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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모세(13-16)
우리 각자의 삶에서도 지도자나 책임 있는 자리는 단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지도자는 자신의 책임을 넘어서서, 공정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드로의 조언은 우리에게 지도자로서 책임을 다하면서도, 적절한 시스템과 팀워크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줍니다.
13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지라 14모세의 장인이 모세가 백성에게 행하는 모든 일을 보고 이르되 네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일이 어찌 됨이냐 어찌하여 네가 홀로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네 곁에 서 있느냐 15모세가 그의 장인에게 대답하되 백성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옴이라 16그들이 일이 있으면 내게로 오나니 내가 그 양쪽을 재판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하나이다 17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18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13-18)
기쁨의 상봉이 있었던 다음 날, 이드로는 아침 일찍부터 백성의 일처리에 바쁜 모세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드로는 모든 것을 지켜본 뒤 이것이 지혜로운 일처리가 아님을 간파했습니다. 그는 왜 모세가 홀로 재판을 하며 백성은 오직 종일토록 모세에게만 찾아오는지 물었습니다(2).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는 지도자로서 자신의 족속을 이끈 경험이 풍부한 지혜로운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세는 백성이 문제가 생길 때면 하나님으로부터 해결책을 찾기 위해(다라쉬, 묻기 위해) 모두 자신을 찾아온다고 대답합니다(15).
여기서 ‘묻다’, ‘찾다’라는 동사 ‘다라쉬’는 어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면밀히 탐문하며 따지는 것을 뜻합니다. 분쟁 당사자들이 이해관계가 다르고 사안에 대한 큰 입장차를 보이며 사실 관계를 따질 경우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양쪽 입장을 다들어 보고 판결을 내리면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려주었습니다(16). ‘율례’(호크)와 ‘법도’(토라)는 원래 율법을 가리키는 용어들인데, 여기서는 판결의 규칙이나 기준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규범적 율법은 나중에 시내산 언약과 더불어 주어지므로(출 19-24장) 현재 그들에게는 그런 율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노아와 아브라함의 언약과 더불어 주어졌던 제한적인 구전 율법들이 전수되어왔을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가 재판을 통해 가르쳐준 율례와 법도는 무엇보다 사법적 판결과 관련된 규정과 지침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드로가 조직개편을 제안(17-23)
우리는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때 지혜로운 조언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우리가 맡은 역할이 방대하고 복잡할 때, 신뢰할 수 있는 조언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통해 우리의 사역과 일상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체계적인 관리와 적절한 역할 분담이 필요합니다.
19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네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을 위하여 그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며 20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21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22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 23네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네게 허락하시면 네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19-23)
모세의 지도 방식은 지혜롭지 못했으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개선책을 내놓을 생각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경험과 지혜가 풍부했던 이드로는 즉시 도내에게 조언을 하여 그로 하여금 과감한 조직개편를 시도하게 만듭니다. 이드로는 이 많은 백성을 홀로 진도하고 이끈다면 과중한 업무로 인해 백성과 모세 모두 탈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18). 이드로의 말대로 장정 60만 명 규모의 조직을 홀로 이끌 경두 도세만 지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함으로 인해 백성들 또한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의미입니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대안을 제시합니다. 우선 이드로의 조언을 진술하는 19절의 히브리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 있으라. 너는 그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라.” 모세가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다수의 영역본처럼 그가 백성의 대표로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ESV;NTV NASB; RSV). 즉 모세는 하나님 앞에 백성을 대표하여 서 있는 가운데 백성의 제반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가야 합니다(19). 그리고 송사 당사자들을 위해 판결을 내리고 그들에게 사법적 훈계와 지침을 경고하면서 백성이 마땅히 지킬 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20).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모세가 해왔던 일과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드로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과감한 조직개편을 제시합니다. 모세는 백성 가운데서 유능한 지도자들을 뽑아 중요한 직분을 부여하여 세워야 합니다. 그들은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그리고 십부장입니다(21). 자격 조건은 첫째, 능력 있는 사람(이쉬 하일)이어야 합니다. ‘이쉬 하일’은 지도력을 지닌 사람을 가리킵니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셋째, 진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넷째, 권력을 남용하면서 백성을 갈취하여 불의한 이익을 취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요컨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백성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 일사분란하게 지도력이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로서 적임자입니다.
