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또 망신 당하셨나 봐요”
셋째가 망신스런 표정으로 중이적삼 가랑이가 흙 범벅이 된 외조부를 부축하여 싸리문에 들어서며 부엌에서 저녁을 짓고 계신 어머니께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일러바친 것은 햇살이 사그러저 가고 산 그림자 처마 밑으로 찬바람이 일렁이며 땅거미가 서서히 내려앉을 무렵 이였다. 어머니는 별로 놀란 표정도 없이 그저 한숨만 내쉬신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삼일이 멀다하고 그러시니 일상의 하루 일과처럼 받아들이시는 모양이다. 그래도 오늘은 일찍 들어오시는 편이다. 비록 외손자의 부축에 의해 집까지 오시긴 했지만 당신 발로 걸어오신걸 보면 오늘은 약주를 덜 하신 모양이다. 매일 술에 취하지 않으시면 하루를 배겨 내지 못하시는 성미 때문에 가장 불편하신 것은 어머니시다.
어제 일만 해도 그렇다. 주막집에서 술을 드시고 계셨는데 옆에서 술을 하고 있는 젊은 분들이 담배를 피려다가 성냥이 없었는지 불을 좀 빌려 달라고 한 모양이다.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눈에 거슬렀는지
“이 쌍것들이 어디 감히…….”
이쯤 되었으니 그 술 취한 젊은이들이 간만 있을 리 있겠는가. 서로자존심을 건드리기가 도를 넘어 화가 난 젊은이는 인정사정없이 휘 두루는 주먹질에 면상이 터지고 옷은 흙투성이가 되어 사위 등에 업혀 오셨으니 이래저래 속이 터지는 것은 어머니시다. 외조부 때문에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하는 어머니는 이런 날이면 죽을상이시다.
외조부께서는 은진 송 씨 우암자손으로 반상을 무척이나 따지시는 분이시다. 성씨와 본을 따져 상대를 대하는 말씨 또한 달라지니 어디 요즘 세상 편히 사시겠는가. 더구나 문중의 토지로 인해 사기를 당하시어 소송을 몇 년 하다 보니 가세가 기울고 아들 셋, 딸 셋의 육남매는 성혼은 하였으나 호구지책이 어려운 형편이니 이래저래 세상과 악연을 걸머지고 매일 술에 취하여 견디기 어려운 세상을 보내셨다.
마음 밑바닥에는 양반이라는 정신적 우위가 깔려 있었으나 양반의 계급이 추락한지 한 세기가 훨씬 넘은 지금 경제가 뒤 따라주지 않는 반상의 계급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차라리 평민으로 태어나 보통사람처럼 살 부비며 땀 흘리며 살았더라면 자식들이라도 고생시키지 않았으련만 양반이라는 허울 좋은 혼자만의 계급이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는 분노가 되어 스스로 할퀸 상처가 아물 날 없이 밤이면 잠잠했다가 낮이면 그 상처가 덧이 나 외조부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이 놈의 세상, 이 쌍놈의 세상,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나?”
그러나 외조부의 분노를 태워서 얻어지는 것은 손 까락 질뿐이었다. 더러는 외조부의 말씀에 동조하는 사람은 있었으나 그 역시 몰락한 양반 계급일 뿐이었다. 어느 사회든 빛과 어둠이 공존하지만 그 빛이나 어둠이 상식의 빛이어야 하고 상식의 어둠이어야 하는 데 외조부의 눈에는 상식으로 통하는 빛과 어둠이 아니었다.
도덕성이 결여된 정의가 훼손된 도시가 싫어서 산골로 찾아드신 것이 둘째 딸네 집으로 오시긴 했지만 시골 역시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미 외조부께서는 삶이 경이로움을 꿈 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고통의 연속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40여 년 전 그 해 여름은 몹시도 뜨거웠다. 보리 꺾끄럭이 바짓가랑이를 타고 올라오는 듯 한 기분 나뿐 여름이 지속되던 날 그렇게도 세상을 등지며 사셨던 외조부는 모든 걸 접으시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황천으로 가셨다. 그러나 그의 시신 앞에서 큰소리 내어 우는 후손들은 없었다. 오직 어머니만이 부엌을 오가며 긴 한숨만을 내쉬며 가끔 소복을 한 옷고름으로 몰래 눈물을 훔쳐낼 뿐이었다.
유품이랄 것도 없지만 나는 외조부가 쓰시던 선반위에 조그마한 지갑에서 종이쪽지 한 장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한지에다 붓글씨로 ‘乾坤正氣 天地皆春’ 이라고 쓴 것이었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바르면 천지가 봄이다’라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보면서 나는 지금까지 외조부에 대한 평가를 다시하게 되었고 외조부께서 왜 세상과 등지며 살지 않으면 안 되었나를 조금이나마 이해 할 것 같았다.
외조부께서는 단순히 반상계급에서의 양반 상놈을 구분하여 분노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양반으로서 군림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람가운데 흐르는 기가 바르지 못했음을 분노하셨고 세상의 질서가 없음을 분노하셨던 것이다. 세상의 이치가 예를 갖추지 못하고 절대보편의 진리가 사람 속에 흐르지 않음을 한탄하셨던 것이다.
이 세상의 가장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임을 늦게나마 깨달은 것은 바로 외조부가 외손자에게 보내는 ‘건곤정기 천지개춘’이라는 짧고도 긴 메시지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질만능의 세상, 돈만 있으면 여자가 남자가 되고 남자가 여자가 되는 세상이 아니던가. 그러기에 돈이면 양심이고 체면이고 다 벗어던지고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세상이니 양반이 어디 발붙일 틈이 있겠는가.
오늘도 신문에 ‘물 흐린 상류층 교수, 공무원, 연예인 등 72명 적발’ 이라는 기사가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하기야 전직 대통령들을 비롯하여 사회의 빛이 되어야 할 법조계 종교계, 교육계 지도자들까지 투기, 사기 공갈로 세상을 더럽히는 세상이니 아예 층을 뒤집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 흐린 자들을 왜 상류층이라 하는가. 그들은 물 흐림과 동시에 제일 밑바닥 층으로 보내져야하지 않는가.
새삼 외조부님의 ‘ 건곤정기 천지개춘이’ 이 머릿속을 맴돈다.
첫댓글 지난 날, 길이 아니면 가지를 않으시던 외할아버님의 양반된 올곧은 삶을 되살리심으로써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될 좋은 글입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