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봉(닭이봉) 연릉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뫼를 바라보니
그리운 님이 온들 반가움이 이러하리
말씀도 웃음도 아녀도 못내 좋아 하노라
--- 고산 윤선도, 『山中新曲 漫興(三)』
▶ 산행일시 : 2012년 5월 12일(토), 맑음, 산정에는 시원한 바람
▶ 산행인원 : 15명(영희언니, 버들, 자연, 하늘엄마, 달님, 드류, 김전무, 화은, 대간거사,
메아리, 제임스, 도자, 백작, 승연, 신가이버)
▶ 산행시간 : 9시간 30분(휴식, 중식과 이동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2.7㎞(1부 6.8㎞, 2부 5.9㎞)
▶ 교 통 편 : 두메님 25인승 버스
▶ 시간별 구간(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 따름)
06 : 26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9 : 15 - 정선군 남면 문곡리(文谷里) 별어곡교(別於谷橋), 산행시작
10 : 15 - 802m봉
10 : 56 - 팔봉산(917m)
11 : 19 - △940.7m봉
11 : 51 - 966m봉, ┤자 능선 분기, 왼쪽은 벽암산(霹岩山, 923.4m)으로 감
12 : 13 - 923m봉, ┤자 능선 분기, 직진은 백이산(伯夷山, 972m)으로 감
12 : 37 - 암릉, 오른쪽 사면으로 트래버스
13 : 15 - 능선 진입
13 : 50 ~ 14 : 41 - 석대, 1부 산행종료, 중식, 영곡 남선초교 광덕분교 터 위로 이동
15 : 30 - 765m봉
16 : 40 - 계봉(鷄峰, 닭이봉, 1,028m)
17 : 25 - 안부
18 : 00 - 곰봉(△1,015.8m)
18 : 45 - 마차재 위 38번 도로, 산행종료
19 : 26 ~ 20 : 51 - 영월, 목욕, 석식
23 : 03 - 서울 강일동 도착
1. 붓꽃
▶ 팔봉산(917m)
요즘 들어 우리 오지산행에 젊은 신예들의 부쩍 잦은 출현은 대단히 경하할만한 일이다. 오지
산행의 칼라가 한층 푸르러졌다. 한편으로는 이러다가 나를 포함한 몇몇은 졸지에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스런 바가 없지 않다. 나고 사라지고 오고 가는 건 자연스러운 세상 이
치이려니 부디 염두에 둘 일이다. 다만, 오늘은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외친다.
정선군 남면 팔봉산 자락을 휘도는 지장천(地藏川)을 징검다리로 건너려다 그만 풍덩 빠질 것
같아서 줄줄이 뒤로 돌아 별어곡교로 건넌다. 마른 지천 너덜을 건너고 두릅나무 심은 가파른
밭두렁을 올라 곰취 밭을 지난다. 산기슭 덤불숲 뚫는다. 대개는 첫 피치 오름의 기분이 그날
의 산행 분위기 전체를 지배한다. 오늘도 그랬다.
촘촘한 등고선 그대로 기세 좋게 수직으로 치솟은 팔봉산이다. 인적이나 수적은 있는 듯 없는
듯 가파른 능선을 단단한 소사나무 붙들어 철봉 혹은 늑목(肋木)으로 오른다. 바윗길 릿지가
나온다. 돌부리와 나무뿌리 홀더가 충분하지만 튼튼한지 일일이 확인하고 잡는다. 뒤에서 낙
석 하는 외침이 들린다. 장애는 눈 가리는 땀방울이다.
직벽과 마주친다. 주저 없이 왼쪽 사면으로 트래버스 하여 발발 기어오른다. 트래버스도 조심
스럽다. 아래 내려다보면 아찔하여 오금 저린다. 번지점프대에 섰을 때 이러하리라.
802m봉. 비로소 허리 편다. 한 건 했다는 득의(得意)로 탁주 입산주가 아주 달콤하다.
저 앞 팔봉산 너른 사면의 춘색이 실로 눈부시다. 초원을 간다. 가는 걸음으로 연한 참취 골라
뜯는다.
수해(樹海) 한가운데에서 유영(遊泳)한다. 주렁주렁 그 꽃다발이 수해의 하얀 포말인 분꽃나
무가 흔하다. 카메라 앵글을 사양하는 듯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너울거리는 모습은 우아하
기까지 하다. 펑퍼짐한 사면을 산개하여 올라 917m봉이다. 영진지도에는 여기를 팔봉산이라
표시하고 있다. 여러 산행기를 보면 저 앞 △940.7m봉이 팔봉산이라는데.
꽃길을 간다. 노란 산괴불주머니 꽃이 지피(地皮)로 흐드러졌다. 밟을까봐 멀찍이 비켜간다.
언제까지고 마냥 걸어도 좋을 산길이다. △904.7m봉. 삼각점은 정선 464, 2004 복구. 서진(西
進)한다. 선두는 일행 견인한다고 멀리 내빼버렸다. 혼자 간다.
