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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문인 작품감상 /소설] 건곤(乾坤) - 최상규 | 소설 분과 (콩트, 희곡)
건곤(乾坤) 최상규
차령 산맥의 남은 줄기가 잔물결처럼 서쪽으로 흘러내려가다가 서해 변두리에 이르러 문득 멈추어 왈칵 치솟은 웅장한 묏부리. 해발 칠백 오십육 미터의 천등산(天燈産) 산정이었다. 험준한 벼랑이나 깊은 계곡도 별로 없는 단조로운 산형(山形)이었지만 천여 정보의 면적 위에 거의 평지로부터 솟아오른 산덩어리의 양감(量感)은 어마어마했고 펑퍼짐한 야산뿐인 주위에 필적할 산봉하나 없이 그것은 홀로 솟아올라 들과 시내와 바다를 부감하고 있었다. 그 상봉 거의 가까운 곳에 유달리 송림이 짙푸른 마루턱이 하나 있었다. 용마루라고 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득한 옛날엔 거기 큰 못이 있어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 용담(龍膽) 자리엔 아직도 조그만 샘이 있어서 사철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있었다. 푸른 숲에 둘러싸인 맑은 샘, 멀리 서쪽으로 이마 위까지 부풀어올라보이는 서해의 수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산정을 목전에 둔 등산자에겐 더없는 휴식처이었다. 그러나 샘 주위 이백평 정도의 평지는 우리의 예상을 꺠뜨리고 처참한 형상을 보이고 있었다. 빈틈없이 마구 파헤쳐진 바닥은 날카롬게 모가 난 돌과 바위로 울툭불툭 험악하게 덮여있었고 그것들은 다시 거기에서 풀포기 나무줄기들을 짓이기며 굴러내리고 쏟아져내려 마루 주변의 가파른 언덕을 덮고 있었다. 제대로 궁둥이를 붙일 펀펀한 돌 하나 없었고, 아름드리 묵은 소나무 줄기들은 껍질이 벗겨지고 목질부가 으깨져나가고 한자리에 송진이 덕지덕지 말라붙어 흉한 종기의 흉터처럼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 한가운데, 한 편쯤 되는 평지가 그래도 소중스럽게 남겨져 있었고 새파란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샘이었다. 풀섶 속에서 질자배기 아구리만한 맑은 수면이 빠끔히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솟아나오는 물은 흐트러진 돌과 바위 밑을 스며흘러 까마득한 아래에서부터야 다시 지상으로 나와 반짝반짝 빛나는 실개울이 되어 산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옛날엔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았다는 용마루, 그것이 가무는 해면, 비가 내릴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수십 명의 사람들에 의해 파헤쳐져 자꾸만 낮아져가는 용마루. 그러나 그걸 모르는 채, 천등산은 가뭄이 들거나 장마가 지거나 움직이지 않고 솟아 있을 뿐이었다.
우물가에서 손발에 묻은 흙을 씻고 돌아서는 그에게 아내는 수건을 건네주었다. “아버지께 아침상 들여갔소?” “네.” “그럼 어서 아침 먹게 하지.” 아내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는 기둥에 붙은 수건걸이에 수건을 걸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병주 노인은 자리에 그냥 누운 채였다. 아직도 김이 나는 흰죽 한그릇이 상 위에서 정적을 지키고 있었다. 죽엔 계란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는 잠깐 이맛살을 찌푸리고, 아버지 머리맡에 꿇어앉았다. “주무시나요?” 주름투성이의 창백한 노인의 입가에 바르르 경련 같은 것이 일어났다. 자고 있지 않다는 표시였다. “상 들여왔는데, 일어나셔서 좀 잡수셔야죠?” 노인의 눈은 그냥 감겨진 채였다. 광목 홑이불이 노인의 얇고 가는 몸 위에 헐렁하게 걸쳐져 있었다. 그위로 해서 가슴에 얹혀진 파리한 손을 그는 가만히 쥐어보았다. 그것은 세수를 하고 들어온 그의 손에도 아무런 온기를 전해주지 않았다. “아버지.” “으음.” 신음 소리 비슷하게 노인은 대답했다. 그리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생각없다. 어서 너희들이나…… 먹어라.” 가늘고 힘없는 목소리였다. 그러면서 노인은 왼손을 빼어 자기의 손위에 얹혀진 아들의 큼직한 오른손을 슬며시 미는 것이었다. “그래도 좀 잡수셔야죠, 몸이 더 괴로우신가요?” “아니다. 지금 무슨 입맛이…… 있겠니, 좀 있다 먹으마.” 그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노인의 이마는 물기 한 점 없이 보송보송 하얗게 말라 있었다. “그럼, 나중에 천천히 드세요.” 그는 일어서서 마루로 나왔다. 마루에선 온 집안 식구들이 상가에 둘러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침묵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몇 번 의사가 진찰을 했는데 이야기는 한가지였다. 특별한 병은 아니라는 것, 젊은 시절에 몸을 함부로 썼기 때문에 노쇠 현상이 급작스럽게 일어났다는 것, 그래 혈압이 좀 높고 신경통이 있지만 영양 섭취만 잘하면 앞으로 십 년쯤은 틀림없이 살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병주 노인은 자신의 몸에 대해 일언반사 이야기가 없었고, 집안일이나 아이들에 대해서도 거들떠보기는커녕 딱 눈을 감은 채, 누워있기만 하는 것이었다. 맹렬한 시장기로 밥을 먹기는 하고 있었으나, 입 안은 아무런 감각도 없이, 한술 한술의 보리를 침으로 얼버무려 넘기는 동작만 계속하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서는 기준이 벌써 보리밥 한 그릇을 거의 다 치우고 있었다. 된장과 김치와 고추장뿐이었지만 보고만 있어도 침이 삼켜질 정도로 푸짐히 그는 먹어대고 있었다. 빛나는 얼굴과 젊은 눈. 방학으로 집에 내려와 며칠 동안 형을 따라 일하느라고 햇볕에 탄 얼굴이 좀 거무스름해졌지만, 자신과 용기와 패기로 차 있는 그 얼굴은 티 하나 없이 밝게 빛나고만 있었다. “밥 더 먹어라.” 그가 자신의 밥사발 가운데로 숟가락을 푹 찌르자 기준이 번쩍 고개를 도리질했다. “아녜요, 형님. 배가 부른걸요.” “그래? 뱃속이 든든해야 또 일을 하지.” 그는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밥알을 씹으며 동생을 건너다보았다. 그러나 기준은 잠자코 밥그릇에 숭늉을 붓고 있었다. 마치 골난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는 표정을 보고, 굵고 답답한 성격 때문이라 생각하며 그는 오히려 마음 흐뭇하게 생각하였다. 그 곁에선 고등학교 이학년짜리 기훈이 숟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반듯하게 허리를 펴고 앉아 숟가락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엄격하고 정확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기준이 수저를 놓고 상에서 물러앉았다. 그리고 기훈은 밥그릇에 숭늉을 부었다. 그도 숭늉 그릇을 집어 들었다. “왜 아버지 드리는 죽에 계란을 풀지 않았지?” 부엌으로 돌아서며 그는 아내에게 물었다. “으레 잡수시지도 않기에…….” 아내는 개수물통에 손을 담근 채 대답했다. “잡수시지 않을수록 정성을 다해야 할 것 아냐? 고대 수저를 안드신다 해도 계란을 풀다가 안풀은 걸 아시게 되면 얼마나 섭섭하시겠는가 말야!” 그의 목소리엔 노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애들 버릇이 나빠지기 때문이에요.” “그건 또 왜?” “영숙이와 영희가 늘 싸움예요. 영숙이는 숫제 계란을 통째로 먹겠다고 투정이구요.” “그래서 그랬단 말이야? 아버지께서 아예 죽을 잡수시지 않을 것으로 간주해두고 그게 애들 차지가 되니 애들 버릇이 나빠지고, 그걸 막기 위해서 차라리 계란을 풀지 않았다는 이야기야?” 아내는 고개를 수그린 채 대답이 없었다. “어째서 그런 철없는 계산을 할까?” “잘못했어요.” “어떻게든지 해서 잡수시도록 해야 돼. 좀 있다 다시 갖다드리고 꼭 잡숫도록 해봐요.” “네.” 그는 휭 밖으로 나왔다. 신옥은 가슴이 아팠다. 그녀에겐 할 말이 있었다. 다만 그 말을 남편에게 할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먹이가 시원치 않으니까 벌써 며칠째 닭이 알을 낳지 않고 있었다. 그래 어제 아침에 세 개를 이웃 준섭이네서 꾸어왔던 것이었다.
태양은 다시 하늘 위에서 타기 시작했다. 또 하루치의 가뭄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잔디가 뻘겋게 타 죽는 판에 전작물들이 견딜 수가 없었다. 새하얗게 마른 대지 위에서 파 모(苗)가 말라죽고 자라지도 못한 상추아욱이 빈약한 꽃을 피우며 오그라들었다. 보리를 베고 난 후 콩을 갈지 못해 묵고 있는 질펀한 회색의 밭들. 비가 와서 나기를 기대하며 그래도 마른 밭에라도 갈아놓으려 해도 쟁기가 들어가지를 않아 밭을 갈 수가 없었다. 말라버린 지가 두 달이 넘은 동네 가운데 개울, 좌우로 이어져 내려간 논엔 모 한 포기 꽂히기는커녕 갈아 엎어놓은 흙이 석회처럼 희게 타고 있었다. 아무데도 풀이 무성한 곳이 없었다. 풀을 넉넉히 먹지 못한 소도 말라갔다. 다리만 껑충해지는 소를 앞세우고 그는 그 길을 걸어 논으로 가고 있었다. 하늘엔 구름 한점 없고 아침부터 열기를 쏟아져내리고 그것이 땅에 부딪혔다간 다시 솟구쳐 뿜어오르지만, 그는 그런 것은 의식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복숭아꽃이 피기 전에 가랑비가 한 번 온 것밖엔 철 늦게 눈이 내린 이후 비라곤 구경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기다렸다. 자면서까지 기다렸다. 그렇지만 오지 않았다. 그래도 고대했다. 바람만 훈훈해도 혹시…… 청개구리가 울어도, 저녁하늘이 붉게 물들어도…… 이번에야, 이번에야……. 그러나 그들의 실망은 절망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기다리기를 그만두어버렸다. 덥다 생각해도 덥고 생각을 안 해도 업다. 그런데 덥다고 생각 안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그걸 전혀 생각 안 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닌가. 아니 그것도 사람이다. 지독히도 가무는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이다.
