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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영웅 아킬레우스 의 치명적 결함이 발뒤꿈치였다면, 아메리카 인디언의 영웅 제로니모 의 아킬레스건은 어이없게도 ‘술’이었다. 미국 자본주의에 적응한 제로니모는 이미 영웅이 아니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 총알도 꿰뚫을 수 없는, 부활한 아킬레우스 같았던 제로니모는 아킬레우스가 파리스의 화살에 죽었듯이,퇴락한 자신을 달래주던 ‘술’로 인해죽었다.
영웅의 죽음치고는 싱거웠다. 끝까지 저항하다 장렬하게 자결한 것도 아니고, 아킬레우스처럼 치명적인 비밀을 들켜 전사한 것도 아니었다. 제로니모는 죽기 2~3일 전 자신이 만든 활과 화살을 팔기 위해 집을 떠났다가, 활과 화살을 판 돈으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세상을 떠나게 됐다.술에 취해마차에서 떨어졌고, 땅바닥에서 잠이 들었다. 겨울비가 차갑게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 발견되어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회복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술로 죽었다는 것은 제로니모가 더 이상 영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한 부족인 아파치족의 전사 제로니모는 이름만 들어도 모골이 송연한 전사 중의 전사였다. 젊은 시절 제로니모는 부하들이 술에 취해 잠이 들었을 때에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자신은 깨어 있었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는 술에 취해 죽고 만 것이다. 네드니 아파치족의 추장 후의 아들인 아사 다크루지가 아파치 마지막 전사의 죽음을 지켰다.
제로니모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나의 애마에 안장을 얹어서 나무에 묶어놓도록 해라. 그러면 내가 육신을 벗고 나서 사흘 후에 그 말을 데리러 오겠다.” 사람들은 제로니모의 유언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살아서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한 제로니모의 영혼은 죽어서 자유롭게 자신의 말을 타고 그토록 그리던 땅 애리조나의 산악지대로 갔을 것 같다. 산천초목을 뒤흔들던 제로니모는 이렇게 초라하게 떠났으며, 제로니모의 죽음으로 200여 년에 걸친 백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의 전쟁이 완벽하게 끝났다.
영웅에게는 언제나 양면성이 있게 마련이다. 한쪽에서는 영웅으로 떠받드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악마로 저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제로니모 또한 아파치족에게는 구세주였지만, 백인에게는 자신들의 피를 빨아먹는 악마였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악마의 화신 같은 이에게 제로니모라는 가톨릭 성인의 이름이 붙여져 있으니 말이다. 스페인어 제로니모로 불린 그의 이름은 영어로는 제롬, 라틴어로는 히에로니무스라 불리는 가톨릭 성인이다.
제로니모는 물론본명이 아니다. 그의 본명은 고야틀레이, 즉 ‘하품하는 자’였다. 최고 용맹한 자에게 ‘하품하는 자’라는 이름을 붙인 것 자체가 전략적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전사의 이름은 나중에 제로니모가 되는데, 제로니모의 생애를 소설화한 포리스트 카터는 그가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된 사연을 매우 재미있게, 아니 슬프게 그리고 있다.
멕시코의 ‘카스키예’라는 마을에서였다. 아파치족은 카스키예의 수호성인인 성 제로니모의 축일에 카스키예를 습격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카스키예 성당의 도미니크 신부는 인디언을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인디언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생각했다. 성당에서는 성 제로니모의 생을 재현하는 연극이 상연될 예정이었다. 막이 오르자 한 사내가 등장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어디를 보아도 성인 제로니모 같지는 않았다. 비교적 작은 키에 단단한 체구, 부수수한 머리칼에 사슴가죽 머리띠를 두르고, 두 뺨에는 노란 줄무늬를 그린 이 친구는 인디언이었다. 두리번거리는 두 눈빛은 마치 상대방을 꿰뚫을 것처럼 날카로웠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가 아파치임을 깨달았다. 성당 안에는 멕시코군의 펠리페 대장이 있었다. 축제일에 이미 한잔 걸친 그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대장은 독 안에 든 쥐를 코미디로 위협하고자 했다. 그는 만세를 외쳤다. “성 제로니모 만세! 성 제로니모 만세!” 대장이 외치니 사람들도 따라 외쳤다. “성 제로니모 만세! 성 제로니모 만세!” 그때 인디언 전사는 활에 화살을 쟁여서 도미니크 신부를 쏘았다. 웃으면서 쓰러지는 도미니크 신부를 바라보며 그는 사막 속으로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그 이후 그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제로니모가 되었다.
