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6.금. 일단 맑을 것
남도순례南道巡禮,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이 음식점 이름이 참 재미있다. 김가네동방천다슬기 전문점이다. 아마 사장님 성씨가 김가이고, 근방의 동방천에서 잡은 다슬기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전문 음식점이라는 뜻인 듯하다. 그런데 동네 이름도 재미나다, 구례군求禮郡 토지면土旨面 파도리把道里다. 언뜻 한글만 보고는 토지면土地面 파도리波濤里인 줄 알고 야, 굉장한 마을이름이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土旨는 흙의 맛이라는 의미고, 把道는 길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고유한 지명인지 혹은 행정개편이 있을 때 다시 붙여진 지명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충 만들어놓은 이름 같지는 않고 뭔가 땅에 관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어디선가 보았던 상대리, 중대리, 하대리라는 지명에 비하면 그래도 수준水準 높은 지명이라고 본다. 얼마 전 이 음식점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도 사장님 성씨가 여전히 김가인지 아니면 사장님 성씨는 바뀌었지만 옥호屋號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음식점의 다슬기 전문음식이 여전히 맛있다는 사람도 있고 옛만 같지 않다는 사람도 있어서 나처럼 딱 한 번 먹어본 사람은 맛을 비교할 수가 없으니 역시 그것도 잘 모르겠다. 우리 일행들 경우만 해도 내가 항상 사랑하는 선심행보살님은 다슬기 토장국 맛이 별로라고 했으나 역시 내가 이따금 사랑하고 있는 길상화보살님, 묘광명보살님, 무진행보살님, 평택보살님, 백화보살님, 팔모보살님은 어떻게 맛을 평가할지 잘 모르겠다. 아참, 엊저녁에 잠깐 들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섬진강 주변 음식점에서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다슬기는 수입한 중국산으로 냉동시켜두었다 일 년 내내 음식의 재료로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육해공陸海空을 따질 것 없이 저질의 중국산이 우리나라로 무차별 들어오는 판이니 그 말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을 들어가 확인을 해보았더니 김가네동방천다슬기 전문점의 사장님께서 식당 한켠에 앉아 직접 삶은 다슬기를 하나하나 핀을 사용해가며 다슬기살을 돌려 빼내고 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아마 이 사진을 올리신 분의 의도는 섬진강에서 채취해 직접 삶은 다슬기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든지 혹은 우연히 보게 된 다슬기작업의 정성스러운 장면을 세상과 공유하고 싶어서였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남도사찰순례단南道寺刹巡禮團인 우리들의 네 번째 식사인 일요일 점심식사는 이렇게 사연이 복잡한 다슬기토장탕과 다슬기수제비, 그리고 다슬기파전으로 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 중 유일하게 다슬기맑은탕을 시킨 태진이는 음식을 시켜놓고 먼저 나온 다슬기토장탕을 먹는 바람에 다른 어느 분이 다슬기맑은탕을 드셔야했다. 태진아, 자신이 시킨 것은 자기가 먹어야지요. 보통普通에서 특特으로 바꾼 다슬기토장탕은 된장을 풀어 아욱과 다슬기를 넣고 끓여낸 탕인데 일단 다슬기가 많이 들어있었다. 푸른 아욱과 종종 썰어놓은 붉은 고추 사이로 무럭무럭 솟아나는 김을 입김으로 후후 불어가면서 맛나게 먹었더니 온몸이 후끈해지고 등에 땀방울이 맺히는 듯했다. 그렇지만 일부 평자들께서는 다슬기의 푸짐한 양에 비해 맛이 진하지가 않고 향이 약한 것이 중국산 같다면서 본래 토종 섬진강 다슬기 국물 맛과는 거리가 있는 밋밋한 맛이라고 평했다. 같은 음식을 두고 누가 어떻게 평을 하든지 내가 맛이 있으면 그만이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또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왕이면 내가 맛이 있는 것은 모두가 맛이 있다고 공감을 받을 때 그 맛이 공적으로 검증받은 우수한 맛이라는 확신과 자부심이 생겨나 한결 기분까지 좋아진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토지면 파도리 소재 이름이 긴 어느 음식점에 앉아 고찰考察과 갈등葛藤과 소신所信사이에서 네 번째 식사를 잘 마쳤다. 역시 ‘음식을 먹는 식사’는 ‘마음을 먹는 기도’ 와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은 뱀과 같이 고찰과 갈등과 소신의 사이를 지나 마음의 평안平安을 얻어야하니까.
(- 남도순례南道巡禮,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
첫댓글 우선은 저부터도 구수한 바지락을 상상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다슬기의 특성을 전혀 몰랐으니까요.
구수하진 않았지만 우리절 식구들과 함께한 식사인데 뭔들 맛이 없겠습니까?
이제서야 글을 보며 그때 좋았던 기억을 다시 떠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