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세계의 중심지인 터키 후기 (파묵칼레,벨리댄스,데린구유,아베소) <2>
2 부를 들어가면서
여행이란것은 시간과 금전과 건강이 허락해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젊을때는 시간과 돈이 없어서 머뭇거리고 늙어서는 모든것이 충족하나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서 못하는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살이라도 젊을때에 여행을 떠나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처고모부 내외(74세)와 같이 여행을 떠났는데 연세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시는것을 보고 느끼는것이 많았습니다,,,,
- 70살이 넘으면 돈도 내돈이 아니기에 여러가지로 고심해야,,,,
이제 나도 여행을 즐길나이가 10년뿐이 안남았구나 하는생각이
많이 들어서 아내와 같이 매년 세계각국의 좋은모습을 보고자 합니다
어차치 한번뿐이 없는인생인데 노동과 일에 중요성에 절감하지만
환갑이 넘어서 구차하게 잔소리들어가면서 박봉에 일자리 보다는
사회에 대한 봉사활동과 여행이 좋을것 같아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 2 부로 들어가겠습니다
석회석으로 덮힌 파묵 (PAMUK 목화) 칼레 (KALE 성)
'목화의 성'이라는 뜻의 파묵칼레(Pamukkale)는 누가 지었는지 참 멋진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보면 눈 덮인 언덕에 고드름이 잔뜩 매달려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이를 그저 '스노 캐슬'
정도의 이름으로 불렀다면 세계 곳곳에 흔한 멋진 설경 정도의 느낌이 났을 테니 말이다.
언덕을 오르는 입구에 접어들었다. 목화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달리 이 거대한 성은 석회질이
굳어 단단해진 암석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층으로 이루어진 석회암 틈을 뚫고 계단을 형성해
그 사이로 옥빛의 온천수가 흐르는데 층이 넓은 곳에는 제법 많은 물이 고여
어쩐지 그 모습이 하늘을 그대로 담은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내려왔는지 알 수 없지만 흐르는 물이 굳어 성을
이룰 정도니 아마 우리가 셀 수 없는 까마득한 시간일 것이다. 그 긴 세월을 흐르고도
여전히 마르지 않고 샘 솟는 온천수라니 역시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
하얀 석회암만으로도 독특한 풍경이었지만 마치 우리네 계단식 논처럼 끝없이 형성된,
석회층 곳곳에 고여 있는 푸른 온천수도 신기했다. 햇빛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던 그 물을 몇 번이나 손으로 떠봤지만 역시 티없이 맑았다. 맑은 물은 이 석회층에
고여 빛을 받으면 청아하게 빛났다.
처음에는 이 아름다운 자연유산에 함부로 몸을 담그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오묘한 빛깔을 계속 보고 있자니 무엇에 홀린 듯이 옷을 벗고 빠져들게 되었다.
마치 이 곳에 몸을 담그고 나면 아킬레스처럼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될 것처럼.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몸을 담그고 이 천혜의 자연을 즐긴다.
