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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사명
구원과 직접 관계있는 것이 사명 입니다.
오늘부터 3회에 걸쳐서 보내 드립니다.
크신 은혜 되시기를 축복 합니다.
1. 사명이란?
주님이 택한 백성을 이땅에 보내실때 목적을 갖고 보내시는데 이를 사명이라 합니다.
사명은 인간이 스스로 일구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함께 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주님의 선한 사역을 할 수 없기 때문 입니다.
2. 선한 사역의 내용은 오직 주님이 창조하신 목적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창조의 목적은 오직 주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사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엡1:3-6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3. 주님 영광을 위한 사명이 내가 이 땅에 사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 믿어야 천국간다는 말을 듣습니다.
과연 맞는 말 입니다.
성경에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는 유년주일학교 때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식상이 낫습니다.
왜냐하면 유통기한이 지낫기 때문 입니다.
허긴 유통기한이 지낫다고 진리가 변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앙꼬 없는 찐빵이란 것입니다.
이는 마치 어른이 되어서도 덧셈, 뺄셈, 구구단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배웟으면 2차, 3차, 4차 방정식으로 가고, 삼각함수, 인수분해로 가고, nano 공학으로 가고, AI로 가며, 영의 문제로 가야 흥미있고 재미가 있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교회도 학교의 기능이 있어 영적으로 청장년이 될수록 수준있는 공부를 해야 바른 교회 학교이지요.
설교는 초신자를 기준으로 하니 유초등부 수준이지만 여기에 목회자들은 대안학교로 여러 성경공부반을 만들어 놓고 있지요.
그래서 목회자는 이 유치원 수준의 설교를 여러 방법을 통하여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하지만 이 역시 내용은 유치원 수준임을 부인 할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잘믿어 구원 받자가 그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잘 믿자”의 내용은 “말씀대로 잘 지키자”로 갑니다.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마5:17-20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당시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진실로 신앙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었어요.
박학하지요, 율법에 정통하면서 잘 지키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이리도 신앙이 고매한 이들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선언하십니다.
왜냐구요?
그들의 삶 속에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거나, 주님 영광을 위한 삶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들은 이렇게 지켜야 구원이라고 어릴때부터 부모로부터, 랍비로부터 확실하게 세뇌되었기 때문 입니다.
현재도 유대인들의 이러한 전통은 그대로 살아 있어 어릴때 부터 박힌 이 바이러스에 의해 절대로 자기 부인이나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지요.
율법을 지키므로 자기 의에 푹 빠져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시대에는 교부들이, 중세시대에는 칼빈, 마르틴 루터 등 종교개혁자들이 나서서 유대인들의 죄악성을 설파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모르는 자기 의 만을 내세우고 특별히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만을 고집하는 민족이라면서 대체신학을 주장했습니다.
유다인이 미움받는 이유
1 하나님의 저주 받아 나라없는 떠돌이들이다.
2 돈모으면 고리대금업하는 흡혈귀 같은 존재들 이다. (섹스피어-베니스의 상인- 고리대금업자 유대인 샤이록은 대금을 못지킨 채무자의 엉덩이 살을 베게한다)
3 JX의 살인자다.
4 자신들만 선민이다.
대체신학은 유대인들은 이런 악한이므로 학대받아 마땅하며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해야하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어떤 목적도 없다.
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에 의해 600만명의 유대인들이 개스실에서 참혹하게 살해를 당한것에는 하나님의 경륜이 있을 것입니다.
저들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유는 오직 “자신의 의”가 인정받아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러니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목수의 아들 JX를” 믿지 못하는 것이지요.
지금 저자는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키세요.
이는 유년주일학교 학생때의 엄마의 교육지침입니다.
주일이면 교회가야하고 헌금은 꼭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고 가르치지요.
그러나 유년 주일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지켜서가 아니라 “믿어서” 임을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애매” 한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수도 설명도 불가는한 것이 믿음입니다.
가령 사라가 “자기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낳게 되었나요??
사라가 할머니가되어 경수도 끝낫고 남편 아브라함도 힘이 없는 90세, 100세 때에 하나님이 오셔서 남편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엿 듣습니다.
“네가 곧 아들을 얻을 것이니라”
이때 부엌에 있던 사라가 엿 듣습니다.
“내 몸은 내가 잘 아는데 .. 미안하지만 이미 끝낫어요. 진짜 아들을 주실 맘이 있으셨다면 진작 경수가 끝나기 전에 말씀하시지.” 하며 속으로 생각하며 피식 웃었습니다. 비웃음입니다.
주님이 그 마음을아시고 “네가 비웃는도다.” “아니야요.” “비웃었느니라.” 시비까지 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창18:11-15
18: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8: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8: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8: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이런 사라에게 정말 배가 불러 오기 시작 한 것입니다.
절대자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깜박 깜박 잊어버립니다.
그럼에도 히브리 기자는 이런 기록을 합니다.
히11: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 “믿음으로”란 말씀은 누구의 믿음인가요?
사라의 믿음인가요?
아닙니다. 감히 절대자 하나님을 비웃었던 여인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믿음인가요??
바로 섭리 창조자 하나님의 “믿음”입니다.
여기서의 “믿음”이란 하나님의 예정에 있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만드시겠다는 예정이었습니다.
예정이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라가 믿음이 없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신 하게하여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란 단어는 “faith, belive” 정도로 해석되는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체성” 자체를 “믿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라고 보내신 JX가 내 안에 거하신다는 뜻입니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 이 말씀의 뜻은 우리의 결단이나 의지로 되어지는것이 믿음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긍휼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엄청난 은혜를 뜻 합니다.
