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지적설계주의자들은 무식하며 대책없는 기독교근본주의자들과 자기들을 구분해달라는 요구를 한다.
양자의 차이가 있을까?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은 지구와 모든 생명체들이 기원전 약 4000년경에 6일만에 창조되었으며 화석들은 전 세계를 쓸고 지나간 홍수의 잔해란것이 그들이 주장이다.
그럼 지적설계주의자들은 어떨까?
언뜻보면 지적설계주의자들은 진화론에 상당히 동화된 듯하다.
그들은 아주 먼 옛날 원시세포에서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생명체로 발전해왔음을 알고 진화론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들은 그 단순함에서 현재의 복잡다단함에 있어서의 기막힌 조율에 인간을 초월하는 그 어떤 존재의 힘이 작용했음을 굳게 믿으며 그런 인간을 초월한 존재의 개입을 부정하고 우연과 필연의 산물로 돌리는 진화론자들을 배격한다.
이렇게 보면 지적설계주의자들이나 기독교창조주의자들이나 4000년전이든 아니면 먼 엤날이든 어찌되었든 신의 개입을 받아들임은 똑 같은 것 아닌가?
1996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라미라다 대학교에서의 최초의 모임 이후로 지적설계주의자들은 기독교창조주의자들과 영합하여 진화론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지적설계주의자들의 주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우주의 탄생과 생명체의 탄생이다.
빅뱅시에 극소수의 기본불질들의 탄생과 결합,그리고 기본적인 자연상수들의 절묘한 조합은 그야말로 희박함의 희박함이다.
이는 현대과학에서도 인정하는 바이다.
"이런 희박함속에서의 탄생에 어찌 그 어떤 초월적 존재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수가 있는가?"가 주장의 요약이며,물리학자이자 범신론자인 프리먼 다이슨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점에서 우주는 우리가 오고 있음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두 번째는 마이클 베히로 대표된다.
그는 로마카톨릭소속의 생물학자이며 '다윈의 블랙박스'란 저작물로 다윈주의를 공격한다.
그는 다윈과 진화론은 일부 인정하지만 진화가 맹목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따라서만 작동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역시 우주의 탄생처럼 뒤에는 역시나 초월적 존재가 있다는것이다.
여기서 마이클 베히가 말하는 블랙박스는 '세포'를 말한다.
누가 뭐라고 하나?
그들이 주장하는것처럼 초기 다윈주의는 이미 오래전에 다윈이 받아들였던 획득형질개념을 포기했으며 분자생물학과 유전자학의 발달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초다윈주의를 채택한지 오래이다.
생명탄생의 주제로만 시야를 좁혀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대표적인 지적설계주의자들은 이런 이미 포기된 다윈주의를 가지고 진화론을 공격하기 일쑤다.
'고모라를 향해 꾸부정하게 서서' 의 저자 로버트 보크는 마이클 베히의 글을 인용하며 이런 주장을 한다.
"다윈주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을 설명하지 못한다.
종교는 더 이상 뒷받침되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과학적 무신론과 싸워선 안될것이다.
가정이 변해왔고 자연적 무신론과 세속적 인본주의는 수세적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과연 그럴까?
초다윈주의는 이미 생명발새에 관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재 구성할수가 있으며 이제는 인간중심의 문화적진화가 대두된지가 오래이다.
간단하 생명체(원시생명체)는 이미 실험실에서 만든단느것은 이미 신의 손이 아닌 인간의 손으로도 가능하다.
그런데 무신론과 인본주의의 수세적위치라니...
변해가는 시대적패러다임을 외면한채 맹목적인 다위주의의 유령만을 공박대상으로 삼는 이들 지적설계주의자들의 태도가 필자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다른 예도 보자.
미적분학의 권위자인 수학자 데이빗 벌린스키는 페일리의 시계공논리를 본따 자신의 논문 '부정할수 있는 다윈'에서 이런 주장를 한다.
"골무가 존재하기 위해서도 지능의 활동이 요구된다.
생명의 인공물들이라고 달라야 할 이유가 있는가?"
데이빗벌린스키는 전연 다른 두 존재를 연결시키며 초월적 존재를 의인화하고,거기서 생겨 난 결과물이 우리란것을 암암리에 주장하며 또한 신본주의를 주장하는것이다.
