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의 인물] 본시오 빌라도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묵주 기도나 주일 미사 때 사도 신경을 암송하며 우리는 한 인물의 이름을 늘 되뇝니다. 바로 본시오 빌라도이지요. 사도신경의 내용만 보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빌라도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통치 아래서’의 ‘아래서’라는 표현은 그 시기를 말합니다. 곧 본시오 빌라도의 통치 시기에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렇듯 본시오 빌라도라는 이름은 생소하지 않지만, 정작 그가 누구인지 물으면 아는 바가 별로 없어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선고한 인물로 유다 지역으로 파견된 로마 총독 정도로 그를 설명할 수 있겠지요.
본시오 빌라도는 실존했던 인물인가
우리가 본시오 빌라도에 대해 잘 모르는 이유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성경 말씀과 로마 역사가들의 서술, 여러 다른 기록이나 자료들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님의 수난을 강조하고자 등장한 가공의 인물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1961년 이스라엘 카이사리아의 야외극장에서 돌판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지금도 이 돌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순례자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조금 훼손되었지만 이 돌판에는 라틴어로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의 총독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니다. 곧 이 돌판은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에 파견된 총독이었으며, 또 그가 실존 인물이었음을 알려 주는 증거입니다.
빌라도는 그라투스에 이어 유다 지역의 5대 총독으로 부임합니다. 빌라도는 유다와 사마리아, 이두메아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로마 총독이 유다 지역으로 파견되는 과정과 이유에 대해서는 지난 1월호의 헤로데 편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보통 유다 지역의 총독들이 3년 정도의 임기를 지냈던 것에 비해 빌라도는 10년(26-36년) 동안 장기 집권합니다. 요한 세례자를 비롯하여 예수님의 공생활 시기의 중심에 빌라도가 있는 것이지요.
티베리우스 황제부터 네로 황제까지 55년의 로마 역사를 기록한 「연대기」에서 빌라도를 언급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타키투스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설명하면서 예수라는 사람이 본시오 빌라도에게 처형당했다고 언급합니다(15권 44장 참조). 로마의 기록 가운데 드물게나마 빌라도가 등장하는 부분입니다.
유다인이 말하는 빌라도
다음으로 볼 수 있는 자료는 유다 저술가들의 기록입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유다 고대사」에서는 빌라도가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환심과 신임을 얻으려고 황제의 형상을 딴 깃발을 예루살렘 곳곳에 걸었다고 전합니다. 이는 우상 숭배로 유다인들의 반발을 샀고, 곧 유다인들의 소요가 일어납니다.
빌라도는 그런 유다인들을 강경하게 진압합니다.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는 루카 복음(13,1)은 이러한 배경과 연결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다 철학자 필로는 빌라도를 냉혹하고 악의에 찬 잔인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성소라고 할 수 있는 그리짐산에서 모세의 계명판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에 수많은 이가 이 산에 모여들었고, 빌라도는 소요를 제압하고자 이들을 학살했다고 그는 전합니다.
이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라도의 직속상관인 시리아의 총독 비텔리우스에게 이를 항의하며 빌라도의 처벌을 요구했고, 총독은 황제에게 이를 보고하여 빌라도의 10년에 걸친 유다 지역의 통치가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유다 저술가들의 기록을 보면 빌라도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과 적대감이 드러납니다. 유다인을 무시했으며 유혈 진압을 반복한 폭정가로 그를 묘사합니다. 식민 통치하는 로마의 관리를 유다인들이 좋게 볼 리는 없을 것입니다. 빌라도와 관련한 유다의 기록들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것인지는 난제로 남았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빌라도
성경에서 언급하는 빌라도는 어떤 모습일까요? 복음서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성경에서 빌라도의 모습이 그리 나쁘게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유다의 최대 축제 가운데 하나인 파스카는 유다의 성인 남성이라면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합니다. 유다인들이 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모여듭니다.
