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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히4:12-13)
물건을 보면 진짜와 가짜가 있습니다. 명품과 짝퉁이 있습니다. 핸드백 명품과 짝퉁 구별법 아시지요? 길을 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집니다. 우산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 때 백을 머리에 올리고 가면 그것은 짝퉁이고, 가슴에 품고 가면 명품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진짜와 가짜가 있습니다. 가짜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에 와도 말씀듣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내 남편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지난 주일 말씀은 우리 친구가 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합니다. 다 다른 사람이 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진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매주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는 사람입니다.
둘째, 성경을 꾸준히 읽지 않습니다. 어쩌다 생각나면 읽습니다. 그것도 이렇게 읽습니다. 성경을 딱 펴서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말씀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떤 분이 성경을 그렇게 읽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성경을 딱 폈습니다. 그랬더니 눈에 딱 들어온 말씀이 마태복음 27장 5절이었습니다. “유다는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이 말씀은 그날 자기를 위해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딱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누가복음 10장 37절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그러자 그는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성경을 펴보기로 했습니다. 딱 폈더니 첫눈에 들어온 구절이 요한복음 13장 27절이었습니다.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진짜 그리스도인은 매일 매일 성경을 읽습니다.
셋째, 말씀을 듣는데도 도무지 변화가 없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10년을 믿어도 20년을 믿어도 도무지 변화가 없습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미워합니다. 또한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말씀을 역시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입니다. 함부로 말하고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변화되지 못한 모습이요, 성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진짜 그리스도인은 변화가 있습니다.
옛날 미국에 어떤 주정뱅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언제나 술집 앞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어느 주일 날 친구가 그를 만나려고 술집 앞을 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술집에 매여 있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매여 있었을까요? 교회 앞에 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런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은 전 세계가 지키는 성서주일입니다. 성경의 중요성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더 가까이 가고자 다짐하는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까이 가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말씀을 통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이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두 가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본질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으며,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일을 하는가? 기능에 대해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본질입니다.
1)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읽어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히브리서 3장 12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9장 14에 보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히9:14).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에 그의 말씀도 살아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죽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력한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하고, 역사하며, 나를 변화시키고, 내 인생을 새롭게 바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의 칼보다 더 날카롭기 때문에 내 인생의 잘못되고 썩은 부분을 도려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외과의사의 칼보다더 예리하기 때문에 영혼은 물론 관절과 골수를 찔러 조개기까지 하며 깨끗하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체의 질병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연약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육체의 질병은 세상의 약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암에 걸리거나 뼈가 부러지면 암 전문 센터나 정형외과 수술을 통해 고칠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병든 사람을 고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현대에는 육체의 질병보다 마음의 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낙심과 좌절, 근심과 염려, 심한 우울증에 빠져 절망하고 인생을 포기하며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의 무거운 병을 쉽게 고칠 수 있는 약은 세상에 없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리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을 치료할 약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이 병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가면, 그 말씀이 내 마음의 생각과 뜻을 나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치료해 주십니다. 