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오로가 2009년 국내 바둑계에서 있었던 굵직한 이슈, 화제, 사건들 가운데 바둑팬들의 관심과 의미가 컸던 소식을 골라 10대뉴스로 선정했다. 지난 한 해 가장 의미가 컸던 뉴스는, 바둑의 공식 스포츠화를 완성시킨 '대한바둑협회 대한체육회 정가맹경기단체 승격' 소식이었다.
화제의 폭발력에서는 팬들의 관심이 뜨거웠던 '이세돌 9단의 휴직 및 복직' 소식에 밀리지만 지난 10년간 바둑계 전체가 100만인 서명을 벌이고 대한바둑협회를 창립하며 매진해온 숙원사업을 이루었다는 것과 향후의 파급효과를 더 높이 평가했다. 또 프로기전제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컷오프상금제로 새롭게 오픈한 세계대회 '비씨카드배 출범' 소식을 그 뒤로 잡았다.
○●1위. 대한바둑협회, 대한체육회 정가맹경기단체 승격!
대한체육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사)대한바둑협회가 정식가맹단체로 최종 승인됐다. 바둑이 진짜! 스포츠가 된 것이다. 2001년 100만인 서명운동부터 시작된 바둑의 스포츠화 작업은 2002년 1월 (재)한국기원이 대한체육회 인정단체가 되면서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2006년 5월, 한국기원을 대신한 대한바둑협회(2005년 11월 창립)가 준가맹 경기단체로 승인된 지 3년 만에 정가맹으로 최종 승격되면서 바둑의 스포츠화 사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튼실한 기반을 바탕으로 한 다각적인 사업추진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체육회 정가맹경기단체 승인 이외에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정식종목 채택, 정부 예산을 지원받은 한국바둑 세계화 사업, 병영바둑교실의 적극지원 등 바둑의 스포츠화 사업은 올 한해 더욱 다채로운 형태로 짜여졌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한중일 3국의 공동협력 하에 바둑의 세계화 사업도 활발한 논의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2위. 이세돌의 휴직, 그리고 복직
오랫동안 한국랭킹 1위를 달리고 있었던 이세돌 9단이 기사직 휴직계를 제출해 큰 파문을 몰고 왔다. 3월 한국바둑리그 불참을 통보했던 이세돌 9단은 2009년 6월 30일부터 2010년 12월 31일까지 기사직 휴직을 선언하며 국수타이틀 반납과 함께 삼성화재배, 명인전 등 각종 기전의 본선행을 모두 포기했다. 휴직 이유에 대해선 한국기원과의 마찰과 동료 기사들에 대한 아픔, 심신의 피곤함 등 여러 가지 사안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휴직기간 동안 휴직 연장 등 퇴직 같은 루머가 나돌기도 했으나 12월 17일 친형 이상훈 7단을 통해 한국기원에 복직원을 제출하면서 2010년 1월 즈음 다시 복직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세돌 9단의 복직은 1월 8일 한국기원 상임이사회를 통해서 결정된다.
○●3위. 비씨카드배 탄생-오픈기전, 상금제의 확대
컷오프상금제는 오래전부터 바둑계에서 논의됐던 뜨거운 감자였다. 바둑계 내부에선 유창혁 9단을 중심으로 5년 이상 논의되며 진통을 겪다 2009년 2월 제1회 비씨카드배와 함께 수면위로 힘껏 떠올랐다.
제1회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은 '컷오프', '본인비용부담' '프로-아마 완전오픈' 등을 도입한 바둑계 최초의 '컷오프상금제' 대회였다. 64강 본선진출자까지만 상금을 받을 수 있고 온라인, 아마예선을 통과한 20명의 아마추어들이 통합예선에서 프로들과 맞상대했다. 한,중,일 프로기사들은 자비부담으로 누구나 통합예선에 출전, 자유롭게 세계의 강호들과 승부를 겨룰 수 있게 됐다.