왜냐하면 의지나 결단은 만물이 유통 기한이 있듯이 얼마 지나면서 의지나 결단은 퇴색하게 되고 흐지부지 없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명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함께 이루어 나가시기에 이는 나의 의지의 개념이 아닌 하나님의 통치권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되게 하십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가운데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세상 만물의 물질의 형태는 유통기한이 있어 죽고, 썩고, 색상이 변하고, 낡아지고, 없어지고 변해도 물질의 질량에서 발산되어진 잠재 에너지(potential energy)가 보존 된다는 법칙 입니다.
포텐살 에너지는 곧 우리의 영혼의 문제이며, 천국과 지옥의 영원과도 관계 지울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빛”이시라 하셨을때의 ‘빛”은 보이지 아니하는 potential energy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를 성경은 능력 이라 하셨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잠재하시는 능력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 하셨으며, 죽은자를 일으키시고, 부활하시며, 재림하심과 섭리창조이며, 종말의 사역을 하시며, 성령의 역사이며, 믿음의 역사인 것입니다.
늙은 사라의 몸에서 잉태하는 능력, 처녀 마리아에게서 JX의 나심은 모두 “믿음”이 하신것이요, 하나님의 능력의(potential energy) 나타남 입니다.
씨앗을 심으면 씨앗의 종에 따라 그 싹이나며 뿌리, 줄기, 잎, 꽃, 열매가 맺히게 되는데 이 모든것이 그씨앗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안에 사명의 씨앗을 심어놓으시고 그 열매를 얻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런데 근사하게 잎만 무성한 무화과가 되어 저주를 받게 됩니다.
마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無花果)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이를 성경은 간단히 요약하여 알려 주셨습니다.
요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 성령이 임하여 주님의 전지, 전능, 무소부재의 창조하시는 능력이 내 안에 잠재하게 된다는 것을 “그날”에는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 그리도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JX가 죄인들의 갖은 욕설과 모욕을 다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을 만큼 한 영혼이 소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은 살인이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이란 하나님과의 동역이기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이 내 안에서 함께하시기에 세상에서는 경험할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아니될것이 있습니다.
남의 떡이 더 좋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저런 열매를 맺혀야지”하는 욕심을 갖게 됩니다.
사탄이 주는 욕심입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입니다.(약1:15) 사망은 지옥이지요.
그러므로 콩 씨앗이 심겻으면 콩을 거두어야 맞는 것이지 콩씨를 심으셨는데 크고 좋아보인다고 수박이나 포도를 거두려 한다면 자기의 사명이 아니기에 고단만 할 뿐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으신 씨앗대로 열매를 거두시기를 원 하십니다.
남의 것 부러워 하지 마세요.
눅6: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이러한 사명을 통하여 주님은 “믿음의 완성”을 설명 하십니다.
약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왜그런고 하니 “사명”은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영원하신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 입니다.
이세상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 까지 그 생각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믿음의 완성”이라 하신 것입니다.
사명자에게는 내 안에 기생하고 있는 사탄이 절대로 움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통치하시는 삶이기에 절대로 이기적, 자기중심적, 욕심, 악한 생각 등이 자랄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몸안에 마귀가 있기에 불쑥불쑥 두더쥐 처럼 악한 생각이 솟아 나기도 하지만 사명자는 이를 주님이 순간 순간 깨닫게 해 주셔서 이 악한것이 자라기 전에 회개하기 때문에 주님의 보혈로 말끔하게 씻어 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래서 주님은 손짓하여 부르십니다.
마11:28-30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주님의 멍에를 함께 지자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인 멍에를 함께 메지 아니하면 결코 쉼이 없다는 것입니다.
피곤하고, 우울하며, 불평거리만 보이고, 절망하게 되고, 힘이 없는 모양만의 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있습니다.
그 은사를 통하여 사명을 깨닫고 주와 함께 이 “사명의 멍에를 지라”는 것입니다.
고전12:8-11
12: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12: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이렇게 주신은사를 통하여 주님의 멍에를 함께 멜때에 참기쁨과 평강이 거하며 주님께 영광이 되니 천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눅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아직도 천국 가기위해 JX를 믿으시나요?
피곤 합니다.
어떤때는 알듯하면서도 어느때는 전혀 알수도 이해 할 수도 없는 미궁에 떨어지기 십상 입니다.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는 마치 행복하기 위해 결혼했는데 그 설레임과 행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짜증과 다툼과 불만만 있고,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수 없이 드나드는 그런 삶으로 전락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명이 없다면 내 안에 있는 저주받은 사탄만 역사하기 때문 입니다.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어찌해야 행복인가요?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사명자의 삶을 사는 부부, 가정은 부부간에 뿐 아니라 자녀교육도 절로 이루어지도록 주님이 책임지시고 배려 하십니다.
천대의 복을 약속 하셨습니다.
하늘문을 여시고 쏟아주시는 그 은혜와 감격과 행복감과 축복을 외면하지 말고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롬10:2-3
10: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l 행복도, 축복도, 주님의 손안에 있으므로 주님과 함께라면 그냥 누려지는 것입니다.(potential energy)
사명자 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 입니다.
자기 의(義)로는 이 땅의 행복도, 천국도 소유 할수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 입니다.
그래서 자기 부인 입니다.(청지기- 주인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종의 신분) ㅡ 마16:24
마지막때의 심판주 앞에 폼잡아 봣자 웃기는 일입니다.
근사하게 폼만 “믿음”이 아닌 주님의 능력(potential energy)이 왕성하게 역동하는 기쁨의 사명자의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다음 월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