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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좋은 점은 사람들과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교류할 수 있는 최상의 도구라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거나 말을 하게 할 수 있으며 전시회를 통해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
대구미술관이 프랑스 매그재단과 공동으로 기획한 ‘모던라이프전’(3월27일까지) 아카이브에 소개된 세계적 설치미술가 타다시 카와마타의 말이 귀에 쏙 들어온 날입니다.
2.
마르코 샤갈, 후안 미로, 알베르토 자코메티, 박서보, 이우환 등 이름만 들어도 마음 설레는 대가들의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러 지난 주말 멀리 대구를 다녀왔습니다. 도심에선 멀리 떨어진 대구미술관은 북대구 톨게이트에서 5분거리에 있어 외지에서 찾아가기엔 접근성이 좋더군요.
'모던라이프'전은 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열렸는데 홍보가 잘됐는지 쌀쌀한 날씨에도 관람객들로 붐볐습니다. 아마도 2013년 4개월간 33만명이 찾을 만큼 대박을 터트린 '쿠사마 야오이'전 이후 가장 많은 인파가 찾은 것 같습니다.
지역은행인 DGB대구은행에서 약 5천여장의 입장권(1매에 10,000원)을 구매해 우수고객에게 배부한 것도 그림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데 일조 했을 겁니다. (그래서 문화의 자양분이 되는 이런 향토은행들이 지역에 꼭 필요합니다)
장병국의 작품외 / 대구미술관
3.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은 78명 작가의 대표작 144점입니다.
대구미술관보다 매그재단 소장품이 더 많았고 무엇보다 실물을 보기 힘든 전설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됐습니다.
자료를 살펴보니 매그재단은 미술품 컬렉터로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매그 부부가 소설가이자 당시 문화부장관이던 앙드레 말로의 권유로 만든 프랑스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더군요.
조르주 브라크, 알렉산더 칼더, 샤갈, 바실리 칸디스키, 자코메티등 현대작가의 작품을 무려 1만3천점이나 소장하고 있다니 말만 들어도 입이 딱 벌어집니다.
이우환 작품 / 대구미술관
4.
전시는 풍경-기억, ‘추상’, ‘글’ ‘초현대적 고독’ ‘재신비화된 세상’등 7개 카테고리로 나눠 한편의 스토리와 같은 방식으로 기획했습니다.
대구미술관과 매그재단의 소장품을 한 자리에 선보이면서 하나의 개념을 이야기로 재구성했다고 하는데....
전시에 집중해 그림을 한점 한점 감상하며 풍부한 이야기에 몰두하다 보면 2시간의 관람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클로드 비올라 작품 / 매그재단
5.
거장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예술은 말없이 교류 할 수 있는 최상의 도구"라는 '타다시'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작품 속에 함축된 작가의 속내를 유추해 보려면 역시 작품을 보며 정서적인 교감과 소통을 해야겠죠. 작품 속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입상 / 매그재단
6.
모던라이프전 리플릿은 자코메티의 입상에 대해 “2차대전이라는 참극, 서구 문명의 종말을 겪은 개인의 이미지”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난 진품을 유심히 바라보며 다른 인상을 받았습니다. 황폐한 세상에서 생존의 존엄을 웅변하고 있는 남자의 헐벗은 모습입니다.
자코메티는 “거리를 걷는 남자는 무게가 없다. 죽었거나 혹은 의식이 없는 남자보다 훨씬 더 가볍다. 걷고 있는 남자는 자신이 다리로 균형을 잡고 있고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철학적 사유가 번뜩이는 말입니다.
7.
무릇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아카이브에는 작가의 예술관이 담겨있는 글귀가 붙어있습니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유영국)”
“내 그림은 담벼락의 낙서에서 비롯되었다(권오봉)”,
“나에게 그림이란 무언가 다른 것, 손으로 만든 타인을 감동시키는 어떤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하지만 그 역시 하나의 정신적 놀이이며 명상 혹은 기도와 같은 행위다(김창열)”
작품을 보고 작가의 생각을 포착하고 작가의 글귀를 읽고 작품의 진의를 내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도 그림 감상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입니다.
샤갈의 '삶과 후안 미로 작품 /매그재단
8.
몽환적이고 강렬한 색채로 유명한 샤갈의 500호짜리 대작 ‘삶’ 앞에 섰을 땐 잠시 작품에 압도당했습니다.
이 그림은 매그재단 건립을 앞두고 매그 부부가 샤갈에게 직접 의뢰한 것으로 인간의 결혼과 탄생 등 삶의 대서사가 함축된 작품입니다.
대구미술관은 이 그림을 걸기위해 프랑스 문화부에 허가를 맡아야 할만큼 귀중한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을 또 어디서 만날수 있을까요.
알렉산더 칼더외 / 매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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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선 아쉬운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카테고리마다 설명을 써놓았는데 내용중 어떤 부분은 비문(非文)이나 과도한 복문으로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였습니다.
예를 들어 ‘말’이라는 카테고리엔 “거대하면서도 보잘것 없는 이데올리기를 수단으로 삼아 모더니티는 일종의 응답으로서 대항권력을 조작했다”고 썼더군요.
마치 억지로 번역해놓은 듯한 불친절한 문장입니다. 대구미술관장은 이 글을 이해할까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왜 그리도 어렵게 쓰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상징과 기호로 가득한 그림이 더 헷갈릴 수 밖에요.
타다시 카와마타 작품 / 대구미술관
10.
객원큐레이터인 올리비에 들라발라드는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회화의 전통을 가진 두 미술계의 만남을 축하하는 의미를 가진다"며 "작품을 통해 양국 미술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발견하는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뜻깊은 전시를 지방에서 여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관람객들도 진한 감동을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좀더 세심하게 준비했다면 전시의 품격도 훨씬 더 높아졌을 겁니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박상준인사이트>전시회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