사실 지적설계주의자들은 진화론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
현재의 진화론은 점진적인 진화론과 비약적진화론으로 나눈다.
전자는 모든 동식물은 시간의 장구함속에서 아주 천천히 변화의 과정을 밟는단것이고 후자는 고 스티븐제이굴드와 르원턴으로 대표되는 오랜 정체의 시기에서 갑자기 큰 변화가 초래된다는것이다.
이러한 차이릉 이용하여 이들은 이런 주장을 한다.
자그마한 진화는 자연적이지만 매우 큰 폭의 진화는 오직 초월적존재에서만,신의 손에 의해서만 일어날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주장을 뒷 받침하는것으로 주로 사용하는 재료가 '눈'이나 '날개'같은 복잡한 기관이다.
그들의 논리를 따르자면 이런 복잡한 기관은 도저히 그 어떤 변화의 단계를 가지고선 나타날수가 없으며 완전한 하나의 형태로 처음부터 나타났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중간단계의 화석이 존재하지 않는단것이다.
사실 이같은 주장은 자유주의적 카롵릭교도였던 미바트가 맨 처음 주장한 논리다.
그는 이런 논리와 함께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에게 야훼가 영혼을 불어넣었단 논리도 주장했기 때문에 그 당시의 기독교계에서 파문당한다.
허나 지금은 미바트의 논리를 기독교계는 차용하고 있다.
앞서 말한것처럼 진화를 거듭한 생명체가 인간의 모습을 하였을때 야훼가 영혼을 불어넣었단것이다.
그 미바트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창조주의자들이나 지적설계주의자들은 이런 질문을 진화론자들에게 던진다.
"반쪽짜리 날개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런 질문을 무기로 마이클 베히에 이어서 또 한 사람의 주목할 만한 지적설계주의자가 등장하니 그가 바로 '필립 존슨'이다.
그의 저작 '재판중인 다윈'은 지적설계주의자들의 성경이라할만하며 역시나 마이클 베히의 경우와 같이 많은 장을 도킨스를 위시한 진화론자들을 공박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잠시 두 사람의 저작을 살펴보자면 먼저 마이클 베히는 다윈의 블랙박스에서 살아있는 세포의 너무나도 정교하고 복잡함을 이유를 들어 그런 생존과 번식은 신의 개입없인 불가능했으며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진화론으론 원시세포들이 어떻게 진화하였나를 설명하지 못한다며 진화론자들을 비판하였다.
이 다윈의 블랙박스가 출간되기전 마이클 베히는 뉴욕타임스의 북리뷰를 상당히 신경썼음에 틀림없다.
이런 처지를 위로하며 필립 존슨은 마이클 베히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염려마시오,마이클.
뉴욕타임스가 그들의 서평에서 당신을 거세게 몰아부친다고 해도 타임스가 출간되는 8월 4일 미국에서는 문화지진이 일어날것이오."
물론 지진같은건 일어나지 않았다.^^
마이클 베히의 주장은 진화론을 조종하는 그 어떤 힘을 아직은 규명할 수 없는 진화론자들의 현재를 매우 잘 꼬집은 것이다.
그럼 마이클의 주장은 헛점이 없는가?
만약 신이 그 같이 원시세포의 생존과 번식을 도왔다면 도대체 어떻게 신이 도왔는지 그 방법에 대한 규명이 있어야한다.
이런 그의 규명은 전혀 없다.
두 번째로 필립존슨의 '재판중인 다윈'을 보자면 그는 리차드 도킨스의 눈과 날개의 관한 점진적진화를 전연 증거가 없는 공상이라고 격렬하게 깎아내린다.
이에 리차드 도킨슨는 자신의 저작 '에덴에서 발원한 강'을 통해 눈에 대한 많은 진화사례를 아주 풍부하게 다루고 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눈은 모든 생물체의 피부에서 빛에 민감한 부위가 서서히 점진적으로 진화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단 것이다.
이런 논박과 함께 리차드 도킨스는 미바트를 거쳐 현재의 지적설계주의자들의 "반쪽 날개 빈정거림에 대한 완전성의 신화"를 눈먼 시계공에서 이렇게 반박하고 있다.
"모든 단계들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현존하는 동물들이 있다.
