규칙은 어떤 특정의 학문 영역에만 적용되는 규칙이 아니라, 모든 학문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 규칙이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을 저술하기 전에 이미 이 규칙을 적용하여 자연학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하고 있다.

 

 

<원문> “청년 시절에 나는 어떤 길을 발견했는데, 이 길을 따라 몇몇 고찰들과 격률들에 이를 수 있었고, 또 이로부터 하나의 방법을 만들어 내었으며, 이 방법을 통해 내 인식의 폭은 점차 증대되어, 마침내 평범한 내
정신과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애가 허락하는 최고의 정점에까지 조금씩 내 인식이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이미 이 방법을 통해 여러 열매를 거두었기 때문이다.”(?방법서설?, 148)

“나이가 이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내 정신은 대상을 더욱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데 점점 익숙하게 되었으며, 또 이 방법을 어떤 특수한 문제에만 한정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대수 문제들에 있어서 했던 것처럼 다른 학문의 문제에도 마찬가지로 유효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방법서설?, 172)

 

<해설> 그러나 데카르트는 확실한 인식의 발견은 무엇보다도 철학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방법의 세 번째 규칙이 명하는 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생각을 순서에 따라 이끌어야 하고, 순서로 보면 모든 학문의 토대가 되는 철학이 가장 먼저 탐구되어야 할 분야인 것이다. 데카르트가 사용하는 철학의 의미는 다의적이다. 당시에는 개별적인 학문이 엄밀히 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철학은 일반적인 학문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가 ?철학의 원리?에서 나무를 학문 또는 철학에 비유할 때, 그는 철학을 학문일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방법서설?에서 말하는 철학은 오히려 철학의 분야 중에서도 형이상학을 지칭하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원문>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런 학문의 난제를 모두 검토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방법이 명하는 순서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이런 학문의 원리는 모두 철학에서 비롯되고있지만, 철학에 있어 나는 아직 아무런 토대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무엇보다도 우선 철학에 있어 확실한 원리를 설정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했다.”(?방법서설?, 172)

 

<해설> 데카르트는 기존의 스콜라 철학이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일관성있게 구축된 체계가 아니라 마치 오래된 도시와 같이 여러 사람들의 손에 의해 점진적으로 구축되어 체계가 없고 따라서 불확실한 요소들이 많이
포함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여러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보다 완전성에 있어 종종 떨어진다”(?방법서설?, 159)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자신이 혼자서 구축하고자 한다. 이 원칙은 여러 사람들이 동의한다고 해서 어떤 주장의 진리성이 더 큰 것이 아니라는 그의 체험에 의해서도 정당화된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토대가 약하고 일관성 없게 지어진 낡은 집을 허물고, 혼자서 새로운 토대 위해 일관성 있게 새로운 집을 짓는 것과 같이, 불확실한 기존 형이상학을 완전히 허물고 자신의 새로운 형이상학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원문> “그래서 나는 책 속에 있는 학문들, 적어도 개연적인 근거만 갖고 아무런 증명도 갖지 않은 학문들은 많은 사람의 의견들로부터 조금씩 구성되고 불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학문들은 양식이 있는 사람이 현전하는 사물에 대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단순한 추리만큼은 진리에 가깝지 않다고 생각했다.”(?방법서설?, 162)

“한 개인이 한 나라 전체를 기초부터 뜯어고치고 또 뒤집어엎었다가 다시 세우는 방식으로 한 나라를 개혁할 계획을 가진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고, 또 학문의 체계를 개혁하거나 학교의 교육 방식을 개혁한다는 것도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믿고 받아들인 모든 의견에 관해서는, 그것을 한 번 깨끗이 제거하고 그런 다음 더 좋은 의견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전과 같은 의견이라도 이성의 수준에서 적절하게 만든 다음에 다시 받아들이는 것이 최상의 시도라고 생각했다.”(?방법서설?,163)

 

 

2.1. 방법적 회의

 

<해설> 방법적 회의란 데카르트가 의심스럽고 불확실한 인식을 제거하고 확실한 인식만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인식에 대해 의도적으로 제기하는 의심을 말한다. 이것은 철학적인 근거를 추구하여 그 결론으로서 모든 인식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하는 결론적 회의와 구별된다. 방법적 회의는 오히려 결과로서 아무리 의심하려고 해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식을 추구하려는 의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법적회의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제기하는 회의가 아니다. 확실한 근거는 없다하더라도,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때 의심을 제기할 수 있으며, 확실한 인식을 확보하고자 하면 이러한 회의 가능성을 배제해야 하는 것이다. 즉 회의하는 입장에서 그러한 회의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확실한 인식을 확보하고자 하는 쪽에서 그러한 회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방법적 회의란 확실한 인식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불확실해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해 봄으로서 절대적으로 확실한 토대를 마련하고 그 위에 확실한 인식을 쌓아가려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차원의 방법적 회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는 불확실한 기존 학문 전체를 허물고 확실한 철학, 즉 형이상학의 토대 위에 확실한 인식체계로서의 보편학문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기존 학문 및 선례와 관습 모두를 의심하는 것이고, 또 다른 차원의 방법적 회의는 좁은 의미의 철학, 즉 형이상학을 확고한 토대 위에 구축하기 위해 불확실한 모든 것을 의심하는 회의이다. 두 가지 방법적 회의가 불확실한 것을 제거하고 확실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전자의 의미에서의 방법적 회의는 데카르트가 학교교육을 마친 뒤 세상을 여행하면서 오랜 시간을 거쳐 진행되고 있고, 후자의 의미에서의 방법적 회의는 오랜 준비 끝에 어느 날 일시에 이루어진다.

 

 

<원문>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런 학문의 난제를 모두 검토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방법이 명하는 순서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이런 학문의 원리는 모두 철학에서 비롯되고 있지만, 철학에 있어 나는 아직 아무런 토대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무엇보다도 우선 철학에 있어 확실한 원리를 설정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또 이때 나로서는 속단과 편견을 가장 경계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에 스물세 살이던 나는 좀더 성숙한 나이가 된 다음에 이 작업에 착수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작업을 수행하기에 앞서, 나는 전에 받아들인 그릇된 의견을 모두 정신에서 뿌리째 뽑아 버리고, 훗날 추리의 재료로 삼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며, 규정된 방법을 더욱 확실히 사용할 수 있도록 그것을 계속 연습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투자했다.”(?방법서설?,172)

 

<해설> 이렇게 방법적 회의가 두 가지 차원에서 구별되는 것은 데카르트의 진리탐구 방법, 즉 이성의 올바른 사용을 위한 규칙이 학문 일반의 방법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좁은 의미의 철학, 즉 형이상학의 탐구방법으로도 적용되는 데 기인한다. ?방법서설?에서는 학문일반의 재구축과 형이상학의 재구축을 모두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차원의 방법적 회의가 다같이 언급되고 있는 데 반해, 형이상학의 재구축을 시도하고 있는 ?성찰?에서는 두 번째 의미의 방법적 회의가 서술된다. 일반적으로 데카르트에게서 방법적 회의라고 하면 두 번째 의미의 방법적 회의를 말한다.

