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는 그대의 생각들이며 생각들은 그대의 투사물입니다
질문자 (다른 부인) :
스리 바가반께서는
우리가 외부적 행위를
하고 있을 때도
탐구를 수행하라고
조언을 하십니다.
그러한
탐구의 귀결점은
진아 깨달음이고,
그 결과로
호흡이 멈춥니다.
만약 호흠이 멈추어 버리면
어떻게 일이 진행되겠습니까?
바꾸어 말해서,
일을 하고 있을 때는
호흡이 어떻게 멈추어 집니까?
마하리쉬 :
수단과 목적 간에
혼동이 있습니다.
(즉,
호흡이 멈추는 것은
보조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 탐구자는 누구입니까?
구도자이지
싯다(완성자)가 아닙니다.
탐구는
그 탐구자가
자신을 탐구와 별개로
생각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이원성이
지속되는 한
탐구를 계속해야 합니다.
즉,
개인성이 사라지고
자기가 오직
하나의 영원한 '존재함'
(탐구와 탐구자를 포함하는)
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는
계속 탐구해야 합니다.
진리는
진아가
항상적이고 끊어짐없는
'자각'이라는 것입니다.
탐구의 목적은
'자각'인
'진아의 참된 성품'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별개성이 지각되는 한
탐구를 수행하도록 하십시오.
일단 깨달음이 일어나면
탐구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그런 질문도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자각이,
누가 자각하고 있는지
물을 생각을
하거나 하겠습니까?
자각은 순수하고
단순하게 그대로 있습니다.
탐구자는
자신의 개인성을
자각합니다.
탐구는
그의 개인적인 자각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외부적인 일도
그런 자각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겉보기에 외부적인 일이
그 개인적인 자각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진아와 별개가 아님을
깨닫고 있는 그 일이,
'두 번째가 없는 하나'이면서
일과 별개의 한 개인도 아닌
그 끊어짐없는 진아의 자각을
방해하겠습니까?
질문자 (또 다른 부인) :
저는
창조계의 일부를 이루고,
따라서
의존적인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독립할 때까지는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스리 바가반께
여쭈어 봅니다.
당신께서 저를 위해
답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마하리쉬 :
그러지요.
바가반은 이렇게 말합니다:
"독립하여
그 수수께끼를
그대 스스로 푸십시오.
그렇게
해야 할 사람은
그대입니다." 라고.
또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기에
그런 질문을 합니까?
그대가
세계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세계가
그대 안에 있습니까?
그대가 잠들어 있을 때는
세계가 지각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대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때에도
그대의 존재성은
부인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세계는
그대가 깨어나면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있습니까?
분명히 세계는
그대의 생각입니다.
생각들은
그대의 투사물입니다.
'나'가 먼저 창조되고,
그 다음에 세계가 창조됩니다.
세계는
'나'에 의하여 창조되는데,
그 '나'는
진아에서 일어납니다.
세계 창조의
수수께끼는
이처럼 그대가
그 '나'의 창조(라는 문제)를
풀면 풀립니다.
그래서
그대의 진아를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또 세계가
그대에게 와서
"왜 '나'는 존재하는가?
'나'는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하고 묻습니까?
그 질문을 하는 것은
그대입니다.
그 질문자는
세계와 자신의 관계를
확립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는 다시
그 '나'를 발견하고,
그런 다음
진아를 발견해야 합니다.
더욱이
과학적이거나
신학적인
모든 설명들은
서로 조화되지 않습니다.
그런 이론들이
다양하다는 것 자체가
그런 설명을
추구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그런 설명들은
순전히 심적이거나 지적이며,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설명도 모두
그 개인의
관점에 따라서는 참됩니다.
깨달음의 상태에서는
창조란 없습니다.
그대가 세계를 볼 때,
그대는 자신을 보지 않습니다.
그대가 진아를 볼 때,
세계는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진아를 보고,
창조란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ㅡ 라마나 마하리쉬 대담록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