마을의 수호성인을 기리는 축일에 등장하여 신부를 쏘아 죽이고 간 이 청년, 그를 영웅으로 볼 것인가, 악마로 볼 것인가? 그는 적을 죽이는 데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으며, 전체를 위해 소수를 죽이는 데도 과감했다. 한번은 멕시코군이 숨어 있는 아파치족을 찾기 위해 숲 속에 불을 질렀다. 불이 은닉 장소까지 번져오기 전에 아파치족은 피신해야 했는데, 예기치 않게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아이들이 문제였다. 제로니모는 냉정하게 어린애들을 죽이라고 명했다. 그는 잔혹한 살인자였으나 그로 인해 아파치족 전체의 운명을 구원하기도 했고, 백인 사회에서는 우는 아이조차도 ‘제로니모가 온다’고 하면 울음을 뚝 그칠 정도로 두려운 존재였다.
유럽이 문명의 중심을 이루면서 세계 역사를 보는 눈은 곧 서구의 안경이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곳에는 이미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처음에 원주민들은 신기하게 생긴 이방인의 생존을 도왔다. 그러나 이방인이 볼 때 원주민과 원주민의 땅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방인과 원주민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생존을 위해 싸우는 원주민들의 저항은 예상 외로 만만치 않았으며, 그 저항의 중심에 제로니모가 있었다.
제로니모는 1829년 6월 애리조나 주의 노도욘 계곡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일은 확인할 길이 없다. 제로니모의 자서전에 따르면, 할아버지 마코는 아파치족의 지파인 베돈코에 아파치의 추장이었다. 할아버지가 일찍 죽자 젊은 아버지 대신 망구스 콜로라도가 부족의 추장이 되었다. 제로니모가 어린 꼬마였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이른 죽음이 책임감 강한 전사의 탄생을 부추긴 것이다.
17살이 되자전사회의에 들어가 전사가 되었다. 제로니모의 전투감각은 탁월하여 첫 번째 전투에서 공을 세워 말 여섯 마리를 받았다. 제로니모는알로페와 혼인하여 아이 셋을 낳았으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1858년 여름 제로니모의 부족은 남쪽 멕시코로 교역을 위해 떠났다. 가는 길에 ‘카스키예’라는 마을의 교외에 천막을 치고 며칠을 묵게 되었다. 제로니모를 비롯한 다수의 전사들이 외출한 틈을 타 멕시코 군대가 천막을 습격하였다. 멕시코군은 경계를 서던 전사들과 천막에 남아 있던 마을 사람들을 죽였다. 특히 제로니모 가족의 피해가 컸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어린아이 셋이 모두 죽은 것이다. 엄청난 피해 앞에 그는 망연자실했다.
제로니모에게 닥친 시련은 곧 영웅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베돈코에의 추장 망구스 콜로라도와 치리카우아(초코넨)의 추장 코치스, 네드니의 추장 후는 복수심에 불타는 제로니모에게 전투 지휘를 맡겼다. 전투 경력이 많은 것도 아니고, 지휘력을 검증 받은 것도 아닌 그에게 지휘를 맡긴 것은 어쩌면 모험이었다. 그러나 추장들은 모험을 통해서만이 영웅이 탄생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로니모는 전사들 앞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멕시코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오. 우리도 그대로 되갚아주어야 합니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내 뒤만 따라오시오. 사내는 전쟁에서 죽을 수도 있고 돌아올 수도 있소. 이 점을 충분히 알고 떠납시다. 나는 죽어도 슬퍼할 것이 없소. 내 가족은 모두 살해당했소. 내가 죽어서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 기꺼이 죽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가 함께라면 충분히 복수할 수 있을 것이오. 같이들 가지 않겠소?”
