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마산시청 앞에서 수정만STX기자재공장 유치 반대를 위한 집회를 하고 돌아온 장 요세파 수녀를 경남 마산시 구산면 수정리에 있는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수녀원에서 만났다. 그날은 몇몇 수녀를 제외한 18명이나 되는 수녀들이 총동원되어 집회에 참석했다. 전형적인 관상수도원에 속하는 트라피스트회 수녀들이 시위와 집회현장에 나간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왜 거리로 나오게 되었는가? 물어왔다. 수녀원장인 장요세파 수녀는 이를 두고 한마디로 "수도생활에서 은둔은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다. 우리의 목적은 복음적 삶에 있으며, 그분께서 사랑하셨던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적 요청에 따라 잠시 '은둔이란 수단'을 접고 세상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제 문제가 해결되면 간단없이 은둔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오늘처럼 시위를 하고나서도 돌아서면 우리 마음은 바로 은둔에 젖어든다"고 말한다.
하루 일곱 차례나 봉헌되는 기도시간 중에서, 이날 5시 45분에 수녀원 성당에서 진행된 저녁기도에서는 이런 보편지향기도가 봉헌되었다.
1. 주님, 저희 나라 국민들과 지도자들이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과 모든 이의 이익을 먼저 찾는 드높은 정신과 큰 영혼의 소유자들이 되게 하시어,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 드리는 복된 나라를 만들어가게 하소서.
2.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교회와 사회 구석구석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복음의 향기를 실어나르는데 지치지 않는 열정을 더해 주소서.
3. 모든 사람을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신 하느님, 사람들로 하여금 불의한 차별을 버리게 하소서.
4. 길 잃은 모든 이를 주님의 진리와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저희에게 가르쳐주소서.
5. 자신들의 소중한 시간을 저희 집회에 온전히 내어놓은 많은 성직자, 수도자, 정당인, 시민단체 회원들과 특히 먼곳에서 와서 함께 해준 서라파엘 사제, 이 프란치스코 형제와 몸으로는 함께 하지 못했으나 자신의 일처럼 마음을 써주는 모든 은인들의 따스한 지지와 격려에 주님, 찬미와 감사 드리나이다.
6. 죽은 이들을 주님 영광에 들게 하시어, 영원히 주님을 찬미할 수 있게 하소서.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은 시토회에 속하며, 은둔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러 갔던 사막의 은수자 전통과 서방 수도자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성 베네딕토의 정주 공동생활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관상수도원이다. 1098년 '새수도원'이라는 뜻의 '시토'수도원이 창립되면서, 단순함과 엄격함, 노동과 끊임없는 기도생활과 공동생활, 친교, 인간성에 대한 이해 등을 추구해 왔다. 이후 시토수도원은 사랑의 배움터가 되어왔다.
그후 유럽에 수도원운동이 융성하면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였고, 이에 1665년에 라 트라프수도원의 드 랑세 아빠스가 기도하는 삶, 엄격하고 가난한 삶을 회복하고자 엄률시토회를 창립했다. 한국에 있는 유일한 트라피스트수도원인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수녀원은 1898년에 일본 홋가이도에 창립한 시토회 천사의 성모수도원을 모원으로 해서, 수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친 뒤에 1987년에 마산시 수정리에서 정식 창립되었다.
장 요세파 수녀는 트라피스트수도원의 특징은 "특징이 없는 것"이라고 답하며, 수도원운동에 대해 먼저 말을 꺼냈다.
수도원운동은 예수 사후 하느님을 찾으려는 열망으로 사막으로 들어간 은수자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콘스탄틴 이후 박해가 종식되면서 신앙적 열정도 사그라들자, 박해시기의 간절함을 살기 위해 수도원운동이 계속되었다. 수도원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막의 은수자들이 보여주었던 '은둔'의 정신과 베네딕토 성인이 가르쳤던 공동생활의 필요성이었다. 여기서 은둔은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는 여러가지 길 중에 하나이며, 수도자들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침묵'을 통해 은둔과 사막을 경험한다.
이는 움직임과 정적의 결합이며,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들이 거리의 집회현장에 가서 고함을 지르고나서도 돌아서면 바로 '정적'과 '침묵'으로 돌아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공동생활은 수도자들로 하여금 인간성의 한계에 빨리 부딪치도록 하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들은 하루 전체를, 한 달 전체를, 일년 내내 노동과 기도, 독서라는 똑같은 행위 안에서 지낸다. 그러나 결코 지겹고 지루할 틈이 없다. 그들은 관상생활 안에서 매일 새로운 노래와 새로운 말씀을 듣는다. 때로는 곁에 있는 다른 수도자들의 숨소리마저 감지되는 정적 속에서, 달그락 거리며 설겆이를 하면서, 새로운 자극을 통해 자기 내면을 응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일같이 온통 탈취된 상태에서 생활하는 사막을 공동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을 잃어버릴 때 온통 세상이 지옥이라 하지 않는가. 내 자신이 그분의 현존 안에 머물 때 온통 세상이 천국이지 않는가, 묻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자들은 작은 소리에도 울고, 모든 조건에 대해 민감하다.
장 요세파 수녀는 이런 상황을 50-60년전에 우리가 경험했던 농부들의 모습에서 발견한다. 전깃불도 없는 시절엔 해가 지면 다들 잠을 청하고 새벽 동이 트기 직전에 일어나 활동을 시작한다. 자연의 흐름에 온전히 몸을 맡기는 삶이었다.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오감으로 고통을 그대로 받아안으며 살았던 시절이다. 그 고통을 회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고통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요세파 수녀는 지적했다. 고통에 대해 피상적으로 접근하고, 대충 얼버무리고 넘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도자들은 그 고통에 민감하며, 그 고통이 더 깊은 심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다. 그 심연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피부를 긁어도 아프지 않지만, 화상을 입은 사람은 그 상처를 조금만 건드려도 아픔을 느낀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정작 곪아 있는 상처다. 그 상처를 해결해야 다른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장 요세파 수녀는 예를 들면서 "시청 앞에서 한바탕 싸우고 나면 우리 수녀들은 금방 침묵으로 돌아서기 쉽지만, 수정리 주민들은 6박7일동안 분을 못 삭이고 아파한다."고 말한다. 불의를 보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계속 내면에서 된장을 끓이고 있으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한 일인데, 어차피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얼굴로 가득차 있으며 "내가 경험을 통해 관상을 통해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만큼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하느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인간을 고유한 낱낱의 개인으로 이해하면서도 나아가 '인류전체'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닮아서 그 모든 다양한 인간성을 담아낼 수 있다. 결국 인간을 통해 하느님에게로 가는 것인데, 그래서 수도생활 안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사랑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지금 접하는 그 자매를 통해, 그 사람을 통해 그분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께 속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수도생활이란 민감한 감수성으로, 깨어서 마취제 없이 수술을 당하는 사람처럼 '침묵 속에서' 고통을 응시하고, 그 고통의 심연을 살피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는 길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서는 수행에서 침묵을 강조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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