발가락 사이에 난 커다란 물갈퀴로 물을 헤쳐나가는 개구리들,공기를 이용할수있도록 평평한 몸을 가진 나무뱀들,전신에 보조날개를 달고 있는 도마뱀들,그리고 날기 시작한 박쥐들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사지 사이에 펼쳐진 막으로 활강하는 여러 종류의 포유류등이 그것이다.
창조주의자들의 문헌과는 반대로 '반쪽 날개'를 가진 동물들이 있을 뿐 아니라 날개의 4분의 1,날개의 3분의 1만을 가진 동물들도 있다.
비행의 연속성이란 개념은, 매우 작은 동물들은 그들의 형태와 관계없이 공기 중에 부드럽게 뜨는 경향이 있음을 상기할때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
이것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작은 동물에서 큰 동물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단계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기때문이다."
이런 반박에도 두 지적설계주의자들은 별 다른 대응이 없었다.
사실 필립 존슨의 재판중인 다윈을 보면 몇몇군데에서 그의 논리가 매우 허술함을 드러낸다는것을 알수있다.
먼저 그는 진화론자들의 현재까지의 연구성과에 이은 미숙함을 비판을 했지, 신에 의한 간섭이란 대안외에 다른 대안을 내놓치 못했다.
불완전한 화석기록상의 단계를 넘은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자신의 견해는 조금도 피력하지 않았다.
자신의 진화에 대한 견해는 달랑 소진화는 자연적으로 발생하지만 대진화는 신의 개입으로서만 이루어짐을 확신한다 일뿐이고,그래서 진화론자들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규명은 전연 없는 그의 태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교회장로란 지위에 걸맛게 다른 곳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분명 예수의 부활을 믿고 있으며 성경의 기타 다른 기적을 받아들이는데 전연 문제가 없다는 발언을 했지만 과학자이자 회의주의자인 마틴가드너의 편지에는 대답을 거절했다.
마틴가드너의 필립존슨에게로의 편지는 몇가지 질문이 있었는데 그 질문은 두 가지의 주제로 나뉘며 아래와 같다.
"필립존슨씨 저의 질문에 대한 당신의 입장을 분명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최초의 생쥐는 어미가 있었는가?
최초의 인간들은 배꼽이 있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짐슴의 젖을 빨고 짐승의 보살핌을 받았는가?(영혼이 없으므로,미바트의 주장을 참조할것.)
신은 왜 수컷들에게 젖꼭지를 얹어놓았는가?"
"당신은 처녀잉태설을 믿고 있는가?
예수가 이미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린일을 믿는가?
예수가 물위를 걸었으며,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했다는것을 믿는가?"
이런 마틴가드너의 질문에 필립존슨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뒤이어 필립존슨은 다시 한번 쇼를 주최하니,월스트리트 저널의 1999년 8월 16일자 칼럼에서 최근에 중국에서 발견 된 화석들이 다윈의 진화론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전 세계를 돌며 강연하고 있는 중국인 고생물학자에 대해 언급했다.
이에 대해 내과의사인 회의주의자 데이빗 토머스는 회의적탐구자 1999년 11월 12일자에서 필립 존슨에게 그 중국인 고생물학자가 누군지 발표한 논문이 있는지에 대해 공개질문을 했다.
이에 대한 필립 존슨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는 그 사람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하면서,그는 아직 영어 로 된 논문을 발표한 일이 없다고 말하였다.
지금까지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이나 기독교창조주의자들이나 별로 다른바 없는 지적설계주의자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들의 태도는 이렇다.
그 무엇하나 생물이나 식물에 대해서 사실을 관찰하고 다시 분석하여 연구함이 없이 진화론자들의 연구성과만을 가지고 시비걸며 그 결과에 대해서 불완전함을 들추며 모든 답은 신의 손에 있다란 명제로 끝을 맷고 있다.
그러나 그런 신의 손의 개입에 대한 규명은 어느것 하나 속 시원한것이 없다.
한계를 인정하며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과학자들과 진화론자들.
한계를 인정하지만 그 어떤 노력도 없이 그 답을 객관이 아닌 주관인 종교나 신에서 찾으려는 기독교근본주의자들.
후자쪽에 충고 한마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이사야 55장 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