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끼] 31 - 직선과 곡선
씬1 학교 전경
앙상한 나뭇가지, 잔뜩 움츠린 아이들, 텅 비어 있는 운동장..... 초겨울의 풍경들의 스케치되면서 타이틀-직선과 곡선 씬2 강의실 강의실에 앉아 수업준비를 하고 있는 대주, 성연. 유재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들어오고 있다. 유재 15, 16, 17, 18, 또 한 건! (시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성연의 옆 빈자리에 앉으며) 1, 2, 3, 4, 5..... 대주 (성연에게) 뭐하는 거야, 쟤? 성연 (어깨 으쓱) ......? 유재 17, 18, 아악! 대주 뭐냐, 너? 유재 지금 누군가가 이런 소리를 내며 죽고 있을거야. 대주 주, 죽어? 사람이? 가만, 그렇다면 이럴 때가 아닌데,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잖아. (핸드폰을 꺼내 막 누르며) 거기가 어디 야? 유재 그건 나도 모르지. 대주 (핸드폰 내리며) 뭐야? 어휴, 신유재, 장난칠 걸 가지고 쳐라. 어디 장난 칠 게 없어서 그런 끔찍한 장난을 치냐! 유재 장난 아니야. 너희들 범죄시계라고 못들어봤어? 대,성 범죄시계? 유재 우리나라 범죄발생 빈도를 시간으로 계산한 건데, 살인 사건 이 9시간 5분, 강도 사건은 2시간 23분, 강간 사건은 1시간 28분, 절도 사건은 5분 49초, 폭력 사건은 2분 19초에 한 건 꼴로 일어나고 있대. 그걸 평균내면 18초마다 무슨 범죄건 한 건씩 발생하고 있다는 말이지. (시계 들여다보며) 그러니까 지금도 어디에선간... 하는데 아이 하나가 뛰어 들어오며 아이1 야, 야 오교수님이 학교 오시다가 사고가 생기셔서...... 무슨 일인가 놀라 눈이 커지는 성연, 침을 꼴깍 마시는 대주 아이2 사고? 무슨 사곤데? 아이1 큰 사곤 아니고 접촉사고를 내시는 바람에 이번 수업은 못들 어오신대. 안심하는 성연, 대주, 유재. 유재 가만,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중 접촉사고는 얼마만에 한번 일 어날까? 성연 넌 오교수님께서 혹시 다치셨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안 궁금하 고, 지금 이 순간 그게 더 궁금해? 유재 (당연하다는 듯) 응. 그럼 나 먼저 일어난다. 우리 학교 도서 관에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러. 휙 나가는 유재. 대주 (혀를 쯧쯧 차며) 병이야, 병. 저렇게 알고싶은 게 많은 애들 이 태어날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그것부터 찾아보고 싶어, 난. 성연 (웃으며) 그만하고 달래한테 가보자. 달래는 혹시 더 자세하 게 알지도 모르잖아. 일어나는 대주, 성연. 씬3 강의실 로비 강의를 마치고 친구들과 어울려 나오고 있는 달래. 손 들어 보이는 대주, 성연. 반갑게 뛰어오는 달래. 점프 달래 뭐 이모가? 많이 다쳤대? 대주 어, 얘도 모르나보네. 달래 (대주 붙잡고) 어디 병원이래?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너무 많이 다쳐서 나도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 나 떨려서 도 저히 혼자는 못가겠어. 니들 같이 가줄거지? 대주 어? 큰 사고 아니라던데? 그냥 단순한 접촉사고래. 달래 아냐, 니들이 몰라서 그래. 우리 이모가 어떤 사람인데, 하늘 이 두 쪽 나도 수업시간엔 어떻게든 기를 쓰고 오는 투철한 사명감의 소유자야. (울먹울먹) 정말 많이 다쳤나 봐. 아, 안돼, 안돼. 성연 (토닥토닥) 진정해, 달래야. 아무 일 없을거야. 걱정마. 대주 과 사무실로 또 연락이 안왔을까? 성연 그래, 같이 가보자. 서둘러 로비에서 빠져나가는 대주, 달래, 성연. 씬4 교정 A 서둘러 걸어가는 대주, 달래, 성연. 걸어가다가 다른 쪽에서 걸어오던 민을 만난다. 민 뭐? 오교수님이? 성연 응. 그래서 혹시 다른 연락 또 온 거 없나 알아보러 과사무실 가는 길이야. 민 핸드폰은 해봤어? 아이들 (일제히) 핸드폰? 달래 맞아, 내가 그 생각을 왜 못했지? 이모한테 직접 전화해보면 되잖아. 민, 으쓱하고 대주, 성연은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머리를 두드린다. 꺼져있는 핸드폰을 꺼내 파워를 누르는 달래. 씬5 교정 B 이마에 반창고를 붙인 자영과 그 옆에서 나란히 걸어오는 남진. 남진 그러니까 조심 좀 하지. 눈은 어디 두고 운전한거야? 자영 잔소리 좀 그만해. 그깟 사고처리 좀 도와줬다고 내내 잔소리 야. 그냥 보험회사에만 연락하고, 안할 걸 그랬어. 남진 그깟? 너 내가 안갔으면 그 차주한테 옴팡 뒤집어쓸뻔 한 거 알아? 쌍방과실인데, 여자라고 얕보여서 일방적으로 당할 뻔 했다구, 너. 자영 그러니까 아주 질 나쁜 인간들이라는 거 아냐. 말끝마다 여 자, 여자를 붙여가면서 몰아대는데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오 더라니까. 아니 자기는 집에 처자식도 없나. 자기 엄마는 여 자 아니냐구. 남진 그래도 아줌마라 안부른 거 보니까 양심은 쪼끔 있는 사람이 네. 자영 뭐야? 남진 (얼버무리려) 그러니까 여자들 싸잡아 욕 안먹히려면 앞으로 운전 조심해서 해. 솔직히 운전하다보면 답답한 여자들 많긴 많아. 얼마 전에 왜 실험결과도 나왔잖아. 여자들은 남자들보 다 평행감각이 부족해서 운전을 잘 못한다고. 특히 주차시키 는 거. 자영 여자, 여자 하지 말고 그냥 개인차라고 생각할 수는 없어? 남진, 약간 미안해서 씨익 웃는데, 찌르르 울리는 자영의 핸드폰. 자영 (남진 흘기며) 여보세요? 씬6 교정 A-B A - 아이들과 함께 걸어 내려오며 달래 이모? 이모 괜찮아? B - 방향을 틀어 올라가며 자영 달래니? 별 거 아니야, 가벼운 접촉사고. 걱정 많이 했어? 달래 (A) 당연하지. 