사실 천부장을 비롯한 각 부장들의 1차적 임무는 사법적 역할보다는 군사적 역할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천부장된 지휘관들’이 백성의 군사 행진에서 선두에 서서 이끌며(민 10:4), 싸움을 하러 전쟁터에 군사를 이끌고 나갑니다(민 31:14). 또한 그들은 ‘군대의 지휘관’으로 불립니다(민 31:48). 각 부장들은 군사적 임무를 수행했을 뿐 아니라 조직개편의 목적에서 드러나듯이 백성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며 재판하는 사법적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백성들 또한 이 직책에 맞추어 단위별로 숫자가 분배되어 일사분란하게 통제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사안의 중요성을 따라 사소한 문제들은 각 부장들이 처리했으며, 중대하고 처리하기 까다로운 분쟁과 송사만 모세에게 직접 가져왔습니다(22). 무엇이 사소하고, 무엇이 중대한 문제였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그들 스스로 지혜롭게 판단하며 일을 처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과중한 업무의 짐을 나눠지게 된 이 조직 개편으로 인해 모세의 어깨는 가벼워졌으며, 백성들 또한 체계적인 일처리에 평안을 느끼며 크게 만족스러워했습니다(23).
모세의 조직개편과 이드로의 귀향(24-27)
우리는 지혜로운 지도력과 효과적인 조직 개편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과중한 책임을 혼자 지려 하기보다는 지혜로운 조언을 받아들이고, 능력에 맞는 역할 분담을 통해 공동체의 효율성을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며 우리의 사역과 책임을 잘 관리함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4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25모세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백성의 우두머리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매 26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되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가져오고 모든 작은 일은 스스로 재판하더라 27모세가 그의 장인을 보내니 그가 자기 땅으로 가니라(24-27)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조언을 전적으로 수용하여 과감히 조직개편을 단행했습니다. 그는 백성 중에서 지도력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지도자로 삼았습니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으로 세워진 지도자들이 백성을 효율적으로 재판했으며, 해결이 쉽지 않은 중대하고 까다로운 문제는 상위 재판정의 수장인 모세가 직접 판결하도록 했습니다. 실제로 이후에 모세는 중대한 일들을 직접 판결합니다. 신성모독죄를 범한 사람을 판결하여 사형 선고를 내리고(레 24:10-26), 안식일에 나무를 한 사람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며(민 15:32-36), 슬로브핫의 딸들의 땅 상속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며 해결합니다(민 27:1-11; 36:1-11). 한편, 모세의 조직개편은 나중에 민수기에서 한 차례 더 실행됩니다. 그때는 백성의 반복되는 불평으로 인해 모세 홀로 그들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연륜 있고 지도력을 갖춘 70장로들이 공식적으로 인선됩니다(민 11:10-17). 물론 앞서 이미 장로들이(출 3:16,18;4:29;12:21; 17:5,6;18:2), 또한 70장로들이(출 24:1,9) 지도자로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거기서 장로직이 공식적인 직책으로 세워집니다. 여기서는 부장 체제의 군사적-사법적 조직개편이 이루어졌으나 거기서는 장로 체제의 행정적 조직개편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직개편이 마무리된 후, 모세는 장인 이드로를 그의 거주지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결별이 아닙니다. 이드로의 거주지는 현재 모세가 머물고 있는 호렙 산 일대에서 멀지 않은 곳이 분명합니다. 이윽고 백성은 시내산에 도착하여 거기에 정박할 것인데, 그들은 1년간 그곳에 머뭅니다.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을 떠날 때, 모세는 다시 장인 호밥, 즉 이드로를 찾아가 자신들과 동행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자고 제안합니다(민 10:29). 그러나 호밥(이드로)은 처음에 모세의 제안을 거절하며 자신은 고향 땅친족에게 돌아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민 10:30). 그러나 모세는 호밥을 설득하여 동행할 것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더불어 모세는 호밥이 합류하면 자신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복을 함께 누릴 것이라고 장담하고 모세 또한 그에게 최상의 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민 10:29,32). 민수기 기사는 여기서 끊기기 때문에 독자들은 호밥이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아니면 모세와 동행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사기는 호밥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살고 있었다고 보고하므로(삿 4:11), 호밥은 모세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들과 여행길을 함께 떠났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드로의 조언에 따라 모세는 조직개편을 통해 백성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자신의 부담을 줄였습니다. 이 변화로 모세는 핵심적인 지도와 하나님과의 교제에 집중할 수 있었고, 백성들도 체계적인 관리 속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교훈으로 조직 내에서 역할 분담과 효율성을 중시하며, 하나님께 의존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드로의 지혜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공동체와 사역에 큰 교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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