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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서양미술사조 가운데 ‘사실주의(寫實主義, Realism)’라고 하면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이후 1840년경부터 1870년대까지 프랑스 회화에 등장한 새로운 조류를 지칭한다. 근래에는 번역어 ‘사실주의’보다는 원어 그대로 ‘리얼리즘’이라고 표기하는 추세이므로 본문 역시 이를 따르고자 한다. 당시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펼쳐진 이 운동에 동참한 예술가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시대의 생활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진실되게 기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신고전주의가 추구한 고상한 주제와 매끈한 화면은 물론 낭만주의의 주관적이고 격정적인 표현 역시 거부한 리얼리스트들의 화폭에는 고대의 신들이나 이상적으로 미화된 영웅의 모습이 아닌, 도시 노동자와 농민을 포함한 당대의 인물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과 사물들이 담기게 되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형성된 미술 운동으로서의 리얼리즘은 유럽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어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영국과 미국에서 독자적인 형태로 전개되기도 했다.
보수적인 화단에 충격을 던진 리얼리즘
 19세기 리얼리즘 회화의 선구자는 두말할 나위 없이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이다. 그의 작품 [오르낭의 매장]은 1848년 고향으로 내려간 화가가 이웃의 장례식을 주제로 그린 것으로 1850년 살롱전에 발표된 이 작품을 본 관객과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엄한 역사화나 종교화에 어울릴법한 거대한 크기의 캔버스 화면에는 중앙 하단에 파여진 구덩이 주위로 한 무리의 촌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화가의 가족과 친척, 친구 등 오르낭 마을의 실제 주민들을 모델로 해서 그렸다는 화면 속 인물들은 어정쩡하고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분주하기까지 했다. 전통적인 아카데미 형식의 고상한 작품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은 이 그림의 주제가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수준 높은 연례 전시인 살롱의 출품작임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의 규준을 따르기는커녕 오히려 고의로 위반하고 있는 듯한 [오르낭의 매장]에서 화가 쿠르베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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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베 [오르낭의 매장] 1849~1850년경 캔버스에 유채, 315cmx668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작품 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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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당대의 리얼리티(reality)였다. 초월적이고 영웅적인 죽음이 아닌, 아름답고 로맨틱한 비애감도 아닌, 마을 공동체에 속한 어느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담담하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기록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쿠르베는 1855년 <리얼리즘 Le Réalisme> 선언문을 작성하고 자신을 리얼리스트로 규정했다.
1849년에 그려진 또 다른 작품 [돌을 깨는 사람들]은 쿠르베가 추구한 리얼리즘을 보다 극명하게 드러낸다. 커다란 화면 안에는 다 헤진 옷을 입고 그들의 노동에 열중해 있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관객을 등진 채 돌이 담긴 바구니를 옮기고 있는 소년과 푹 눌러쓴 모자 사이로 굳게 다문 입과 움푹 패인 주름만이 드러나 보이는, 망치질에 여념이 없는 노인, 그리고 그들의 작업에 필요한 몇 가지 도구 외에 별다른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돌 깨는 일은 고대로부터 언제나 사회 최하층 계급의 몫이었기에 이러한 노동자를 그린다는 것 자체가 금기를 깨는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논란이 되었던 것은 어떠한 감흥도 가치도 부여되지 않은 인물들의 표현이었다. 비평가들은 쿠르베가 그린 인물들이 그들이 깨는 돌보다 더 의미 없어 보인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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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베 [돌을 깨는 사람들] 1849년 캔버스에 유채, 165cmx257cm, 드레스덴 국립 미술관 소장 (1945년 소실됨)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작품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