 

2.1.1. 회의의 목적

<해설> 방법적 회의의 목적은 보편학문 또는 형이상학이 그 위에 구축될 단단한 토대를 찾는 작업이다. 데카르트는 제2 성찰에서 이를 아르키메데스의 점에 비유한다. 아르키메데스는 지레의 원리를 발견하였는데, 만일 확고부동한 일 점만 주어진다면 이를 이용하여 지구를 들어 보일 수 있다고 하였다. 큰 일을 하기 위한 작지만 확고한 토대를 일컫는 말이다.

 

 

<원문> “각각의 문제마다 의심스럽고 잘못하기 쉬운 점들을 특히 반성하면서, 전부터 내 정신 속에 스며들어 있던 오류를 모두 차츰 뿌리뽑았다. 그렇다고 내가 의심하기 위해 의심하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는 회의론자를 흉내낸 것은 아니었다. 이와 반대로 내 모든 계획은 내 스스로 확신하고, 무른 흙이나 모래를 젖혀 두고 바위나 찰흙을 발견하자는 것이었다.”(?방법서설?, 180)

 

<해설> 그러나 이를 위해 모든 것이 거짓임을 증명해 보일 필요는 없다. 의심은 목적은 거짓임이 확실한 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근거가 없어 의심스러운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인식을 진
리임이 확실한 것과 거짓임이 확실한 것, 그리고 진리임이 불확실한 것으로 구별할 수 있는 데, 방법적 회의의 목표는 거짓임이 확실한 것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임이 불확실한 것도 일단 거짓으로 간주하여 받아들이기를 보류하고 진리임이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을 찾자는 것이다.

 

 

<원문> “나는 이제 오직 진리탐구에 전념하려고 하므로, 앞에서 했던 것과는 반대로,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여 던져 버리고, 이렇게 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내 신념 속에 남아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방법서설?,184)

<해설> 데카르트는 우리가 정신 안에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 관념이 외부의 사물과 닮았든 닮지 않았든 또는 그런 관념에 대응하는 외부의 사물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우리 정신 안에 관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명석 판명한 사실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발견하고자 하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식이란 정신 안에 존재하는 관념에 대응하는 외적 존재에 대한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식을 의미한다.

 

 

2.1.2. 회의 과정
<해설> 데카르트는 절대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인식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모든 것을 일일이 검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존 의견이 의존하고 있는 원리에 따라 대상을 분류하고 이를 일괄적으로 의심해 본다. 그가 택한 의심의 순서는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친숙하지만,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의심스러운 것들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우선 데카르트는 감각에 근거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외부
물체의 존재여부이다. 일반인들이 외부 물체세계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김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는 그것이 의심스럽다고 간주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감각에 의존해 물체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감각은 항상 우리에게 진실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종종 속이기 때문이다.
물론 종종 속인다고 해서 항상 거짓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식을 찾는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우리를 속인 적이 있는 대상은 믿지 않는 것이 좋다.

 

 

<원문> “나는 이제 오직 진리탐구에 전념하려고 하므로, 앞에서 했던 것과는 반대로,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여 던져 버리고, 이렇게 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내 신념 속에 남아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우리 감각은 종종 우리를 기만하므로, 감각이 우리 마음 속에 그리는 대로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가정했다.”(?방법서설?, 184)

 

<해설> 물체세계의 존재가 의심스러운 또 다른 이유로 데카르트는 우리가 꿈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든다. 외부의 물체는 감각이 우리를 속인다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감각이 속인다고 해도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꿈의 가설을 도입하여 우리의 육체존재마저도 의심스럽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회의의 과정은 ?방법서설?뿐만 아니라 ?성찰?, ?철학의 원리?, ?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 탐구? 등에서 서술되고 있는 데, ?방법서설?을 제외한 다른 저술에서는 꿈의 가설이 물체존재, 특히 육체의 존재에 대한 의심의 근거로 제시되는 데 비해 ?방법서설?에서는 우리의 인식에 대한 일반적인 의심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원문> ”끝으로,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은 잠들어 있을 때에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고, 이때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가지 정신 속에 들어 온 것 중에서 내 꿈의 환영보다 더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상하기로 결심했다.”(?방법서설?, 185)

 

<해설> 외부의 물체세계와 육체의 존재를 불확실한 것으로 가정하고나면, 남은 것은 감각의 대상이 아닌 정신과 정신 안에 있는 관념들의 상호 관계에 관한 인식으로서 수학적 인식, 그리고 신의 존재에 관한 인식만
이 남아 있다. 다음 단계로 데카르트는 우선 수학적 인식의 확실성에 대해 의심한다. 사실 수학은 데카르트 자신도 방법적 회의를 수행하기 전까지는 모든 인식 중에서 가장 명증적인 인식이라고 간주했던 인식이다. 그러나 이러나 명증성은 다른 학문분야와 비교했을 때의 상대적인 명증성이다.데카르트는 ?성찰?, ?철학의 원리?, ?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 탐구?에서 이러한 수학적 인식들도 신이 아니라 악마가 존재하여 우리를 속인다는 가정을 하면 의심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들 보다 초기 저작인 ?방법서설?에서는 수학적 인식이 의심스러운 근거로 우리가 단순한 기하학적 증명에 있어서 조차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든다.

 

 

<원문> “그리고 아주 단순한 기하학적 문제에 있어서조차 추리를 잘못하여 오류 추리를 범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전에 증명으로 인정했던 모든 근거를 거짓된 것으로 던져 버렸다.”(?방법서설?, 184 이하)

 

<해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이러한 오류가능성을 근거로 수학적 인식을 의심한다는 것은 명석 판명한 인식을 인정하는 것과 조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음에 틀림없다. ?성찰?을 비롯한 후기 저작에서는 더 이상 오류가능성을 근거로 수학적 진리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2.2. 나

2.2.1. 나의 존재
<해설> 데카르트는 나의 존재에 대해서도 의심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나의 육체의 존재는 의심스러운 것이었으므로 나는 육체를 가지지 않은 존재, 곧 정신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다른 것은 의심할 수 있어도 나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 없음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내가 다른 사물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다면,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즉 데카르트는 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의 확실성을 내가 사유한다는 사실의 확실성에서 찾는다. 내가 의심하는 것도 사유의 일종이다. 내가 의심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물체도, 내 육체도 존재하지 않고, 수학적 인식마저도 오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사유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 그런데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유할 수는 없다. 따라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도 확실하다. 이로부터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명제를 최초의 확실한 인식으로 간주한다.

 

 

<원문>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일 원리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방법서설?, 185)

 

“그런데 내가 만일 생각하기 위해서는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명석하게 알지 못했다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에 있어 내가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확신시켜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고, 그래서 우리가 아주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참이라는 것을 일반적 규칙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방법서설?, 186 이하)

 

<해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뿐만 아니라, ?성찰?, ?철학의 원리?, ? 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 탐구?에서 모두 나의 존재의 확실성을 내가 사유한다는 사실의 확실성에서 찾는다. 나의 존재의 확실성을 추리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즉 생각하는 것이 생각하는 동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내가 생각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내가 존재하는 것도 확실하다.

그런데 ?성찰?에서는 전능한 악마가 존재하여 나를 속이고 있을지 모른다는 가정을 도입하고 있으므로, 신이 나를 속인다는 가정 하에서도 나의 존재가 확실한지를 검토하고, 신이 나를 속인다 하더라도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왜냐하면 신이 나를 속인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즉, 내가 존재하지 않는데 신이 나를 속인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에, 신이 나를 속인다면 나의 존재는 확실하다는 것이다(?성찰?, 43 참조).