신옥은 기수의 상을 봐놓고 들여갈까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오늘 아침엔 도시 문 여는 소리도 나지 않는 까닭이었다. 전날 밤 일이 불길하게 가슴을 설레게 했다. 밤중에 물 푸는 소리가 나서 그녀는 잠이 깨어 내어다보았다. 기수였다. 두레박물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었다. 더워서 그러나…… 했는데 기수의 몸이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문 밖으로 나갔다. 별빛 아래서 창백한 그의 얼굴이 흘깃 그녀를 돌아다보았다. “아주머니세요?” 굵은 그의 목소리가 나왔다. 말소리가 이상했다. 혀가 말을 안 듣는 말소리였다. 그의 몸은 하나밖에 없는 다리 위에서 몹시 흔글리고 있었다. 그녀는 신을 신고 시동생에게 다가갔다. “웬일이세요?” “네, 술을…… 술을 좀 먹었지요.” 그는 머리의 물을 손으로 쥐어짜고 우물에 기대놓은 지팡이를 짚었다. 지팡이를 짚은 팔에 힘을 주며 껑충 뛰어 발을 앞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그 발에 체중을 올려놓고 지팡이를 앞으로 옮겨 놓았다. 또 몸을 옮기려는데 그의 긴 몸뚱이가 비쓱 쓰러지려 하였다. 그녀가 얼른 달려들어 그의 몸을 잡았다. 술 냄새가 섞인 더운 입김이 확 그녀에게로 몰려왔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됐어요, 인제 놓으세요, 나 혼자 갈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그를 잡은 손을 놓았다. 그는 서서히 깡총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그 뒤를 따랐다. 끝방 모퉁이를 돌다 말고 그는 멈춰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그녀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고 싶군요.” 그녀는 웬일인가 싶었다. 그러면서 그에게 다가섰다. “아까처럼 저를 부축해주세요.” 그녀는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안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그의 한 팔을 잡았다. 그의 체중이 지그시 그녀에게 쏠렸다. 그만큼 그는 그녀에게서 힘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몸뚱이는 젖어 있었다. 땀과 물이 척척하였다. 그녀의 적삼을 통해 그녀의 피부에까지 물기는 전해져 왔지만 그녀는 그의 거처인 끝방 문 앞까지 그를 부축해 주었다. “고맙습니다.” 그는 덜컥 마루에 걸터앉았다. “여태까지도 형님 아주머니 두 분 덕으로 살아왔지만, 오늘 밤 처음으로 아주머니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언제까지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못난 시동생 노릇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그의 말소리는 아까보다 정확했다. “세삼스럽게,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그만 들어가 주무세요.” “네, 술 잡수셨는데, 물 한 그릇 떠다 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우물에서 실컷 마셨어요. 그리고 참, 형님께 죄송합니다. 형님도 잡숫지 못하시는 술을 제가 이렇게 먹고 취해서요……. 그렇다고 아무 맑은 빛도 구경하지 못했지만……. 전 괴로우나 즐거우나 끝장을 보아야만 하는 성미인가보죠, 자학이란 그런 성미에서 나오는 건가보죠.” 그녀는 무슨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밤도 깊었는데 다음에 이야기하시고, 들어가 주무셔요. 그만.” “밤…… 제게 낮이 있습니까? 그보다도 아주머니, 이야기를 해버려야겠어요. 끝장을 내야 되겠어요. 아주머니, 저는 아까 아주머니를 간음했습니다. 그게 간음이란 말로 표현되는 것은 이상하지만 대소간 남자가 자기 것 아닌 여자를 가지는 것은 그렇게 표현되는 것이죠, 저는 제 전부를 아주머니의 힘 위에 얹어버렸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저는 하늘에라도 날아오를 듯 가벼웠습니다. 저는 그때…… 끝없는 만족을 느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만족을 느낄 수가 있었던가……. 저는 그때 아주머니를 가졌었습니다. 저 혼자서 제 전체로 아주머니를 가졌습니다. 그 짧은 동안에……. 이미 어떤 오물통 속에서 썩어 없어졌거나 소각장에서 태워져 없어졌을 제 한쪽 다리, 그와 함께 뽑혀져버린 저의 성(性), 지워져버린 나의 꿈……. 이런 것들을 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끝나버렸습니다. 이번엔 꽝! 하는 폭발음도 없이 그것들은 또 한 번 제게서 짤려져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생애에 다시 없을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세상 위에 있다는 기쁨과 고마움을 느끼게 될 일을 아픙로의 제 생애에는 다시는 없을 테니까요. 다리는 끊어졌습니다. 디디고 건널 다리도, 그것을 디딜 내 다리도……. 제가 우너할 수 있었던 것은 거기 있습니다. 저 건너에 있습니다. 제 주위에는 사면 팔방 건너지 못할 깊은 강물이 여울져 흐르고 있습니다…….” 도망치듯하여 제 방으로 들어온 신옥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곁에서 남편은 괴로운 신은 소리를 내며 몸을 뒤채고 있었다.
“아주머니!” 그녀는 깜짝 생각에서 깨어났다. 기훈이었다. “네?” “천등산 올라가본 적 있으세요?” “아뇨.” “용마루 이야기 들은 적 있으세요?” “아뇨. 용마루 이야기라니요?” 기훈은 부뚜막에 걸터 앉았다. 아직 여드름 하나 돋아나지 않은 가무스레한 살결. 고등학교 이학년이지만 중학교 삼학년쯤밖에는 되어 보이지 않았다. “어제 용마루에서 송장을 하나 파냈대요.” “송장을요?” “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 용마루에 묘를 쓰면 굉장한 부자가 된다는군요. 그런데 누가 묘만 쓰면 가문다는 거예요.” “이상한 이야기군요.” 한가하게 시동생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러나 기훈은 피곤해보였다. 이야기하는 동안 기훈도 쉴 것이었다. 기훈을 쉬게 하고 그만큼 나중에 재빨리 움직이자, 그렇게 생각하고 그녀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쓸데없는 미신이겠죠, 그러나, 거기다 묘를 쓴 사람은 부자가 되는지 안 되는지, 누가 썼는지 알 수가 없으니 모르겠지만, 하여튼 몹시 가무는 해에 용마루엘 가보면 꼭 묘를 쓴 자리가 있고, 파 보면 꼭 송장이 아니면 뼈다귀라도 나온다는 거예요.” “그럼 그걸 파내면 비가 오나요.” “그런대요.” “호 호 호.” 그녀는 웃었다. 즐겁지도 재미있지도 않은데 그저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기훈의 얼굴엔 진지한 표정이 흐르고 있었다. “우습죠?” 우스운 이야기예요. 조도 그까짓 이야기를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거기다 송장을 묻는 것이야,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으니,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갖다 묻을 수 있겠죠. 그러니까 장마지는 해에 묻기도 하겠고 가무는 해에 묻기도 하겠죠. 그러니까, 가무는 해에 사람들이 가서 송장을 파냈다고 해도 그게 그 해에 묻은 것인지 전해에 묻은 것인지 알 수가 없죠. 더구나 위에서는 표 안 나게 감쪽같이 해놓았을 테니까 말이죠.“ “그런데 어떻게 찾아냈죠?” “여러 사람이 올라가서 용마루 전체를 파 뒤집어놓는데요. 그러면 송장이 나오든지 더 깊이 묻느라고 파놓은 구덩이가 나타나든지 할테니까요. 어떤 건 두서너 길이나 파들어가서 대가리만 뎅겅 짤라다 묻은 것도 있다는 군요.” “어머나, 자기 조상의 것일 텐데…….” “부자가 되고 싶으면 별 빗을 다 하나보죠. 그것도 또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거면 얼굴을 깎아내고 묻었다는 거예요. 그 송장이 누군지를 알면 묻은 놈이 누군지를 알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되면 묻은 놈이 맞아 죽을 테니까 말이죠.” “저런, 저런…….” “참으로 극악무도한 놈이죠. 제 조상의 시체에 손을 대는 건 둘째 셋째 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가뭄으로 고생하고 못살게 될 것을 꼭 믿는 놈들이 저 혼자 부자가 되기 위해서 그 짓을 하니 말예요. 그렇잖아요, 아주머니?” “원체 어리석고 악한 사람들이군요.” “우매(愚昧)는 악덕이란 말을 어디에선가 보았어요. 바로 이런 걸 두고 한 말이겠죠.” 기훈의 두 눈은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형!” 기수의 방문 밖에서 기준이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형! 여태 자요?”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문을 벌컥 잡아당겼다. 덜컥 문고리 소리가 나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는 팔에 힘을 주고 세차게 잡아당겼다. 문고리가 벗겨졌는지 빠졌는지 활랑 열어졌다. 그는 성급히 방 안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기수는 누워 있었다. 두 눈을 말똥히 뜨고 천장을 응시하며 반듯이 드러누워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왜 이리 부산을 떠니?”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미안해, 형. 아침을 먹어야지 왜 누워만 있는 거요? 문이 걸렸기에 깜짝 놀랐지, 또.” “자살이라도 할 줄 알았니?” “원 참, 아무러기로……. 나 좀 들어가도 괜찮아요?” “들어오렴.” 