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쟁이젓이라는 것이 잇다. 곤쟁이는 등딱지류(甲殼類)의 잎새우목(裂脚類)에 속하는 새우의 일종이다. 서해안 쪽에서 잡히는 이 새우로 젓 담근 것을 두고, 그쪽 사람들은 "자회젓"이라고도 한다.
이걸 일러 "곤쟁이젓"이라 함은, 조선 왕조 중종 때 남곤(南袞)의 "곤"과 또 한사람 심정(沈貞)의 "정"을 합친 "곤정"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설이 있어 왔다.
남곤이나 심정은, 다 함께 저 이상 정치(理想政治)를 꾀하다가 좌절된 조광조(趙光祖) 일파를 숙청하는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켰던 사람들로 알려진다. 그렇다 할 때 이 기묘사화로 해서, 온통 집안이 쑥밭이 된 자손들말고도, 조광조 일파에게 기대를 걸었던 여항(閭巷)의 불만이, 그러한 곳으로 쏠림으로써 빗대어 욕하자는 게 아니었던가 생각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젓 담아 버릴 사람"이라는 적개심이, 한낱 서해안에서 나는 자그만 새우젓에 비겨지면서 후세인의 마음에 반영되었던 것이라고나 할 일이다.
이 "곤쟁이젓"과 같은 종류의 말로는 "숙주나물"이라는 것을 들 수 있다. 전라·경상 등의 남쪽에서는 그저 "녹두나물"이라고만 이르는 것을, 경기·충청 같은 중부 지방으로 오면서 "숙주나물"이라고 하는 것인데, 물론 녹두에다 물을 주어서 싹이 나게 한 다음 삶아 먹는다는 점에서는 콩나물과 다를 것이 없다. 이 숙주나물의 "숙주"를 신숙주(申叔舟)의 "숙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자면, 앞의 "곤쟁이젓"의 경우와 같이 "숙주나물"로써 신숙주 그 사람을 욕뵈려 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신숙주는,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같이, 세종(世宗) 때의 집현전 학사였으며, 다 함께 고명(顧命)을 받은 몸이었으면서도, 몸을 빼쳐 수양 대군(首陽大君)편에 듦으로써 세조(世祖)의 공신이 된 사람이었다.
고령군(高靈君)은 후일, 남이(南怡) 장군을 죽이는 일에도 관계가 있었던 사람으로서, 비록 정난 공신(靖難功臣)으로서의 부귀와 영화가 따른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세상 사람들의 미워하는 마음이 작용하면서 제삿상에도 오르는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갖다붙여 놓고선 곤쟁이젓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질근질근 씹으면서 말 못하는 어떤 맺힌 마음을 풀어 봤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 또한 "곤쟁이젓"의 경우와 같이 옛날부터 불러 내려온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에다 후세인들이 "신숙주"의 "숙주"를 갖다붙였다 함이 더 옳을 일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편으로 생각하면, "곤쟁이젓"보다는 조금 더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점은 있다. 왜냐하면, 신숙주 그 사람이 바로 녹두나물, 즉 숙주나물의 수입자(輸入者)였다는 말도 있기 때문이다. 숙주나물은 수입했다는 말부터가 미덥지 못하다. 그러나 만약 그가 수입을 했기 때문에 숙주나물이라 한다면, "곤쟁이젓"의 경우와는 달리 적개심 같은 것과는 관계가 없을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이, 유독 중부 지방에서 쓰인다고 할 때에, 수입자건 그렇지 않건 간에 신숙주의 이름에 빗대어 붙인 이름이라는 말만은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