후원사 비씨카드는 2009년 12월 7일, 제1회 대회의 기본틀을 유지한 채 우승 3억, 준우승 1억으로 상금 규모를 키워 제2회 비씨카드배의 출범, 선포식을 가졌다. 장형덕 대표는 이 자리에서 '팬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주요대국을 스튜디오를 벗어난 오프라인대국으로 진행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 관계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비씨카드배의 신선한 시도는 2009년 8월에 시작된 제14회 삼성화재배도 영향을 끼쳤다. 컷오프제를 강화해 '본선32강'까지만 상금을 배정하고 32강전부터 3번기를 두는 '더블일리미네이션'제도를 도입했으며 통합예선 아마추어 출전티켓을 12장으로 늘렸고 우승상금을 2억에서 2억5천만으로 올렸다.
급진적인 시도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컷오프상금제가 세계대회를 중심으로 가혹한(?) 수준으로 확대될 조짐이 보이자 바둑계 일부에서는 '상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너무 적다보면, 오히려 선수들의 참가의지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최소 '64강' 정도는 상금이 지급돼야 '오픈'이라는 대회취지에도 맞다는 목소리였다.
삼성화재배의 급진적인 기준(32강 컷오프, 더블일리미네이션), 시행착오에 대한 문제점은 여러 차례 제기됐으나 세계대회를 위주로 한 컷오프상금제는 향후 바둑대회의 중심을 관통하는 큰 흐름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4위. 바둑도 글로벌시대, 외연 넓힌 문화행사 러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눈앞에 둔 2009년 한 해에는 바둑문화행사가 유독 많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프로들의 지도대국 같은 단발성 이벤트로 그쳤던 팬 서비스차원의 바둑행사가 교육의 가치와 사회 기여, 국위선양까지 닿는 심도 깊은 문화기획행사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의 공조로 이루어진 ‘한국바둑 세계화’사업은 ‘2009년 대한민국 바둑백서’ 발간과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끌어낸 ‘웅진 싱크빅 강릉 세계청소년바둑축제’로 이어졌으며 공개입찰을 통해 사이버오로(www.cyberoro.com)가 ‘한국바둑 세계화’의 인터넷사업자로 선정돼 해외보급을 위한 영문바둑사이트 제작, 운영에 박차를 가하는 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기원이 해외바둑보급의 일환으로 기획 중인 ‘동남아시아, 유럽, 미주지역 전문기사 파견’ 사업이 실현되면 온-오프라인을 연동하는 한국바둑 세계화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또 국내바둑보급에선 한국기원 여자프로들이 주축을 이룬 군부대순회 바둑보급(병영바둑교실 개설)과 50여명의 정상급 프로들이 재능으로 사회봉사에 참여한 ‘사회적 기업 지원을 위한 프로보노 명사초청 지도기’는 바둑의 교육적 가치와 사회적 기여도를 높인, 지속적인 장려와 지원이 필요한 주요사업으로 주목됐다.
○●5위. 중국 바둑의 비약
냉정하게 평가할 때 2009년은 세계프로바둑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간 한 해였다. 중국 바둑의 약진은 곧바로 한국 바둑 위상의 흔들림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연초부터 구리 9단이 도요타배, LG배, 비씨카드배를 쓸어 담으면서 국제대회에서 급부상했다. 구리 9단을 필두로 한 ‘황사바람’이 국제기전에서 한국바둑을 크게 압박했고 특히, 여자프로 쪽은 중국바둑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2009년 12월 14일 현재 한국과 중국의 맞대결 성적표는 382전 133승 249패, 승률 34.82%에 불과하다. 한국랭킹 1위 이창호 9단조차 춘란배 결승에서 창하오 9단에 패했고, 세계대회 주요기전에서 박문요 5단(비씨카드배), 콩지에 9단(TV아시아), 치우쥔 8단(삼성화재배) 등에게 무릎 꿇으며 국제기전 7연속 준우승의 징크스를 이어갔다.
