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y090616a_노래나무숲
* 우창수 공연 <노래나무심기> 공연전단에 실을 글
노래나무심기, 배순덕 傳 - 그리움
090620토 18:30 양정청소년수련관 7층 소극장
노래나무심기, 안윤길, 조선웅 傳 - 배 만드는 사람들
090724금 19:00 울산 동구 일산해수욕장)
노래가 나무가 되고 나무가 숲이 되어
신 용 철
(인제대학교 인문학부 겸임교수)
몇 년 전에 ‘인권’을 다룬 전시회가 있었다. 나는 예술가들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오롯이 내 잣대로 고른 둘레의 몇몇 예술가들을 만났다. 화가, 춤꾼, 등등, 그리고 노래하는 우창수…. 그리하여 노래하는 우창수는 우리 시대 외롭고 높고 그리하여 슬픈 예술가들 이야기의 하나가 되어 전시장에 걸렸다. 그가 나오는 꼭지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무던히도 사람을 그리워하던 음악가 우창수를 나는 우연히 보육노조 집회가 있는 거리에서 다시 만났다. 10년 만의 술자리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 다큐멘터리로 어떤 시민영상공모전에 뽑혔으니 나는 우창수에게 매우 큰 빚을 진 셈이다. 그 빚을 오늘 글로 갚아야 하는 셈인데, 그렇다고 마냥 우창수 킹왕짱 이렇게 주례사 하듯이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으로 어려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우창수가 내 캠코더 앞에서 눈치코치 보지 않고 나오는대로 이야기했듯이 나도 나오는대로 이바구해볼란다.
“이바구 떼바구 강떼바구…”
거짓말 같은 이야기
누구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한 사람을 생각하면 그 사람에 대한 그림 하나가 떠오른다. 그걸 ‘배냇꼴’이라고 해야 할지 ‘원상(原象)’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그림은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림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나중에 만난 한 때의 그림일 수도 있다.
우창수하면 떠오르는 배냇말은 뜬금없게도 ‘시용향악보’이다. ‘시용향악보’는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악보집이다. ‘시용향악보’를 둘러싼 이바구도 이제 서서히 떠오른다. 잠깐의 딴따라생활을 하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와 대학원을 다니면서 짱박혀서 열심히 공부하는 척 하고 있을 즈음에, 어찌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우창수가 느닷없이 찾아왔다. 뜬금없이 ‘시용향악보’를 보고 싶다고 했고, 마침 내가 있던 연구실에 목판인쇄한 것을 본떠놓은 영인본이 있어서 함께 보았다.
그리고는 그는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거의 일주일 가까이 연구실과 학교 아래 술집과 내 기숙사방을 갈지자로 왔다리갔다리 하며 같이 놀다 갔다. 일주일 보다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내가 그 즈음 민속학 공부를 할 때였는데도 ‘시용향악보’에 별로 눈길을 두지 않았는데 그는 노래가 어떻고 정간보가 어떻고 하면서 머시라머시라 밤이고 낮이고 떠들어댔다. 나는 노래하는 우창수 탓인지 덕인지 우리 옛 악보에 눈길을 두게 되었다.
지금도 그가 나를 보러 온 건지 제 말대로 ‘시용향악보를 보러’ 온 건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도 알 될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우창수를 언뜻 보면 믿기지 않을 이야기지만 그의 노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있음직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참말 같은 노래의 싹수
우창수는 가수이다. 그러나 그는 또 날라리이다. 삼색띠 때깔 울긋불긋한 풍물옷을 입고 날라리를 부는 우창수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많이 넉넉한 몸매에서 나오는 터질듯 한 그의 날라리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안 들어봤으면 말을 하지 말라던가. 노랫말을 쓰고 가락을 짓고 기타를 뜯으며 노래를 부르는 가수 우창수의 모습 위로 나는 자꾸 또 다른 배냇꼴이 떠오른다.
포크음악에 귀가 열려 기타를 메고 교정을 떠돌던, 누리에 가득찬 폭력에 분노하고 몸부림치던, 그 몸부림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밥이 되던, 민요를 배우고 날라리를 배우며 풍물치고 노래 짓던, 집회와 농성마당에서 아픔과 슬픔 나누던, 그 모든 우창수 노래의 싹수를 나는 무엇 하나로 이야기할 수 없다. 이들 하나하나가 그가 마신 술이 되고 그의 눈물이 되고 그의 노래가 되었다.
온 누리 노래나무
그는 요즈음 나무를 심으러 다닌다. 그의 삶의 길에서 찾아 그의 마음밭에서 길러낸 여러 가지 노래나무를 여기저기 심느라 바쁘다.
일하며 시 쓰는 사람들의 노래나무,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나무, 이야기가 노래가 되고 노래가 이야기가 되는 노래나무, 온누리 생명 가득 꿈꾸는 노래나무….
우창수의 노래나무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노래나무가 되어 저마다 제 울림 내는 노래의 숲이 되길 바란다. 나는 그 숲에서 졸다가 걷다가 노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