성경처럼 우리의 마음을 찌르고 쪼갤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심리학자도, 상담가도, 철학자도 하나님만큼 나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그 어떤 세상의 책도 성경만큼 나의 깊은 내면을 파고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병들어 있고 잘못되어 있는 마음을 고칠 수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낙심하고 절망하여 쓰러져 있을 때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희망과 꿈을 잃고 의기소침해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새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있을 때 성경은 우리의 죄악을 드러내고 우리의 위선을 벗기며, 우리의 고집을 꺾음으로써 우리의마음을 낮춥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우리는 교만하지 않고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혹이 많은 시대를 살아갑니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 세대보다 10배 100배는 더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모들도 세상의 유혹을 받지만 자녀들은 더 많은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대문을 열고 집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PC방, 노래방, 찜질방, 비디오방, 게임방, 만화방, 대화방, 소주방 등 수없이 많은 방들이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이들을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먹기 시작하면 병들어 죽어가는 인생일지라도 새로운 인생으로 바꾸고 자신을 지킬수 있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 119:9). 성경이 사람들을 치료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것이고, 살아 있기 때문에 힘이 있습니다. 힘은 능력이고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위력으로 내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말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살아 있는 나에게 말씀하신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에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성경을 읽을 때마다 '방금 하늘에서 내게 주신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한 구절만이라도 생명의 말씀으로 붙들기만 하면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성경 한 구절이 내 마음 판에 박히면 나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어 새사람이 되게 합니다. 방탕하던 어거스틴은 로마서 13장 12절 말씀을 읽고 변화되었고,세상을 좇던 무디는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또한 루터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로마서 1장 17절말씀을 읽고 큰 깨달음과 신앙의 자유함을 얻어 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조지 뮬러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통해 거듭남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으로 쓰였습니다. 위대한 천재 조나단 에드워즈는 디모데전서 1장 17절 말씀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 영광스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인생이 완전히 바꿔었습니다. 이처럼 성경 한 구절만이라도 바로 붙들고 내 마음 판에 새기면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통해 내 삶을 변화시키시고 큰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죽은 뼈들에게 말씀하시자 죽은 뼈들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군대가 되었습니다. 군대는 힘있는 사람의 상징입니다. 신학자 본 훼퍼가 그의 <윤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좋은 말씀(good words)도 아니요, 옳은 말씀(right words)도 아니다. 또한 아름다운 말씀(beautiful words)도 아니고, 재미있는 말씀(interesting words)도 아니다. 성경은 살아 있는 말씀(living words)이다”라고 했습니다. 믿습니까?
여러분은 소설책이나 신문을 읽다가 ‘어, 이거 살아있는 말씀이네’그러십니까?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책도 ‘살아 있는 말씀’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성경만을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유명한 무디 목사님에게 어떤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이 청년 보기에 무디 목사님은 너무나도 변화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디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변화될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무디는 자기가 보는 성경책을 보여 주었습니다. 성경 여기저기에 밑줄이 많이 그어져 있었고 또한 영어로 T와 P가 여기저기에 적혀 있었습니다. 청년이 물었습니다. T와 P가 무엇입니까? 무디는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T는 Tried, 곧 ‘시험해보았다’는 뜻이요, P는 Proved, ‘사실로 입증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무디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 속에서 순종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말씀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여러분의 성경책을 좀 보아야겠습니다. 여러분, 이런 말 들어 보신적 있으십니까? “성경책이 더러운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고, 성경책이 깨끗한 사람은 마음이 더럽다.”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십니다. 아멘?
2)하나님의 말씀은 활력이 있습니다.
‘활력이 있다’는 단어를 원문성경에서는‘에네르기’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에네르기’에서 영어의 ‘에너지’가 나왔습니다. 에너지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습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powerful(kjv) active(niv)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낙심하던 엘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죽여 달라고 아우성치던 엘리야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일어나게 되었고 사명을 감당하는 능력있는 일군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탐험가요 선교사인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16년간을 보낸 후 귀국하여 글래스고 대학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어느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아프리카 땅에서 어떻게 온갖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리빙스턴은 확신있게 대답했습니다.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특히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는 요한복음 14장 18절 말씀과,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마태복음 28장 20절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들은 실제로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말씀 붙들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을 힘 있게 할 것입니다.”
3)하나님의 말씀은 검과 같이 예리하고 날카롭습니다.
성경에서 ‘검’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6절에 보면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라고 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날선 검이 나온다’는 말씀은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일을 할까요?