여자 바둑에서 그 차이는 더 확연했다. 제7회 정관장배에서 중국은 송용혜 5단이 6연승, 리허 2단이 3연승을 거두면서 싹쓸이했고, 현재 진행 중인 제8회 정관장배에서는 ‘듣보녀(듣지도 보지도 못한 여자기사?)’ 왕천싱 2단이 3연승의 칼날을 휘둘러 맹위를 떨쳤다. 올해 열린 8차례의 세계대회 결승에서 중국이 5회, 한국이 3회 우승하며 이미 한국을 추월했고 여자대회에서는 7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최강전에서 중국에 우승컵을 빼앗겼다.
○●6위 강동윤ㆍ김지석ㆍ박정환 신진세력의 급부상
2009년은 어느 해보다 신진세력들의 활약이 눈부셨던 해였다. 강동윤 9단은 금년 2월 제13기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이세돌 9단을 맞아 종합스코어 3-2로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6월의 제22회 후지쯔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이창호 9단을 물리치고 생애 첫 세계대회 정상을 정복했다.
금년 다승ㆍ승률ㆍ연승ㆍ최다대국 1위를 기록하며 12년 만에 '기록 3관왕'에 오른 김지석 6단의 활약도 대단했다. 차세대주자 넘버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김지석 6단은 지난 8월 제5기 한국물가정보배 프로기전 결승3번기에서 이창호 9단을 2-0으로 물리치고 생애 첫 타이틀을 차지한 바 있다.
‘무서운 10대’ 박정환 4단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나이로 17세인 박정환 4단은 금년1월 제4기 원익배 십단전 결승3번기에서 백홍석 6단(당시)을 2-0으로 꺾고 생애 첫 메이저기전 우승컵을 차지했다. 얼마 전 벌어진 제5기 원익배 준결승전에서는 김지석 6단을 꺾고 결승에 진출해 2연패를 노리고 있으며 제14기 박카스배 천원전 결승에도 올라 최강 신예로 꼽히는 김지석 6단을 상대로 2-0으로 앞서 나가고 있다(12월 23일 기준).
○●7위 최철한, 응씨배 우승!
최철한 9단이 제6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이창호 9단을 3-1로 물리치고 우승컵을 번쩍 들어올렸다.
5회 대회 준우승자였던 최철한 9단은 4년 만에 다시 결승에 올라 지난 대회 준우승의 아픔을 말끔히 씻어냈다. 최철한 9단의 우승으로 한국은 총 6번의 대회에서 5번의 우승을 일궈냈다. 1회 조훈현 9단, 2회 서봉수 9단, 3회 유창혁 9단, 4회 이창호 9단의 우승까지 80% 이상의 우승확율을 보여 ‘응씨배=한국기사’의 공식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최철한 9단은 응씨배 우승으로 2009년 상금왕에도 올랐다. 12월 기준으로 약 6억원을 벌어들여 이창호 9단의 5억원과 이세돌 9단의 4억원을 가뿐히 제쳤다(최철한 9단의 응씨배 우승 소식이 10대뉴스 하위에 랭크된 이유는, 응씨배가 우승 상금은 약 5억이지만 총상금규모가 12억이며 4년에 1번 개최되는 기전의 거품이 있다는 분석에 의한 것이다. 삼성화재배나 LG배의 상금을 응씨배에 맞춰 4배수로 평가하면 형평상 이 두 기전의 우승자는 매년 10대뉴스에 올라야 한다).
○●8위. 2009 KB국민은행 한국바둑리그 - 영남일보 3연패
영남일보가 '2009 KB국민은행 한국바둑리그'를 우승했다. 한국바둑리그 진출 첫해 최하위에서 이후 3년 연속 우승이라는 신화를 썼다. 팀의 감독은 3년내내 최규병 9단이었다. 첫번째야 우연이라 치부할수 있겠지만, 우연이 3번이면 필연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최규병 '감독'도 영남일보와 함께 최고의 영예와 기쁨을 한껏 누렸다.