어디 다친 덴 없어? 자영 (B - 이마 상처 만져보다 찡그리며) 응, 괜찮아. 카메라 이제 멀리 잡으면 두 팀이 이제 한 프레임 안으로 막 들어선 다. 쪽에서 서로 보지 못한채 걸어오며 계속 통화하고 있는 그들. 달래 다행이네. 그런데 거기 어디야, 지금? 자영 응? 학교. 달래 학교? 학교 어디? 자영 지금 과 사무실 쪽으로 막 가는 길이야. 달래 그래? 우리둔데? 하다가 고개 들어보면 바로 맞은 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자영과 남진. 두 사람도 거의 동시에 달래 일행을 발견한다. 피식 웃으며 동시에 핸드폰을 끄는 두사람. 달래 일행, 달려 내려온다. 달래 어, 김교수님도 함께 타고 계셨어요? 남진 아니, 난 해결사 노릇 하느라고 불려갔지. 달래 그러셨구나. 고생하셨겠네요. 남진 그런데, 당사자는 전혀 그렇게 생각 안하나 봐. 지금까지 고 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다. 성연 그러고보니 김교수님은 오늘 수업도 없으시잖아요. 남진 (자영 눈치주며) 글쎄 말야. 이런 고급 인력 불러다가 부려 먹었으면 최소한 식사대접 정도는 해야 예의 아니냐? 자영 그래, 알았어, 알았어. 밥 사면 될 거 아냐. 그제야 만족한 표정의 남진과 웃는 아이들. 씬7 교정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있는 아이들. 유재만 빼고. 대주 저 두 분, 너무 귀엽지 않냐? 매일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 다가도 서로에게 무슨 일만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가고 그러 는 거 보면 뭔가 될 법도 한 사인데... 달래 많은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속아왔지. 대주 그럼 정말 친구 이상 아무 사이도 아니란 말이야? 달래 그렇대. 우리 엄만 그 사실 인정하는 데 20년 걸렸고, 우리 외할머닌 아직도 인정 안하시지만. 성연 니가 보기엔 어떤데? 달래 뭐가? 성연 정말 그런 것 같냐구. 달래 모르겠어. (혼잣말하듯) 그걸 알면 내 마음도 이렇게 싱숭생숭하진 않을 텐데. 성연 뭐라구? 달래 나도 그것이 알고 싶다구. 야, 배 안고프냐? 밥이나 먹으러 가자. 툭툭 털며 일어서는 달래. 씬8 학교식당 밥 먹고 있는 아이들. 유재도 식판 들고 와 합류한다. 성연 (의아한 얼굴로) 아르바이트? 달래 그래, 어디 아르바이트 자리 없냐구? 유재 (앉으며) 아르바이트? 니가? 달래 왜 난 아르바이트 하면 안돼냐? 유재 취직도 못했다고 용돈 끊겼냐? 달래 그런 거 아냐. 종강하기 전에 꼭 선물할 사람이 있어서 그래. 대주 선물할 사람? 어떻게 알았냐, 너. 내 생일이 얼마 안남은 거? 참고로 미리 말해두는 데 사실 난 선물보다 현금을 더 좋아 하거던. 달래 김칫국 좀 마시지 마. 성연 누군데? 달래 그것까진 알 거 없고. 유재 쉬운 거, 힘든 거? 달래 차이가 뭔데? 유재 간단해. 쉬운 건 돈이 조금이고, 힘든 건 돈 많이 주고. 달래 (고민하다) 그럼 중간으로. 씬9 학교 로비 성연과 나란히 앉아있는 달래. 성연 누구야? 누구한테 줄 선물 사려고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데? 달래 몰라도 돼. 성연 내가 맞춰볼까? 달래 ......?! 성연 김남진 교수님 아냐? 달래 어, 어떻게 알았어? 성연 예전엔 나도 몰랐는데, 나도 좋아하는 사람 생기니까 그런게 다 보이더라. 달래 돗자리 깔아줘야겠네. 성연 그래서 뭘 선물할건데? 달래 이미 돗자리 깔고앉은 것 같으니까 그것까지 맞춰 봐. 성연, 피식 웃는다. 씬10 자영의 집 거실 거실에 앉아 차 마시고 있는 자영과 달래. 자영 아르바이트? 달래 응. 내일부터 하기로 했어. 자영 니가 웬일로? 너도 이젠 철 들긴 드나보다. 졸업은 코앞이지, 취직은 못했지, 엄마 아빠한테 손벌리긴 미안하지..... 달래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 자영 참 내일 많이 늦니? 달래 아니, 조금. 자영 그럼 저녁 그냥 밖에서 사먹고 들어와라. 달래 어디 가? 자영 응, 내일 대학 동창회야. 달래 동창회? 자영 그래. 별로 가고싶지는 않지만 억지로 티켓 강매 당해서 할 수 없이 가야만 해. 달래 알았어, 그럼 저녁 사먹을 돈이나 주고 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쳐다보는 자영. 씬11 패밀리 레스토랑 앞 (저녁) 별로 탐탁치않은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는 자영과 밝은 얼굴로 내리는 남진. 자영은 그래도 심플한 정장차림인데, 남진은 아무렇게나 편하게 입은 캐쥬얼 차림. 남진과 자영 바로 앞쪽으로 한 연인이 먼저 출입문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다정해보이는 두 연인. 남자, 매너좋게 문을 열고 먼저 여자가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들어간 다. 이어 남진, 남자와 똑같이 문을 여는데, 그냥 자기만 쏙 들어가고 문 잡은 손을 놓는다. 당연히 자기를 위해 잡아주고 있을 거라고 기대 했던 자영, 그만 닫히는 문에 무릎을 부딪치고 만다. 자영 아야, 아야야! 아픈 무릎 쓰다듬으며 기막힌 듯 문 안쪽을 노려보는 자영. 씬12 패밀리 레스토랑 안 (저녁) 한쪽을 빌려 동창회 장소로 꾸며놓았다. 막 안으로 들어선 자영, 무신경하게 동창들과 어울리고 있는 남진을 잠시 노려보며 걸어들어오 는데 누군가가 그런 자영 앞을 막아서며 인우 (E) 야, 이게 누구야? 오자영 아냐? 자영, 누군가 보면 전형적인 엘리트 타입의 인우가 미소지으며 서있 다. 자영 인우? 김인우? 인우 그래, 나 인우야. 오랜만이다. 한 6년 만인가? 자영 너 외국에 있는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인우 맞아. 자영 휴가 나온거니? 