 

 

2.2.2. 나의 본질
2.2.2.1. 정신
<해설> 나의 육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수 있었으므로, 육체는 설령 존재한다하더라도 나의 본질이 될 수 없음은 확실하다. 따라서 나의 본질은 정신이다. 이 정신으로서의 나는 사유한다는 사실을 통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실히 인식되는 것이기 때문에 데카르트는 정신의 본질을 사유로 규정한다.

 

 

<원문> “그런 다음에, 내가 무엇인지를 주의 깊게 고찰했으며, 이때 다음과 같은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나는 신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세계도 없으며, 내가 있는 장소도 없다고 가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상할 수는 없고, 오히려 반대로 내가 다른 것의 진리성을 의심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주 명백하고 확실하게 귀결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그때까지 상상했던 나머지 다른 것들이 설령 참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단지 생각하는 것만 중단한다면,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믿게 할 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음을 알았다. 이로부터 나는 하나의 실체이고, 그 본질 혹은 본성은 오직 생각하는 것이며, 존재하기 위해 하등의 장소도 필요 없고, 어떠한 물질적 사물에도 의존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나, 즉 나를 나이게끔 해 주는 정신은 물체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며, 심지어 물체보다 더 쉽게 인식되고, 설령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신은 스스로 중단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방법서설?, 186)

 

 

2.2.2.2. 실체
<해설> 데카르트는 정신을 실체로 간주한다. 그리고 그 본성 또는 속성은 생각하는 것, 즉 사유라고 한다.

 

 

<원문> “그러나 내가 그때까지 상상했던 나머지 다른 것들이 설령 참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단지 생각하는 것만 중단한다면,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믿게 할 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음을 알았다. 이로부터 나는 하나의 실체이고, 그 본질 혹은 본성은 오직 생각하는 것이며, 존재하기 위해 하등의 장소도 필요 없고, 어떠한 물질적 사물에도 의존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방법서설?, 186)

 

<해설> 그러나 ?방법서설?과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정신이 왜 실체인지 명백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정신을 “사유하는 것”(res cogitans)이라고 부른다. 실체에 대한 정의는 ?철학의 원리? 1부 51절에서 “존재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된다.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정신을 실체로 규정하는 이유는 정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의 확실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정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육체의 존재에 대한 인식 없이도 확실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기때문이다. 즉 데카르트는 정신이 육체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여 이로부터 정신이 실체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육체 없이도 인식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정신이 실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이 실체라는 사실을 통하여 거꾸로 정신은 육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원문> “다음으로 나는 이성적 영혼을 기술하고,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말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물질의 힘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창조된 것임을 설명했다.”(?방법서설?, 216)

 

“이와 반대로, 우리 영혼이 신체와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 영혼은 본성 상 신체와 전적으로 무관한 것이고, 따라서 신체와 더불어 사멸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근거들을 훨씬 잘 이해할 것이며, 아울러 영혼을 파괴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원인도 발겨날 수 없으므로 영혼불명이라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것이다.”(?방법서설?, 217)

 

 

2.2.3. 철학의 제일원리
<해설> 나의 존재에 관한 인식은 최초의 확실한 인식이며, 악마의 존재 가정 하에서도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식이다. 만일 이러한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데카르트의 확실한 인식만으로 이루어진 체계로서의 형이상학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를 “철학의 제일원리”라고 부른다. 이 진리는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체계에서, 기하학에서 그 자체로는 증명할 필요가 없이 직관적으로 자명하면서 모든 정리가 그로부터 연역되는 공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명제는 ?방법서설?, ?철학의 원리?에서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형태로 되어있고, ?성찰?에서는 “나는 있다, 나는 현존한다(ego sum, ego existo)”라는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원문>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일 원리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방법서설?, 185)

“내가 저 제일원리들로부터 연역한 다른 모든 진리의 연쇄를 계속 추구해서 그것을 지금 보여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방법서설?,196)

“그리고 내가 이런 원인을 그저 가설이라고 불렀던 것은, 이 원인은 앞에서 설명한 제일원리들로부터 연역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방법서설?, 235)

 

 

 

2.3. 신

<해설> 방법적 회의 과정에서 데카르트는 이성사용을 위한 규칙 중 두번째 규칙에 따라 인식대상을 가급적 가장 단순한 것으로 분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체존재의 문제, 나의 존재 문제, 신 존재 문제 등은 따라서 단순한 인식의 요소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가장 단순한 인식이다. 나의 존재인식은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도 첫 번째 규칙인 인식의 “일반적 규칙”을 적용하여 얻을 수 있는 유일
한 인식이다. 데카르트는 이로부터 출발하여 세 번째 규칙에 따라 다른 확실한 인식을 연역적으로 도출하고자 한다. 그런데 다음 단계의 인식은 셋째와 넷째 규칙에 의하면 순서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고 그 중간에 빠진 단계가 없다는 것이 확실해야 한다. 즉 왜 나의 존재 인식 다음에 신 존재 인식이 필연적인가에 대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좀더 후기 저작인 ?성찰?에서는 이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방법서설?에서는 단지 함축적인 형태로만 언급을 하고 있다.

?성찰?에 의하면 진리의 일반규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악마가 아니라 선한 신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
다고 본다.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고 악마가 존재하여 나를 속인다면, 진리의 일반적 규칙을 적용하여 얻은 인식도 진리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즉 기만하지 않는 신이 우리를 창조했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진리의 규칙에 따라 인식하는 모든 다른 명제들이 진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방법서설?에서는 이에 대해 완전한 의심을 제거하려면 신의 현존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원문> “그리고 우수한 지성의 소유자가 아무리 이에 대해 연구한다고하더라도, 그들이 신의 현존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 의심을 충분히 제거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왜냐하면 첫 째로, 내가 앞에서 규칙으로 정한 것, 즉 우리가 아주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참이라는 명제의 진리성조차도, 신이 존재 혹은 현존한다는 것, 그가 완전한 존재라는 것, 또 우리 속에 있는 것은 모두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만 보장되기 때문이다.”(?방법서설?, 193)

 

 

2.3.1. 신의 본성

 

2.3.1.1. 완전한 존재
<해설> 데카르트의 새로운 학문체계 구성의 원칙에 따르면 확실하게 알려진 것으로부터 빈 틈 없는 연역에 의해 인식이 전개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확실한 인식은 나의 존재에 관한 인식이었다. 그러
나 나의 존재로부터만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신 존재 증명을 위해서는 신 관념을 필요로 하는 데, 그것은 이미 나의 정신 안에 포함되어 있다. 데카르트는 나의 정신 안에 여러 가지 사물에 대한 관념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의심하지 않았다. 그 중에는 물론 신의 관념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신 관념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신을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하고 전지전능한 존재”란 전통적인 신 개념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이러한 존재를 “완전한 존재”라고 이해하고 있다.

완전한 존재란 표현은 이의성을 담고 있다. 그것은 한편에서는 모든 종류의 완전성을 다 가지고 있는 존재란 의미에서 완전한 존재라는 것과,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각각의 종류의 완전성을 최고의 정도로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완전한 존재라 불리는 것이다. 따라서 신의 본성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완전성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안 된다.

