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신문에 민간인 신분으로 북파 공작원을 자원한 뒤, 사망한 요원 가족이 보상받았다는 기사가 나왔다.
당연히, 북파된 특공대원 중에는 반공 이념이 투철해서 자원한 젊은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북파는 목숨을 걸고 가는 길이다. 1953년 7월, 휴전하던 그날 아침, 군용기로 개마고원에 투하된 국군 특공대 요원들은 그 직후 발표된 휴전 소식을 듣고 무전기로 오만가지 욕을 쏟아냈다.
통상 시간을 정해두고 다시 구하려고 오는 것이 정상이지만 휴전이 발효된 지금, 항공기로 나중에 접선하려 휴전선을 넘어갈 가능성은 전무했다.
당일 아침에 개마고원에 낙하한 그 요원들이 다시 돌아올 항공편은 없어졌다는 의미다.
작전 후 비행기를 탈 가능성이 사라진 요원들은 아직 작동하는 무전기를 통해 절망에 빠져 울부짖었다. "우리를 이렇게 그냥 적군 지역에 버리느냐고," 그러나 항공기에서는 묵묵부답, 잠시 뒤 무전기는 "off" 됐다
"이런 전쟁"에서는 서부 전선에서 후퇴하던 미군 낙오병 중 몇 명은 말도 안 통하고 지리도 낯선 한반도에서 몇 달을 걸어 강원도 동해안까지 가로질러 가서 구조된 사례가 있었지만, 그들이 개마고원에 떨어진 이후 행방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북한 지역에서 살아서 귀대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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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 "신동아"는, 요즘은 사라졌지만 오랜 기간 "넌픽션" 을 연재했는데 그중 피를 파는 젊은 청년들 이야기가 있었다.
요즘같이 헌혈이 보편화되기 전, 병원에서는 피를 구하기 힘들어 수술할 때는 피를 사서 수혈을 했다.
당시 경제개발을 막 시작하던 한국의 상황이란 게 변변한 공장도, 회사도 없었고, 노는 사람은 넘쳐서 취직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같던 시절이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피를 파는 직업이 생겼는데,
각자 다양한 사연이 있어서 피를 팔아 현금을 손에 쥐었겠지만 절박한 사정에 처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중에는 피를 팔아
(일할 곳이 아예 없다 보니) 그 돈으로 술 마시고 놀다가 돈이 떨어지면 또 피를 뽑고, 그런 젊은이들도 있었다.
문제는, 아무리 젊어 혈기 왕성하다 해도 그렇게 피를 너무 자주 많이 뽑으면 백혈구(적혈구?) 수치가 많이 떨어지는데,
그러면 일시적으로 수치가 올라가는 약을 파는 사람도 있어, 그 약을 사 먹고 검사를 통과해서 또 피를 뽑는다. ~그런 약을 팔아먹는 녀석들은 사람 피를 빨아 먹는 흡혈귀라고 불렸다. 그렇게 사람 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런 젊은이들을 포섭하러 오는 요원들이 있었으니,
북에 보낼 특공대 요원을 뽑는 사람들.
그들은 조건이 맞으면 큰 목돈을 받아 며칠간 한도, 원도 없이 신나게 놀고 난 다음 북으로 특파하는 부대에 복무하려고 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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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스를 보면서,
이젠 시절이 변해 그때보다 일자리는 많은데, 사람 구하기는 더 힘들단 생각이 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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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사 발췌>
B씨는 1971년 1월 육군에 민간인 신분 공작원으로 채용, 훈련받은 후 그해 10월 북한으로 파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B씨는 돌아오지 못했고, 북한이 당시 무장 간첩을 사살했다고 보도하면서 B씨가 이에 따라 사망한 것으로 강하게 추정됐다. (NEWSIS 2022년 7월 1일 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