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조망 모티브의 반지는 톰 빈스(Tom Binns at Koon with a View). 2 상아 모양의 자석 귀고리는 지방시(Givenchy). 3 금속 원뿔이 달린 사슬 팔찌는 주미 림(Joomi Lim at Product Seoul). 4 못과 면도날 참이 달린 체인 팔찌는 베르사체(Versace). 5 동물 발톱 모양의 뱅글은 파멜라 러브(Pamela Love at Mue). 6 금속 원뿔 세 개가 달린 반지는 주미 림. 7 가시 넝쿨 초커는 레주렉션 바이 주이(Resurrection by Jui). 8 스프링 가시가 잔뜩 달린 팔찌는 라몰라(La Mollla at Beaker). 9 손가락을 감싸는 못 형태의 반지는 까르띠에(Cartier). 10 진주가 달린 철조망 목걸이는 타사키(Tasaki). 11 동물 발톱 모양의 반지는 버나드 델레트레즈(Bernard Delettrez at Beaker). 12 검정 큐빅이 박힌 뭉툭한 원뿔 반지는 에디 보르고(Eddie Borgo at Mue).
밤하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지중해 푸른 바다를 머금은 에메랄드, 먹음직스러운 와인빛 루비 등등. 세상에는 우리 여자들을 홀리는 무궁무진한 광물이 존재한다. 숙련된 장인들은 땅 속에서 캐낸 원석들을 매만지고 다듬어 값 나가는 1등급 보석으로 재탄생시킨다. 거기에 사랑의 서약과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러브 스토리까지 가세하면, 여자를 한순간에 동화 속 공주로 변신시켜줄 마법의 아이템으로 둔갑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음과 양이 존재하는 법. 공주와 마녀, 왕자와 거지처럼 아름다운 광물 반대편에는 무시무시한 쇳덩어리가 있다는 사실.
이번 시즌 섬세하고 예민한 장인의 손길이 아닌, 망치와 무두질로 단련한 철물점 출생의 주얼리들이 하이패션 무대에 데뷔했다. 뾰족한 못과 가시 철조망, 면도날, 스터드, 옷핀등이 뽀얗고 가녀린 여자들의 목과 손목, 귓불 등에 무차별 ‘공격’을 시작한 것. 까르띠에는 태어나 벽에 못 하나 박아본 적 없는 여자들에게 뾰족한 못을 모티브로 한 ‘저스트 앵끌루’ 컬렉션을 선보였다. 가격은 1,000만원대지만 매장에서는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중. 심지어 패피들은 진주 팔찌처럼 여러 개 겹쳐 차는 게 더 근사하다고 말한다.
가시 철조망 모티브 또한 이번 시즌 히트 아이템. 타사키는 미하라 야스히로가 디자인한 가시 철조망 목걸이를 선보였다. 진주 명문가답게 목걸이 끝을 진주로 얌전하게 마무리했음은 물론. 또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사일래스(자기 몸을 채찍과 철사로 학대하는 오프스 데이의 일원)가 반가워할 법한 로다테의 2단 철조망 목걸이와 브로치, 귀고리까지(남자들이여, 지독하게 스타일리시한 이 가시 철조망 목걸이를 한 여자 친구와는 격한 포옹을 피하시라!). 알렉산더 왕 역시 발렌시아가 데뷔 무대에서 두꺼운 철조망 뱅글을 선보였다. 그는 철물점에서 구입한 다양한 굵기의 철사를 자르고, 묶고, 꼬아 완성한 철제 소품을 컬렉션 곳곳에 활용했다. 도나텔라 베르사체 또한 늘 그렇듯 ‘쎈’ 하드코어를 선택했다. 고드름처럼 크고 날카롭고 뾰족뾰족한 못과 가시를 잔뜩 박아 넣은 초커, 귓불을 관통할 듯한 아찔한 못 귀고리, 면도날 팔찌 등등. 엄청난 포스의 이 무서운 언니들이야말로 뒷골목 담벼락에 삐딱하게 기대선 채 잘근잘근 면도날을 씹을 것 같은 이미지다. 그야말로 웬만한 강심장 남자가 아니라면 접근금지!
지극히 여성스럽고, 한없이 사랑스러운 니나 리치도 액세서리만큼은 날카롭고 아찔한 접근법을 선택했다. 보드라운 밍크가 달렸지만 양 끝은 찔리면 피가 날 듯 뾰족한 형태로 완성됐다. 지방시 매장에도 코뿔소 뿔처럼 생긴 귀고리가 진열돼 있었는데, 밤길에 괴한을 만났을 때 호신용으로 써도 될 만큼 위협적이다. 레주렉션의 가시 넝쿨 목걸이는 방심했다간 응급실로 직행할 수 있을 듯. “조심해서 착용하세요”라고 디자이너 이주영이 말할 정도다. “상하를 반대로 착용했다간 금세 피를 볼 수 있어요.” 아닌 게 아니라 도금한 가시 넝쿨은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뾰족하다.
기사의 이미지 컷 촬영을 위해 철물점 태생 액세서리들을 테이블에 쭉 펼치자, 스태프들이 먼저 수군대기 시작했다. “기내 반입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체했을 때 바늘 대신 사용할 수도 있겠어!” “간담이 서늘해져…” 등등. 이렇듯 이번 시즌 솜털이 쭈뼛 솟는 이들 호러 주얼리들을 착용하려면 조심 또 조심하시길!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피가 줄줄 흐르는 끔찍한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