기수는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그냥 누운 채였다. 그는 방으로 들어갔다. 곰팡내 비스산 퀴퀴한 냄새가 났다. 방 안은 놀랄 만큼 깨끗했다. 아니, 깨끗하다기보다도 아무것도 없었다. 기수가 베개삼아 베고 있는 요와 홑이불, 그리고 그 곁에 나동그라진 목침 하나, 벽에는 낯수건이 한 장 걸렸고……. 그 밖엔 없었다. 정육면체의 방 안에 그것들하고 기수가 있을 뿐이었다. “책 한 권 읽지 않나보군.” “놀랬니?” “일부러 그러는 거요?” “읽어서 뭘 하니. 내 앞에 흐르는 강물만 깊어질 뿐이다.” 기준은 형의 말을 곰곰이 뜯어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형, 담배 피울래요?” “담배? 하나 주렴.” 그가 담배를 내어밀자 기수는 도리질 했다. “아니, 싫다.” “왜요?” “형이 끊었대서 안 피우는 건 아니다. 피우고 싶지를 않을 뿐이다.” 기준은 한동안 담뱃갑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서 네나 피우렴.” 그는 담배를 한 개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성냥을 탁 그어 댔다. 푸른 연기가 무겁게 정지한 방 안의 공기를 흔들며 꼬불꼬불 천장으로 피어올라갔다. “형!” “말해.” “나 형한테 할 말이 있어.” “……말해봐.” “나 오늘 서울로 올라갈래. 생각 같아서는 혼자서 죽어라 고생하는 큰형님은 도와 방학 동안이라도 일을 하고 싶지만……. 안 되겠어. 난 어차피 학교는 마쳐야 되겠어. 몇 달 남지 않은 것, 좀 나은 성적이나 얻어야겠어. 또 다음 학기 등록금은 마련해 놓았지만, 용돈이라도 쓰자면 방학 동안이라도 일을 해야겠어.” “그 얘기라면 나한테 할 필요가 없잖아?”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큰형님이나 아주머니한텐 차마, 나 가겠습니다, 하고 말 못 하겠고, 그렇다고 도망치듯 떠나 버릴 수 없고……. 그래 형한테나 양해를 구하고 싶어서…….” “양해? 너 할 일 너 하는데 무슨 놈의 양해가 필요하냐? 더구나 나의 양해가 말이야.” “형, 자꾸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알았다. 할 말 있으면 어서 다 하고, 가거라.” 기수는 눈을 감아버렸다. 기준은 잠깐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담배 한 모금을 빨아 길게 내뿜고서 말을 계속하였다. “그리구……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우선 나를 위해 살아야겠어. 내가 스스로 살아나가는 것이 큰형님의 짐을 덜어드리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고……. 그러나 내일이 잘만 되면 형을 도울 수가 있어. 형이 거처할 방 한 칸이 마련되면 내 연락할게.” “그래서…… 그래서 네가 나를 먹여 살릴래?” “형, 왜 얘기를 자꾸 비뚤어지게 듣는 거야. 난 외로운 형을 돕고 싶은…….” “그만! 그 따위 얘기라면 집어치워라. 듣고만 있자니까 견딜 수가 없구나.” 기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앉았다. 속이 빈 바짓가랑이가 펄럭 춤을 추고 내려앉았다. “너 도대체가 건방져! 넌 지독한 이기주의자이면서 그걸 오히려 생색을 내려고 들고 있어. 침묵을 지켜봐, 침묵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좋으니 입을 다물고 있어봐, 무슨 양해를 구하느니, 형을 도와주느니, 거기다 또 나를 도와주느니……. 도대체 인제 스물세 살 먹은 놈이 무얼 어떻게 해서 나는 돕겠다는 거야. 지난 학기부터 처음 네 손으로 등록금을 벌어 학교에 다니니까 네딴엔 네가 자립이라도 한 줄 아니? 무얼 하겠으면 우선 하란 말이야, 말을 하지 말고! 나를 그렇게 도와달라는 게 아니야. 매사에 그렇게 하란 말이야. 나도 인제 스물여섯밖에 안 된다. 너보다 세 살 위다. 그렇지만 나는 내 다리가 짤라져나간 후로, 네가 이 년을 사는 동안 십년을 살았다. 그 동안 내가 늙었는지 쭈그러졌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하여튼 네가 하는 따위의 들척지근하고 철때기없는 이야기는 듣고 있을 수가 없는 내가 되어버렸다. 그 따위 얘기라면 한 마디도 듣기 싫으니 어서 가거라!” 고함을 지르듯 말을 마치자 가슴속에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올라왔다. 내가 왜 이럴까? 왜 이 애한테 이렇게 심하게 굴까? 나는, 내 가장 깊은 곳에서는 이 애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때 그 일이 전혀 이 애를 위해서였다고만도 할 수 없는데 나는 그 탓을 이애에게 돌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때, 그 밤에……. 꽈앙! 굉장한 폭음이 그의 머릿속에서 터졌다. 그는 방바닥에 엎드러지고 말았다. 세차게 바람이 불어대는 깊은 밤, 어둠 속을 기어 세 사병은 창고를 뚫고 들어갔다. 이기수 병장은 밖에 서 있었다. 경계의 책임이었다. 그는 어둠 속을 응시하며 설레는 가슴을 억제하고 있었다. 이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더 많은 것이, 더 긴요한 것이 얼마든지 흘러나가고 있다. 꼭 있어야만 된다고 예산이 세워지고 물자가 확보되고 했지만, 거기서 그 많은 것이 고대로 마이너스가 되었어도 군대는 끄덕없이 운영되어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까짓 것쯤. 그것도 한 번뿐이었다. 용서되지 않는 것이지만 한 번만 나는 어둠 속에서 반역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 몫이 돌아오거든 기준에게 돈을 보내주자. 내게도 술이 필요하고 여자가 필요하지만, 이것은 송두리째 기준에게 주자. 나는 저들과 같은 족속일 수는 없다. 부디 성사만 되어라. 부디 성공해서 한 번만이라도 형의 힘을 덜어주고 기준에게 형 노릇을 해주게 해다오. 그러는데 꽝! 터지면서 그는 의식을 잃었다. 빈사상태에서 한 달을 헤매다가 의식을 차렸을 때, 그는 댓바람에 무서운 공포를 느꼈고, 한쪽 다리와 성기를 잃었음을 알고는 절망에 휩싸여 기절해 버렸다. 상처가 완치되기도 전에 그는 한쪽 다리 대신 지팡이를 짚고 법정에 섰다.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수치보다도 절망이었다. 일체의 가치관념이 그에게선 말소되어 있었다. 그는 군법 회의의 편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진술하였다. 이미 형벌은 하늘에서 내린 뒤였다. 세 사병은 핀을 잘못 건드려 폭발하는 지뢰에 육신이 가루가 되어 죽어버리고, 그는 구제할 수 없는 병신이 되고 만 뒤였다. “미안하다. 너에게 폭언을 한 것은 너의 왕성한 젊음에 대한 질투에서인지 모른다. 나의 비굴한 열등감에서 나오는 되지 못한 반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영문 밖에 나섰을 때, 거기 나를 기다리며 서 있는 형님은 보았을 때,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표정으로 두 손을 벌려 나를 맞는 형님의 가슴에 쓰러졌을 때, 나는 지금보다는 순수했었다. 눈곱만큼의 잡된 마음없이 형님의 온정과 관용 속으로 몸을 묻고 맡겼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아침을 먹고 나오는 동안에 고인 물이 열한 바가지였다. 그것은 논으로 퍼올리고 다시 물구멍을 찾아 곡쾡이를 내리찍는데 기훈이가 왔다. “ 좀 쉬었다 오지 않구.” “쉬기는요. 조금이라도 자꾸 파야죠.” 구덩이의 깊이는 기훈의 키로 한 길이 안 되었다. 사흘째 파는 것이지만 원체 바닥이 단단한 돌이기 때문에 쉽게 파여지질 않았다. 그렇게 단단한 돌이기 때문에 쉽게 파여지질 않았다. 그렇게 단단한 돌틈에서 물구멍이 터질 법도 하건만, 몇 군데서 지르르 흐르는 것밖에는 신통한 물구멍이 없었다. 그러나 파야 했다. 하늘에서 내려주지 않는 물은 땅 속에서라도 구해야 했다. 파종한지 팔십일이 넘어서 자가웃이나 자라가지고 벌겋게 타죽기 시작하는 모를 한포기라도 뽑아 심어놓아야만 했다. “형은 안 오니?” “끝방 형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나봐요.” “끝방 형하고? 일어나서 밖에 나왔든?” “아뇨.” “아침밥은 먹었니?” “저 나올 때 아주머니께서 상 가져가셨어요.” 기호는 침통한 얼굴을 숙이고 다시 곡쾡이자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기훈이도 곡쾡이를 하나 들고 저편 구석으로 갔다. “급하게 파려고 덤비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시나브로 파야 한다.” “네.” 밤새 고인 물이 그래도 어저께 축여놓기만 한두 평쯤의 논바닥에 물이 실리게 해주었다. 그래 식전에 모를 심었다. 하루에 두평, 아니 이틀에 두 평, 그러나 설사 하루에 한 평씩이라도 모를 심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물을 구하여 구덩이를 파야 했다. 죽어가는 모와 하얗게 마른 논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것은 인간의 할 일이 아니었다. 선사 심어놓는다 해도, 가뭄이 계속하여 그것이 또 타죽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농군은 심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물을 구해야 했다. 그는 일심으로 곡쾡이를 휘둘렀다. 곡괭이 끝에서는 불꽃이 일었다. 돌가루가 튀었다. 그러다가 한줌의 돌이 부서져나갔다. 그 구멍을 또 곡괭이로 찍었다. 핑 핑 소리를 내며 괭이는 튀었다. 그러다가 돌에 금이 갔다. 좀더 찍어내리자 틈이 좀더 벌어졌다. 힘껏 곡괭이를 내리찍고 잡아 일으켰다. 목침덩이만한 돌이 데그르르 굴렀다. 이마에서 주르르 땀이 쏟아져내렸다. 벌떡 허리를 펴고 수건으로 이마를 훔쳤다. 땀. 그것도 물이었다. 그것이 수건에 배어들었다. 흐르는 물을 그는 수건으로 막았다. 안 된다. 흐르는 물은 내버려두자. 그것도 이 구덩이에 고이게 하자. 그눈 수건을 구덩이 바깥으로 집어던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곡괭이 자루를 두 손으로 단단히 고쳐 쥐었다. “저어…….” 문득 기훈이 괭이질을 멈추고 그에게 말을 건넸다. “음?” “저, 학교 그만둘까 해요.” 