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에 시골집을 떠나오던 날 아침, 비가 그쳤음에도
사방에서 샘쪽으로 쏟아져 흐르던 물의 두께가 10센티미터는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흙탕물이 샘으로 흘러 들어가던 모습이 생생했습니다.
앞밭에 콩들도 그 때까진 괜찮았는데 워낙에 비가 오는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쓰러지던 콩대였으니 걱정되었고
우선 되는대로 쌓아놓은 모퉁이 무너진 돌담도 잘 버티고 있는지
방안에 물이 새지는 않았을까?
미처 다 바르지 못했던 창호문도 마저 끝내야 하고......
가지는 너무 커서 땅에 닿아서 썩고나 있지는 않는지,
두 덩이 앙증맞게 맺혀 설렘을 유발한 복수박도 보고싶고
푸른 참외가 노랗게 잘 익었을런지
포도는 껍질이 두껍고 너무 시었었는데 익으면 나아지려나?
꼭꼭 밟아둔 미나리도 다시 잘 돋아났겠지?
빡빡머리 밀듯 해놓은 부추도 궁금했습니다.
봉화 직행버스로 가는 게 더 비싸기도 하지만
영주로 끊어가는 기차여행의 목적은 여기에 있기도 합니다.
영주시내 카톨릭병원앞에 있는 복어전문점을 저는 좋아합니다.
냉동복어겠지만 일여덟 토막 정도 들어가는 매운탕이 8천원인데
콩나물을 비벼주는 것이 해장뿐만아니라 평소에도 속을 확 풀어줍니다.
좀 짠 것이 흠이긴해도 소백산 탁주를 곁들이면 참 행복합니다.ㅎ
고향마을 장터 허름한 방앗간 처마밑에 제비집이 튼튼해보입니다.
고개를 내밀었다가는 다시 들어가버린 새끼제비까지 식구들이 서너마리 정도
콩밭이 장마에 흐트러짐이 별로 없습니다.
대견합니다.
올해에는 좀 촘촘하게 심은 덕입니다.
아랫집 아지매 말씀으로는 저러면 알이 잘 크지 못한다고는 하셨지만......
지지대랑 끈은 미리 다 해놓은 상태라 중간지지대만 추가하고 콩대옆으로 둘어주면 되는데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일단은 그냥 뒀습니다.
화단에 열렸던 복수박 두덩이는 다 녹아버렸습니다.
아깝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뒤안(뒷뜰)에 작물들도 잘 자라고 있는데
쇠울을 설치하고 망으로 얽어 놓은 곳에 참외 네 줄기도 하나만 빼고
다 녹아 버렸습니다. 방울토마토도 마찬가지고.
땅에 떨어진 참외 두 개를 주워서 상한 부분 도려내고 깎아 먹어보니
그리 달지는 않았지만 시원한 느낌은 있었습니다.
봉숭아는 앞마당이나 뒤안이나 참 잘 자랍니다.
우후죽순이 아니라 우후봉숭아라고 해야겠습니다.
가지도 가지를 많이 쳐준 덕인가? 작년보다 확실히 많이 달렸습니다.
한 세숫대야 땄습니다.
살살이꽃(코스모스)도 봉숭아와 같이 생명력이 강한 놈들입니다.
아직 꽃은 피질 않았습니다.
무는 웃 자라서 꽃이 다 피고 대가 억세지는 걸 꽃대만 꺾어서 그냥 내버려뒀습니다.
씨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상추도 이미 씨방이 말라가는 지라 꺾어뒀습니다.
들깨는 참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 번 장마에 많이 쓰러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멀쩡했습니다.
고추와 호박은 영 신통치않았고요.
옥잠화는 옥비녀를 닮아서 이름도 그러한데
왜 옥빛이 아니라 눈부신 하얀색인지......
상추는 윗부분을 따서 안채 토섬위에 볕받으라 둡니다.
황토방 아궁이에 가득찬 땔감들은 모두 젖어서 뒷마당에 내어서
이틀을 꼬박 말렸습니다.
떡이 된 재는 긁어서 고춧밭에다가 던져두었습니다.
거름도 하고 잡초도 막을 겸 해서.