인우 아니. 이번에 그 광고회사에서 이쪽에 지사를 만들었거든. 그 래서 지원해서 오게됐지. 외국생활에 질리기도 해서 말야. 자영 그래, 잘됐네. 인우 너흰 아직도 그대로냐? 자영 뭐가? 인우 너하고 남진이 말이야. 뭐라 얘기해야할지 당혹스러운 표정의 자영. 다른쪽에서 웃고 떠들던 남진, 언뜻 고개 돌리다 다정해 보이는 인우 와 자영을 발견하고는 약간 신경이 쓰인다. 씬13 패밀리 레스토랑 (저녁) 어느 한 테이블에 자리잡고 앉은 남진, 자영, 인우, 현주 인우 정말 아직도 그대로란 말야? 남진 그대로고 말고 할게 뭐 있어? 언젠 우리가 뭐 눈이라도 맞춘 사이였냐? 현주 (약간 뚱뚱하고 이야기하는 내내 쉴새없이 먹어댄다.)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었어, 두 사람? 남진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인우 그런데 너 왜 그때 내가 눈길 주는데 피했어? 자영 내가? 언제? 현주 2학년 1학기 끝나고 학술엠티 갔을 때, 일출 본다구 다 같이 산에 올라갔었을 때. 자영 어머, 넌 어떻게 알았는데? 현주 난 그때 인우, 얘한테 눈길 주고 있었거든. 자영 정말? 그런덴 내가 좀 둔한가봐. 그럴땐 눈길 주지말고 차라 리 옆구리를 찔러. 인우 그럼, 지금이라도 찔러볼까? 자영 (웃으며) 그래, 한번 해 봐. 현주 야, 야, 관둬라, 관둬. 유부남이 찔러봤자지. 인우 (쓰게 웃으며) 아, 너희는 모르는구나. 나 이혼했어. 순간, 어색하게 싸악 가라앉는 분위기. 연신 먹어대던 현주까지 순간적으로 멈칫한다. 씬14 까페 (밤) 현주와 단둘이 앉아있는 자영. 현주 넌 김남진한테 화도 안나니? 어떻게 20년이나 넘게 사귀고 있 으면서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거야? 자영 (대수롭지 않게) 화낼 거 없어, 정말 나도 그런 걸. 남진인 처음부터 친구로 생각해서 다른 쪽으로는 생각해본 적도 없 고. 현주 넌 여자하고 남자하고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자영 예전엔 나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서른 다섯이 넘은 남자랑 여자라면 가능할 것도 같애. 지금 우리처럼. 말이 안된다는 듯 고개 젓는 현주. 씬15 포장마차 (밤) 소주를 마시고있는 남진과 인우. 남진 어느 남자가 감옥에서 탈옥을 하다가 잡혔어. 그래서 경찰이 물어봤지. 왜 탈옥한 겁니까? 결혼하려구요. 그러자, 그 경찰 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당신은 자유가 뭔지 잘 모르고 있 군요, 그랬대. 인우 그래서 결혼 안하는 거야? 남진 글쎄? 인우 이혼한 내가 이런 얘기 하는 거 우습겠지만 아까 니들 말대로 너희가 정말 친구이상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나 자영이랑 새 로 시작하고 싶은데..... 의견을 구하듯 남진을 바라보는 인우. 남진,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난감한 얼굴에서 F.O. 씬16 학교 전경 씬17 강의실 A 강의하고 있는 자영. 아이들 몇몇은 창 밖 풍경에 넋을 빼앗기고 있고, 지루함에 하품, 몸 을 꼬는 아이들도 여럿 눈에 띄는데 자영 (아랑곳 없이) 자, 그럼 광고 주목도와 제품 호감도의 차이에 대해 누가 설명해 볼래? 아이들, 자영과 시선 마주칠까봐 애써 다른데 시선 돌리자 자영, 기막 히지만 할 수 없다는 듯 자영 광고 주목도는 광고를 보았을 때 소비자가 관심을 가지고 멈 추거나 그 광고를 보게 되는 정도를 말하고, 제품 호감도는 광고를 보고 제품에 대한 선호도를 높여 구매욕구가 일어나는 정도를 말하죠.....(달래의 옆쪽으로 지나가며 창 밖 풍경에 빠져있는 달래를 몰래 꼬집으며) ...맞나요, 진달래씨? 달래 (아파 얼굴 찡그리며) 네? 네! 자영 그럼 이 두 요인간엔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까요? 달래 그, 글쎄요. 그런 달래를 노려보는 자영. 괜히 나만 갖고 그래, 하며 억울한 표정짓는 달래. 씬 18 강의실 B 강의하고 있는 남진. 이 강의실에선 창 밖을 내다보는 아이들더 딴청을 피우는 아이들도 하 나 없다. 모두 재밌고 유쾌한 표정. 남진 광고 초년병 시절, 그땐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을땐데, 어느 날 피티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회사 사람이 갑자기 일이 생 겨 못오는 바람에 내가 대신 떠밀려서 광고주에게 피티를 하 게 됐지. 그런데, 그 광고주가 사사건건 말도 안되는 시비를 거는 거야. 달래 (전 씬과는 달리 또롱또롱하게) 그래서요? 남진 그래서.....황대주, 너 같으면 어떻게 했겠니? 대주 확 들이받고 싶겠지만 참을 인자 세 개 그리며 참아야죠, 뭐. 남진 맞아, 그랬어야 하는데, 그때 난 참을 인자란 글자 쓸줄 몰랐 거든. 그래서 당신같은 광고주한테는 이런 피티 못하겠다 그 러구 나와버렸지.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민 짤리셨겠죠, 뭐. 남진 왜? 유재 프레젠터는 어떠한 경우라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남진 그럼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대주 아무리 더럽고 치사해도 참아라. 달래 하지만 프레젠터도 사람인데, 자존심이 있잖아. 유재 자존심도 내세울 때가 있고, 죽여야 할 때가 있지. 남진 (웃으며) 그런데, 안짤렸어. 달래 거봐. 남진 오히려 사장이 나를 부르더니 마구 칭찬을 해주는 거야. 성연 뭐라구요? 남진 자기도 그 광고주 꽤나 꼴보기 싫었는데, 시원하게 한방 잘 먹여줬다구. 아이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면 남진 대신 그 프로젝트에선 빠지고 다른 프로젝트를 맡게 됐지만 계약도 6개월 더 연장하고 끝까지 일 잘하다 나왔어. 