그는 돌아보지 않고 일을 계속하며 대꾸하였다. “공부하는게 별로 재미가 없어요. 전 아무래도 형들만큼 재주가 없나봐요. 열심히 해도 성적도 올라가지 못하고…….” “공부란 언제든지 재미있는 건 아니다. 싫어질 때도 있고, 그러다가 또 재미를 느끼게 되고 하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마음엔 문득 어두운 그늘이 스쳐지나갔다. “더구나 대학 진학은 안 하게 될 테고…….” “왜? 너만 잘하면 가는 거지 왜 진학을 안 하게 된단 말이냐?” “저같은게 대학엔 가서 뭘 하게요? 목적없이 대학에만 다니면 무엇이 되나요?” “넌 여태까지 아무 목적도 세우지 못했니?” “있어요. 딴 곳에 있어요. 전, 전 농사를 짓겠어요. 전 결심했는걸요. 그럴 텐데 한두 해 더 다녀야 제가 무얼 배우겠어요? 차라리, 이왕 농사짓는 데 써먹지 못할 지식을 얻느니보다는, 읽고 싶은 필요한 책이나 읽는 게 더 낫죠.”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거냐?” “네, 더구나 살아가기도 어려운 형편에…….” “뭣이?” 그의 마음속의 서글픔은 별안간 노여움으로 변해버렸다. “그런 말은 하면 못써! 집안 형편이 어떻단말이냐. 굶기를 했니, 너 학교 납부금은 제때에 못 낸적이 있니? 넌 잠자코 학교에 다니면 되는 거야. 다신 그런 말 하면 못써! 알았니?” “…….” “그리고 네 지금 생각은 철없는 생각이다. 이 담에 자라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생각이란 말이야. 사람의 생각은 변하는 거다. 네 나이때에넌 더구나 그래. 지금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만두었다가 그 생각이 평생 가면 모르지만, 그렇지를 않아. 금방 후회하게 돼. 그땐 어떻게 할래? 나 또 다니겠습니다, 할래? 경솔해서는 안 돼. 만사는 두고 두고 생각해야 되는 거야. 인제 방학도 얼마 안 남았으니 좀 지내면서 생각해보자꾸나. 그러니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말고 내일은 월요일이니 학교에 가야 한다, 알았지?”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기훈은 대답하였다. 그는 기훈이 가엾었다. 기훈이도 가뭄을 타고 있었다. 마치 미처 자라기도 전에 빈약한 꽃은 피우고 죽어가는 누우런 시금치와 같이……. 그 책임을 두 어깨에 무겁게 무겁에 느끼면서, 그는 힘들여 곡괭이를 내리찍고 내리찍고 하였다.
“영숙아!” 땀과 흙탕물에 젖은 러닝 셔츠를 주무르면서 신옥이 불렀다. “응?” 하고 영숙이 끝방 모퉁이에서 대답했따. “이리 온, 고모하고 같이…….” “응.” 기순이와 영숙이 우물가로 왔다. 기순의 등에는 영희가 업혀 있었다. “고모하고 같이 가서…….” “응.” “개구리좀 잡아 온.” “뭘 하게?” “고모한테 물어봐, 고모는 오학년이니까 잘 알 거야.” “음, 난 알아. 닭 주려구. 그래야 달걀을 많이 낳지.” 기순이 대답하였다. “맞았어요. 닭이 계란을 많이 낳아야 할아버지께서도 많이 잡수시고, 빨리 나으시지, 영숙이 착하지, 부지런히 잡아와요, 응?” “그걸 징그러워서 어떻게 잡아?” 영숙이 뾰루퉁한 어조로 말하고 홱 돌아섰다. “영숙아. 그래도 잡아야 해. 닭에게 먹일 게 없잖아? 정례도 잡고 진숙이도 잡는데 왜 넌 못잡니? 그리고 고모가 잡으면 넌 들고만 다녀도 되잖아?” “그래, 그래.” 기순이 나서서 달랬다. “내가 잡아서 꿰미에 꿰줄 테니 넌 들고 다니면 돼. 그것도 싫으면 영희하고 놀아도 되고……. 자, 더운데 집에 있지 말고 나가 놀자, 응?” 아이들 셋은 타박타박 발소리를 내며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개구리를 만지는 건 그녀에게도 징그러운 일이었다. 전에 끝엣시동생 기훈이 학교 갔다와서 틈만 있으면 잡아가 구워서 닭에게 주었다. 보기에도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논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한 후로 기훈은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집어던지곤 논으로 달려갔다. 그래 닭에게 달걀을 낳게 하기 위해선 꼬마들을 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하던 빨래를 서둘러 해치우고 삼태기와 호미를 들고 집 뒤 감자밭으로 갔다. 무성하지도 못하고 기다랗게만 자란 감자 줄기가 누우렇게 퇴색해가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호미를 대었다. 잡아 뽑은 줄기 끝에 밤알만큼의 감자가 네 개 달려 나왔다. 겉엣것을 또 하나 뽑아보았다. 이번에는 은행알만한 것 네 개하고 밤알만한 것 두 개가 달려나왔다. 호미로 파보았다. 그만그만한 것 서너 개씩이 나오고 핑퐁알처럼 동그랗고 제법 하얗기까지 한 것이 하나 굴러나왔다. 그녀는 왼손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오른손에 쥔 호미를 놓았다. 그리고 라켓을 잡는 모양으로 손을 쥐고 왼편 서브를 넣는 시늉을 하였다. 오른손은 허공을 밀고 앞으로 나가고 밭흙에 감자알이 둔한 소리를 내고 툭 떨어졌다. 그 위로 그녀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떨어졌다. 그것이 바싹 마른 감자의 몸뚱이를 연한 갈색으로 적시며 퍼져나갔다. 벌써 까마득하게 지나버린 나날들, 지금하고는 너무도 이질적이고 거리가 먼 지난날들이, 어째서 잊어지지도 않고 수시로 생각나는 것인지 몰랐다. 내가 현재에 성실치 못한 탓이야. 그러고서 잊어버리려 하면 그 다음 무렵의 일이 생각났다. 기호와 처음 알게 된 시절, 약혼 시절, 객지로는 다녔지만 그들 둘만의 오붓했던 신혼시절……. 그녀는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거무스레하게 타고 거칠어진 손등, 굵어진 손바닥, 못이 박힌 손바닥……. 지금의 이것과 전날의 하얗고 통통하고 부드러웠던 손…… 아, 지금처럼 쓸모있는 손이다만 보기에 흉하다는 이유 하나로 왜 싫어지고 지난날의 게으른 하얀 손이 생각나는 건가? 천박해, 천박해. 아직도 철이 안 났어 난……. 그녀는 황급히 호미자루를 쥐고 감자를 캐기 시작했다. 내리쬐는 뙤약볕이 정수리를 찡하고 울렸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떨어지고, 등줄기와 앞가슴에서도 땀이 지르르 흘러내렸다. 그러나 대지는 바싹 말라 있었다. 그 속에서 푸시시 먼지를 피우며 자디잔 감자알이 굴러나오고 있었다. 그때도 이렇게 더운 여름이었다. 그러나 소나기가 내렸었다. 뻘건 황토물이 콸콸 쏟아져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강둑 뒤에 서 있었다. 기호가 그녀에게 말했다. 내 얘기 하나 할까? 그녀가 고개를 쳐들었다. 저렇게 무섭게 흘러내려가는 물 위에 외나무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런데 거기 어떤 아버지와 두 아들이 건너가고 있었어. 주위에는 인가 하나 없고 지나가는 사람도 한 사람 없었지. 그때, 앞에 가던 아버지가 발을 헛디디어 풍덩 물 속에 빠졌거든, 깜짝 놀란 두 아들은 일순간 망설였어. 셋 다 헤엄을 칠줄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런데 한 아들은 돌연 몸을 날려 물 속으로 뛰어들었단 말이야. 헤엄을 못 치는 두 사람이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는 것을 한 아들은 다리 위에서 보고 있기만 하고……. 하나는 어리석은 아들이고 하나는 현명한 아들이었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만약에 내가 그 두 아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면 내가 어떤 쪽의 아들이었기를 당신은 원하지? 어리석은 쪽? 현명한 쪽? 그녀는 한동안 대답을 못 했었다. 그러다가 말했다. 어떤 험난한 길이라도 모든 것을 바쳐 당신을 따르겠어요. 남평은 결국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도 남편을 따라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래 그들은 지금 탁류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물속에 잠겼다 떠올랐다, 자꾸만 자꾸만 물을 켜가면서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이 질식하기 전에 스스로 헤엄치기를 배우게 될 것인지, 얕은 곳에 다다라 두 발로 일어서서 탁류를 헤치고 나갈것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좀 쉬었다 하렴.” “괜찮아요.” 기훈은 열심히 괭이질을 계속 하고 있었다. 기호는 자신이 쉬고 싶었다. 손바닥이 지독하게 아팠다. 거기 박힌 두꺼운 못이 찌걱찌걱 움직였다. 그 속 깊은 곳에 물이 고인 때문이었다. 그것은 잠시 쉬는 것으로 회복되는 일시적인 피로가 아니었다. 아무 때고 못박힌 것이 떨어져나가고 물잡힌 곳에 다시 군살이 돋아 굳어지기까지는 가실 수 없는 아픔이었다. 잠시 일손을 쉬는 것으로는 아무렇게도 할 수 없었다. 기훈의 손바닥은 어떨까? 흘깃 돌아다보았으나 저쪽으로 돌아서서 일하는 동생의 얼굴을 그는 볼 수 없었다. 그는 아픈 오른손에 힘을 덜 주고 왼손에 힘을 더 했다. 그래도 아팠다. 그리고 불편했다. 그러나 그는 뚫어야 했다. 눈 아래 돌덩어리들을 깨뜨려 내고 물줄기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두 팔에 힘을 주어 꽝 내리찍었다. 손바닥이 찌리릭 아파오며 주먹만한 돌덩어리가 깨어져나갔다. 또 한 번, 또 주먹만큼, 또 한 번, 이번에는 좀더 큰 덩어리가 떨어져나도고, 또 한 번…….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돌틈을 적시었다. 거기에 또 괭이를 찍어 내렸다. 몸의 흔들림으로 눈썹을 넘어내린 땀이 눈으로 들어갔다. 눈이 쓰렸다. 벌떡 허리를 펴고 셔츠 자락으로 눈을 닦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는데 저쪽 논길로 낯선 사람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거기는 다른 데로 가는 길초도 아니었다. 