※영남일보 선수 박영훈(주장), 강유택, 김지석, 김형우, 염정훈, 유창혁
2009 바둑리그에는 총 7개팀이 출전했다. 1년에 걸쳐 리그를 뛰어 우승, 준우승(한게임), 3위(바투), 4위(KIXX)까지를 가려 단체전 시상을 했다. MVP는 김지석 6단이 받았다. 김지석은 정규시즌 10승 2패, 챔피언결정전 2승1패의 성적으로 팀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12월 11일의 바둑리그 시상식장은 올 한해 프로바둑을 마감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한국바둑리그에서 1년간 '바둑리거'로 활약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제 한국의 '프로기사'들에게 1년의 활동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됐다.
2008년말과 2009년초의 '금융위기'와 절묘한 타이밍으로 맞아 떨어진 '이세돌 9단의 불참선언'으로 흔들렸던 2009 한국바둑리그. 1년을 순항하고 새로운 기록을 남긴 채, 새로운 2010년을 맞게 됐다. 바둑리그가 존재함으로서 한국바둑계의 위상이 높아지고 규모가 커진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앞으로 중국리그처럼 타국기사를 '용병'으로 참여시킬 수 있을 만큼 글로벌화 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한 가지, 한국바둑리그에 참여하지 못하면 1년내 바라만 봐야하는 프로기사들의 시선, 특A급 상위랭커들에 대한 문제, 주장전에 대한 처우불만과 지나친 '속기화'는 한국바둑리그가 앞으로 해결해야 될 과제다.
○●9위. 바둑판 소송물의 윤기현, 기사직 사퇴
바둑판 소송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윤기현 9단이 3월 25일자로 한국기원 기사직을 사퇴했다. 윤기현 9단은 (재)한국기원 부산지역본부장을 지낸 고(故) 김영성 한국기원 이사 유족과 1년 8개월여 간 바둑 판 관련 법정 다툼을 벌인 끝에 지난 2월 12일 열린 대법원 상고심에서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이 정당해 상고 이유가 없다는 취지의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윤기현 9단은 바둑판 법정 다툼으로 프로기사 품위를 훼손하고 (재)한국기원 명예를 실추시켜 징계해야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재)한국기원은 대법원 판결까지 의견개진을 보류했다. 기사 대의원회에서 제명해야 한다는 강경한 의견까지 나왔으나 지난 3월 열린 기사임원회의에서 자진사퇴를 권유, 결국 불명예스럽게 바둑계를 떠나고 말았다.
○●10위. 월간바둑, 통권 500호 발행
한국바둑을 대표하는 정론지 월간바둑이 2009년 3월호로 통권 500호째를 발행했다.
1967년 8월 기계(棋界)라는 이름으로 창간해 2년 후인 1969년 8월호부터 현재의 월간바둑으로 바뀌었지만 지금까지 단 한권의 결호나 합병호 없이 발행해왔다. 월간바둑은 조훈현ㆍ서봉수 9단 세대에서부터 유창혁 ㆍ이창호ㆍ이세돌 9단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41년간의 한국바둑역사와 함께 했다.
통권 500호를 기념해서는 이전보다 60페이지를 증면해 한국바둑의 숨은 공로자 이학진 옹 인터뷰, 역대 편집장이 본 한국바둑 등 다양한 코너를 준비해 총320p로 독자들을 찾아갔다. 월간바둑은 한국바둑의 총본산인 (재)한국기원과 (주)세계사이버기원이 공동발행하고 있는 바둑전문지다.
이외에도 한국 프로바둑 전력증강을 위한 상비군제도 도입, 아마추어 오픈기전 점수제 특별입단 제도 마련 이창호 9단의 국내 최대기전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우승(세계대회 포함 7회의 준우승 징크스 탈출) 등이 후보에 올랐으나 10위권에는 들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