 

 

<원문> “… 이렇게 되면 나는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하고 전지 전능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고, 결국 신 안에 있다고 인정되는 모든 완전성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방법서설?, 189)

“그러므로 이 관념은 실제로 나보다 더 완전하고, 나이가 모든 완전성 ― 이것에 대한 어떤 관념을 내가 가질 수 있었던 ― 을 자신 안에 갖고 있는 어떤 본성에 의해, 단적으로 말해 신에 의해 내 속에 넣어진 것으로 보
아야 했다.”(?방법서설?, 187 이하)

“내가 앞에서 규칙으로 정한 것, 즉 우리가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참이라는 명제의 진리성 조차도, 신이 존재 혹은 현존한다는 것, 그가 완전한 존재라는 것, 또 우리 속에 있는 것은 모두 신으로부터 나온
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만 보장되기 때문이다.”(?방법서설?, 193)

 

 

2.3.1.2. 완전성
<해설> 완전성(perfection)이란 용어는 스콜라 철학의 용어인데,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별 다른 설명 없이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성찰?에서는 완전성이란 용어 대신에 “실재성(realitas)”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두 용어는 스피노자가 그의 ?윤리학? 제2부 정의 6에서 동일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듯이 같은 개념이다. 실재성과 완전성을 아무런 설명 없이 사용하기는 스피노자도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다. 이들은 이 두 용어를 스콜라 철학에서 사용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이러한 의미는 당시 철학자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완전성 또는 실재성이란 적극적인 사유내용 또는 성질을 의미한다. 따라서 완전성은 한 가지 성질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완전성들이 있다. 데카르트도 지적하고 있듯이 “의심”, “동요”, “슬픔”, “의존성”
은 적극적인 내용이 아니라, 각각 인식, 안정, 기쁨, 독립성 등의 결핍이라는 소극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완전성이 아니다. 완전성은 사유의 내용인 한 모순을 내포해서는 안 된다.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적절히 사유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적극적인 것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완전성은 최고의 정도가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수나 속도 등은 모순이 없고 적극적인 성질이기는 하기만, 가장 큰 수, 또는 가장 빠른 속도 등은 모순되기 때문에. 완전성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성질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지혜, 선, 능력, 존재 등이다. 이들은 각각 모순이 없는 적극적 성질이면서, 최고의 지혜, 최고의 선, 최고의 능력, 최고의 존재 등 최고의 정도가 가능하다.

 

존재는 상식적인 의미에서 보면 어떤 것이 존재하던가 존재하지 않던가 하기 때문에 최고의 정도를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콜라 철학에서는 모든 가능적인 것들은 그들이 실재성 또는 완전성을 소유하고 있는 한, 그 정도에 따라 상응하는 존재의 등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즉 무나 결핍은 존재를 생각할 수 없지만, 적극적인 성질을 가진 것들은 그 정도에 비례하여 존재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한한 가능태들은 자기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다른 존재의 힘을 통해서만 현존이며, 가장 완전한 존재만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완전성은 이와 같이 그 종류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 정도도 다양하다. 그런데 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완전 또는 무한한 존재로 이해된다. 한편에서는 모든 가능한 완전성을 다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완전하다. 존재도 완전성의 하나이기 때문에 무한한 존재는 존재를 본성 안에 포함할 수밖에 없으며 이로부터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이 나온다. 또 다른 한편 신은 각각의 완전성을 최고의 정도로 소유하는 존재로 이해된다. 최고로
완전한 것은 그 완전성을 다른 것으로부터 부여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로부터 충족이유율에 의한 신 존재 증명이 가능하게 된다.

 

 

<원문> “계속해서, 내가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 또 의심하는 것보다는 인식하는 것이 더 큰 완전성perfection이므로 내 존재는 아주 완전한 것이 아님을 반성했다.”(?방법서설?, 187)

“내 본성에 의해 가능한 한 신의 본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내가 내 안에 그것에 대한 어떤 관념을 갖고 있는 모든 사물에 대해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 완전성인지 아닌지를 살펴보기만 하면 되었고, 또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것은 신 안에 없지만, 그밖에 다른 것은 모두 신 안에 있음을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심, 동요, 슬픔 및 이와 유사한 것은 나 자신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므로 신 안에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방법서설?, 189)

“그리고 모든 합성은 의존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의존성은 분명히 일종의 결함이라는 것을 유념하면서 나는 이 두 본성으로 합성된 것은 신에 있어 완전성일 수 없으며, 따라서 신은 합성체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방법서설?, 189)

 

 

2.3.2. 신 존재 증명
<해설> 데카르트가 신 존재 증명을 위해 확실하게 전제하고 있는 것은 정신으로서의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정신 안에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에 대한 관념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신 존재 증명을 위해 또 다른 조건을 전제하고 있다. 그것은 사유의 법칙인 충족이유율과 모순율이다. 데카르트는 이 두 가지 논리법칙의 형태를 명확히 제시하거나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법칙들의 타당성만은 결코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모순율은 일반적으로 “A는 비 A가 아니다”라는 형태로 표현되는데, 정당하게 사고 또는 추론하려면 모순을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법칙을 이미 나의 존재증명에서 사용한 바 있다. 여기서 생각하는 것이 생각하는 동안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모순율을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에서 다시 사용하고 있다.

 

충족이유율은 나의 존재와 내 안에 있는 신 관념의 원인을 규명함으로서 신 존재 증명을 하는데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은 두 가지 형태가 있는 데 나의 존재와 내 안에 있는 신 관념에 충족이유율을 적용하여 신 관념의 원인 또는 신 관념을 가진 나의 원인으로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신 관념 자체에 모순율을 적용하여 신의 본질에 존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신은 존재한다고 증명하는 형태이다. 후자는 안셀름이래 일반적으로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이라고 불리어 왔고, 후자는 칸트에 의해 “우주론적 신 존재 증명”이라 명명되었다.

 

2.3.2.1. 충족이유율에 의한 신 존재 증명
<해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과 ?성찰?, ?철학의 원리?에서 다같이 두가지 서로 다른 형태의 충족이유율에 의한 신 존재 증명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나의 안에 있는 신 관념에 충족이유율을 적용하여 이 신 관념의 원인으로서 신은 내 정신 외부에 실재하여야 한다는 증명이고, 다른 하나는 신 관념을 가지고 있는 나의 존재 원인은 나 자신일 수 없고, 나의 원인으로서의 신이 반드시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3.2.1.1. 첫 번째 증명
<해설> 첫 번째 형태의 충족이유율에 의한 신 존재 증명은 나의 안에 있는 명석 판명한 관념으로서의 신 관념이 가지고 있는 실재성 또는 완전성에 대한 고찰로부터 출발한다. 실재성 또는 완전성은 모순 없고 적극적
인 사유내용을 의미하기 때문에 실재하는 사물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념도 실재성을 가지고 있다.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관념이 가지는 실재성을 “객관적 실재성(realitas objectiva)”, 실제 존재가 가지는