그 길로 온다면 분명 그를 만나러 오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몇 발자국 앞으로 왔다. 노타이 셔츠 깃에는 공무원 배지를 달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사나이는 구덩이가에 와서 섰다. 머리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 그도 엉거주춤하고 고개를 숙여보였다. 어떻게 보면 어디서 본 듯도 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어디서 본 사람인지 생각해낼 수 없었다. “저, 이 대위님 아니십니까?” “뭐? 이 대위? 아아 그럼, 군대 시절…….” “저 모르시겠습니까? 홍 중삽니다. ×사단 작전처에서 모시고 있던 홍순일 중사입니다.” “아아.” 그는 그제서야 생각해낼 수 있었다. “이런 원, 이렇게 몰라보다니…….” 그는 한달음에 길 위로 뛰어올라갔다. “홍 중사, 이거 얼마만이오.” “오래간만입니다. 이 대위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나야 이렇게 튼튼하게 됐지만, 자넨 이게 웬일이야, 고향이 이 근처는 아니었을 텐데…….” “네. 이리저리 전근을 다니다가 이번에는 여기 면사무소로 발령을 받았지요.” “언제? 언제 이리로 왔어?” “그저께 부임했는데, 어디 이 구석에 사시는 줄 알기나 했나요? 같은 계직운하고 어젯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어떻게 이 대위님 얘기가 나왔는데 틀림없이 제가 아는 이 대위님인 것 같아서 근처 출장 나온 길에 찾아온 거죠.” “그래? 이거 들판이라 놔서, 우선 저기 나무 그늘에라도 가서 앉아야지. 기훈아, 너도 이리 나와서 좀 쉬어라.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 그들은 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오다가 어떤 노인한테 댁을 물었죠. 그랬더니 여기 나와 일하신다기에 곧바로 이리로 왔죠. 참 아주머니께서도 안녕하십니까?” “그럼.” “아기는…….” “하나 더 낳았지,또 계집애. 그게 세 살이야. 하하하. 홍 중사는 몇이나 돼?” “전, 자그만치 다섯이랍니다. 아직 전임지에 그냥 두고 왔는데 인제 다 이리로 끌고 와야죠. 그렇게 되면 이 대위님 신세를 좀 져야겠습니다.” “신세라니……. 도와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마땅히 도와야지…….” 다시 만난 반가움과 기쁨으로 두 사람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질 줄을 몰랐다. 땀과 웃음으로 빛나는 두 얼굴을 한쪽으로 곁눈질해 바라보면서 기훈은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렇게 찾아주니 참으로 고맙네.” “원 별말씀을……. 이 대위님이야말로 참말로 애 많이 쓰십니다. 더구나 올같이 가무는 해에 얼마나 고되시겠습니까?” “다 마찬가지지. 살아가는 것은 아무데서나 다 어려운 것이고, 또 거기 따라서 보람과 기쁨도 있는 것이니까…….” “원체 지독한 가뭄이라서……. 모믐 얼마나 심으셨습니까?” “한 섬지기에서 서너 마기지 심었지. 나머지는 모두가 백답이야. 이거, 이거, 또 조 아랫것, 기막히게 타버리고 말았어.” “심으신 것은 마르지 않았나요?” “요새 마르지 않는 논이 있나? 쩍쩍 갈라졌지.” “참말 무슨 변인지 모르겠어요.” “풀리는 날이 있겠지. 그걸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 땅을 파서 물을 찾는 것 아닌가? 자, 그건 그렇고, 홍 중사는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나온 후에 얼마나 더 있다 나왔어?” “네, 한 반 년쯤 더 있었죠. 용기를 내서 나왔죠. 그래 가지곤 말단 지방 공무원이죠, 허 허 허.” “얘길 좀 해봐, 내가 나온 뒤의 경과를……. 그 흔하던 유머는 어디다 팽개쳤어? 좀 얘기를 들려달란 말이야.” “바쁘실 텐데 일을 하셔야죠.” “아따, 이런 때는 좀 쉬게 해주는 거야. 걱정 말고, 우선 궁금증이나 풀고……. 저녁엔 저녁이라도 같이 하면서 또 얘기를 하고…….” 홍 중사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때 같이 있었던 상사 동료들의 후일담. 자기 자신의 지내온 길. 민간 사회에 나와서 그들을 다시 만났을 때의 그 천태 만상의 변화……. 기호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따. 그러면서 살아나가는 고됨을 몰랐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기라도 하듯 마음속에는 아늑한 안정감이 젖어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 군대 생활이 편안하고 수월했던 것은 아니었다. 치열한 투쟁이 있었고 거기 따르는 갖가지 뼈저린 신산과 고초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직책 완수를 위한 투쟁이고 고초였다. 그 나머지 것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지금 자신을 위하여,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이십사 시간 투쟁해야 했다. 그의, 그의 가족의 생존에 역행하는 모든 자연적 인위적인 조건과 싸워 이겨야만 했다. 뚫고 나가도 뚫고 나가도, 그것들은 끊임없이 들이닥쳤다. 지금의 투쟁엔 휴식이 없었다. 그 투쟁을 중단하는 순간 삶은 좌절되고 마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그의 것이자, 모든 것은 그 혼자가 책임지어야만 되는 것이었다. 그는 쉬지 않고 싸워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지금 문득 옛날을 회상케 하는 사람이 있어 잠시 휴식하고 있는 것이었다. 돌아다보는 자에게 과거는 언제나 현재보다 수월했던 때. 그는 그때를 되새겨보는 들척지근한 감상에 잠깐 젖어보며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기수는 병주 노인의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성한 다리 위에 걸쳐진 속이 빈 바짓가랑이가 노인을 향하고 있었다. 노인은 눈을 뜨고 있었다. 쪼글쪼글한 잔주름 속에 파묻혀있는 채 그 눈은 아무런 빛도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노도 우수도 뉘우침도 없었다. 깜박이지 않는 눈은 다물려진 입과 마찬가지로 굳은 침물을 지키고 있었다. 기수는 가쁘게 씨근거리고 있었다. 그 꼴이 가증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입귀퉁이를 삐죽거리고는 말을 배앝아냈다. “아버지께서는 도대체가 형에게 너무 가혹했어요.” 노인의 무표정은 조금도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는 말을 이었다. “유산을 물려주는 대신에 크나큰 화근덩어리만 물려주셨단 말예요. 부채, 부채, 부채. 남만큼 못나시지도 않으셨으면서 왜 그렇게 많던 재산을 다 없애고 빚만 걸머지셨는가 말예요. 옹졸하고 변통성 없는 아버지의 성격 때문이죠. 거기다 마지막엔 민의원 출마까지. 그쯤 되면 우행의 극치죠. 최고의 망령이죠. 남은 재산을 투자해서 엉뚱한 사업에서 잃은 것을 되찾아보자는 예산이셨지만, 터무니없는 계산 착오이셨죠. 아버지께선 그만큼도 잘나지 못하신 분예요. 아버지께선 어쩌면 그렇게도 자신을 모르셨는가 말예요.” 노인의 무표정은 그래도 움직이지를 않았다. 아들 기수의 독설도 쉬지를 않았다. “거기다 무엇하러 그렇게 많이 낳아놓긴 하셨지요? 아홉예요, 아시기나 하세요? 죽은 애까지 합쳐서 열이죠? 그래서 어머니께서도 말년엔 좋은 꼴 한번 못 보시고 앓다가 돌아가신 거예요. 기준이부터 형한테 맡기셨죠? 기정이, 기윤이 두 누이를 시집보내고 형 장가들여준 것밖에 아버지께서 우리 남매들에세 해주신 게 대체 뭬 있어요. 기영이 누이 출가시킨 것도 형이죠? 기준이 대학보낸 것도 형이죠? 기훈이 고등학교에 다니고, 기순이 초등학교 오학년, 영숙이 영희는 자꾸 크죠. 집에 있는 여덟 식구 먹고 살아야죠? 이런 것 다하라고 아버지는 뭘 형한테 남겨주셨는가 말예요. 여기 있던 산을 팔아 장만한 논밭 육천 평밖에 더 있어요? 거기다 덮어씌워준 것은 빗발치듯한 채무가 있죠. 이만하면 무던하지 얼마나 가혹하셨어요? 또 있어요. 아버지의 혈육 가운데 종적을 모르는 애가 하나 있어요. 기옥이 나이가 지금 스무살예요. 어디 가서 무얼 하는지 아세요? 아무도 몰라요. 저만 알고 있어요. 아버지가 낳아주신 제 육신을 팔아먹고 살고 있단 말예요.” 노인의 눈이 한번 끔벅거렸다. 그것이 심중의 동요 때문인지, 각막에 물기를 축이려는 생리적인 작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도 한 번뿐, 노인의 얼굴엔 여전히 무표정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다 요샌 왜 곡기를 끊으시죠? 아버지께서 잡숫지 않는 것으로 양식에 보탬을 하시려구요? 딴 식구들 배를 불려주시려구요? 그것도 계산 착옵니다. 한 그릇의 죽을 잡숫지 않고 영숙이 영희 배를 불려 주시는 대신 형 내외에게는 엉뚱한 짐을 엄청나게 들씌워주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해요. 어째서 아버지께선 끝까지 그렇게 형에게 가혹하시냐말예요!” 그때, 노인의 파리한 두 뺨이 찔끔 움직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두 눈이 잠깐 아들을 향해 움직여졌다. “그럼…….” 가냘픈 쉰 목소리가 두 입술 사이에서 새어나왔다.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기수의 시야는 뿌옇게 흐려지고 말았다. 초췌를 극한 아버지의 얼굴은 희멀건 안개 저편에서 바르르 떨고 있는 것이었다. 뒤이어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오열을 그는 안간힘을 써가며 참아야 했다. “굶어서…… 굶어서 돌아가실 용기가 있으시다면…… 숨을 쉬지 않아 돌아가실 용기도 있으시겠죠.” 바르르 떨던 시야에서 안개가 걷히었다. 두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차라리…… 네 손으로…… 나를 죽여다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가 탄환처럼 그의 가슴속을 꿰뚫고 지나갔다.
