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陵卽事(금릉즉사)
정총(鄭摠: 1358(공민왕 7)~ 1397(태조 6)
본관은 청주. 자는 만석(曼碩), 호는 복재(復齋)
조선개국 공신 정탁의 형이다.
당시 중국에 보낸 표전문은 대부분 그가 썼다.
1394년(태조 3) 정도전과 함께 〈고려사〉를 편찬하고 그 서문을 썼다.
1395년 태조 이성계의 고명과 인신을 줄 것을 청하기 위해 사신으로 갔다가
표문 내용이 불손하다 하여 트집을 잡혔다.
그는 구속되어 대리위로 유배되던 도중 죽었다.
문집으로는 『복재유고』가 있다.
복사꽃 다 지고 난 뒤에 버들꽃 날리고
桃花落盡柳花飛 도화락진류화비
제비는 오는데 나그네는 돌아가지 못하네
燕子初來客未歸 연자초래객미귀
누가 금릉이 아름다운 곳이라 말했나
誰道金陵佳麗地 수도금릉가려지
어버이 생각에 옷이 마른날이 없네
思親無日不霑衣 사친무일부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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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픈 시다
1395년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표문 내용이 불손하다고 붙잡혀 있을 때, 지은 시다.
고국 땅도 밟지 못하고 이역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얼마나 사무친 것들이 많았으랴!
제비는 돌아와도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고국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에 옷이 마른날이 없다.
힘없는 나라에 태어나서
쓸쓸하게 죽어간 비운의 천재를
오늘을 사는 우리가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남의 나라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현실은
별반 다르게 없다.
더구나 남북으로 분단되어
동족끼리 피 터지게 싸우고 있으니
과연, 지금의 상황을
정총(鄭摠)이 보았다면
마음 편하게 눈이나 감을 수 있을까
가마솥에 갇힌 콩처럼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자는 누구인지,
안으로 지지고 볶고 하는 노예근성을 버리고
자주적으로 외부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