물론 그 이후론 광고주 들이받은 일도 없었고. 아이들, 와아! 우우! 씬 19 강의실 복도 바로 그 앞을 지나가던 자영,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에 멈춰서서 안을 들여다보면 남진과 아이들이 하나되어 즐겁게 수업하고 있는 모 습이 보인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있는 남진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살 짝 눈쌀을 찌푸리는 자영. 씬 20 교수실 자기 자리에 앉아있는 자영과 소파에 비스듬히 걸터앉아있는 남진. 남진, 담배를 꺼내 피우려하자 NO SMOKING이란 표지판 가리키며 자영 여기 금연구역이야, 안보여? 남진, 아랑곳않고 표지판 앞으로 걸어가더니 NO옆에 볼펜으로 W자를 그려넣는다. 이젠 NOW SMOKING이 되버렸다. 남진 (장난스럽게) 이젠 됐지? 기막혀 바라보는 자영. 남진 좀 봐줘라. 그렇다고 화장실 가서 피울 수는 없잖냐. 애들도 아니구. 대신 창문 열어놓고 피울게. (창문 열고 담뱃불 붙인 다.)어, 제법 춥네. (남진, 벗어놓은 낡은 잠바를 가져다 걸 친다.) 자영 그 옷 이젠 그만 버릴 때 안됐니? 남진 이 옷? 이게 뭐 어때서? 두툼해서 따뜻하고 얼마나 좋은데. 자영 나이도 있는데 이젠 옷에도 신경 좀 쓰고 다녀야 하는 거 아 냐? 맨날 애들처럼 청바지에 잠바에.....쟈켓이라도 좀 걸치 고 다니면 보기 좋잖아. 그리고 강의 할 때도 책상 위에 아무 렇게나 걸터앉고 그러는 거 별로 보기 안좋더라. 남진 괜찮아. 애들은 그런 거 신경 안써. 자영 애들 얘기가 아냐. 주임교수님도 별로 안좋아하시는 눈치야. 너 내년 학기에도 강의 계속 맡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신경 좀 써. 내 방에만 이렇게 죽치고 있지 말고 가끔 가서 주임교수 님 비위도 좀 맞춰드리고....임용재평가 얼마 안남았어. 그건 아이들한테 인기있는 거 하고는 별개라는 거 알지? 남진 그렇게까지 하면서 강의맡을 생각은 없어. 자영 하지만 네 강의, 본 내용보다 옆으로 새는 경우가 훨씬 많은 건 사실이야. 남진 옆으로 새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그런 것들도 다 알아두 면 가치있는 것들이야. 너야말로 다음 학기부턴 수업방식을 좀 바꿔보는 게 어때? 내 보기에 니 강의는 너무 딱딱하고 진 지해서 몇몇 아이들 빼고는 다들 힘들어하는 것 같던데. 자영 (약간 기분 상해서) 딱딱하더라도 정석대로 가는 게 내 강의 원칙이야. 남진 물론 그렇지만 그런 원칙들에도 융통성은 있어야지. 자영 넌 다른 일도 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전부가 아니겠지 만 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다야. 고민을 해도 내가 너보 단 더 많이 하고 생각을 해도 너보단 깊이 할 거야. 남진 됐다, 됐어, 그만하자. 20년이면 강산도 두 번 변했을 시간인 데, 어째 너랑 5분 이상 얘기하면 꼭 싸움이 되는 건 변함이 없냐.하지만 이건 분명히 알아둬라. 내 일 때문에 강의에 소 홀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거. 씬 21 교정 성연의 어깨에 다정하게 팔 올리고 걸어가는 민. 뒤에서 부러움반, 질 투반으로 쳐다보며 따라가는 달래, 유재, 대주. 대주 야, 그림 죽이는데. 여기에 눈까지 내리면 쟤네들 뭔일 내겠 다. 그치? 달래 뭔일이라니? 대주 아이고, 그런 걸 말로 꼭 해야 아나, (입술 내밀며) 이런 거, 이런 거. 아니지, 짜식들 벌써 했을지도 모르지. 좋았겠다, 짜식들. 달래 어휴, 하여튼 못말려, 못말려. 유재 너희들 그거 아냐? 씨씨의 85%가 졸업하면 찢어진다는 거? 달래 뭐야, 신유재. 그럼 쟤네들도 그럴 거란 얘기야, 너? 유재 글쎄 안그러길 바라지만 세상에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거 잖아? 우정은 때로 사랑으로 변하지만 사랑이 우정으로 변하 는 일은 어렵다는 말이 있지? 그래서 난 친구로 시작된 관계 는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안그러면 좋은 친구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달래 그렇다 해도 사랑해서 사랑을 잃는 것이 전혀 사랑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그랬어. 유재 높은 벼랑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사랑에 빠지는 쪽이 더 위험 하다는 말도 있지. 달래 사람은 사랑을 하면 많은 것을 알게되지만, 미리 너무 많이 알면 사랑을 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구. 대주 에게? 정작 장본인들은 그러든말든 상관도 않는데, 왜 너희들 이 열내고 그러냐? 누가 너희더러 사귀어보라고 그러기라도 했냐? 달래 (펄쩍 뛰며) 누가? 내가 저 잘난이랑? 하이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겠네. 유재 누구는? 우리집 강아지가 다 웃겠다. 달래 (벌컥) 뭐야? 대주 자자자 그만들 해라. 니네들 미운 정이 더 무섭다는 거 모르 냐? 코웃음치며 서로 휙 고개 돌리는 달래와 유재. 대주 근데, 달래 너 아르바이트는 할만 하냐? 그순간 말도 말라는 듯 죽겠다는 표정이 되는 달래. 씬 22 아파트 입구 무거운 가방과 설문지를 한아름 껴안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는 달래. 휴우하고 힘든 한숨 내쉬고는 단지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씬 23 아파트 복도 어느 집 앞에 서서 사정을 하고 있는 달래. 