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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村이란 이름은 3한시대부터 이곳을 「곰말」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한자음으로 고쳐서 몽촌이 되었다는 것이다.
「곰」의 음이 「꿈」으로 전화(轉化)되고 다시 한자로 옮겨질 때에 꿈을 의미하는 「몽」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몽촌은 몽촌토성이 있는 관계로 고문헌에는 고원강촌이라고 표기하고도 있다.
몽촌,즉 「곰말」의 곰은 고어로 큰 것을 뜻하므로 큰 마을이란 뜻이 되고, 또 큰 마을이란 으뜸되는 마 몽촌토성은 타원형으로 이어진 야산을 이용하여 그 위에 진흙을 쌓아서 성벽을 이룬 토성이며 남북의 지름이 750m,동서의 지름이 500m 되는 본성과 이보다 작은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토성의 둘레에는 방어용 개천인 垓子시설이 되어 있고, 성채에서는 목책과 망루도 발견되었다. 을이란 뜻도 되므로 고원(古垣)이란 한자이름도 뜻으로 새기면 「옛 울」이란 뜻이다
문화 유적의 역할이란 과거의 유물을 통해 현재의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하는 것이리라
조선 숙종 때에 우의정을 지낸 청풍김씨 충헌공 김구(金構)의 묘와 서울시유형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된 4m 높이의 신도비가 있다. 충헌공 김구(1649~1704)는 숙종 8년(1682)에 춘당대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황해,충청,전라,평안도 등 관찰사를 역임하고,숙종 29년(1703)에 우의정에 올랐다.
성문, 암문, 자연해자, 토성, 목책, 움집터자리, 집자리, 구덩이가 많이나왔던 곳을 알려 주셨습니다.
몽촌토성
환경 올림픽공원과 바로 붙어있는 몽촌토성은 주변이 번화하다. 몽촌토성은 걸어다니기에는 정말 넓고 경사가 진 곳이 많다. 들어오면 여러갈래로 길이 나뉘는데 몽촌역사관에 가기 위해서는 경사길을 포함한 2.7km를 걸어가야한다. 그렇게 해서 몽촌역사관에 들어갔다. 우리나라의 선사시대 역사부터 현대사까지 그림과 문화재로 다뤄진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현황 몽촌토성은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산책로는 울타리가 쳐져 있었으며 울타리 안 오솔길로만 지나다닐 수 있고 몽촌역사관 안은 아주 쾌적한 온도로 보기쉬운 그림으로 된 설명과 재밌는 문화재 볼거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유물이 계속 이어졌다. 초 중고 교과서를 구입해 달리 밝혀진 역사를 이해해야하겠다
풍납토성
한국 고대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해질녁 남한산성 만해기념관 자상한 해설을 끝으로 뿌듯한 답사를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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