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반짇고리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김재교
세월은 과거를 다 보듬고 가 버린다. 집앞 여수도 무너미처럼 흐른다. 거실에서 내 방으로 들어오면 컴퓨터를 비롯해서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다 이 방에 있다. 그러니 내가 공부하는 시간이면 누구라도 허락이 있어야 내 방에 들어올 수 있다.
내 방에 들어서면 앞 책장 위에는 어머니가 쓰시던 싸리로 엮어 만든 반짇고리와 베 짤 때 쓰던 북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 벽에는 어머니사진이 걸려 있다. 돌아가신지 19년이 되었지만 나는 날마다 어머니와 함께 이야기하며 살고 있다.
어머니의 반짇고리는 싸리나무 줄기로 이쁘고 튼튼하게 만들었다. 줄기줄기 사이마다. 때가 끼었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손때다.
나는 아주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 하고 한 번도 불러 본 기억이 없다. 몇 달 뒤 6.25전쟁이 났다. 우리 집 기둥인 장형은 20세 되던 해 치안전투대에 차출되어 운장산 인민군 토벌작전에 선발대로 나갔다가 다음해 정월 완주군 동상면 왕재전투에서 전사했다. 우리 집 대들보가 무너졌던 것이다. 어머니는 정신을 놓으셨다가 3일만에 일어나셨다. 나는, "형대신 잘하고. 말도 잘 듣고. 심부름도 잘하고. 공부도 잘 할게요. 죽지마세요. 어머니!" 라고 애원을 했었다.
어머니는 3형제에게 남은 인생을 걸었다. 나는 어머니의 조랑바가지였다. 세상이 조용해지자 나는 9세때 1학년에 입학했다. 내가 한글을 알게 된 것은 4학년 말이었다. 5학년 때는 일제고사에서 1등을 했다. 이제 한글을 알 정도니, 한문을 배워야 했다. 내일은 큰동네 큰집 서당에 가자고 하셨다. 어머니는 한글과 한자도 모르셨지만, 천자문은 다 외우셨다. 창호지를 손수 접고 공책을 만들어 놓아 큰집 서당에서 붓으로 쓴 천자문을 나와 함께 받아 오면서 큰집 논둑에서 무궁화 회초리를 한 다발 꺾어 오셨다. 무엇에 쓰려느냐고 하니,잘 못하면 종아리를 때릴 매라고 하셨다. 한문공부가 시작되면 항시 반짇고리에 형들의 헌 목양말과 내 버선, 꿔메야할 옷가지가 담겨 있었고, 옆에는 회초리가 있었다. 창호지 책장에 한문 '일천 천(千)'자를 쓰고 한글로 '일천 천'이란 토를 달았다. 조금만 틀리면 머리며 종아리에 불이 났다. 형들이 보면 더 했다.
6학년 때쯤, 가을추수가 끝났을 때,익산에 살고 계시는 이모님 두 분이 오셨다. 한문공부가 많이 진전되었을 때였다. 옛날 외가에서는 독서당에서외숙이 배우는데 외숙보다밖에서 듣는 우리 어머니가 더 잘 했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얼마나 엄했는지,그때는 불만이 많았다. 장독에서 장독일을 하시다가도글 읽는 허점이 보이면 당장 문을 열고 뼈가 저릴 정도로 혼줄이 났다. 네놈 사주가 좋게 태어났으면 이 에미도 고생 안할 것이다. 네놈이 복이 없어 애비도 없이 살고 있으니, 에미 말은 천금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은 항시 내 가슴에 꽂혔다.
"회초리에서 사람이 사는 이치를 터득하고. 도리가 아닌 황금을 보면 입을 열지마라. 배운 것 가진 것 없으니피나는 노력과 끈질긴 인내를 기둥삼고, 이웃과 하나되어 살면 내일이 있을 것이다. 조상님을 섬겨야 후손이 잘 된다.조상이 없는 가문이 없고, 나라가 없으면 백성도 없다."고 하셨다.
나는 좋은 스승님들을 만나 컴퓨터를 배웠고, 사진작가(진사)들과 전시회에 세 번이나 참여하기도 했다. 글공부를 해서 시인으로 등단도 했고,집안 일들도 여러해 노력한 성과가 있다. 금년 2월 20일 오전 10시에 서울 종로구청회관 행사에 진사자격으로 초청을 받았다. 손녀 봄이가 영어와 중국어를 잘 해 선발되어 종로구에서 영어와 중국어로 선배들의 졸업 축하연을 베풀었는데, 내가 사진촬영도 했다.
스마트폰으로 특 좌석 열차표가 찍혀 왔다. 시간에 맞추어 전주역에서 아침 6시 20분에KTX 특좌석 열차를 탔다. 서울에 가서 사진도 많이 찍어 주었다. 내려오는 도중 차창 밖을 내다 보니 살아 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전주역에서 내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와 주위를 살피고 방에 들어와 책상 위 반짇고리와 어머니 사진을 보면서 감사인사를 드렸다. 지금 그 반짇고리에는 봄에 낳은 달걀을 모아 두고 있다. 새봄에는 병아리도 많이 까면 좋겠다는 기대를 걸고 있다.
3년 전에 글공부를 시작하면서 서울 남재님과 함께 13대조 김면의병도대장공원조성에 많은 힘을 쏟았다. 그것이 작년에 결실을 맺었다. 올해는 더욱 노력해서 남은 생을 다듬고 우리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깃들기를 조상님께 엎드려 축원한다.
(2016.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