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자 체험기<흔들고 쓰리 고(three go)>
안 종 문
정년을 오 년이나 앞두고 명퇴를 하였다. 여윳돈이 조금 생겼다. 무엇을 위해 사용해야 할까를 궁리했다. 부부 여행을 할까 아니면 부모님을 위해 사용할까. 여러 가지 생각 중에 부모 역할을 남부끄럽지 않게 해보려는 심정이 가장 앞섰다. 자녀들의 장래 혼사를 위해서 뭔가 이바지할 수 있어야 될 것 같았다.
중산층 사람들이 흔히 선택하는 것이 부동산이다. 그중에서도 만만한 것이 땅이거나 집이다. 나 역시 아이들이 사는 강북의 빌라나 아파트에 투자를 겸해서 살면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식이 되지 않을까 여겼다.
삼월 초였다. 인터넷으로 보아둔 매물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러 서울로 올라갔다. 소문을 전해들은 주위 집안사람들이 극구 말렸다. 서울 사람들이 살기를 선호하는 지역이 아니므로 전세로 살면 살았지 훗날을 내다보고 투자할 곳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만의 순진한 생각은 한갓 무지개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나의 고집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심중을 꿰뚫어 볼 것을 권했다.
첫 나들이 결과는 공릉동 빌라와 재건축 예정 아파트, 그리고 질녀가 소개해준 방배동 5구역 재건축 빌라였다. 부동산 투자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와 상식만 수집하였을 뿐 언뜻 계약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고, 잠은 딸아이의 방에서 해결했다.
서울 체류 이튿날 오전이었다. 부동산 '부'자도 모르는 우리 부부를 도와주기 위해 동행해주었던 사람은 바로 위의 형수였다. 소개소 주인의 설명에 날카로운 질문을 하면서 조목조목 확인하는 모습에 나는 놀랬다. 조합원 자격을 갖추기 위해 손쉽게 투자하는 빌라 구매는 평당 가격이 단독주택보다 갑절로 비싸다며, 가능하면 힘을 합해서 사더라도 단독주택을 사기를 권했다. 배운 것이 많은 것에 만족하며 대구로 돌아왔다.
삼월 중순이었다. 부동산 공부 삼아 구미가 당겼던 역세권 빌라 경매에도 신청해보았다. 엄청난 가격 차이로 헛물만 켰다. 패전 장수가 된 기분이었다.
경매 탈락 일주일 후 그러니까 우리 부부가 아무 소득 없이 되돌아 왔던 일이 있었던 날로부터 정확히 보름 후 재차 서울로 올라갔다. 내 심정은 나라를 위해 황산벌에 출전한 계백장군의 마음이었다. 아니 창을 어깨에 울러 메고 집을 나서는 사냥꾼 모습이었다. 제법 큰 짐승을 잡아와서 겨울을 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남들의 재테크 성공 소문들을 여러 차례 듣고만 살아왔었다. 나를 믿고 시집와서 사글세 살림으로 신혼을 차렸던 아내는 집을 마련하랴 아이들을 키우랴 근 삼십 년 박봉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왔다. 이제는 뭔가로 내가 단단히 보답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저녁과 잠은 남양주시 별내에서 사는 초당 둘째형님 댁에서 해결했다. 열세 살 위의 형님이 경험해온 귀한 옛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즐겁게 1박 했다. 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각별한 형님과 형수님이다.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우리 집안의 진정한 부동산 고수는 바로 위의 형님이었다. 국내 굴지의 H건설에 근 30년간 근무하면서 재건축 업무에 밝았다. 함께 매물들을 살펴보기로 한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둘째 형님 내외분은 우리들에게 오전 일정이 비었으므로 방배동 가는 길목에 위치한 봉은사 관광을 권했다.
놀랍게도 봉은사는 가회동에서 강남으로 이전한 경기고등학교 바로 앞 큰 대로변에 위치하여 있었다. 홍매화가 만발하여 우리를 반기었고, 큰 법당 안을 기웃거리자 많은 사람들이 좌정하여 예불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부부도 한 자리를 잡았다. 눈을 감고 살아온 날들을 회상해보았더니 나의 세상살이가 벌써 육십 년 세월이다.
스님의 염불소리는 귓전에 울리기만 할 뿐 살아온 인생의 주요 장면들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내 눈앞에 펼쳐졌다. 고향 집 평밭에서부터 진갱빈, 그리고 중학교 시절의 자치 집 네 곳을 비롯하여 스물다섯 곳이 넘었던 살던 집들과 관련된 추억들이 쉼 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디서 산다는 것은 중요하다. 삶의 무늬를 어떤 색깔 어떤 매듭으로 수놓는 것에 결정적인 몫을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교직 30년 후의 투자를 어디에 할 것인가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리라.