실재성을 “형상적 실재성(realitas formalis)”이라는 스콜라 철학의 구별을 도입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실재성 또는 완전성의 정도에 충족이유율을 적용한다. 즉 실재성이 작은 것에서 실재성이 큰 것이 결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에서 실재성이 나올 수도 있고 이것은 명백히 충족이유율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같은 형상적 실재성 간에나 또는 객관적 실재성 간에만 충족이유율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실재성과 형상적 실재성 사이에도 충족이유율이 적용된다. 즉 보다 작은 형상적 실재성에서 보다 큰 객관적 실재성이 나올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신의 관념이 가지는 실재성, 즉 신 관념의 객관적 실재성은 무한하다. 이에 대해 나의 실재성, 즉 나의 형상적 실재성은 유한하다. 따라서 충족 이유율에 의해 신의 객관적 실재성은 나의 형상적 실재성으로부터 생겨날 수는 없고, 신의 객관적 실재성과 동등한 정도의 크기를 갖는 어떤 형상적 실재성으로부터 생겨났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형상적 실재성을 갖는 무한한 존재인 신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법서설?에서의 증명은 실재성이란 용어 대신에 완전성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형상적 실재성과 객관적 실재성을 구별하고 있지는 않지만 원리상으로는 ?성찰?(?성찰?, 63 이하)과 ?철학의 원리?(?철학의 원리? 1부, 17, 18절)에서의 증명과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원문> “계속해서, 내가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 또 의심하는 것보다는 인식하는 것이 더 큰 완전성이므로 내 존재는 아주 완전한 것이 아님을 반성했다. 그런 다음에 내가 어떻게 해서 나보다 더 완전한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고찰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실제로더 완전한 어떤 본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명증적으로 알게 되었다. 외부에 있는 많은 것들, 가령 하늘, 땅, 빛, 열 및 다른 많은 것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생각들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아는 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보다 더 우월하게 만드는 것을 나는 이 생각들 속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만일 참된 것이라면 내 본성이 어떤 완전성을 갖고 있는 한 내 본성에 의존하는 것이고, 그것이 참된 것이 아니라면 무로부터 얻었다는 것, 즉 그것은 내 결함 때문에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보다 더 완전한 존재의 관념은 이에 해당될 수 없다.

그 관념을 무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보다 완전한 것이 덜 완전한 것에서 나오고 또 이것에 의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 무에서 야기된다는 것만큼이나 모순이므로, 나는 그것을 나 자신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관념은 실제로 보다 더 완전하고, 나아가 모든 완전성 ― 이것에 대한 어떤 관념을 내가 가질 수 있었던 ― 을 자신 안에 갖고 있는 어떤 본성에 의해, 단적으로 말해 신에 의해 내 속에 넣어진 것으로 보아야 했다.”(?방법서설?, 187 이하)

 

2.3.2.1.2. 두 번째 증명
<해설> 충족이유율에 근거한 두 번째 형태의 신 존재 증명은 완전한 존재인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는 나의 존재에 충족이유율을 적용함으로써 얻어진다. 그러나 ?방법서설?에서는 불완전한 형태로 전개되어 있고, 독립적인 신 존재 증명이라기보다는 첫 번째 충족이유율에 의한 신 존재 증명을 보충논거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성찰?(?성찰?, 73 이하)과 ?철학의 원리?(?철학의 원리? 1부, 20, 21절)에서는 독립적인 신 존재 증명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 두 저서를 통하여 재구성해보면 이 증명을 다음과 같다.
만일 신 관념을 가지고 있는 내가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고 다른 모든 것에 비의존적이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완전성은 나 자신에게서 얻었을 것이고, 또 마찬가지고 내가 신의 관념으로부터 알고 있는 모든 완전성들도 모두 나 자신에게서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나 자신이 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유한한 존재이므로 나 자신에 의해 존재했다고 볼 수 없고 나의 원인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다른 존재는 나보다 더 완전한 존재이고 마찬가지로 신 관념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존재이어야 한다. 나의 존재 원인인 이 다른 존재가 만일 자기 스스로 존재한다면 그는 마찬가지로 자기가 신 관념을 통하여 알고 있는 모든 완전성을 자기에게 부여할 것이므로 그는 신이다. 그러나 이 존재가 자기 자신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원인이 존재해야 하며, 이 과정을 계속추구하면 마침내는 신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곧 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신 관념을 가진
나의 존재가 확실하다면 신 또한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다
.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나의 보존에도 창조와 동일한 원인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무한소급의 가능성을 배제한다(?성찰?, 76 참조). 그러나 최초의 창조와 보존이 동일한 힘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무한 소급의 가능성이 배제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원문> “이에 덧붙여, 나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어떤 완전성들을 알고 있으므로 나만이 현존하는 (내가 여기서 강단철학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양해하길 바란다)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 내가 의존하고,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부여한 더 완전한 존재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만일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고, 다른 모든 것에 비의존적인 것이라면, 따라서 내가 완전한 존재를 분유함으로써 갖게 된 약간의 것을 모두 나 자신에게서 얻었다면, 마찬가지로 나에게 결여되어 있음을 알고있는 나머지 것들도 모두 나 자신에게서 얻을 수 있었을 터인데, 이렇게 되면 나는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하고 전지 전능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고, 결국 신 안에 있다고 인정되는 모든 완전성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제시했던 추론에 따르면, 내 본성에 의해 가능한 한 신의 본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내가 내 안에 그것에 대한 어떤 관념을 갖고 있는 모든 사물에 대해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 완전성인지 아닌지를 살펴보기만 하면 되었고, 또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것은 신 안에 없지만, 그밖에 다른 것은 모두 신 안에 있음을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심, 동요, 슬픔 및 이와 유사한 것은 나 자신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므로 신 안에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방법서설?, 188 이하)

 

2.3.2.2.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
<해설>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이란 신의 본질로부터 신의 존재를 도출하는 증명이다. 이 증명의 기본 논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존재가 본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신의 본질은 존재를 포함한다.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서 대전제는 동어반복 명제로 필연적으로 참이지만, 소전제, 즉 신의 본질에는 존재가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은 그렇게 자명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들은 왜 신의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고 있는가를 밝히는데 중점이 주어지고 있다.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을 창시한 사람은 안셀름이다. 데카르트는 안셀름의 논거는 개념적으로만 존재하는 것보다 실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더 완전하다는 것으로, 가장 완전한 존재의 개념을 통하여 신의 본질에 존재가 포함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데카르트는 여기에 “내가 명석 판명하게 통찰한 것은 모두 참이다”라는 그의 진리의 규칙을 적용하여 확실성을 보완한다. 데카르트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두 직각과 같다는 인식은 명석 판명한 인식이다. 그런데 신의 관념에 존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아니 “그 보다 더 명증적으로” 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방법 서설?에서는 왜 신의 관념에 존재가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성찰?에 의하면 그 이유는 존재가 완전성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신은 가장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완전성을 다가지고 있고, 따라서 완전성 중의 하나인 존재는 당연히 가장 완전한 존재의 관념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성찰?, 95).

