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령이 남쪽 바다에서 날아들었다. 가을은 어느새 바다에서 시작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바람과 높아지는 하늘에서 오는 가을을 느끼면서 여수로 발길을 옮겼다. 가을이 찾아온 소리도는 전남 여수시 남면 끝자락에 있는 섬이다. 생김이 물수리를 닮아 소리도라 했다. 1396년 순천부에 속하면서 솔개 연 자를 써서 연도鳶島로 이름을 바꿨다. 해방되면서 일본인이 해저 금광에서 캐낸 황금을 이 섬에 숨겨두고 철수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1627년 일본에서 황금을 싣고 가던 네덜란드 상선이 해적선을 만나 이 섬 동굴 속에 황금을 묻고 달아났다는 미확인 소문 등이 꼬리를 물고 있는 섬이다. 그 보물섬을 찾아간다. 보물 소문을 사실로 생각하고, 많은 사람이 일확천금을 노리며, 발품을 팔기도 했다.
속평굴(솔팽이굴)은 해안 절벽에 깊게 뚫린 동굴이다. 절벽 위쪽에는 등대가 있다. 관광객에게는 그럴싸한 풍광이며, 보물을 찾는 사람에게는 노다지 절벽이었다. 동굴 속에서 절벽 너머 덕포마을 부뚜막 누룽지 긁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으니, 아마도 동굴이 덕포마을 지하까지 뚫려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전설에 따르면 2000년 전 불로초를 찾으러 온 진시황의 서불徐市 일행도 연도를 찾았다. 불로초는커녕 호위 장수 두 명만 잃고서 제주도로 떠났다고 했다. 불로초도 황금도 소문만 무성할 뿐 연도는 여전히 미궁 속의 섬이며, 황금을 숨겼다는 굴이다.
연도는 여수에서 배를 타고 1시간 40분을 가야 나온다. 그만큼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며, 소외된 섬이었다. 갯바위에서 낚시만 던지면 온갖 물고기가 알아서 올라오니, 낚시꾼들에겐 ‘성지’가 되었다. 낚시꾼들이 서 있는 그 갯바위, 갯바위를 바다로 내밀고 있는 절벽들이 하나같이 기암괴석에 규모도 웅장하니 섬을 찾은 유람객들에게도 천국이며 낙원이었다.
동굴과 기암괴석, 코끼리를 닮은 바위, 콧구멍을 닮은 쌍굴, 형형색색 절벽과 동굴…. 섬이 생성되는 지질학적 과정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도록이었다. 거기를 물새들이 달라붙어서 물고기를 노리고 있으니 화조도가 따로 없다. 1910년에 점등된 남쪽 절벽 위에 세워진 하얀 등대까지 겹치면 환상이 된다. 주민들은 왜정 때 섬에 소나무가 많았는데, 일본인이 사무소를 차려놓고 국유림을 관리했다고 한다. 해방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다 땔감으로 잘라 없어졌지만, 이제는 민둥 섬을 어렵게 다시 살려 지금 소리섬이 된 거라 이야기한다.
1995년 7월 23일 14시 20분 광양만을 출발한 유조선 GS칼텍스 씨프린스 호가 연도 앞 작도(무인도)에 충돌했다. 태풍 ‘페이’의 영향으로 거센 파도가 남해로 돌진하던 무렵이었다. 작도에서 기관실이 파손된 유조선은 기름이 연쇄 폭발하면서 속평굴을 지나 남서쪽 덕포마을 앞바다로 떠내려갔다. 기름 5035t이 유출되었다. 몽돌해변은 물론 멀리 포항까지 기름띠가 흘러갔다. 초대형 환경오염 발생 사건이었다. 선원 20명 가운데 19명은 주민들이 어렵게 구해내고 한 명은 실종됐다. 지금도 갯벌을 깊이 파면 그 기름띠가 발견된다고 한다.
젊은 사람이 다 떠난 섬에서 노인들은 방풍나물을 키운다. 갯바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방풍을 수확하는 모습은 시간이 멈춘 듯한 편안함이 그려진다. 바닷가 바위에 자생하던 방풍을 집집이 다 키운다. 칠팔 년 전에 멧돼지 가족이 헤엄을 쳐서 섬에 들어왔다. 이놈이 몇 번 휘젓고 가면 결딴나지만, 이 멧돼지들은 방풍만은 건들지 않았다. 노인들이 앉아서 수확하기도 좋고 험한 해풍에도 잘 자라주니 이런 고마운 풀도 없었다. 예전부터 살았던 고라니가 행패를 부리긴 하지만 다른 작물보다는 훨씬 낫다고 한다.
이제 씨프린스 호가 망쳐놨던 덕포마을 몽돌해변도 원상복구 됐다. 씨가 말랐던 물고기도 되돌아왔다. 해변이 북구 되고 바다가 부활했으니 외지인들도 돌아왔다. 이번에는 예전보다 훨씬 많이 돌아왔다. 해안가 험한 절벽은 멋진 구경거리로 변했다. 파도가 철썩이는 갯바위에 낚시꾼들이 넘친다. 여행은 끝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여행은 늘 내게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듯 도돌이표였다. 떠난 여행이 돌아오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해변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 파도 소리가 섞여 있다. 언제나 바람이란 놈이 머리 위에서 꾸짖고 있다. 그래서 되겠냐? 그래서 되겠냐고! 이제 보물섬의 꿈도 일장춘몽이지만, 환경오염 사고의 중심이 된 이곳은 섬 자체가 보배 섬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