이어서 12절 하반절 말씀은 말씀의 기능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여기에서 말씀의 두 가지 기능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일을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아마 수술하는 의사가 생각나실 것입니다. 의사는 나쁜 암세포를 사정없이 도려냅니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습니다. 왜요? 그래야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를 찌릅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줍니다. 마음이 편칠 못하게 만듭니다. 초대교회 때 베드로 사도가 설교하자 그들이 마음에 찔려“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그 유명한 길선주 목사의 회개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시지요? 장대현교회에 모인 1500여명이 모였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이 아무리 설교해도 은혜가 없었습니다. 기도가 터지지도 않습니다. 성령의 은사도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성령님께서 길선주의 마음을 찌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다음과 같이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간과 같은 놈입니다. 언젠가 제 친구 한 사람이 임종하면서 제게 부탁하기를 ‘내 재산을 잘 처리해주게. 내 아내는 무식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꼭 부탁하네’ 라고 하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의 재산을 정리하면서 백 원을 떼먹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저는 내일 그 돈을 그 부인에게 돌려주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길선주 목사의 이 회개가 있자 교인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면서‘나도 죄인이라고, 나도 도둑놈’이라고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에 성령께서 임재하셨고,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성령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면 미루지 말고 곧바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속마음의 생각과 뜻을 다 알고 그것을 드러내어 판단하시는 ‘재판관’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139:1-2)“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라고 고백했습니다. 본문 13절에서도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부인이 자기 남편을 처음으로 교회에 데리고 갔는데, 남편은 목사님이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설교하자, 아내가 목사에게 자기의 말을 다 일러바친 줄 알고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부인이 돌아오자 남편은 아내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어째서 내 일을 목사에게 다 고자질한 거요?” “아니 고자질하다니요?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설교하신 거예요.”
화가 난 남편은 목사에게 갔습니다. “목사이니 정직하게 대답하십시요”하고는 물었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내 이야기를 다 일러바쳤습니까?”그러자 목사님이 그 앞에서 성경책을 폈습니다. 그러자 어디를 펴도 자신의 죄가 생각나 두 손 들고 왔다고 합니다.
3.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한계시록 1장 3절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세 가지 자세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 매일 읽으십니까? 성경읽기가 습관화되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경건한 모라비안 교파의 목사님 댁을 방문하여 일주일 가량을 함께 보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가정의 식사시간에 보니까, 아이들이 바쁘게 뛰어 들어와서 허겁지겁 식사를 하려 하는데도, 식탁에 놓인 성경책의 말씀을 보지 않고는 식사를 주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어떤 것보다 최우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롬10:17) 한국 교회가 존경하는 신학자 가운데 박윤선 목사님이 있습니다. <박윤선 주석>이라는 유명한 성경주석을 쓰신 분입니다. 어느 날 당신이 가르친 제자 목사님이 당신 집에 왔습니다. 박목사님은 제자 목사님에게 가정예배를 인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자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제가 목사님에게 설교하다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그러나 박 목사님은 인도해 줄 것을 요청하고 제자를 상석에 앉히고 그리고 당신은 무릎을 꿇고 자녀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 주십시오. 우리가 듣겠습니다.”그 제자는 박 윤선 목사님의 이러한 겸손한 태도에 크게 감동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세입니다.
3)말씀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2절에 보면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 그냥 지식으로만 머리에 담고 있을 때, 이것이 지적인 교만이 되기도 하고, 또 이것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정죄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성자인 알버트 슈바이처에게 한 부인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위대한 학자이며 천재적인 음악가입니다. 그런데 당신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오지에서 생명을 바쳐 일을 합니까?” 슈바이처 박사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부인을 향해 말했습니다. “저는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만한 재주가 없답니다. 사랑을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행동으로 사랑을 설명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런 다짐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전에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둘째, 영혼의 양식을 먹기 전에는 육신의 양식을 안 먹는다.
셋째, 성경을 읽기 전에는 어떤 책도 신문도 보지 않는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말씀이 앞에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날마다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 되어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의 생각이 되고 언어가 되고 인격이 될 때 생명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아무리 옳은 것 같아도 말씀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성경을 사랑하며 날마다 말씀은 묵상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내 인격을 지배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늘 가까이 하며 순간순간 말씀에 감동되고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변화를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