 

 

<원문> “그리고 나는 기하학적 대상들 가운데가장 단순한 몇 가지 증명들을 살펴보았다. 이때 나는 모든 사람이 이런 증명에 귀속시키는 저 커다란 확실성은 ― 내가 잎에서 말한 규칙에 따라 ― 우리가 그것을 명증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에만 근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또 그 대상의 현존을 나에게 확신시켜 주는 것은 그 안에 전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의 삼각형을 상정한다면 당연히 그 세 각의 합은 두 직각과 같아야 하지만, 이 세상에 삼각형이 있다는 것을 나에게 확신시켜 주는 것은 이 증명 속에서 전혀 발견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내가 완전한 존재의 관념을 다시 고찰해 보았을 때, 삼각형의 관념 속에 그 세 각의 합이 두 직각과 같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고, 또 원의 관념 속에 그 모든 부분이 원 중심으로부터 똑같은 거리에 있다고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명증적으로 완전한 존재의 관념 속에는 현존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따라서 나는 이 완전한 존재인 신이 있다는 것 혹은 현존한다는 사실은 적어도 그 어떤 기하학적 논증 못지 않게 확실하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방법서설?, 191 이하)

 

 

 

2.4. 물체

<해설> 일반인들은 감각에 근거하여 물체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감각이 종종 우리를 속인다는 것과 우리가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유로 물체 세계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의심스럽다고 간주하였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진리성을 신봉하고 있는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물체세계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만일 물체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에 근거한 자연과학도 결국 허구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의 원리? 불어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형이상학의 효용성은 무엇보다 물리학에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물체세계에 대한 인식을 확보하기 위해 “내가 명석 판명하게 통찰하는 것은 모두 진리이다”라는 진리의 일반규칙을 정립하였고 이를 보장하기 위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였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물체세계의 존재에 대한 체계적인 증명을 전개하고 있지 않다. 그는 다만 우리가 감각의 명증성이 아니라 “이성의 명증성”에 의해서만 설득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우리가 단
지 물체세계를 감각하고 있다는 이유로 물체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체 세계존재 증명은 ?성찰?에서 명확히 제시되고 있는데, ?방법서설?에서도 진실된 신은 우리에게 아무런 토대 없이 물체의 관념을 넣어주었을 리가 없다고 함으로써, 명석 판명한 물체의 관념에 대응하는 외부 물체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성찰?에서의 물체 존재 증명을 예고하고 있다.

 

 

<원문> “깨어 있든 잠들어 있든 간에, 우리는 결국 우리 이성의 명증성에 의해서만 설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상상력이나 감각의 명증성이 아닌 이성의 명증성이라고 말하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가령 우리는 태양을 아주 명석하게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보고있는 태양의 크기가 태양의 실제 크기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또 사자의 머리가 산양의 몸뚱이에 붙어 있는 동물을 판명하게 상상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키마이라라는 동물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결론지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이성은 우리가 이렇게 보거나 상상하는 것이 참이라고 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이 우리에게 분명히 명하는 바는, 모든 우리의 관념 혹은 개념은 어떤 진리의 토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완전하고 진실된 신이 이런 토대 없이 관념들을 우리 속에 집어넣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방법서설?, 195)

 

<원문> “왜냐하면, 첫 째로, 내가 앞에서 규칙으로 정한 것, 즉 우리가 아주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참이라는 명제의 진리성 조차도, 신이 존재 혹은 현존한다는 것, 그가 완전한 존재라는 것, 또 우리 속에 있는 것은 모두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만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귀결되는 것은, 우리 관념들 혹은 개념들은 명석 판명한 것인 한에서 실재적인 것이고, 신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래서 참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방법서설?, 193)

 

 

3. 자연학

 

<해설> 데카르트의 자연학은 경험과학으로서의 자연학이 아니다. 그는 모든 물리법칙들을 철학의 제일원리로부터 이성의 힘만으로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여 참된 인식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정한 규칙은 단지 형이상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일반, 특히 자연학에도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문> “내가 저 제일원리들로부터 연역한 다른 모든 진리의 연쇄를 계속 추구해서 그것을 지금 보여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학자들 간에 논쟁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이 자리에서 말을 해야 하지만, 나는 그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저 이 문제들에 대한 개괄적인 언급으로 만족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일반 대중들에게 더 자세히 알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현명한 사람들의 판단에 맡기는 편이 오히려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신과 영혼의 현존을 증명하기 위해 앞에서 사용한 원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가정해서는 안 된다는, 또 기하학자들의 증명보다 더 명석하고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결코 참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결의를 항상 확고하게 견지했다. 그럼에도 내가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보통 철학에서 다루고 있는 모든 주요 난제와 연관해서 나를 만족시킬 만한 수단을 짧은 시간에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몇몇 법칙들도 알게 되었다. 이 법칙들은 신이 자연 속에 확립시켜 놓은 것이고, 또 그 개념을 우리 영혼 속에 각인시켜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반성만 한다면 세계에 있는, 또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서 그 법칙이 정확하게 지켜지고 있음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방법서설?, 196 이하)

 

<해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을 저술하기 전에 이미 이러한 규칙을 적용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1633년에 저술한 자연학에 관한 책인 ?세계 및 빛에 관한 논고?인 것이다.

 

 

<원문> “나아가 이 법칙들로부터 어떤 것이 귀결되는지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내가 이전에 배웠던 혹은 배우기를 바랐던 것보다 훨씬 유용하고 중요한 다수의 진리들을 발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내가 여러 생각 끝에 출간을 보류한 한 논문에서 이 주요한 진리들을 설명하려고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논문의 내용을 여기서 요약해서 말하는 것이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최상의 방책이라고 생각된다.”(?방법서설?, 197)

<해설> 그러나 데카르트는 또한 실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그가 ?방법서설?을 쓰게 된 중요한 이유도 사실은 그가 행한 실험적 성과들은 후대에게 물려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원문>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둘째 이유는, 무수히 많은 실험이 필요하고 ,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그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내 자신을 교육하려는 내 계획이 점점 더 지연되고 있음을 날마다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내가 비록 세상이 내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여 주리라고 바랄만큼 자만심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나보다 더 오래 살 사람들이 훗날 다음과 같이 나를 비난하도록 방치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즉, 내가 만일 그들이 어떻게 내 계획에 조력할 수 있는지를 알도록 하는 일에 그렇게 무심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좋은 유산을 그들에게 남겨 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난이다.”(?방법서설?, 233)

<해설> 데카르트는 자연학을 탐구함에 있어 순수 연역적 방법과 실험을 이용한 두 가지 방법을 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가 모든 인식은 최초의 제일원리로부터 연역해야 한다는 주장과 모순되는 것처
럼 보인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실제로 많은 자연현상의 문제를 탐구함에 있어 실험을 이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모든 자연현상이 저 최초의 원리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연법칙과 현상을 신에 의한 창조를 통하여 설명하고자 하는데, 인간의 이성이 유한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신의 창조행위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단순하고 일반적인 것들만을 신의 창조로부터 직접 연역적으로 도출할 수 있고, 특수한 것들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결과가 원리에 의존하는 방식도 너무 다양하여, 어떤 방식으로 원리를 통하여 결과를 도출하여야 할 지를 인간의 이성만을 통해서는 결정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결과가 원리로부터 도출되는 방식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실험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원문> “그러므로 내가 여기서 지킨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는 세계에 있거나 혹은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의 원리들 혹은 제일원인들을 일반적으로 발견하려 했고, 이때 나는 이를 위해 세계를 창조한 신만을 고찰
했으며, 또 그 원리들을 우리 영혼 속에 본래적으로 있는 어떤 진리의 씨앗에서만 끌어내려고 했다. 다음에 나는 이 원인들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최초의 가장 정상적인 결과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이로부터 나는 하늘, 별, 지구 및 지구 위에 있는 물, 공기, 불, 공물 및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일반적이고 단순한 것, 따라서 가장 쉽게 인식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 다음에 내가 좀더 특수한 것으로 내려갔을 때는 너무나 다양한 것들이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에, 결과에서 원인으로 나아가고 또 많은 특수한 실험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지상에 있는 물체의 형상이나 종을, 신의 의지가 그것을 설정하려고 했다면 있을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다른 것과 구별해 내기란 인간의 정신으로는 역부족이며, 따라서 그것을 이용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나는 그때까지 감각에 현전하는 것을 두루 살펴보았는데, 내가 발견한 원리들로부터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이때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다음의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자연의 힘은 아주 풍부하고 광대하며, 그 원리들은 아주 단순하고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는 먼저 거의 모든 특수한 결과가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원리에서 연역될 수 있음을 알게 되며, 따라서 내가 직면한 최대의 난점은 일반적으로 이 방식들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 결과가 원리에 의존되어 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때 나는 설명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되는 몇 가지 실험을 다시 찾아내는 것 외에 다른 방책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방법서설?, 223 이하)