달래 저 다른게 아니라 설문조사 나온 학생인데요...(문 닫으려하 자 얼른 치약 하나 들이밀며)....자, 잠깐만요, 협조해주시면 사은품도 드리거든요....(문 다시 빼꼼히 열리자 종 이와 볼펜 주면서).....소비패턴에 관한 건데 간단한 거예 요.....(무성의하게 아무렇게나 동그라미 치고는 쓱 내미는 손)....가, 감사합니다. 그러나 인사도 마치기 전에 문 쾅 닫힌다. 으휴, 인상쓰는 달래. 씬 24 몽타쥬 다른 집 앞 / 벨을 누르는 달래. 그러나 ‘누구세요’ 묻기만 하고는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 또 다른 집 / 문을 열었다가 달래를 위아래로 기분나쁘게 쳐다보고는 그대로 문을 닫는다. 어느 복도 / 계속 거절 당하고 다니는 달래의 지친 모습들. 급기야는 경비 아저씨가 올라와 쫓겨나는 수모까지 겪는다. 지켜보는 경비 아저씨를 뒤돌아보며 아파트 입구에서 터덜터덜 나오는 달래의 무거운 발걸음. 씬 25 자영의 집 (밤) 지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서는 달래. 그러나 불이 꺼져있다. 불을 켜고 자영을 찾아 여기저기 둘러보는 달래. 달래 이모, 이모! 그러나 방문을 열어봐도 없자 에이, 어디 간거야! 배고파 죽겠는데..... 부엌쪽으로 걸어가서 밥통을 열어본다. 비어있다. 뭐야, 이거? 에이, 짜장면이나 시켜먹어야지. 다시 거실쪽으로 와서 소파에 털썩 앉는 달래. 전화 수화기를 들다가 잠깐 멈칫한다. 달래 설문지 한 장에 오백원씩인데 짜장면 한 그릇이면 여섯 장 값? (잠시 고민에 빠져서) 철가방 아저씨한테 한 장 써달라고 해도....? (하다가 수화기 내려놓으며) 휴, 그냥 사발면이나 사다 먹고말지. 툴툴거리며 지갑 찾아들고 일어선다. 씬 26 편의점 앞 사발면 하나 달랑 들어있는 봉투를 들고 나오는 달래. 추운지 옷깃을 세우며 잔뜩 움츠리고 걷는데, 뒤에서 빵빵 하고 울리는 클랙션 소리. 달래, 처음엔 듣지 못하고 뭐야? 인상만 쓰며 걸어가는데, 계속 울려 대자 벌컥 뒤를 돌아보는데, 고급 승용차의 창문이 스르르 열리며 자 영이 보이자 놀란다. 달래 어? 이모? 자영 뭐 사러 나온 길이니? 달래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이 추운날 밖에서 다리 퉁퉁 붓 게 일하고 들어온 조카가 겨우 사발면 하나로 저녁 때우게 만 든 장본인이 누군데. 자영 어이구, 미안하다. 춥지? 얼른 타. 달래, 그제야 안쪽 운전석을 들여다보면 인우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갸웃하는 달래에게 자영 이모 대학 동창이야. 그제야 어정쩡하게 인사하는 달래. 인우 (사람 좋게 웃어보이며) 어서 타요. 달래 네? 네에. 뒷문 열고 올라타는 달래. 차 출발한다. 씬 27 차 안 뒤에 앉아서 백미러를 통해 인우를 요모조모 뜯어보고있는 달래. 그러 다 인우와 눈 마주치자 얼른 딴청을 피우는데 인우 달래라고 했지? 우리야 저녁 먹었으니 괜찮지만 배 고프면 어 디 식사라도 하러 갈까? 자영 아냐, 됐어. 집에가서 먹으면 돼. 인우 어디 근처에 괜찮은 레스토랑 있으면 말해. 조카는 저녁 시켜 주고, 우리는 차나 한잔씩 더 마시면 되잖아. 자영 됐다니까, 신경쓰지마. 달래 (혼잣말로) 진짜 신경쓰이게 하는 게 누군데..... 씬 28 자영의 집 (거실) 사발면 봉지 외에 햄버거, 치킨 등이 담긴 봉투도 들고 들어오는 달래 와 자영. 달래, 이미 한 손으로는 햄버거를 반쯤 먹고 있다. 자영 안그래도 된다니까 뭘 이렇게 사주고 가? 달래 (먹을 것 늘어놓고 콜라 마시며) 대학동창이라구? 오늘 또 동 창회 했어? 동창횐 며칠 전에 했잖아. 자영 그 날은 사람들이 많아서 얘기도 잘 못나눴거든. 그래서 만나 저녁 먹고 내 차가 공장에 들어가 있다니까 집까지 태워다 주 고 그런거야. 자영, 얘기하면서 내내 주머니속, 가방 속을 뒤지며 뭔가를 찾고 있 다. 달래 (떠보듯) 정말 그 뿐이야? 자영 그렇다니까. 달래 참, 이모 설문지 하나만 써주라. 자영 설문지? 무슨 설문지? 달래 나 아르바이트 하는 건데 우리나라 중년층의 소비패턴에 관한 설문이거든? 자영 (발끈) 야, 진달래, 내가 중년이냐? 달래 그럼, 서른 다섯이면 중년이지, 아냐? 자영 (생각해보니 그렇지만 인정은 하기 싫다) 결혼 안했으면 아 냐. 달래 피, 그런게 어딨어? (하다가) 그런데, 아까부터 뭘 그렇게 찾 아? 자영 핸드폰. 달래 핸드폰? 자영 그래, 분명히 여기 어디다 넣어둔 것 같은데? 달래 어디 있겠지, 뭐. (전화기 들며) 내가 걸어볼테니까 어디서 소리 나는지 잘 찾아 봐. (버튼을 누르는데) 씬 29 차 안 (밤) 인우의 차 안에서 울리는 핸드폰 소리. 인우, 자기 핸드폰을 받는데 아니다. 그제야 보면 옆자리 구석에 떨어져있는 자영의 핸드폰. 인우, 집어들고 인우 여보세요?......(하는데 그만 딸깍 끊긴다. 어, 하며 고개 으 쓱하는 인우.) 씬 30 남진의 사무실 (밤) 막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갸웃하는 남진. 남진 어, 이상하다? 분명히 맞게 눌렀는데? 다시 한번 다이얼을 누르는 남진. 신호 가는데 여전히 인우 (E) 여보세요? 남진 (또? 하는 표정이다가 혹시) 저, 죄송하지만 혹시 오자영씨 핸드폰 아닙니까? 인우 (E) 아, 네, 그런데요? 자영씨가 지금 사정이 있어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는데, 누구시라고 전해드릴까요? 남진 네, 전 김남진이라고 하는데요. 인우 (E) 김남진? 남진 (갸웃) 가만 혹시 너, 인우? 인우 (E) 그래, 맞아, 나 김인우. 남진 어, 그런데 니가 왜 자영이 핸드폰을 받고 있어? 자영이 걔 지금 너랑 같이 있는거야? 인우 (E) 아니, 방금 전에 헤어졌는데, 내 차에다 핸드폰을 두고 내렸어. 남진 (시계 본다. 열 시가 넘었다.) 그, 그래? 인우 (E) 지금은 집에 있을테니까 급한 일이면 집으로 전화해 봐. 남진 그래, 알았어. 전화 끊은 남진, 표정이 괜히 착잡하다. 씬 31 자영 거실 (밤) 계속 전화 붙잡고 다이얼 돌리고 있는 달래. 