드디어 기호의 손바닥 가죽은 벗겨지고 말았다. 싸아하게 뜨거운 아픔이 그 자리에서 끓고, 피부가 찢긴 곳에서는 가느다랗게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괭이자루를 놓은 손바닥을 들여다보던 그는 발 및의 이상한 기미에 번쩍 놀랐다. 싸늘한 감촉이 발등을 훑어가고 있었다. 어? 그의 발 끝엔 그가 방금 움직여놓은 목침만한 돌덩이가 있었다. 그 주위의 흙탕물이 맑게 개어가고 있었다. 그는 성급히 돌덩이를 굴러내ᄋᅠᆻ다. 뻥 구멍이 뚫렸다. 거기 물이 고여 있었다. 그 가운데 송글송글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물이었다. 물이 움직이고 있었다. “물이다!” “네?” 그는 두 손바닥으로 구멍 안의 물을 퍼냈다. 바닥이 드러났다. 거기 한 줄의 틈이 있었다. 회색빛 돌과 돌 사이, 붉은 빛깔이 도는, 얇은 차돌층 사이에, 길이 한 뼘쯤 되는 틈이 었었다. 거기에서, 물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기훈아! 이거 봐라! 물이다, 물이다!” “정말, 정말 물이 나오네요.” “물이다야, 물이다!” 그의 목소리는 흥분에 떨고 있었다. 기훈은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듯이 구멍 앞에서 껑충거렸다. “아주머니이!” 번쩍 고개를 치켜들자 저편에서 바구니를 이고 오는 아내가 보였다. “물예요, 물! 물이 콸콸 나와요오!” “뭐, 물이 나온다구요?” “음, 정말이야.” 구멍에서는 계속해서 물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물은 구멍을 넘어 발등으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물은, 어제까지 물줄기를 찾아 파들어가다 만 저편 귀퉁이의 우묵한 곳으로 졸졸 흘러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의 온몸은 기쁨에 떨고 있었다. 가슴이 저리도록 감미로운 희열이 온몸을 무섭게 빠른 속도로 돌고 있었다. “어디예요, 어디?” 머리 위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이 구멍이야. 이 돌덩이를 열두 번을 찍어 뗴어냈더니, 드디어 물구멍이 터졌어!” 아내가 구덩이로 뛰어내려왔다. 그리고 허리를 구부리고 거기 손을 담갔다. “아이 시원해.” 아내가 두 손으로 한 움큼 물을 떠올렸다. 아직도 뿌연 흙물이었다. 그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상쾌한 기운이 온 얼굴을 씻어내렸다. 그 뒤에 웃음이 터져나오는 시커먼 그의 얼굴이 나타났다. 활짝 웃는 아내의 얼굴이 거기 마주 향하고 있었다. “됐어! 됐어! 인젠 모를 심을 수 있어 밤새워서라도 물을 퍼올려 모를 심어야지. 기훈아! 물이 차다. 어서 너도 한 움큼 뒤집어써 봐!” 기훈은 땅바닥에 절퍽 주저앉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물을 떠서 머리, 얼굴, 어깨, 가슴에 마구 끼얹어대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한꺼번에 소리 높이 웃어제꼈다. “저건 뭐지?” 웃음을 거둔 기호가 바구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시장하실까봐, 감자를 좀 캐서 쪄가지고 왔어요.” “음, 하지 말란 짓을 했지만, 괜찮아. 물이 나모니까 인젠 괜찮아, 먹어도 돼.” 조금이라도 밑이 더 굻도록 줄기가 죽을 때까지는 절대로 캐지 말라고 엄명했던 것이었다. “아이들은 주었나?” “아뇨, 애들 내보내고 몰래 쪄가지고 왔어요.” “것도 안 된 짓, 그러나 괜찮아, 괜찮게 됐어. 아이들을 찾아와. 우리 여기서 같이 먹자.” “저기 있어요.” 기훈이 손가락질 하는 논 건너 저편 풀밭에서 아이들은 개구리를 잡고 있었다. 기순이 영희를 업고 막대리를 들고서 개구리를 쫓는 뒤로, 영숙이가 개구리를 꿴 꿰미를 들고 따르고 있었다. 고개를 돌이키는 그에게 아내는 두 통의 편지를 바구니에서 꺼내 주었다. 하나는 기준이가 쓴 것이고 하나는 기옥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는 이맛살을 잠깐 찌푸리며 기준이가 쓴 편지를 먼저 뜯으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아버지께선 좀 잡수셨나?” 아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저도 들지 않으셨어요.” “참말 큰일이군, 어떻게든지 좀 잡수시게 해야 할 텐데……. 링겔 주사라도 놔드려야겠군.” 그는 어두운 얼굴로 편지를 펼쳐 들었다.
형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고되게 일하시는 형님 곁은 떠나는 저를 꾸짖어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며칠이라도, 형님을 도와 일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그러나 새학기를 위하여 제가 할 일 또한 미룰 수 없어 올라가기고 하였습니다. 차마 뵙고 인사드릴 낯이 없어 편지로 몇 자 적었습니다. 올라갈 차비는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 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디 건강을 해치지 않으시도록 부족하지 않게 잡수시기 바랍니다. 나둥도 나중이려니와 우선 형님께서 기운을 잃지 마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주머니께도 인사 못 드립니다. 올라가서 편지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준 올림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입에서 호르르 가는 한숨이 풀려나왔다. 건너 산마루 하늘가에서 검은 구름이 듬성듬성 흘러가고 있었다. “자발없는 녀석. 조금만 더 있다 물 구경이나 하고 가지…….” 아이들이 몰려왔다. 아내는 감자 바구니를 열어놓았다. 허겁지겁 달려드는 걸 아내가 제자하였다. “이럭하면 못써! 아버지 먼저 드시거든 먹는 거야.” “어서들 먹어라.” 그는 감자 한 개를 집어 들면 말했다. “당신도 먹고…….” 그리고 그는 기옥에게서 온 나머지 편지 한 장을 펴 들었다.