아내가 그만 볼 일을 보러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법당을 나와서 휴대폰을 꺼내어 시간을 확인했다. 폰 소리를 무음으로 해놓았기 때문에 바로 위의 형님의 전화가 왔었고, 문자도 왔었다.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인가를 물었더니 어떤 부동산에서 좋은 물건을 소개하는 전화를 받았다며 먼저 그 사람과 해당 물건을 상담 받고나서 직접 확인해보라는 것이었다.
안내해준 단독주택은 다른 매물에 비해 가격이 쌌으며, 위치도 좋았다. 부동산 소개소 아주머니의 설명에는 힘이 넘쳤다. 잘 구경하였다며 인사를 하고는 약속 시간에 도착한 형님을 만나려 자리를 떳다. 설명에 힘이 들어있는 매물권유에는 함정이 있었다. 대지 50평을 가진 건축물이라도 아파트 2채 분양 지분자격을 갖추지 않은 매물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형님과 함께 만나기로 했던 부동산 소개소의 분위기는 아늑했고, 중년 부부의 매물 설명은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우리의 의도를 알아차린 주인은 보유 현금에 알맞은 빌라 1채와 보유 현금에다 대구 집까지 팔아서 투자해야 되는 단독주택 1채, 그리고 두 형제가 힘을 합해서 함께 투자할 가치가 있는 상가 지분 소유 단독주택 1채를 성의껏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함께 차를 타고 해당 매물을 직접 안내하며 추가 정보를 들려주었다. 무한 신뢰를 느꼈다. 소개해 준 매물 중에 뭔가 라도 골라서 계약을 꼭 성사시키고 싶었다.
백록 형님과 우리 부부 셋이서 선택한 것은 힘을 합쳐서라도 상가 지분 소유 단독주택을 사기로 했다. 투자비용과 그에 따른 결과 이득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식이었다. 매물 가격을 좀 깎아보자 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의중을 떠보았더니 오히려 웃돈을 더 받겠다는 답변을 듣고 말았다. 소개소 주인은 자신이 성의껏 설득을 하겠으니 좀 더 기다려보자고 권해서 계약을 내일로 미루었다. 마음 한편으로 잘 되었다 싶었다. 형님도 형수님과 상의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백록 형님을 근무하고 있는 일터로 보내드리고, 한강변으로 차를 몰고 가서 시간을 보냈다. 투자 일에 힘을 합쳐준 형님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다. 나를 대학에 보내준 은인으로 평생 잊지 못하고 살았는데 이번 일에도 기꺼이 힘을 보태주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은 집사람의 생일이라서 가족 회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딸아이가 남산타워 스카이라운지 특별 식사를 예약해두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므로 남산한옥마을 관광을 했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아들을 만나서 딸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던 케이블카 약속장소로 갔다. (이와 관련 이야기는 별도로 남기련다.)
그날 밤은 딸아이의 집에서 잤다.
이튿날 아침에 형님이 전해준 소식은 안타까웠다. 공동투자가 어려우니 우리네가 알아서 투자 매물을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형수님이 가정 사정을 고려해서 힘에 버거운 투자를 만류한 까닭이었다.
아내는 우리 힘에 무리가 가지 않은 빌라 투자를 원했다. 분양 때 일정액의 추가금을 부담하더라도 분수에 어울린다는 주장이었다. 반면에 나는 가진 재산을 몽땅 투자해야 하는 단독주택을 원했다. 나의 고집을 못마땅해 하며 연금으로 생활해야 하는 우리 힘에 버겁다며 아내는 기어코 눈물을 보였다. 나 역시 눈물로 맞대응했다. 당신의 30년 앞날을 위해 뭔가를 공헌하고 싶다면서. 아내는 마음 비우며 평안하게 건강히 살면 될 것을 왜 나이들만큼 들어서 뒤늦게 모험을 하며 노심초사 오 년 세월을 살려 하는지를 원망했다. 이에도 굴하지 않고 당신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나 역시 평안한 마음으로 시골과 대구를 오가며 글쓰기 여생을 살고 싶어서 이며, 이는 나의 마지막 큰 소원이라는 호소로 버티었다. 아내는 말리지 못했던 자신을 원망하지 말라며 어렵게 양보해주었다.
흔들고 쓰리 고 성공은 판세를 읽어내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운이 받혀주어야 한다. 이번 부동산 투자 과정들을 되짚어 하나하나 회상해보니 하늘이 준 큰 선물로 느낀다. 허름한 국수집에서 점심을 먹다가 옆에서 식사를 하던 동네 아주머니가 신뢰할만한 부동산 가게가 어느 집이라며 정보를 주었던 것이며, 상가 매물 공동 투자가 물거품이 된 것 등등이다.
