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며 매 순간 아무런 집착 없이, 바람처럼 홀연하게 오고 가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잘난 척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부처나 노자 뿐만 아니라 오랜 영적 전통에서는 그러한 삶, 집착 없고, 머무는 바 없으며, 걸림 없고, 함이 없이 하는 행이야말로 모든 성인의 삶의 방식이라고 말해왔다. 그러한 흔적 없고 집착 없는 행이 바로 무위(無爲)다.
그러나 무위로써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보통 사람들은 무위라고 하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인 줄로 알고 그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위의 행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하되 함이 없이 하라는 의미다. 행을 하되 그 행에 대한 그 어떤 집착도 없어야 한다는 말이며, 행을 하고 나서 했다는 상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고, 그 어떤 흔적이나 그림자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남들을 도와주고도 도와주었다고 자랑하지 말고, 보시와 사랑을 실천하고도 스스로 보시를 실천했느니 하는 상에 얽매여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진정 위대한 성인은 스스로를 성인이라고 드러내지 않으며, 성숙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성취에 도취되거나 그것을 드러내고 자랑삼아 말하지 않는다. 사람에도 너무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으며, 성공에도 집착하지 않고, 돈이나 명예, 권력, 지위, 이성, 사랑 등 그 어떤 대상에도 과도하게 머물러 집착하지 않는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너무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는다. 무위의 삶을 사는 이에게는 ‘반드시’ 해야 할, ‘안 하면 안 되는’ 그 어떤 것도 없고, 또 반대로 ‘반드시’ 해서는 안 될 것이나 ‘절대 하면 안 되는’ 그런 것도 없다. 그 어떤 극단적인 집착도 가지지 않은 균형 잡힌 중도(中道)적인 삶, 그것이 바로 무위의 삶이다.
『금강경』에서는 이러한 무위의 실천적 삶을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표현하고 있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응당히 집착하는 바 없이 마음을 일으키라는 의미다. 어떤 사람은 불교를 ‘집착을 버리는 공부’라고만 생각하지만 사실 불교는 ‘집착 없이 마음을 일으키는 공부’다. 무게중심은 집착을 없애는 것이라기 보다는 ‘집착 없이’ 라는 수식의 꾸밈을 받는 마음을 일으키는 쪽에 둘 수 있다. 집착을 버리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삶의 에너지를 잃는 것이 아니라, 집착을 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그 어떤 일도 아무런 걸림 없이 자유롭고도 담대하게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집착 없는 무위행을 『바가바드기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집착을 떠나 언제나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을 하라. 집착 없이 행하는 자가 가장 높은 데 이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집착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안 한다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하기 때문에 언제나 ‘지금 여기’라는 현재의 순간에 완전히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다. 그러더라도 그 어떤 결과나 성취에 집착하거나 도취되지는 않는다. 매 순간 순간 온전히 깨어있는 정신으로 해야 할 바를 할 뿐이다. 매 순간 그 일에 완전히 자신을 연소한다. 언제나 100%의 삶을 산다.
보통 무위로 산다고 하니 삶을 포기하고 허무주의에 빠져 나태하고 게으른 삶을 산다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기 쉬운데, 오히려 무위는 매 순간순간 100%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사는 완전연소의 삶이다. 완전히 에너지를 쏟아 그 일을 행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에너지의 소진이 없다. 매 순간 100%를 쏟아 부으면 언제나 100%가 남는다. 그것이 우주의 풍요로움이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부유함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