오랫동안 편지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 동안 아버님께서도 안녕하시고 오빠들, 언니, 동생들, 조카들, 모두 평안하신지 궁금합니다. 하도 가뭄이 길게 계속되어 그곳 일이 몹시 걱정됩니다. 한 가지도 기쁨이나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멋대로 집을 뛰쳐나온 죄많은 제가 걱정을 한다고 소용이 있겠습니까만, 언제나 제 마음이 돌아가고 싶은 곳은 오빠 동생들이 살고 있는 그곳이랍니다. 그러나 제가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언제가 될지 감히 오빠의 용서를 빌 수도 없고 제 스스로 제 과오의 죄갚음을 했다고도 생각할 수 없사옵니다. 오빠의 사람을 한번 거역하고 나선 이상 제 짐을 끝까지 제가 지고 살아가겠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어느 구석에서 이 세상을 하직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오빠들 동생들을 그리워하며 깊은 뉘우침과 뼈저린 고뇌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는 것만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제 마음의 괴로움을 참지 못하여 몇 줄 적어 보는 이 글이 오빠에게 더 큰 번민을 드리게 될 것을 짐작은 하면서도, 이 세상 한 구석에 제가 아직은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감히 연필을 들었습니다. 내내 안녕하시고 동생들 조카들, 훌륭히 되기를 두손 모아 축원합니다. 기옥 올림
피봉 뒷면에는 주소가 없었다. 소인을 보아 서울에서 붙인 것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쓰디쓴 입맛을 다시며 편지를 쫙 찢어버렸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매정스러운 계집애.”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일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집으로 향하였다. 물을 퍼올릴 기구도 손질해 가져가야 하고 논에 흙덩이를 깨치지 위하여 쇠스랑도 가져가고 해야 되겠기 때문이었다. “구름이 끼네요.” 기호의 앞에 가던 기훈이 말했다. “구름이 끼는 게 아냐, 하늘이 낯을 가리는 거다. 우리가 뚫어 놓은 물구멍을 보고 명구스러워서 그러는 거다.” 기훈이 잘 알아듣지 못할 말을 그는 하고 있었다. 그의 말소리는 굵고 퉁명스러웠다. 기옥의 편지 때문이었다. 동생 하나를 영 건져내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분노 때문이었다. 미처 주기도 전에 박차 버림은 그는 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옥이 그의 관심의 대상 전부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것. 잊어버려야 했다. 그리고 어서 아무 생각 말고 물을 퍼올려 모를 심어야 했다. 그는 애들을 앞질러서 집으로 향하여 걸어갔다. 기훈이 바짝 뒤따라왔다. 그는 휑 열려진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쌩 하고 코끝을 스치는 이상스러운 예감에 온몸이 오싹 긴장됨을 그는 느꼈다. 집안은 쥐소리 하나 없이 고요하였다. 방문마다 열려 있는데 안방문만 닫혀 있었다. 그 앞 댓돌 위에 한 짝뿐인 기수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그는 달려갔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마루 위로 올라서며 안방 영창을 열었다. 아랫목을 보았다. 병주 노인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창백한 얼굴이었다. 기수가 고개를 들지 않고 자리를 비켜앉았다. 그는 아버지 머리맡에 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불러보았다. “아버지!” 대답이 없었다. 가슴이 얹혀진 손을 만져 보았다.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버지!” 그는 아버지의 코에 귀를 대어 보았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휙 기수를 돌아보았다. 벌겋게 충혈되어 기이한 빛을 발하고 있는 두 눈이 그의 눈과 마주치가 기수는 벌떡 일어서더니 한쪽 다리로 껑충껑충 뛰어 마루에 나가 쓰러져버렸다. 그는 다시 아버지를 향하였다. “아버지!” 어꺠를 흔들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병주 노인은 죽어 있었다. 일순에 그는 얼빠진 사람이 되어버렸다. 마당에서 후두둑 빗발치는 소리가 들렸다. 휘이 습한 바람이 방안을 휘돌았다. 후두둑! 또 빗소리가 났다. 세찬 바람이 방문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화석이 된 것처럼 굳어 버린 채였다. “비다, 비다아! 비 온다아!” 바깥에서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대문 안으로 몰려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루 끝에서 잔뜩 무서움에 질려 굳어 있던 기훈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대문간에 들러오는 형수를 보자 와아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나갔다. 하늘은 금시에 새까만 구름으로 덮여버렸다. 번개가 번쩍하고 공간을 째자 우르릉 머리 위에서 천둥이 울렸다. 뒤이어 쏴아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아내가 들어왔다. 애들이 들어왔다. 병주 노인은 죽어 있고 그 곁에 기호가 넋빠진 사람이 되어 굳어 있었다. 맨 먼저 기순이 아버지의 죽음을 알았다. 그리고 입을 몇 번 비쭉거리다가 발치에 쓰러져 울음을 터뜨렸다. 그 옆에서 기훈이 고개를 꼬고 울었다. 뒤이어 아내가 울기 시작했다. 두 아이들은 이사람 저사람의 눈치를 살피다가 엄마를 흔들고 부르며 울어대었다. 마루에서는 기수가 소링벗는 오렬로 세차게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다. 그러나 기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는 두 눈이 휑하니 열려 있는 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눈물 한 줄기만 지르르 왼편 뺨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밖에선 댓줄기 같은 비가 하얗게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방안의 곡성은 요란한 빗소리에 갇혀 집 밖에까지 터져나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울렸다. 거센 바람이 빗줄기를 몰아다 마루 위를 휘 때렸다. 마당은 금시에 물바다가 되어버렸다. 그 위에 거센 빗발 속에서 생긴 수많은 물방울이 꺼졌다 생겼다 꺼졌다 생겼다 하며 수채로 향하여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수채를 메운 뻘겅물은 도랑으로 흘러내려갔다. 도랑을 메운 물은 개울로 흘러갔다. 개울 상류에서는 산에서 내려오는 뻘건 물줄기가 허연 거품을 앞세우고 몰려내려오고 있었다. 물줄기는 합해졌다. 뒤이어 흙탕물은 불끈 개울둑 위까지 솟구쳐오르며 콸콸 흘러내려갔다. 그 위로 비는 패연히 쏟아지고 있었다. 허연 빗줄기 저편으로 건넛집조차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이쪽 저쪽에서 높은 고함소리가 간간 들려왔다. 개울에선 뻘건 황토 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콸콸 흘러내려갔다. 전후 좌우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다. 이집 저집에서 사람들이 삽을 들고 뛰어나왔다. 그들은 모두 환희의 함성을 내지르며 논으로 달려갔다. 기호의 집 같은 것은 돌아다볼 정신없이 바빴다. 정신을 못 차리게 쏟아지는 빗속에서 그들은 쓰러졌다간 일어서고 쓰러졌다간 일어서고 하면서 도깨비들처럼 뛰어 돌아 다녔다.
기호의 집에서는 곡성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신옥이 고개를 들고 목메인 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여보” 그러나 기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몸을 흔들었다. “여보, 비가 이렇게 오는데, 논에 나가보셔야죠.” 그녀는 이 말이 그에게 얼마나 잔인한 말이 되는가를 알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렇게 방 안에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 남편을 놓아두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엄마야, 어디 가아.” 아이들이 쫓아나가며 울어댔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허연 빗줄기 속을 대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어두운 하늘 아래 빗줄기만 허연했다. 그 속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군데군데 보였다. 벌써 도랑물을 댄 집의 논들엔 뻘건 물이 고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초조했다. 그녀의 집 하나만 빼놓고는 모두들 논에 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아무렇게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집으로 향하여 달렸다. 그리고 함빡 젖은 몸으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그냥 넋빠진 사람 모양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힘껏 흔들었다. “여보, 나와보세요, 비가 와요, 비가요. 살아야 하지 않아요? 애들하고 우리는 살아야 하지 않아요? 여보!”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그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밖을 내다 보았다. 꿈 같은 일이었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섰다. 신을 신을 사이도 없이 대문간으로 가 삽을 움켜쥐고는 휭 빗속으로 내달리는 것이었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마음속으로는 일심으로 외치면서 ―. 무섭게 쏟아지는 비였다. 바람은 그다지 세지 않았다. 온 공간을 비가 메우고 비가 메우고 있었다. 그것이 모두 지상을 향하여 낙하하고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공간이 모두 빗물이 되어 낙하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논에 다다랐다. 하얗던 흙이 시커멓게 젖어 있었다. 미처 마른 흙에 배어들 사이도 없이 급작히 퍼부어대는 바람에 벌써 논바닥엔 물이 고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은 바싹 말라 갈라지고 구멍난 논두렁에서 아랫논으로 콸콸 새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미친 듯이 삽을 휘두르기 사작하였다. 마구 흙을 긁어다 두렁에 올려 붙였다. 밟을 사이도 없었다. 우선 흙을 붙이고 볼 일이었다. 온몸이 물에 담갔다 꺼내놓은 것처럼 젖어버렸다. 그러나 그건 물이었다. 비였다. 그렇게 기다리고 갈망하던 빗물이었다.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그래 그 한 방울도 헛되이 흘러내려보내지 말고 논에 담가두여야 했다. 아까 껍질이 벗겨졌던 손바닥의 아픔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도 잊어벼렸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생각되는 것 전부가 물뿐이었다. 기훈에게 삽을 들려보냐고 신옥은 괭이를 들고 수채돌을 파냈다. 마당에 벙벙히 바다같이 고인 물이 빠지지를 않았다. 뚫린 수채로 물이 달려나갓따. 뒤꼍으로 가보니 거기도 물바다였다. 미구에 부엌으로 달려들 판이었다. 그녀는 또 그쪽 돌을 쳐냈다. 기순이도 부삽을 들고 나와 그녀를 도왔다. 그녀는 다시 대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를 가고 있는지 알지를 못했다.