대구 집을 팔아서 서울에 아파트 두 채를 갖는 기회이다. 승패 관건은 재건축 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되는 것에 있고, 금리 인상이 크게 일어나는 변고가 없어야 한다. 이 역시 하늘 몫이요 내 스스로 선택한 나의 길이다.
살다 보면 기회다 싶을 때가 있다. 실패의 위험성을 느끼지만 성공했을 때의 기쁨을 예상하고 용기를 내어 참여하게 된다. 운이 따르기를 염원하면서. 먼 훗날 내 후손들이 2015년 3월 25일의 종문 할아버지의 무용담을 널리 회자할 수 있는 날이 있기를 꿈꾸어 본다.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은 쓰리 고(three go)의 희열을 맛보기 어렵다. 나는 상대의 피가 10장인 상황에서도 곧잘 쓰리고를 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보기 좋게 성공하는 경우가 있고, 그것을 두 눈으로 생생히 목격하는 사람들은 그 결과에 경악한다. 확률 게임의 즐거움을 아는 것뿐인데도 주위의 사람들은 그러한 나를 화투판의 교장 선생님이라 부르며 함께 한바탕 크게 웃곤 한다. 바가지를 덮어쓸 때의 손해 속칭 ‘끗발’이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고 놀이를 즐기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는가.
지니고 있는 재산을 그냥 깔고 시간 보내며 사는 것은 화투판 뒷전에서 남의 놀이를 그저 구경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인생은 자신의 생명이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한바탕 놀다 가는 것이 아니랴. 기꺼이 참여하면서 즐겨보리라.
첫댓글 어제(29일) 오전에 쓴 글을 퇴고도 하지 않고서 카페에 올려 많이 죄송한 마음입니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다듬어서 올리겠습니다. 지금 글도 흔적을 남겨놓은 정도의 글이라서 문학성을 띄기 위해서는 없앨 부분을 크게 해야 할 듯하네요. 일주일 정도 익혀보겠습니다. 흥분된 감정이 가라앉으면 남에게 전하려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 지가 보이겠지요. 험한 글 읽으보시느라 힘드셨지요.
좋은 운으로 뜻한대로 잘 해결되시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장외 홈런을 치는 기분으로 5년을 기다리며 잘 살아보겠습니다. 나날이 행복하시기를 ....
참, 이 글이 앞 글 내용과 상충되어 부끄럽습니다. 더욱 익혀서 맛있는 글이 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우리 카페에 들어와서 위의 글을 읽어보시는 분께서는 절대로 저와 같은 무모한 투자를 흉내내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부동산 투자는 단순한 놀이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 억이 오가는 재 테크가 기 백만 원의 화투판 놀이로 결코 비교되어서 아니 되지요. 웃자고 표현한 문학적인 글로 잘 새겨 읽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떤 부동산 소개소의 말을 믿고 좀 더 싸다고 덜렁 계약하였다면, 26평, 34평 2 아파트가 아닌 1개만 주어지는 물건으로 계약될 뻔 하였더랬습니다. 건축대장 상으로 1,2,3층 모두가 집 아이콘으로 표시된 건물이어야 하지 그렇지 않은 단독주택은 보기는 멋 있어도 평수가 크다고 모두 2채를 분양받는 것이 아님
그 사람의 말을 믿고 계약하였더랬으면 아파트 한 채가 허공으로 날아갔으므로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가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것 같네요.
부자들의 부동산 투자원칙 제 1조는 여력되는한 단 1m라도 강남중심권(종전은 광화문구청 세종대왕 동상, 지금은 강남구청)이라하니 강남의 절반가격인 방배동은 장래 가능성이 크고 실제 진행형이니 투자성공 가능성이 높아보이네. 문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니 예상외 난관극복 인내가 ~
감자씨 심어 놓았으니 무탈하게 잘 수확되도록 하늘 우러러 살겠습니다.
투자할 곳 가보기를 강추했던 순희 조카님 내외, 귀한 시간 내어주시면서 온갖 도움을 주셨던 형님 내외분의 고마움을 늘 생각하며 하루하루 웃으며 살겠습니다.
내일 모레 이틀간 집 바로 옆 수성고등학교 보강 수업 7시간을 하고 나서 주말까지 대구에 지내다가 다음 주 초에 시골 진갱빈에 들어가겠습니다.
격려와 위로 말씀 고맙습니다. 잘 지내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