자영 통화중일 리가 없잖아. 잘못 건 거 아냐? 달래 잘못 걸긴, 내가 아무렴 이모 전화번호도 못외울까. 자영 (전화기 뺏으며) 이리줘 봐. (하는데 연결되는 신호음) 여보 세요?....응? 어머, 그랬니? 난 그것도 모르고....그래, 알았 어. (전화 끊는다.) 달래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자영 내 핸드폰을 아까 그 친구 차에 놓고 내렸단다. 달래 으이구, 맨날 나더러 덜렁댄다고 구박하더니...... 자영, 그런 달래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이며 일어선다. 씬 32 인터넷 까페 아이들에게 설문지 나눠주고 돌아다니며 잘 쓰는지 감시하고 있는 달 래. 달래 (대주꺼 들여다보다) 야, 니 이름을 쓰면 어떻게 해. 엄마나 아버지 이름을 써야한다니까. 지금 조사하고 있는게 우리나라 중년층의 소비패턴조산데, 니가 중년이냐? 대주 아차차, 그렇지. (이름 쓰다가) 야, 그런데 주소는 어떡하냐? 우리집 주소는 시골인데, 니가 거기까지 가서 설문조사 해왔 다고 하면 안믿을거 아냐. 달래 (생각해보다) 에이, 됐어, 넌 쓰지 마. (도로 설문지를 빼앗 아버린다.) 성연 그럼 나도 안되겠네? 우리집도 시골이니까. 달래, 도움이 안된다는 표정으로 후, 한숨을 내쉬는데 우찬 나야 미국이니까 두 말 할 것도 없겠지? 우찬, 돌려주는데 이번엔 민까지 설문지를 돌려주며) 민 나도 못쓰겠다. 달래 넌 왜? 민 난 부모님이 다...... 그제야 달래,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미안한 얼굴이 되는데 유재 (쓰다말고 볼펜 놓으며) 안되겠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너무 비양심적인 일이야. 통계라는 건 정확한 자료조사를 바 탕으로 이뤄지는 건데 이런 엉터리 자료조사가 그 통계에 영 향을 미치고 그 통계자료가 어느 기업이나 연구소의 주요 정 책 자료로 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봐. 기업의 사활이 걸릴 수도 있는 문제야, 너. 달래 (어휴, 저 잘난척) 됐어, 됐어. (신경질적으로 설문지 회수하 며) 너더러 쓰라 안해. 택수, 다 쓴 설문지를 들고와 달래에게 주며 택수 자, 내 껀 여?다. 달래 (감격) 고마워요, 아저씨. 역시 아저씨 밖엔 없어요. 택수 좀 과장되긴 했지만 유재의 말도 일리가 있어. 어쨌든 넌 돈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거잖아. 그만큼의 책임은 져야 지. 내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때 철칙이 하나 있는데, 뭔 지 알아? 대주 뭔데요? 택수 돈은 조금만 주셔도 괜찮으니까 일만 하게 해주십쇼, 하는 사 람은 절대 고용하지 않는다는 거야. 달래 왜요? 택수 그런 사람들은 정말 그 돈만큼의 일 밖엔 하지 않거든. 난 이 만큼의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이 정도는 받고 싶습니다, 라고 얘기해야할 수 있는 사람이 프로지. 달래 (눈 반짝이며) 아저씨, 그럼 저 아르바이트로 쓰세요. 전 다 른 사람보다 배는 열심히 일할 자신 있으니까 아르바이트 비 용도 두 배로만 주시면 되거든요. 택수 그런 사람도 안돼. 달래 왜요? 택수 (웃으며) 너무 비싸니까..... 아이들, 택수 따라서 하하하 웃는다. 혼자만 뾰루퉁 삐지는 달래. 씬 33 팬시상점 앞 그 앞을 지나가는 아이들. 아이들은 무심하게 지나가는데, 달래, 주춤 멈춰서서 쇼윈도를 관심있게 들여다본다. 인형부터 목도리, 장갑까지 예쁘고 앙증맞은 여러 소품들. 아이들, 걸어가다 달래가 보이지않자 뒤를 돌아보는데, 달래, 여전히 그 앞에 서있다. 다시 그런 달래에게로 내려오는 아이들. 유재, 달래 옆에 바짝 붙으며 유재 선물할 사람이 남자냐? 달래 (어떻게 알지? 보면)....? 유재 남자들은 이런 거 별로 안좋아해. 겉보기만 예쁘지 전혀 실용 적이지도 않고. 선물받을 사람이 누군지 나이랑 취향을 대강 만 알려주면 선물 르는 거 도와줄 용의는 있는데..... 대주 야, 선물 받으면 아무거나 다 좋지, 좋아하고 안좋아하고가 어딨냐? 아무거나 니가 사고 싶은대로 사. 뭐든 다 받을 마 음의 준비가 돼있으니까. 달래 너희들 줄 거 아니니까 그만 신경들 써. 유재, 대주, 괜히 머쓱해져 다른 곳으로 시선 돌리면, 어느새 안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만져보며 즐거워하고 있는 성연과 민의 모습이 보인 다. 씬 34 교정 어울려 걸어올라가고 있는 아이들. 대주, 제일 뒤쪽에서 걷고있는 유재 옆에 붙어서서는 대주 넌 아냐, 누군지? 유재 ...... 대주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면 우찬이? 맞다, 우찬이 녀석이구나. 유재 아냐. 대주 아냐? 그럼 넌 누군지 안단 말야? 유재 짐작은 가지만 말은 못하겠다. 대주 왜? 유재 경쟁상대가 만만치 않거든. 그 순간 그 옆으로 자동차가 지나가다가 다시 후진해 달래 옆에 멈춰 선다. 보면 인우의 차. 인우, 창문 내리며 반갑게 웃자 대주 혹시 저 인간? 인우 또 만나네. 달래 (그제야 알아보고)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 세요? 어느새 달래 옆에 다가온 대주, 인우에게 기분 나쁜 시선을 찌릿찌릿 보내는데 인우 자영이 만나러. 아이들, 자영이라는 말에 솔깃해져 인우를 유심히 뜯어본다. 인우 그런데, 교수실이 어느 쪽이니? 달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쪽으로 가시다 좌회전해서 첫 건물 이예요. 인우 그래, 고맙다. 인우의 차 출발하자마자 궁금한 얼굴로 달래의 옆으로 몰려드는 아이 들. 대주 (유재에게만 살짝) 자영이? 분명히 달래가 아니라 자영이라고 그런 거지, 응? 유재 그래. 성연 누구야? 달래 이모 대학동창. 성연 그럼, 김교수님하고도? 달래 그렇지. 