컴컴한 방 안에, 아버지의 시체가 반듯이 천장을 향하여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선 기수가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속이 빈 바짓가랑이가 거꾸로 어깨깨로 올라와 있었다. 마루에선 아이들 둘이 울다가 지친 퀭한 눈으로 비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쾅 우르르, 무섭게 천둥이 울리며 집을 흔들자 왈칵 서로 부둥켜 안고, 또다시 찢어질 듯이 울음을 터뜨리었다. “기훈아! 넌 저쪽 논으로 가서 우선 구멍난 곳만 메워라. 아랫논으로 물 빠져나가는 곳만 말이다.” “네.” 하고 기훈은 저편으로 뛰어갔다. 기호는 일심으로 삽질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 차츰 그의 머릿속은 침착을 회복하였다. 비로소 그의 생각의 눈이 뜨여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생각났다.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조금 아까까지 아버지의 시체 곁에 앉아 있던 것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기막힌 일이었다. 온몸이 맥이 풀렸다. 그러나 그는 삽질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의 몸은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은 아버지에게로 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돌아가실까? 그렇게 긴 고생 끝에, 그렇게 긴 가뭄 끝에 이 비오는 것조차 못 보시고 눈을 감으시다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얼마나 원통하셨을까……. 그의 두 눈에서는 빗물에 섞여 뜨거운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어둑어둑해서야 들에 나갔던 사람들은 일단 집에 들어왔다. 빗줄기가 좀 뜸해졌었다. 병주 노인의 죽음을 안 동네 사람들이 그의 집으로 젖은 옷인 채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마루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며 모두들 병주 노인을 가엷어하며 기호를 위로했다. 그리고 장례치를 준비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하였다. 그러나 잠깐 뜸했던 비는 또다시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좍좍 퍼부어대는 비는 또다시 마당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렸다. 한 사람이 나가보니 도랑물이 넘쳐 길 위까지 벙벙히 흘러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또 논에 나가보아야 했다. 그들은 하나 둘씩 일어나서 나갔다. 맨 마지막으로 기호도 삽을 들고 나갔다. 개울둑도 넘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헌 멍석을 두 개 메고 나갔다. 소용돌이치며 흘러내리는 물은 개울을 휩쓸고 있었다. 군데군데 철썩철썩 무너앉는 소리가 났다. 그는 미끄러운 길을 발가락을 세워가지고 달려갔다. 몇 번 고꾸라질 뻔하면서 그의 논이 저만큼 보이는 곳까지 왔을 때 발을 헛디디어 주춤했던 그는 이상스러운 물소리에 뒤를 돌아보곤 깜짝 놀랐다. 방금 지나온 둑 한쪽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얇은 둑 전체가 벌렁벌렁 움직이며 물은 무너진 한부분으로 해서 쏴아 논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어깨의 멍석을 내려 둑에 걸쳐쳤다. 그리고 그 위를 타고 앉았다. 멍석 위로 해서 허리를 적시며 물은 논으로 넘어갔다. 논 임자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물은 계속해서 넘어들어가고 있었다. 흐르는 물에 너풀거리는 개울 속의 멍석 끝이 자꾸 뒤집어지려고 하였다. 그는 한사코 가랑이에 힘을 주어 그것을 막았다. 먼저 무너졌던 한구석이 자꾸 파여져 달아나는지 물소리가 더 요란해졌다. 그는 고함을 쳐 사람을 불렀다. 그 소리는 빗소리에 자워져 멀리 가지를 못했다. 멍석 자락은 자꾸 뒤집어지려 하였다. 뒤집어지기만 하면 둑은 그만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말랐다가 갑자기 물에 젖은 둑은 단번에 파여져나가 잘라져 버릴 것이었다. 그는 둑을 안고 멍석 위에 엎어져버렸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멍석 자락을 누르며 고함을 질러 사람을 불렀다. 물은 그의 등을 넘어 논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는 목을 반짝 치켜들어 간신히 입과 귀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고 있다. 저만큼서 사람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몇 발자국 앞까지 달려왔을 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그의 몸이 쑥 가라앉는다 느껴지는 순간 개울 쪽의 멍석 자락이 휙 그를 덮어씌우면서 그는 멍석과 함께 둥실 물 위에 떠 논바닥으로 쏟아져내리고 말았다. 얼마를 멍석에 싸여 밀리며 굴러가다가 그는 간신히 빠져나왔다. 벌떡 일어서자 허연 물이 정강이를 감으며 논바닥으로 퍼져나갔다. 둑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그를 부축해주었다. 둑은 걷잡을 수 없이 뭉청뭉청 무너져나갔다. 그들은 허겁지겁 둑 언저리에서 물어났다. 논은 금시에 물바다가 되었다. 그 위로 비는 여전히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이없이 어, 어, 소리만 지를 뿐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둑이 위에서 터져서 아래쪽은 수세가 약해져 무너질 염려가 감소되었다. 그러나 다른 걱정은, 터진 곳에서 논으로 달려든 물이 전부 그 아래 논으로 덮쳐오는 것아었다. 물꼬만으로는 그 물을 다 받아 뺄 수가 없었다. 그러면 미처 못 다 빠진 물은 논두렁의 얕은 곳을 넘고 약한 곳을 뚫어 잘라놓고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파여져나가지 않을 만한 곳을 일부러 잘라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 그들은 모두 논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쪽저쪽 논두렁을 끊어놓기에 바빴다.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런데 지상은 온통 허연 물의 일색이었다. 그 위로는 여전히 억수같이 퍼붓는 빗줄기였다.
신옥이 주먹밥을 만들어 가지고 나왔을 때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둑을 고치고 있었다. 먼저 둑 자리에 말뚝을 총총히 박고서 거기 뗏장과 흙과 돌을 져다 붓는 일이었다. 물론 세찬 물길에 휩쓸려 내려가기도 하지만 말뚝의 버티는 힘과, 또 하도 여러 사람이 져다 붓기 때문에 일은 제법 되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 속의 일이었고 주위에 뗏장이나 돌은 흔하지 않았다. 그들은 쉴 사이도 없이 줄달음질을 치며 일을 하고 있었다. 옷이 찢어지고 살이 째어져 피가 흐르지만 그들은 그런 줄을 몰랐다. 신옥은 남편의 배고픔을 생각했다. 그러나 기호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설사 찾는다 해도 남들은 모두 손이 모자라서 아우성들인데 주먹밥이나마 혼자서 먹고 서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얼른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 그녀는 공연히 비를 맞으며 덩두런히 서 있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어둠과 빗속에서 물을 피하며 산을 기어오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사나이였다. 그는 어깨 위에 시체를 메고 있었다. 성한 사람이라도 송장 하나를 어깨에 메고 이 어두운 밤중에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쏟아지는 물줄기를 피하며 산엘 기어오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나이는 초인적인 힘으로 천등산을 오르고 있었다. 한 손엔 지팡이를 짚고 한 팔로는 시체를 어깨에 들쳐메고 한발짝 한발짝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불같이 뜨거운 가쁜 숨을 연상 몰아쉬면서 큰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신다. 가신다. 아버지가 가신다. 가셔야 하니까 가신다. 용마루에 묻히십시오. 이왕에 죽은 몸, 용마루에나 묻히십시오. 숨을 잡숫고 돌아가셨다. 죽은 안 잡숫고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용마루에 묻혀 천당 가시고, 나는 지옥으로 가겠습니다. 가신다. 오신다. 오시지 않고 가신다.” 그러곤 어깨 위의 시체가 내려지는지 한 번 몸을 추석이고는 또 껑충걸음을 내디디며 한발짝 한발짝 올라가는 것이었다. “아버지, 보십시오. 저는 아버지가 버린 아버지의 육신을 메고 갑니다. 가신다. 가신다. 아버지가 아니고 내가 가신다. 모든 천벌은 내가 받는다. 아버지, 누가 아버지를 죽였던가요? 가난이 죽였던가요? 자식 사랑이 죽였던가요? 아니죠, 이 자식이죠. 이 자식 때문에 돌아가셨죠. 아버지께 효도하기 위해 이 자식이 죽여드렸죠. 자, 어서 가십시다. 어서 용마루에 묻히십시오. 덕분에 전 효자 한번 되어 보고 지옥으로 가겠습니다. 자, 아직 멀었어요, 저를 너무 내려누르지 마셔야죠, 자아, 가신다, 가신다, 효자가 아버지를 메고 가신다…….” 그런데 그 몇 발자국 뒤, 앞엣 사람이 걸으면 걷고 서면 따라 서면서 쫓아가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머리를 깎은 조그마한 소년이었다.
논에서 돌아와 병주 노인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안 신옥은 기절을 할 듯 놀랐다. 그녀는 애들을 데려다 이웃집에 맡기고, 와들와들 떨리는 몸으로 남편을 찾아 다시 논으로 나갔다. 개울둑 일은 거의 끝나 있었다. 그런데 기호는 거기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금방까지 있었다는데 모두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병주 노인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모두 놀랐다. 그러나 비는 여전히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고 그들의 할 일은 태산 같았다. 할 수 없이 그녀는 다시 남편을 찾아 헤맸다. 어쩌다가 발을 헛디디어 물에 빠져 떠내려간 것이나 아닌가……. 자꾸 앞서는 불길한 생각을 떼쳐 내버리며 논두렁 길을 헤메는데 저만큼 논귀퉁이 물가에 시커먼 덩어리가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기호가 지게를 진 채로 논두렁에 쓰러져 기절해 있었다.
이튿날 아침, 밤새껏 그렇게 무섭게 쏟아지던 비는 딱 멎어버렸다. 천둥산 중턱까지 시커먼 구름이 엉켜 있었고 머리 위에도 두꺼운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지만 해가 떠오르는 먼 동쪽 하늘은 딴 세상의 하늘인 양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그리로 태양은 떠올랐다. 그리고 밝고 화사한 햇살을 지상에 보내주었다. |
그러나 그것이 비치는 곳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여기저기 잘라진 논둑과 밭둑, 어떤 곳은 물로 파여져나가 웅덩이가 되어 있었고 어떤 곳엔 복사와 자가리 뒤덮여 온통 뻘건 황토빛을 이루고 있었다. 길은 무너지고 다리는 끊어지고 가뭄에 시달리면서 밭에 남아 있던 작물은 떠내려가버렸고……. 하룻밤의 헛된 사투로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의 귀에,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논밭 이구석 저구석에서 물 흘러내리는 소리만 한가롭게 돌돌돌돌 들려오고 있었다.
기호가 긴 악몽에서 꺠어났을 때, 그의 집에는 동네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정신없이 앓고 있는 기훈의 헛소리 하는 것을 종합해보고 천등산을 향하여 뗴지어갔다. 기호는 따라가지 못하였다. 지게를 진 채, 기절해 쓰러지면서 허리를 삐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얼마가 지난 뒤 기호가 아내의 부축을 받아 억지로 문 밖에 나가 서서 폐허가 된 논밭을 둘러보며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을 때, 천등산을 올라간 사람들은 용마루가 바로 머리 위로 올려다보이는 골짜기에 멈춰 서 있었다. 거기 그들의 발 아래, 아무렇게나 파해쳐놓은 용마루의 돌과 흙이 간밤의 비로 사태가 되어 쏟아져 내려쌓인 무더기 속에서 병주 노인의 반백의 뒤통수와 기수의 속이 빈 바짓가랑이가 삐어져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