멕시코군을 유인하는 데 성공한 아파치와 멕시코군의 전면전은 필연적이었다. 멕시코군은 기병 2개 중대와 보병 2개 중대의 막강한 병력이었다. 제로니모는 몇 명의 전사들을 보내 적진의 후방을 교란하도록 한 뒤 돌격을 개시했다. 제로니모의 칼날 앞에서 수많은 적이 낙엽처럼 쓰러졌지만, 아파치의 희생도 만만치 않았다. 전투는 두 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제로니모가 마지막 적을 칼로 찌르고 보니, 멕시코군은 전멸이었다. 진동하는 피비린내 사이에서 제로니모는 아파치 부족 전체의 전시추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영웅이자 악마인 제로니모의 활약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전시추장이 된 제로니모는 이후 30년 동안 백인들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인디언 지도자가 되었다. 아파치 인디언들에게 제로니모는 ‘전쟁주술사’와 같았다. 평시에 추장이나 주술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전쟁주술사는 위기에 처한 부족을 구해주는 메시아와 같은 존재였다. 카스키예에서 대대적인 복수를 감행했지만 제로니모의 분노는 사그라 들지 않았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어떤 복수로도 보상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제로니모는 계속해서 결사대를 조직해 멕시코 마을을 습격하고 약탈전을 벌였기 때문에 멕시코군은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였고,애리조나에서는 미군도 인디언 소탕작전을 벌였다.
제로니모는 매우 감각적인 전사였다. 그는 오감을 이용할 줄 알았으며, 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었다. 1884년 제로니모는 멕시코군과 마지막 큰 전투를 벌인다. 위에서는 미군이 인디언을 소탕하기 위해 내려오고 있을 때 제로니모는 멕시코로 남하한다. 그는 야영지를 자주 바꾸면서 자신의 위치를 들키지 않았다. 잠을 잘 때는 반드시 정찰병을 세웠다. 어느 날 동틀 무렵 정찰병이 뛰어와 멕시코군이 접근해오고 있다고 알렸다.5분도 채 안 되어 총알이 날아왔고,제로니모는 즉각적으로전사들을 비롯한 인디언들을 냇가 옆 도랑으로 들어가게 했다. 전사들에게는 꼭꼭 숨어서 총알을 허비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오랫동안 대치하고 있던 오후 세 시 무렵, 제로니모는 적군이 회의하는 곳으로갈 수 있었다. 마침 바람이 회의 장소에서 제로니모 쪽으로 불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인디언 일당을 뿌리 뽑아야 한다. 진격하라.” ‘진격하라’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 제로니모는 장군을 쏘았다. 제로니모를 향해 수많은 총알이 쏟아졌지만 제로니모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밤이 되자 제로니모의 전사 십여 명이 멕시코군 후방으로 잠입하여 일망타진했으며, 이후미군과의 싸움은 한층 치열했다.
1874년 미국 정부는 4천여 명의 아파치족을 애리조나 중동부에 있는 불모지인 산칼로스의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사냥해서 먹고 사는 유목민인 아파치족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한편 제로니모는 설득의 대가였다. 그는 항상 부족민들 스스로가 나서서 싸우도록 독려했다. 어떤 강요도 없이 그는 상대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산칼로스의 보호구역에서 제로니모는 산으로 돌아가고 싶은 아파치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아파치들이 결국 목숨을 내걸고 제로니모를 따랐다. 뒤쫓아오는 미군을 따돌리는 제로니모의 지략에 미군은 번번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부족민들은 계속해서 죽어갔고 전사의 수는 날로 줄었다. 불사조 같았던 제로니모에게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5천 명의 토벌대에 맞선 아파치족은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해 36명에 불과했다. 1886년 9월 3일 제로니모와 만난 토벌대의 사령관 넬슨 마일스는 제로니모에게 플로리다에서 잠시 생활한 뒤 반드시 애리조나로 되돌아가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항복할 것을 권유했다. 이튿날 공식적으로 항복한제로니모는 이후 다시는 전사의 길을 갈 수 없었다.
1894년 오클라호마의 실 요새(要塞, fort)로 옮겨진 제로니모는 차츰 미국식 자본주의에 길들여졌다. 그는 끊임없이 애리조나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지만 미국 정부는 수락하지 않았다. 반면에 제로니모와 아파치는 요새 밖에서 점점 유명해지고 있었다. 이미 지나가버린 야성의 시대가 흥미로운 추억거리가 된 것이다. 1898년 제로니모는 트랜스미시시피와 오마하의 국제박람회에 구경거리로 전시되었다. 그는 여행 도중 기차 안에서 외투 단추를 떼어내 사람들에게 팔았다. 자신의 물건이 인기가 있다는 것을 안 제로니모는 신이 났다.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할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그것으로 영웅 제로니모도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1909년 2월 17일 제로니모는 상처투성이인 육신을 벗어 던졌다. 그러나 제로니모 신화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제로니모!”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낙하병들은 적지 상공의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때 이렇게 외쳤다. 제로니모는 곧 용기와 희생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수영장의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들까지도 “제로니모~!”라고 외치면서 뛰어내렸다. 헬리콥터 이름에는 ‘아파치’가 붙었으며, 컴퓨터 소프트웨어 게임에도 ‘아파치’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로니모와 아파치족을 소재로 여러 편의 영화가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서부영화에 제로니모와 아파치는 끊임없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제로니모의 리더십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공전략으로 삼으려는 시도도 보인다. 제로니모의 지혜와 용기와 희생이 그럴싸한 상품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로니모 신화 속에는 가슴 아픈 비극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필자는 제로니모의 죽음에 대해 영웅답지 않은 죽음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죽음에는 역사를 바로 보아야 한다는 참으로 아픈 침이 숨어 있다.