유재 그런데, 김교수님하고 어쩌면 저렇게 달라도 180도 다르지? 달래 내 말이 그 말이야. 사람이 어떻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빈틈 이라곤 보이지도 않을까? 웃을 때도 꼭 연습한 사람마냥 딱 이빨 여덟 개가 보일만큼만 웃는 거 있지? 완전히 우리 이모 타입 같은데, 내 보기엔 김남진 교수님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 어. 유재 그래? 난 그 반대로 말한건데? 김남진 교수님이 따라가려면 한참 걸리겠다고. 달래 안돼, 안돼, 너랑 나랑은 하나부터 열까지 이래서 안돼. 대주 (못말려!) 또 시작이군. 씬 35 교수실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며 서있던 인우, 돌아서며 인우 오랜만에 학교 와보니까 좋네. 옛날로 돌아간 느낌도 들구. 자영 그러니? 난 아직도 여전히 학교 생활의 연장 같은데. 남진이 가 같이 강의하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더 들어. 인우 그렇겠구나. 자영 (자리에서 일어나며) 참 뭐 마실래? 마침 여기 커피가 똑 떨 어져서 밖에 자판기 커피 밖엔 대접 못하는데. 인우 됐어. 내가 갔다올게. 하는데 때맞춘 듯 남진이 양손에 자판기 커피 들고 들어온다. 처음엔 인우 보지 못한채 남진 커피 떨어진 지 언젠데 아직도 커피 안사다놨지? 내 그럴 줄 알고 오는 길에 아예 자판기에서 뽑아왔다. 하고 책상 위에 내려놓다 그제야 인우 발견한다. 남진 어라? 자영 내 핸드폰 갖다주러 왔대. 남진 어, 그래. 자영, 남진이 뽑아온 커피를 아무 망설임없이 인우에게 주며 자영 자, 이거라도 마셔. 남진 그거 블랙이야. (인우에게) 그 쓴 걸 왜 먹는지 모르겠다, 난. 인우 진짜 커피맛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먹어. 남진 (약간 올려서) 그래? 인우 그런데 남진이가 너 마시라고 뽑아온 건데 내가 마셔도 될까? 자영 괜찮아. 쟤가 뭐 내 생각해서 뽑아온 줄 아니? 아마 자판기에 거스름돈이 부족해서 남는 걸로 뽑아온 걸거야. 인우, 그제야 커피 마신다. 남진, 그런 모습 보며 괜히 기분이 언짢은 데 인우 참, 남진아 오늘 저녁 시간 있냐? 남진 시간? 왜? 인우 핸드폰 찾아준 답례로 오늘 자영이가 한턱 낸댄다. 시간 괜찮 으면 같이 가자구. 남진 정말 오선생이 그랬어? 인우 응. 남진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지난번 차 사고 난 현장 달려 갔을 때, 지지난번 구해달라는 강의자료 어렵게 찾아다 줬을 때도 말로는 밥 산다 해놓고 그냥 입 싹 닦더니? 자영 어머, 겨우 그런 거 가지고 대가를 바라고 그러면 안되지. 남진 겨우? 자영 그래, 넌 안그랬어? 언제야? 지난 번 너 술 마시고 지갑 잃어 버렸을 때 니네 집 앞까지 뛰어가 택시비 대신 내준거 언제 고맙다고 인사나 했어, 그 택시비 갚기나 했어? 남진 택시비? 하! 집에 무거운 짐 옮길때마다 툭하면 불러다 머슴 처럼 부려먹으면서 겨우 짜장면 하나 시켜주는 건 누구고? 자영 내가 언제 머슴처럼 부렸니? 남진 그럼 아냐? 티격태격하는 그들의 모습이 유치하면서도 귀여운데, 그 모습을 바라 보는 인우는 점점 소외감을 느껴간다. 자영 그래서 같이 갈건데, 안갈건데? 남진 안가. (괜한 자존심) 나 저녁에 바쁜 일 있어. 자영 그래, 그럼 너 나중에 딴 소리 없기다. 남진 하래도 안한다. 씬 36 남진의 사무실 (밤) 전씬과는 달리 착잡한 표정으로 창 밖 야경을 바라보며 서있는 남진. 그 위로 인우 (E) 이혼한 내가 이런 얘기 하는 거 우습겠지만 아까 니들 말 대로 너희가 정말 친구이상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나 자영이 랑 새로 시작하고 싶은데..... 남진, 그 말을 다시 떠올리는데,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직원 한 명이 들어선다. 직원1 퇴근하려다 불이 켜져있어서요. 아직 퇴근 안하세요? 남진 응, 곧 해야지. 직원1 그러니까 빨리 결혼하세요. 그래야 일찍일찍 집에 들어가시 죠. 참, 오자영 교수님은 왜 요즘 통 사무실에 안놀러오세요? 남진 학기말이라 바쁘잖아. 직원1 혹시 김감독님 꽃 같은 거 보내보신 적 있으세요? 남진 누구한테? 직원1 아무렴 남자한테 보냈냐고 묻는 거겠어요? 이상한 오해받기 딱 좋지.오자영 교수님한테 말예요. 남진 (생각해보다) 없는데? 직원1 촌스럽게 편지같은 거 보내구 그래본 적도 물론 없었구요. 남진 당연하지, 누가 요즘 세상에..... 직원1 (혀를 차며) 쯧쯧, 그럼 오자영 교수님한테도 아무것도 기대 하면 안되겠군. 남진 뭘? 직원1 혹시라도 오교수님이 김감독님 구제해주시지 않을까 했는데, 하신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지금까지. 남진 뭐야? 직원1 거 참 이상하네. 두 분이 잘 어울린다는 걸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정작 본인들만 모르는 것 같으니. 그럼, 저 먼저 갑 니다. 난스럽게 나가는 직원. 남진, 한방 먹었다는 듯 허허거 리며 웃다가 어느 순간, 정말 그런가 머리를 긁적여보는데 씬 37 스카이 라운지 (밤) 바에 앉아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 인우와 자영. 인우 여기 맘에 들어? 자영 응. 내 마음에 들어와 본 것처럼 어떻게 내가 생각한 것하고 이렇게 똑같은 델 찾아냈지? 인우 외국에 있는 동안 독심술을 조금 배웠거든. 자영 정말? 인우 못믿겠으면 지금 니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맞춰볼까? 자영 ......? 인우, 자영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척 정신을 집중시키다가 인우 넌 지금.....내가 정말 맞출 수 있을까, 없을까 생각하고 있 어. 그렇지? 