보통 카이사리아에 머물던 총독은 유다인들의 소요에 대비하고자 이때는 예루살렘에 머무릅니다.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틈틈이 기회를 노리던 유다의 지도층은 황제를 거슬러 유다인의 왕으로 자처했다는 죄목으로 예수님을 붙잡아 고발합니다. 사형 집행은 총독의 권한이기에 그들은 총독에게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하라고 요구합니다.
관점 차이는 있지만 사복음에서는 빌라도를 가능한 한 예수님을 풀어 주려는 인물(요한 19,12; 루카 23,20 참조)로 묘사합니다. 빌라도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이나 반감을 가진 유다 저술가의 기록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신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으며(마태 27,18; 마르 15,10 참조), 죄인을 놓아주는 전통을 통해 예수님을 풀어 주려고도 합니다(요한 18,39 참조). 심문해도 죄목 하나 찾지 못하겠다며(루카 23,14; 요한 18,38 참조),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 항변하기도 합니다(마태 27,23; 마르 15,14 참조). 군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예수님에게서는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겠다고 선언하고(요한 18,36 참조), 풀어 주겠다고 반복해 이야기합니다(루카 23,20.22 참조). 직접 예수님을 변호하지는 않지만 이처럼 할 수 있는 한 무죄를 선고하고자 애쓰는 빌라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빌라도를 향한 유다인들의 반발은 거셌습니다. 이미 이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아내의 전갈도 있었기에(마태 27,19 참조) 빌라도는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유다인들의 분노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고, 이를 당해 낼 수 없었습니다. 폭동이 일어날 것 같았기에(마태 27,25 참조), 그는 구명하려는 것을 포기한 채 군중을 만족시키려고(마르 15,15 참조)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넘겨줍니다. 이것이 성경이 전하는 빌라도의 모습입니다.
불의와 타협한 빌라도
한 지역의 통치자로서 그가 사형 선고를 내리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찌 바뀌었을까요? 앞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빌라도는 지도층들의 선동에 흔들리며, 그들과 타협하는 비겁한 지도자처럼 여겨집니다. 자신은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마태 27,24)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예수님의 사형을 선고한 최종 책임자였다는 사실이 바뀌지 않습니다.
성경의 언급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비굴하고 교활한 인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런 죄도 찾을 수 없는 대상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인물이자 자신의 안위가 걱정되어 군중과 백성의 지도자들과 타협하는 전형적인 정치가의 모습입니다.
유다 지도자들은 “그 사람을 풀어 주면 총독께서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 누구든지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이오.”(요한 19,12)라며 군중을 선동하여 그를 위협합니다.
자신들의 법으로는 사형이 마땅하다는 이러한 다수의 주장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럼에도 아닌 것을 아니라고 이야기하지 못했고 사실상 불의와 타협했기에,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그를 정의롭지 못한 인물로 기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부 동방 정교회에서는 빌라도와 그의 아내 클라우디아 프로쿨라를 성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고자 어느 정도 타협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지향하던 바와 노력으로 결국 그는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몇몇 교부들 또한 이러한 가능성을 언급하지만 그 근거나 설명을 대부분의 교회에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빌라도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을 떠나 우리 삶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도 현실과 신앙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의 길을 택하기란 생각보다 무척 어렵습니다. 빌라도를 바라보는 예수님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을 풀어 줄 궁리를 하면서도 현실의 상황 앞에서 갈등하고 방황하고 타협하는 빌라도의 모습을 예수님은 어떻게 보시고 계셨을까요?
불의 앞에서 고민하고, 타협하기도 하는 우리를 바라보실 예수님을 묵상하며, 신앙의 여정에서 그 갈등의 순간 앞에 예수님의 도움을 겸손히 청해 봅니다.
* 최광희 마태오 - 서울대교구 신부. 가톨릭 청년성서모임을 담당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 대학원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하였다.
[경향잡지, 2018년 7월호, 최광희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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