'목욕'에 대해 둘째라면 서러워 했을 로마인들이 이 아름다움을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언덕을 따라
석회층을 계속 오르다 보면 꼭대기에는 진짜 수영장이 있다. 석회층에서는 잠시 발을 담그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꼭대기 유적에 오르니 사람들은 로마인들이 남기고 간 유적에서 진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갑바도기니아에서 즐거운시간을 뒤로하고 아침 4 시에 기상하여 5 시에 출발하여 10시간을 달려서
파묵깔래에 도착하여 온천욕을 하고 다음날 이곳에 올랐는데 석회석으로 뒤덮인 모습을 바라보니
정말 장관이였는데 그 구조는 중국의 구체구와 비슷하였다
그옛날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의 온천수 목욕장소로도 유명하고 지금도 유럽 부호들의
휴식처로도 유명한 이곳은 말로 설명하는것보다 아래사진을 보는것이 더 좋을듯하다
석회석이 용암과 온천수에 녹아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신의 작품들이다
가이드는 말하기를 여기서 한번 넘어지면 최소가 골절이고 심하면 중상내지는 뇌진탕사망이라고
겁을 주면서 한국인들이 일년에 2 ~ 3 명이 다친다고 하면서 안전을 엄청나게 강조하였다
하얀 석회석으로 뒤덮힌산을 보고 누구나 시인이 될것같은 느낌이였다
산아래에 자연스런 온천욕욕을 즐길수 있는 호수가 형성되였다
석회석위는 도시국가의 유물들이 많은데 그중에 하나인 원형극장으로
약 25,000명 정도가 입장할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으로 봐도 당시의
거대한 도시규모와 인구규모를 알수있었다
터키는 지진발생국으로 이 많은 도시도 지진을 피해갈수는 없었다
유물들을 근거로 도시국가를 상상으로 형상화한 당시의 조감도
현란한 여인들의 벨리댄스 (배꼽 춤)
나는 벨리댄스가 음탕하고 섹시한줄알고 옵션을 신청했다 (50 유로, 한화 75,000원)
행사장은 우리나라 마당놀이와 비슷하며 한번에 약 300여명이 관람하고, 60 남자무용수 6명과
여자무용수 6명이 90분동안 포크댄스형식으로 춤을 추는데 아주 건전했다
관람객은 90%가 유럽인인데 놀랜것은 그들 거의가 70대 이상으로 유럽은 실버층의 모임과
관광문화의 인프라가가 정착된것 같아서 엄청 부러움을 느꼈다 (우리일행 모두가 공감했다)
유방을 만져보고싶을 정도로 풍만한 가슴을 ㄱ진여인은 육감적이였다
흐느낀듯한 여인의 표정에서 무엇을 ,,,,,
벨리댄스는 날씬하고 젊은여자보다는 중년의 비만한여인이 추는것이
더 육감적이였고 특히 엉덩이가 현란하게 돌아가는것 보고 일행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기독교신자의 박해에 피난처인 지하도시 데린구유
지하도시(Underground City) 데린구유는 로마의 카타콤베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압박시절 땅을 파고
지하에 도시를 건설하고 살았다. 로마의 카타콤베는 기존의 지하공동묘지를 이용한 반면 이곳
터키의 데린구유는 피난처로 삼기위해 일부러 판것이다. ‘깊은 우물’이란 뜻을 가진 데린구유는
기독교인들이 종교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건설한 20층 높이의 지하도시이다.
기독교인들은 종교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바위에 굴을 뚫고 살다가, 나중에는 땅을 파서 지하에
도시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카파도키아의 명소인 데린구유는 지하로 80m를 파고 들어가 만든 20층
높이의 거대한 지하도시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건설한 지하도시 안에는 교회와 학교, 강당, 식당,
주거지 등이 있으며 최대 1만명 정도까지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지하 8층, 지하 50m 까지만 개방하고 있다. 길이가 6km에 달한다. 지하에는 동굴 20개가
개미집처럼 연결되어 있었는데, 사람 한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통로를 지나면 넓은 방이
나오고 다시 지하로 내려가게 된다. 통로가 좁은 것은 많은 적들이 한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이며,
또한 통로의 곳곳에는 구멍이 뚫린 돌문을 설치했는데 안에서는 열기 쉽지만 밖에서는 열기 어렵게 되어 있다.
통로는 관광객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지하로 가는 길은 붉은색 화살표로, 지상으로 나가는 길은
푸른색 화살표로 표시를 해 놓았다. 데린구유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65년이다.
수탉 한마리가 구멍에 빠진 후 나오지 않자, 마을 사람들이 땅을 파 보니
거대한 지하도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석굴을 판 것은 5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데린구유는 땅 밑에 있는 화산의 응회암을 완전히 깎아서 만든 지하도시이다.
데린구유 주변에 이보다 규모가 작은 지하도시가 30-40개 정도 더 있고, 그 지하도시들이 지하도를 통해
서로 10km 이상 연결되어 있다. 198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UNESCO에 등록했다.
지하도시 대부분을 연장도 없어서 손으로 팠다고 한다
통로와 목용탕, 배수로, 예배장소까지 보았다
위사진은 물을 공급하는 배수로라고 한다
터키에 이런도시가 약 60여개 있는데 개방된곳은 2 군데 라고 한다
기독교인들이 모진 박해와 탄압을 피해서 지하에 숨어들어서 도시를 건설하고
예수를 믿었다고 하는 지하도시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