자영 (그제야 장난이라는 걸 알고) 에이, 엉터리! 인우 어쨌든 맞췄잖아, 안그래? 자영, 웃는다. 인우 가끔은,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할 때가 있어. 자영 언제? 인우 (진지하게) 지금같은 때. 인우, 자영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순간, 자영 긴장한다. 씬 38 남진의 사무실 (밤) 사무실 불을 끄고 막 퇴근하려는 남진. 막 나가려는데 전화가 걸려온 다. 남진 여보세요?....네, 그런데요....그래요? 그럼, 제가 찾으러 가 죠, 뭐......네...... 전화 끊고 나가는 남진. 씬 39 스카이 라운지 (밤) 진지한 인우와 조금은 부담스러운 표정의 자영. 자영 (시계를 들여다보며)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만 가봐야겠다. 인우 너, 내가 부담스럽니? 자영 아냐, 그런 거. 인우 그럼 내가 또 한번 맞춰볼까? 자영 ....... 인우 아까 학교에서 너하고 남진이 보면서 그런 생각했다. 저렇게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어떻게 이십년을 한결같이 지낼 수가 있 을까? 너한테 남진인 정말 어쩐 존잴까? 자영 어떤 존재긴, 그냥 친구야. 편의점 같은 친구. 인우 편의점 같은? 자영 그래. 새벽 세시든 네시든 내가 필요할때면 항상 문이 열려있 는 그런 편의점 같은 친구 말야. 인우 (부러운 표정이 되었다가 씁쓸하게) 그 말, 지금 니 그 말, 니가 남진이를 좋아한다는 말보다 더 날 주눅들게 하는 말이 라는 거 넌 모를거다. 자영, 그제야 자신도 그걸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표정이 된 다. 씬 40 집 앞 (밤) 골똘히 생각에 잠겨 혼자 밤길 걸어오는 자영. 그때, 맞은 편에서 걸 어내려오고 있던 남진과 마주친다. 자영 어? 여긴 무슨 일이야? 남진 정비소에서 너랑은 연락이 안된다고 전화와서 니 차 찾아다 니네 아파트 주차장에 넣어놓고 오는 길이지. 근데 너는? 인 우 그 자식이 안데려다 준거야? 자영 그냥 내가 혼자 가겠다고 그랬어. 남진 왜? 자영 믿지않을지 모르지만 왠지 니가 여기서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거든. 순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전류. 어색하면서도 수줍은 그윽 한 미소가 가로등 아래에 서있는 두 사람의 얼굴에 천천히 번져간다. 씬 41 학교 교정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들고 달려가는 달래. 씬 42 교수실 앞 흐뭇한 표정으로 선물 만지며 교수실 문 앞에 서서 똑똑 노크하곤 안 으로 들어가는데 씬 43 교수실 안 안으로 들어선 달래, 약간 당황해 어쩔줄 모른다. 남진이 다른 선물 하나를 풀어보고 있었던 것. 자기도 모르게 선물을 등 뒤로 감추는 달래. 자영 어, 달래야, 무슨 일이니? 달래 응? 그, 그냥 지나가다가.....그런데, 그게 뭐예요, 김교수 님. 남진 으응, 오선생이 준거야. 달래 (놀라서) 이모가요? 자영 그래. 지난 번 차 사고 났을 때 도와준 것도 그렇고, 그동안 알게모르게 신경써준 것들도 있고해서..... 그 사이, 남진, 선물을 다 풀었다. 상자를 열면 안에서 나오는 목도 리. 순간, 달래 눈을 질끈 감는데, 그것도 모르고 남진, 좋아하며 목 도리를 둘러본다. 남진 좋은데. 자영 맘에 들어? 남진 물론이지. 자영, 남진이 두른 목도리를 보기좋게 한번 더 매만져 준다. 그 모습에 실망이 가득해지는 달래의 얼굴. 슬그머니 혼자 교수실을 빠져나오고..... 씬 44 교수실 건물 앞 씁쓸한 표정으로 힘없이 걸어나오는 달래. 들고있던 선물을 가방 안에 막 집어넣는데, 유재와 아이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유재 여기 있는 줄 모르고 괜히 찾아다녔네. 달래 왜? 유재 (설문지 한 묶음을 내밀며) 자, 이거. 달래 뭐야, 이게? 유재 설문지. 우리 엄마, 아버지, 큰 이모, 작은 이모, 삼촌, 고모 까지 받을 수 있는대로 다 받아온거야. 달래 이젠 그만해도 되는데.....어쨌든 고맙다. 참, 너 목도리 많 니? 유재 응, 몇 개 돼. 선물 받은 것만 한 서너개는 될 걸? 그런데 그 건 왜? 달래 그래, 그럼 넌 이거 필요 없겠구나. 대주, 너 곧 생일이라고 했지? 생일 선물 난 미리 한거다. 대주에게 선물 꺼내 내밀자 아차 아깝다! 싶은 유재의 표정. 성연 (놀라서) 자, 잠깐만. 그거 너 다른 사람한테 선물하려 고..... 달래 (아무렇지도 않게) 응. 그럴려고 했는데, 그 사람한테는 이것 보다 더 좋은 목도리가 생겼거든. 대주 그래? 그렇다면 나야 고맙지. 대주, 얼른 선물을 받아 풀러본다. 안에서 예쁜 목도리가 나온다. 그 목도리를 목에 둘러보며 이리저리 포즈 취해보는 대주. 유재, 목도리 를 빼앗아 자기도 한번 해보지만 이내 또 대주에게 빼앗기며 티격태 격. 하지만 성연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달래 바라보고, 그 마음 읽은 달래, 괜찮다는 듯 환하게 웃어보인다. 그때 막 건물에서 나오고 있는 남진과 자영. 좀 전의 다정했던 모습은 어디론가 간데없고 잔뜩 화난 얼굴로 말다툼 하며 걸어온다. 남진 그래, 맞아, 난 다 틀렸고, 항상 너만 옳아. 자영 그런 식으로 회피하지 마. 항상 내가 옳다곤 안해. 가끔은 네 가 옳을 때고 있어. 남진 아냐, 네 말대로 난 항상 틀렸어! 자영 꼭 그렇진 않다니까! 하지만 이번엔 내가 옳구, 니가 틀렸어. 그건 인정해야 해. 남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하자구. 달래, 어이없는 얼굴로 그 모습 바라보는데 대주 저 두 분은 저러는 거 싫증나시지도 않나 봐. 아이들이 보고있는지도 모르고 티격태격 아이들처럼 싸우는 남진과 자 영의 모습에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