‘영원은 아주 긴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완전히 쉬어 마음이 현재에 와 있는 상태
다. 현재엔 시간이 사라진다.’ 혜민 스님의 트윗이다. 나는 지금 영원을 가고 있다.
우뚝한 봉우리 넘고 아담한 선바위 지나 안부. 길게 오르면 ┤자 능선 분기하는 966m봉이다.
왼쪽은 벽암산(霹岩山, 923.4m)을 넘어 마차치 지나 곰봉으로 간다. 이제부터 등로가 뚜렷하
다. 예전에 지났던 길인데 전혀 낯설다. 망각은 때로 축복이다. 첫길이다. 일로 북진. 지저귀
는 검은등뻐꾸기 흉내 내본다.
┤자 갈림길인 923m봉. 인적 뜸한 왼쪽으로 꺾는다. 주르륵 내리고 암벽 앞에 멈춘다. 목 추
기고 간단히 돌아 넘을 줄로만 알았는데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몰랐
다. 복병을 만난 것이다. 오른쪽 사면으로 대 트래버스를 시작한다. 성곽처럼 수직으로 높이
두른 암릉 아래 사면 또한 가파르다. 처음에는 오지를 간다고 낙락하던 희열이 10분을 넘고
30분을 넘자 곡소리 나는 생고역으로 변한다.
뿌리 뽑힌 채 가로누운 거목을 넘는 것도 쉽지 않다. 저기가 주릉인가 가슴 쓸었지만 그때마
다 속아 넘은 지능선이 세 번. 저 까마득한 골짜기로 부슬거리는 자갈과 함께 쓸려 내려가지
나 않을까 엉금엉금 긴 것이 수 번. 암벽 밑으로 바짝 다가갔다가 다시 멀어지기 부지기수. 낙
엽 쓸고 발 디딜 곳 마련하여 능선으로 오른다. 장장 38분이나 걸린 트래버스였다. 석대로 내
리며 숨 고른다.
석대마을. 옹벽 내린 계류 자갈밭에서 점심밥 먹는다. 오늘도 미련했다. 바로 닥쳐 올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묵밥이며 부대찌개 딥다 먹어댔으니 ….
2. 지장천 지천 건너고 가파른 밭두렁 오르며 산행시작
3. 팔봉산 오르면서 조망, 가운데는 지억산(芝億山, 1,117m)
4. 노루삼(Actaea asiatica)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 5~6월에 흰 꽃이 총상(總狀) 화서로 줄기 끝에 피고 열매
는 장과(漿果)로 검게 익는다.
5. 분꽃나무 꽃(Viburnum carlesii)
인동과의 낙엽 활엽 관목. 전년지 끝이나 짧은 가지 끝에 깔때기 모양의 흰색 또는 홍색의
꽃이 취산화서로 달리는데 꽃봉오리에 대개 홍색이 돌다가 피고 나면 흰색으로 변한다. 열
매는 핵과(核果)로 9월에 검게 익는다.
6. 분꽃나무 꽃
7. 백이산(伯夷山, 972m)
8. 석대마을 주변
9. 계봉 주변
10. 물박달나무
▶ 계봉(鷄峰, 닭이봉, 1,028m), 곰봉(△1,015.8m)
2부 산행 들머리로 이동한다. 차는 영곡마을 위 포장도로가 끊기는 데서 멈춘다. 산기슭 가시
덤불 뚫는다. 선두는 늘 수고가 많다. 가시덤불과 잡목 다독이고 꼭 얼굴에 걸리는 거미줄도
걷어내야 한다. 으레 대간거사 님과 신가이버 님의 몫이다. 릿지만 아니다 뿐이지 오전에 팔
봉산 오르는 것과 똑 닮은꼴이다. 눈물 아닌 땀이 앞을 가린다.
기자들이 산악인인 멀로리에게 산을 왜 가느냐고 묻자 “산이 거기 있으니까(Because it's
there)”라고 대답하여 이후 등산하는 사람들의 산을 가는 맹한 이유가 되었다. 오지산행이 산
을 가는 이유 중 하나로 내세우는 ‘목욕하기 위해서’가 그보다 훨씬 낫다. 여덟 시간이 넘는
산행을 마치고 목욕탕에 들어가 보시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개운함. 누구라도 흔쾌히
동의하리라고 본다. 아마 이게 바로 사는 이유라고까지 하련지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산정에 올라 얼음물을 마시기 위해서’라고 덧붙인다. 그런데 모처럼 좌중을
압도하는 말이 나왔다. ‘알탕을 하기 위해서!’ 산꾼으로서의 적지 않은 이력이 몸에 밴 말이
다. 오늘 처음 오지산행에 나온 하늘엄마의 말이다.
된 가파름은 765m봉 오르자 푹 수그러든다. 등로는 계봉 오른쪽 안부에 이를 것처럼 서서히
오른다. 선답이 있었다. 덕산산악회의 색 바랜 산행표지기가 보인다. 방화선 같은 등로의 오
름에서 고개 돌려 바라보는 건너편의 산색이 곱디곱다. 언제인가 이맘때 봄비 오던 날 취적봉
동봉에서 서봉을 바라본 그 환각을 떠오르게 한다.
