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평생학습관의 어떤 풍경/전 성훈
누가 이들을 불러 모았을까? 이 추운 계절, 해가 진 어두운 저녁 시간에 왜 이곳에 모였을까? 이 사람들을 노원평생학습관으로 이끈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목말라 여기에 왔을까? 책상이 놓인 1층 시청각실은 수강생으로 꽉 차 뒷줄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을 정도로 만원이었다. 30대 중반 이상의 젊은 여성들과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나이든 여성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남성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흰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의자에 앉은 중년 같기도 하고 초로의 신사 같기도 한 남성의 모습에서는 진지한 표정이 엿보였다. 노원평생학습관은 우리 동네에서 상당히 떨어진 중계동에 있다. 집에서 가려면 버스를 타고 대여섯 정거장을 가야 한다. 학습관 1층에 들어서면 왼편에 휴게실이 있다. 편한 자세로 책이나 신문과 잡지를 마음 놓고 읽거나 노트북을 켜 놓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다. 유감이지만 한 번도 이 곳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강의는 주로 1층 시청각 강의실에서 이루어진다.
오랫동안 진리로 알고 지내던 진선미(眞善美)는 어디로 갔을까? 진선미가 사라진 그 자리에는 ‘돈’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배금주의’가 판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눈에 보이는 돈을 뛰어넘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다는 ‘가상화폐’가 세상을 윽박지르며 난리를 치고 있다. 아둔한 내 눈에는 가상화폐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워 괴물로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화폐를 통해서 팔자를 고치고 흙수저에서 금수저 나아가 황금 수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된 어둡고 서글픈 자학적인 자화상이다. 가상화폐의 광풍이 온 세상을 휩쓸고 있는 이 시대에 진선미를 찾아 노원평생학습관을 찾은 이들은 도대체 어떤 이들이며 무엇 하는 사람들일까?
인문학 강좌를 자주 여는 노원평생학습관의 올해 2월의 주제는 ‘미학적 사유의 디자인’이다. 강좌 안내문을 받고 하루 이틀 생각하다가 마음 편하게 강의를 신청했다. 대학 졸업 후 철학적 사유(思惟)와는 담쌓고 지냈다. 철학은 조금은 답답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고지식하고 값비싼 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탓에 나와는 관계없는 별세계로 여기고,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철학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맹목적으로 현실의 삶을 추종하며 살아왔다. 한국철학회 부회장인 조광제 교수가 ‘칸트의 미감적 판단과 뒤샹의 레디메이드’라는 다소 어렵고 거창하고 고답적인 제목으로 강의를 진행하였다. 강사는 예를 들거나 질문을 통해서 ‘칸트’의 ‘미감적 판단’을, “ 그저 감각적으로 주어진 표상 내용 자체만을 파악하면서 그 감각 내용이 주체인 나에게 불쾌함 또는 유쾌한 감정을 일으키는 여부에만, 즉 만족되는가의 여부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하였다. 참으로 알 듯 모를 듯 한 내용이었다. 자본과 돈, 자본가에 대해, “자본이 자본을 통해서 자본가를 수족으로 부리면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한다”는 설명을 듣고 돈과 인간의 상관관계에서 씁쓸한 아이러니를 느꼈다. 왜, 어째서 인문학 강의를 찾아다닐까? 새삼스럽게 돈의 위력을 배우려는 건 아니다. 잃어버린 진선미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거다. 메말라가는 정신과 영혼에게 한 줄기 시원한 물기를 흠뻑 뿌려주는 소나기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2018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