제로니모를 비롯한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탄압은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며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미국 독립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며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토마스 페인이 말한 대로 상식이다. 최소한 상식이라도 지켜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은 전 인류의 공통된 과제이다.
<제로니모 자서전>은 제로니모가 자신의 삶에 대해 구술한 것을 받아 적은 책이다. 제로니모의 얘기를 받아 적은 이는 네드니 아파치의 추장 후의 아들 아사 다클루기였다. 엄밀히 말하면 구술은 아니었다. 제로니모는 속기사가 있을 때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받아 적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동안 내용을 확인하거나 질문하도록 기다려주지 않았다. 제로니모는 또 자신의 천막집이나 아사 다클루기의 집, 그리고 산골짜기에서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말을 타고 평원을 달리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따라서 아사 다클루기가 그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정리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며,전쟁 포로인제로니모가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고도 볼 수 없다. 다만 제로니모의 육성으로 듣는 아파치 이야기란 점에서 아파치와 제로니모에 대한 어떤 책보다 생생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이 책이 씌어지게 된 과정을 설명한 부분과 제로니모의 생애에 대한 해설도 흥미롭다. 해설과 제로니모의 구술을 비교해가면서 보면 세계 현대사에서 중시되지 않았던 어둡고도 슬픈 단면을 아프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포리스트 카터의 <제로니모>는 제로니모라는 전사가 태어나서 항복할 때까지의 과정을 소설로 그린 것이다. 제로니모의 탁월한 전투력, 지략, 용기 등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제로니모 자서전>보다도 더 제로니모와 아파치의 폭력성을 정당화한다. 산칼로스의 아파치 집단수용소에서 제로니모는 아파치들을 선동한다. 아파치들은 제로니모의 설득에 한명 한명 넘어가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막의 집단수용소는 그야말로 인종 말살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수용소의 셔먼 장군은 “인종 말살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올해 우리가 더 많이 죽일수록, 내년에 죽일 숫자가 그만큼 줄어든다.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다”라고 주장한다. 그곳에서 제로니모는 사람들을 모아 “우리는 산에서 살겠다”라고 결의한다. 그와 아파치의 힘찬 결의는 거센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소설의 끝까지 단숨에 도달하게 된다.
도날드 제롬 필더의 <제로니모에게 배운다>는 실용적 자본주의의 탁월한 유연성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제로니모를 지략과 전술만으로 물적 자원이나 기술이 월등한 적의 공세를 뚫은 지도자의 전형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한 제로니모의 지략과 용기야말로 무한 생존경쟁에 뛰어든 자본주의의 시민들에게 위대한 스승이 된다는 것이다. 필자에게 이 책은 좀 어이없기도 했다. 무한한 부를 축적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싸운 제로니모의 생애를 통해 바로 그 제로니모의 적인 자본주의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황당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제로니모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소개한 내용을 읽다보면 그럴듯하기도 하다.
W.C. 밴더워스가 엮은 <인디언 추장 연설문>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제목 그대로 인디언 추장의 연설문을 모아놓은 책으로, 제로니모의 연설문도 한 편 소개되었다. 소설가 최성각의 추천글이 이 책을 잘 설명하고 있어 인용한다. “미국 건국사는 곧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멸망사다. ‘대륙이 발견되었다’는 말은 ‘대륙이 정복되었다’는 말로 고쳐 발음되어야 한다. 인디언들을 멸족시킨 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의 미래는 오늘도 불길하기 짝이 없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백인들의 무력 앞에서도 의연하고 당당했던 예지에 찬 인디언 추장의 연설문은 이 세계가 인간다운 위엄이 손상되지 않고 평화롭게 존속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여전히 깊은 감동으로 고양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