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이 아름다운 건샛길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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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로베니아 류블랴니차 강. 황희연 제공
여행 가이드북에 늘 대표적인 관광지로 소개되지만, 특별한 행사가 열리지 않는다면 작정하고 찾을 필요가 거의 없는 장소가 있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이나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같은 곳이다.
여행자들이 도시의 한 점과도 같은 광장을 본의 아니게 자주 들르는 이유는 도심의 특이한 구조 때문이다. 광장은 도시의 한복판에 발달해 있다. 원형의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는 거리 사이에 유명 관광지들이 붙어 있으니, 이놈의 광장은 원치 않아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익숙한 쉼터가 되고, 작정하지 않아도 하루에 몇십 번씩 들러야 하는 도돌이표 같은 장소가 된다.
◆광장 옆 샛길 풍경
동유럽의 알프스로 불리는 슬로베니아의 작은 도시 류블랴나에도 이와 비슷한 광장이 하나 있다. 슬로베니아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시인 프란체 프레세렌의 이름을 딴 프레세렌 광장이다. 이 나라의 국가에 가사를 지어 붙인 시인 프레세렌은 한때 이십여 년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젊은 여인과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그녀의 이름은 류블랴나의 부유한 상인의 딸 율리야.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두 사람의 사랑은 로맨틱한 이 도시의 전설이 되었고, 지금은 두 개의 동상으로 남아 프레세렌 광장을 지키고 있다. 한 사람은 광장의 중심에, 한 사람은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2층 건물 벽면에.
류블랴나의 프레세렌 광장은 '사랑스럽다'는 의미의 도시 이름처럼 광장의 모든 풍경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다른 광장보다 상대적으로 작고 아담해서? 세계 각국의 거리 예술가들이 흥을 돋워주기 때문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류블랴나의 별 볼일 없는 광장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건 사실 광장 자체가 아니라 그 주변의 산책로다. 광장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 나오면 숲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짙푸른 초록색의 류블랴니차 강이 나오고, 거기서 조금 더 바깥으로 걸어 나오면 걷기 좋은 산책로가 이어진다. 류블랴나 성으로 올라가는 숲속 산책로다.
단돈 1.5유로만 내면 류블랴나 성에 오르는 야외용 엘리베이터 푸니쿨라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동네 뒷산 같은 그곳을 푸니쿨라에 의지해 단숨에 오르는 것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여행법이다. 류블랴나 도심이 아름다운 이유는 번잡한 상업 지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예쁜 숲길이 소담스럽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 즐거움을 애써 저버리는 건 정말이지 바보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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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산책로 정동길. 그러면서도 번잡하지 않은, 광장과는 다른 샛길의 아름다움을 전해주 는 곳이다. 조선영상미디어 이구희기자 poto92@chosun.com
◆걸을수록 매력 있는 거리
세계의 수많은 광장과 마찬가지로 방사형의 도로가 잘 발달해 있는 서울광장은 해마다 봄이 되면 각종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는 거리 공연장이다. 지나가다가 자주 들러도 다행히 지겹지 않고, 의외로 볼거리가 가득하다. 5월의 서울광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서울광장 나들이를 이것으로 끝내고 마는 것은 흥미로운 추리소설을 반쯤 읽다 팽개치는 것과 비슷하다. 서울광장 바깥으로 한 걸음만 걸어 나가면 세계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아름다운 산책로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걷고 싶은 거리 1호' 자리를 내주지 않은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산책로 정동길이다.
덕수궁 대한문 옆 골목부터 서대문 앞까지 이어지는 짧은 산책로는 번잡한 서울광장과는 사뭇 다른 샛길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곳이다. 봄에는 싱그러운 신록이 우거지고, 가을에는 일부러 쓸지 않은 단풍이, 겨울에는 융단처럼 희고 탐스러운 눈이 구불구불한 거리에 수북이 쌓인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거주지였던 정동이 이처럼 이국적인 산책로로 바뀐 것은 벌써 100여 년 전의 일. 20세기 초 개항과 함께 정동에 신문물의 상징 같은 서양 공관과 예배당, 학당들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이곳에 이색적인 도심의 샛길이 만들어졌다.
지금도 정동길에는 옛날 대법원과 가정법원을 개조한 서울시립미술관과 1897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 벧엘 예배당,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를 본떠 만든 전통예술 전용극장 정동극장, 100년 전통의 배재학당 동관,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로마네스크양식의 성공회성당,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어수선한 정치 상황을 피해 고종 황제가 피신을 떠났던 구 러시아 공관 등, 개화기 도시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근대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다. 여기에 최병훈 목공예 작가가 화강암과 벚나무 등 자연을 소재로 만든 19개의 매끈한 아트 벤치와 울창한 가로수들이 정동길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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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걷기 열풍에 휘말리기 전부터 서울 사람들이 발가락이 부르트도록 걸어 다니며 추억을 만들어낸 서울 정동길. 이 길을 걷는 동안만큼은 유럽에서 제일 숲이 많은 도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도 결코 부럽지 않다. 그들의 산책길에는 나무만 울창하지만, 우리의 산책길에는 나무와 더불어 '역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에서 하차해 덕수궁 방면 2번 출구로 나오면 곧바로 정동길이 이어진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정동제일교회를 지나 정동극장과 배재학당 동관, 구 러시아 공관까지 정동길의 유적들을 꼼꼼히 둘러보며 산책한다. 정동길을 모두 훑어봤다면 내친김에 길 건너 서울역사박물관까지 둘러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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