 

 

3.1. 보편적 자연법칙

<해설> 데카르트는 모든 자연법칙은 신으로부터 왔다고 본다. 즉 자연법칙은 신이 세계를 창조할 때 자연에 부여한 것이다. 그는 또한 신이 이러한 법칙을 인간의 정신에 각인시켜 놓았기 때문에 경험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반성만 한다면 이성만으로 자연법칙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생각은 그가 ?방법서설?보다 3년 앞서 저술하고도 출판을 보류했던 ?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 제7장에서도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자연법칙에 관한 이론은 창조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나 모든 법칙을 신의 창조로부터 도출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데카르트는 운동량보존의 법칙과 관성의 법칙 등 가장 보편적인 몇몇 자연법칙들만
연역적으로 도출하고 있는 것이다.

 

 

<원문> “그럼에도 내가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보통 철학에서 다루고 있는 모든 주요 난제와 연관해서 나를 만족시킬 만한 수단을 짧은 시간에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몇몇 법칙들도 알게 되었다. 이 법칙들은 신이 자연 속에 확립시켜 놓은 것이고, 또 그 개념을 우리 영혼 속에 각인시켜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반성만 한다면 세계에 있는, 또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서 그 법칙이 정확하게 지켜지고 있음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방법서설?, 196 이하)

“반면에 신이 만일 지금 상상적 공간들 어디엔가에서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기에 충분한 물질을 창조하고, 시인들이나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이 물질의 갖가지 부분들을 질서도 없이 다양하게 움직여서 뒤죽박죽의 혼돈 상태를 만든 다음에, 자연에게 자신의 통상적인 협력만을 베풀면서, 자신이 확립한 법칙에 따라 자연이 움직이게 하는 일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이 새로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다짐했다.”(?방법서설?, 199)

“하지만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내가 제안한 방식으로 창조되었다는 결론을 끌어내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애초에 신은 이 세계를 있어야 할 모습 그대로 창조했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이 지금 이 세계를 보존하는 작용은 이 세계를 창조한 작용과 완전히 동일한 것임이 확실하고, 또 신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신이 애초에 그저 혼돈의 형태만을 이 세계에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세계에 자연의 법칙을 세우고, 통상적인 방식으로 작용하도록 협력하고 있다면, 우리는 창조의 기적을 손상함이 없이도 오직 이로써 모든 물질적인 것은 시간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그대로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질적인 것을 종결된 상태로 고찰하는 것보다 점진적으로 생겨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쉽게 이해되는 것이다.”(?방법서설?,202)

 

 

3.1.1. 창조론

<해설> 데카르트의 창조론은 연속적 창조론이다. 즉 그는 신이 세상을 한번 창조하면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가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신이 매 순간 연속적으로 창조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최초로 세계를 창조할 때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존하는 데에도 동일한 힘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생각은 ?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에 뿐만 아니라 ?방법서설?, ?성찰?, 그리고 ?철학의 원리?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원문> “그러나 세계 안에는 어떤 물체나 지성적인 것들 혹은 다른 본성들이 있다면, 이것들의 존재는 신의 힘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고, 신 없이는 한순간도 존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방법서설?, 189)

“그러나 신이 지금 이 세계를 보존하는 작용은 이 세계를 창조한 작용과 완전히 동일한 것임이 확실하고, 또 신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도 이와 다르지 않다.”(?방법서설?, 202)

<해설> 신은 세계를 창조하면서 물체에 운동을 부여한다. 그러나 신은 완전하기 때문에 세계를 불규칙하게 창조하지 않고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창조한다. 따라서 자연법칙은 신은 완전성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원문> “계속해서 자연의 법칙이 어떤 것인지를 제시했고, 또 사람들이 의혹을 가질 수도 있을 모든 것을 신의 무한한 완전성이라는 원리에만 의거해서 증명하려고 노력했으며, 또 이 법칙들은 설령 신이 다수의 세계를 창조했다고 하더라도 그 어느 곳에서나 예외 없이 지켜지는 것임을 보여 주려고 애썼다.”(?방법서설?, 199)

 

 

3.1.2. 자연법칙의 연역적 도출
<해설> 데카르트는 ?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에서는 신의 창조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세 개의 가장 보편적인 자연법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방법서설?에서는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칙은 ?철학의 원리?에서 보다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다.

그 첫 번째 법칙은 관성의 법칙으로, 물질의 각 입자들은 다른 입자들이 그것에 충돌하여 상태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항상 동일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 7장; ?철학의 원리? 2부 37절).

두 번째 법칙은 운동량 보존 법칙으로, “어떤 하나의 물체가 다른 하나의 물체를 밀 경우, 미는 물체가 밀리는 물체에 어떠한 운동을 준다면 미는 물체는 반드시 스스로의 운동을 같은 양만큼 동시에 잃으며, 밀리는 물체로부터 어떠한 운동량을 빼앗지 않는다면 밀리는 물체는 반드시 스스로의 운동량을 그만큼 증대시킨다”(?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 7장)는 법칙이다.

?철학의 원리?에서는 이 법칙이 신은 “우주에 항상 동일한 운동량을 보존한다”(?철학의 원리? 2부 36절)는 보다 일반적인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세 번째 법칙은 모든 운동은 그 자체로 직선 운동이며, 원운동 하는 물체는 항상 직선 운동을 하고자 한다는 법칙이다(?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 7장; ?철학의 원리? 2부39절 참조).

이 법칙은 오늘날엔 관성의 법칙의 변형으로 간주할 수 있으므로 독립된 법칙이라고 볼 수는 없다.