곰취가 먼저 고도를 알아본다. 정상이 가까웠나 보다. 계봉의 높이는 1,028m이다. 펑퍼짐한
왼쪽 사면으로 곰취가 흔하다. 금년 들어 처음 본다. 횡대로 줄지어 뜯으면서 오른다. 첫물이
다. 손톱에 취향이 물씬 밴다. 고개 드니 어느새 계봉 전위봉이다. 계봉의 수직암벽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교대로 알현한다.
계봉 연릉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중간쯤 전망대가 있다. 목 길게 빼고 지나온 계봉 연릉의 수
려한 모습을 들여다본다. 아하, 이랬구나! 기억에 오래 남을 가경이다. 계봉 정상에서도 감춘
모습이다. 상쾌하고 후련하다. 계봉 내림 길은 가파르다. 먼지 뿌옇게 일으키며 쏟아져 내린
다. 계봉이 보일까? 숲속길이지만 연신 뒤돌아본다.
안부 지나 871m봉. 완만하게 길게 올라 문밭재. 부드러운 잣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곰봉. 철조망 두른 무인산불감시시스템이 있는 헬기장이다. 삼각점은 보기 드문 1등 삼각점
이다. 정선 12, 1995 재설. 동쪽과 남쪽으로 훤히 트인 경점이다. 여기는 벽암산, 죽렴산, 저기
가 백운산. 뭇 산에서 가려낸다. 배낭 털어 먹고 마신다.
하산. 마차재도 멀다. 그 위로 뻗은 지능선을 타고 내리자 한다. 푹신한 흙길이다. 우르르 내
린다. 오가피나무 재배단지가 나온다. 나는 아직 이처럼 너른 오가피나무 재배지를 본 적이
없다. 장관이다. 그 농로 따라 간다. 농로는 마차재로 떨어질 임도로 연결되고 우리는 임도 건
너 지능선을 잡는다. 부드러운 산길은 잠시고 도로 가까운 내리막길이 뜻밖으로 사납다.
슬랩 암벽 사이를 주춤주춤 내리고 예전에 사태 난 골의 무릎 차는 낙엽 쓸어 지계곡 계류 잴
잴 대는 너덜로 떨어진다. 38번 고속화 국도 나오는 명거(明渠) 옆 철조망이 억지로 뚫린 데를
만난다. 마차재 고갯마루에서 우리 도착하기 기다리고 있을 두메 님 부른다.
11. 곰취(Ligularia fischeri)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잎은 큰 심장 모양이고 날카로운 잔톱니가 있다. 7~9월에 노란
두상화가 총상(總狀) 화서로 피고 열매는 수과(瘦果)를 맺는다. 어린잎은 식용한다. 깊은
산에서 난다.
12. 계봉 주변
13. 가수리 가탄마을
14. 계봉
15. 계봉
16. 계봉 연릉
18. 계봉 연릉
19. 계봉 연릉
20. 멀리 오른쪽은 백운산, 곰봉에서
21. 멀리 왼쪽이 백운산, 곰봉에서
22. 오가피나무 재배단지
23. 김전무 님
24. 줄딸기(Rubus oldhamii)
장미과의 낙엽 활엽 관목. 잎은 우상 복엽이다. 5월에 연한 붉은색의 꽃이 가지 끝에 한 개
씩 피고 열매는 붉은색으로 7~8월에 익는다. 열매는 식용한다.
25. 계봉(닭이봉) 정상에서, 왼쪽부터 승연, 백작, 대간거사, 하늘엄마, 제임스, 달님,
신가이버, 김전무, 화은(존칭 생략)
첫댓글 암봉이 멋들어집니다... 소나무 아래 김전무님은 신선이네요...
곰취가 나왔나 봅니다... 빨리 설악산 농장에 가서 거둬와야 하는데....
연초록 색감 더없이 좋은 날에 그 누구도 체험 쉽지 않은 청정 오지를..
정많고 멋진 사람들과 행복한 산행였슴다.
하이고 한달반만에 오지산행을 따라갔더니 아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어찌나 빡세게 잡아돌리는지... ㅎㅎㅎ
앞으로는 점심은 최대한 조금 먹어야겠습니다.
미련하게 맛나다고 묵밥에 부대찌게까지 배터지게 먹고, 2부 그 가파른 능선을 올라치니 어찌나 힘들든지...ㅎㅎㅎ
모두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무엇이 우려스러우시다고요? ㅎㅎ 공연한 망념일랑 접어두시고...저도 형님처럼 매일매일 까르페 디엠!!!
첫산행을 너무 시끄럽게 한것 같아요 ㅠㅠ
사진이며 산행기며 드류님의 연륜이 느껴지네요...
한편의 무협지를 읽는 느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대간거사 대장님 머리에 쥐 나게 했던 이름이 미선으로 낙착되었군요.
미선나무가 우선 생각 나는데 미선나무는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1속 1종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일가친척이 없는 외로운 나무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