창고안에도 물기가 차서 곰팡이 세상이라 물건들을 꺼내서 바닥에 널었습니다.
구름이 많았으나 구름을 벗어난 볕은 꽤나 강렬하여 하루 정도 집안 여기저기를
말릴 수가 있었습니다.
마른 땔감들은 다시 상자안에 모아두고
2주 전에 말끔히 잡초를 뽑아서
왼쪽의 쫑취(울릉도나물이라고 부름) 밭과 부추밭 중앙의 보도볼록위에 버렸는데
장마로 인해 풀이 잘 자라고 있네요. ㅠㅠ
이제부터는 볕이 들테니 그냥 두면 마르겠지요?
2주만에 부추가 저렇게 잘 자랐다니 놀랍습니다.
오른쪽 머위가 보이는 곳의 호박 두 포기는 성장이 멈춰버렸습니다.
사랑방 문짝을 덮고 있던 방한막은 걷어냈습니다.
비닐이 삭아서 부스러기가 나오기도 했고 미관상으로도 보기가 좋잖았습니다.
겨울의 외풍을 막을 거리를 생각해봐야하겠습니다.
사랑방과 어머니방의 문짝도 다시 창호지를 발랐고
창고안에서 젖은 천막도 바깥마당 너른 곳에서 말립니다.
바깥채 도서실/생활문화관에도 환기를 시켰습니다.
습기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기에 앞으로 곰팡이가
얼마나 생길지 마음이 좀 쓰이네요.
마을입구 큰기와집 돌담에 능소화가 화려합니다.
어사화답게 늘어진 모습이 당당히기까지 하고
떨군 잎들이 바닥에 쌓이는데도 여전히 뭉쳐서 활짝 편
꽃송이들이 파안대소하는 미인의 얼굴같기도 합니다.
시골로 가는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오른쪽 발목 부분이 시큰거리고 제법 아팠습니다.
전 날 저녁에 우이천을 좀 걸었을 뿐인데......
종종 그런 일이 있었기에 대수롭지않게 여겼는데
오전에 공원비탈길에서 작업을 할 때에도 전해지던 통증이 마음에 걸렸지만
걸을 만은 했었으므로 큰 걱정은 하지 않았고.
영주에서 복매운탕 먹을 때까지는 크게 못 느꼈던 것 같은데
봉화에 도착해서 버스에 내릴 때부터 불에 데인 듯 극심한 통증이
확 덮친 것 같았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얼음찜질을 하고 잤는데도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통증은 여전했습니다.
오른쪽 발바닥 바깥쪽으로 디디지를 못하고
안쪽에 힘을 주고 절뚝거리며 한의원을 찾아서 봉화읍내를 돌아다녔습니다.
종종 가던 한의원 세군데와 공용정류장 근처의 한 곳 모두 광복절 휴일이라
휴진이었습니다.
도리없이 토요일 저녁에도 얼음찜질만 열심히 해야했습니다.
파스도 붙이고.
다행인 것은 장마에도 집안에 손볼 게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임시로 보수해놓은 돌담도 엉성했지만 무너지지 않았고
콩대도 세우지 않았으니까요.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신기하게도
골이 지끈거릴 정도의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붓기하고 복숭아뼈 밑 발등바깥부분의 뼈에 아픔이 조금 남아있긴해도
하룻밤만에 그렇도록 큰 차도가 있다니......
냉찜질덕인지 봉화읍내를 계속 돌아다닌 것이 오히려 효과를 본 것인지 모르겠네요.
올해에는 포도가 몇 송이 달리지도 않고 껍질도 두껍고 맛도 너무 시었는데
일단 아침 첫 버스를 타기 위해서 서둘러 따서 비닐봉지에 담아서 냉장보관했습니다.
포도주 담을 용기를 찾아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그냥 그렇게 해두고 나왔습니다.
화요일은 침맞느라
수요일은 정형외과에서 골절여부를 알아보려고
일터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괜히 무리했다가 밥줄 끊어질새라.
파스 갈아붙이고 붓기가 싹 빠질 내일 아침을 기대합니다.
첫댓글 조심 할 연세입니다.
다행히 골절은 아니라서
크게 고려는 안 합니다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