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아정신과지나영마음이흐르는대로 p258-261
진심으로 삶에 임한다는 것
나는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나라의 서로 다른 문화, 어떤 부분에서는 거의 극적으로 상반된 이 두 가지 문화를 속속들이 경험한 것이 내 인생의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단 한번 인생을 살면서 모국의 문화뿐만 아니라 또 다른 나라의 문화에도 몸담아 살아본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롭고 생각을 깨우치는enlightening 경험인가.
그런데 미국에서 한국인으로서 강한 자긍심을 갖고 살면서도 나는 한국에 대해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을 느낀다. 한국에서는 각 개인의 독특함을 그다지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는 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각자의 특성과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격려받기보다는, 오히려 그 개성을 누르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보편적인 인간상에 맞추어 살아가도록 가르침을 받는 듯하다. 또 부모님들은 최선을 다해 소위 ‘1등진로’로 가는 길을 닦아주면서 자녀들을 향해 한눈 팔지 말고 그 길로만 걸어가야 한다고 재촉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자신의 진심을 따르기보다는 부모나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선택을 하며 성장한다.
하지만 정말이지 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던가. 나에게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지 않는 길을 아무리 철저하게 계산한다고 해도, 내가 계획했던 그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할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지금은 확고하게만 보이는 명제도 격변하는 사회속에서는 그 수명이 영원하지 못하다. 인생의 어떤 문제에든 꼭 들어맞는 길이나 정답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우리는 자기 삶의 핵심 원칙들을 점검하고,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방향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각각 다 다르게 태어난 존재가 아니던가. 남에게 좋은 길이 나에게도 좋다는 법은 결코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living from the outside in 내 진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 living from the inside out.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사회나 타인에게서 오는 게 아닌 오직 내 안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인생을 딱 한 번 살다 갑니다. 그런데 내 인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싶나요?” 그러면 많은 학생이 되묻는다. “아니요. 진짜 내 인생을 살고 싶지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나의 진심을 잘 모르겠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일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 아이들은 자기 안의 소리를 듣고 표현하는 것을 장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지 않아서, 더더욱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주로 이렇게 한다.
바쁜 일상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어놓고 소음이 적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곳으로 간다.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어 차분히 심호흡을 한다. 마음이 고요해졌을 때 내게 주어진 선택의 길들을 하나하나 마음속에 그려본다. 이쪽을 선택하면 어떨까, 아니면 저쪽을 해보는 건 어떨까 상상해보며 내 마음의 소리를 느낀다. 무엇을 선택할 때 마음이 설레고 내 미래가 궁금한지, 또 무엇을 떠올릴 때 가슴이 갑갑해지고 우울한 느낌이 밀려오는지. 이는 실로 직감의 영역이라 손익을 따지지 않고 머리를 끈 채 마음을 여는 과정이다. 눈을 감고 가슴에 얹은 손을 통해 내 진심을 느껴보는 것이다.
* 생활성서 소금항아리 2022-07.29 금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
요한 11,19-27 : "저는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믿음의 네 단계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는 네 단계의 믿음을 고백함으로써 점점 굳센 신앙인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에 처하게 되었을 때 하느님을 찾게 되는데 이는 신앙인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두 번째는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이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느님께 해결해 달라고 청하는 신앙인의 두 번째 단계 모습입니다. 세 번째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입니다.
마르타는 죽음의 허망함 앞에서 아픔을 느끼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인 결론에 도달하는데 바로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임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하느님 전지전능함과 예수님의 힘을 온전히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국 그녀의 오빠를 살려 주십니다. 어떤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을 때 예수님께서는 간절한 이의 청에 응답해 주신다는 것들 마르타의 믿음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당신의 믿음은 어느 단계에 있습니까?
* 무저항의 효성 (종교예화1, 최형락신부저, p39)
순의 아버지 고주는 장님이었고 어머니는 순을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새로 들어온 계모는 성질이 잔악하여 친자식 상만을 사랑하였다. 아버지 고주 역시 계모의 농간에 빠져 순을 미워하고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순은 조금도 불평함이 없이 극진히 부모를 섬기고 동생 상을 사랑하였다. 얼마후 그의 지극한 효성을 전해들은 임금 묘제는 순을 사위로 삼고 많은 진귀품을 하사하였으며, 나중에는 재상으로까지 등용하였다.
그러나 순의 양친은 절대로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의 재물을 빼앗고, 죽이려 할 뿐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순을 불러 지붕에 좀 올라가라고 하였다. 아들은 이유없이 순종하였다. 그러나 순은 이미 불을 지르리라는 예상을 하고 삿갓 두 개를 양측 옆구리에 끼고 올라갔다.
위기에는 뛰어 내리려는 것이었다. 역시 그대로였다. 그러나 순은 무사했다. 한번은 순에게 깊은 샘을 파게 하였다. 어느 정도 내려갔을 때 아버지와 상은 갑자기 흙을 샘으로 부어 버렸다. 그러나 순은 이를 짐작하고 옆구리에 미리 구멍을 파두어 나올 수 있었다. 틀림없이 이번만은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둘은 재산 분배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었다. 상은 공이 크므로 순의 아내와 거문고를 갖기로 하고, 양친은 가축들을 갖기로 하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죽은 줄만 알았던 순이 태연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순은 점잖케 나무랐다. “나는 당신들만 보면 속이 답답하오, 도대체 나를 어떻게 하려는 것이요, 어떻게 하면 속이 시원하겠소.”
깜작놀란 그들은 그후 모두 회개하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