 

 

3.2. 특수한 자연법칙

3.2.1. 실험의 역할
<해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실험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지식이 진보하면 할수록 실험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원문> “나는 내 모든 생애를 바쳐 이처럼 필요한 학문을 탐구하기로 작정했고, 또 단명과 실험 부족에 의해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그런 학문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는 데, 이 단명과 실험 부족이라는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즉, 내가 발견한 것이 하찮은 것일지라도 그것을 모두 세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서 유능한 사람들이 더욱 앞으로 나아가도록 장려하고, 그들의 취향과 능력에 따라 필요한 실험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며, 마찬가지로 그들도 자신이 배운 것을 세상에 전하도록 하여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이전 사람들이 마친 곳에서 시작하게 하고,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애와 작업을 합치면 각자가 도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험에 관해서는, 우리 지식이 진보하면 할수록 그것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우리 감각에 나타나고, 조금만 반성해도 반드시 알게 되는 실험을 이용하는 편이 아주 드물고 까다로운 실험을 찾는 것보다 처음에는 낫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런 드문 실험은 우리가 가장 공통된 원인들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을 때에 종종 우리를 기만하고, 또 그것이 의존하고 있는 조건들은 거의 항상 아주 특수하고 미미한 것이므로 알아차리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방법서설?, 222)

 

<해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대를 이어 실험을 한다해도 다 못 이룰 만큼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원문> “그렇지만 나는 이제 이런 것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대부분의 실험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실험이 아주 복잡하고 그 수도 많으므로 내 능력과 돈이 지금의 천 배가
된다고 해도 그 전부를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에 대한 인식도 이런 실험을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내가 쓴 논문에서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고, 또 이로부터 세상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유용성을 분명히 밝혀 인류 전체의 복리를 바라는 모든 사람, 즉 겉으로 말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덕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한 실험을 나에게 알려주고, 또 앞으로 더 실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 도움을 주길 기대했다.”(?방법서설?, 224)

“이 일에 도움이 되는 실험에 관해 말하자면, 그 모든 실험을 한 사람이 모두 해낼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또한 장인이나 그 밖의 사람들의 손, 즉 돈으로 고용할 수 있고, 괜찮은 수입을 보장하는 것과 같은 효과적인 수단으로 명령하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의 손이 아니라면 자기 이외의 다른 손을 이용한다는 것도 적절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호기심이나 지식욕에서 도움을 자청하고 나서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은 대개 자기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약속하고, 또 온갖 좋은 제안만 던질 뿐 그 어느 것도 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대가로 반드시 어떤 문제의 설명이라든가 아니면 적어도 쓸데없는 인사치레나 담화를 요구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소비되기 때문이다.”(?방법서설?, 231)

 

<해설> 그는 원리로부터 연역을 통하여 사물을 설명하는 방식을 원인에서 결과를 이끌어 낸다고 하고, 실험을 이용하는 경우를 결과에서 원인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실험으로부터 귀납을 통
하여 자연법칙을 도출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을 신의 창조행위로부터 연역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동일한 원리로부터 둘 이상의 서로 다른 연역방식이 있을 때, 실제로 어떤 연역과정을 따를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실험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운동량 보존법칙이나 관성의 법칙 등은 특별한 관계를 함축하지 않은 일반적인 법칙이기 때문에 데카르트는 이들을 신의 완전성으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만유인력의 법칙에 있어서의 힘과 두 물체사이의 거리의 관계나 운동의 법칙에 있어서의 힘과 가속도의 관계와 같이 특별한 관계들은 인간의 이성이 신에 의한 창조론을 통해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즉 만유인력의 크기가 왜 두 물체의 질량의 합이 아니라 곱에 비례하고, 거리에 반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는지 등을 실험을 통하지 않고 신의 완전성으로부터만 일의적으로 도출하기에는 인간의 이성은 너무 유한하다는 것이다.

 

 

<원문> “그 다음에 내가 좀더 특수한 것으로 내려갔을 때는 너무나 다양한 것들이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에, 결과에서 원인으로 나아가고 또 많은 특수한 실험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지상에 있는 물체의 형상이나 종을, 신의 의지가 그것을 설정하려고 했다면 있을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다른 것과 구별해 내기란 인간의 정신으로는 역부족이며, 따라서 그것을 이용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나는 그때까지 감각에 현전하는 것을 두루 살펴보았는데, 내가 발견한 원리들로부터 아주 쉽게 설명할 수없는 것은 이때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다음의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자연의 힘은 아주 풍부하고 광대하며, 그 원리들은 아주 단순하고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는 먼저 거의 모든 특수한 결과가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원리에서 연역될 수 있음을 알게 되며, 따라서 내가 직면한 최대의 난점은 일반적으로 이 방식들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 결과가 원리에 의존되어 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때 나는 설명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되는 몇 가지 실험을 다시 찾아내는 것 외에 다른 방책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방법서설?, 223 이하)

 

 

3.2.2. 가설 연역적 방법

<해설> 데카르트에게서 특수한 자연법칙들을 정당화하는 원리는 귀납적 일반화가 아니라 일종의 가설-연역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선 원리로부터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인간의 이성만으로 일의적으로 결정될 수 없을 때, 실험은 이를 확정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확정되기 전의 원리는 일종의 가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설로부터 결과를 도출하고 이 결과가 실험과 일치한다면, 가설은 특정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원리로서의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 말미에서 이를 “결과들이 연역되는 원인들은 그 결과를 설명하고, 반면에 원인들은 결과에 의해 입증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즉 가설이 실험을 통하여 입증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설-연역적 방법에서는 가설이 한 두 차례의 실험을 통하여 입증된다고 말할 수 없다. 이때의 가설은 몇 차례의 경험적 관찰로부터 이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모델로서 임의로 설정된 것이므로, 그
것이 아무리 여러 차례의 실험결과와 일치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가설일 뿐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귀납적 일반화의 논리적인 문제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다른 합리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연법칙을 귀납을 통해 도출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개별적인 사실들뿐이며, 개별적인 사실들이 아무리 여러 번 관찰된다고 하더라도 이로부터 보편명제로서의 자연법칙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데카르트가 가설이 실험을 통해 입증된다고 하는 것은 그의 가설이 일반적인 가설-연역적 방법에서의 가설처럼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의 제일원리로부터 도출될 수 있기는 하지만, 도출경로가 다양하여 일의적으로 결정할 수 없을 때, 실험이 이를 결정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험의 역할은 베이컨의 “결정적 실험”의 역할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즉 한 사물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이론상 두 가지가 있을 때 어떤 것이 실재와 상응하는가를 결정하는 방법은 실험과의 일치 여부인 것이다.

 

 

<원문> “?굴절광학?과 ?기상학?의 처음 부분에서 말한 것 가운데 어떤 것을 내가 가설이라고 부르고, 그것을 입증하려고 하지 않은 것을 독자는 우선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책 전체를 주의 깊게 독서한다면 이해가 되리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때 나중 것은 그 원인인 처음 것에 의해 증명되고, 또 처음 것은 역으로 결과인 나중 것에 의해 증명되는 방식으로 여러 근거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논리학자들이 말하는 순환 논증을 범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실험은 결과의 대부분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고, 결과들이 연역되는 원인들은 그 결과를 입증한다기보다는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며, 반면에 원인은 결과에 의해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런 원인을 그저 가설이라고 불렀던 것은, 이 원인은 앞에서 설명한 제일원리들로부터 연역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방법서설?, 235)

 

 

 

 

참고문헌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 이현복 옮김, 문예출판사 2001
____________, ?성찰, 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탐구, 프로그램에 대한 주석 ?, 이현복 옮김, 문예출판사 1997
____________, ?방법서설, 성찰, 세계론?, 권오석 옮김, 1989 홍신문화사
____________, ?철학의 원리?, 원석영 옮김, 아카넷 2002.
Charles Adam, Paul Tannery, Oeuvres de Descartes, Ⅰ-?(Paris1973).
Joachim Ritter, Karlfried Gruender , Gottfried Gabriel,Historisches Woerterbuch der Philosophie, Ⅰ-?(Basel, 1971-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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