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젖처럼 서로 화합하라는 뜻은
물과 우유가 서로 섞여서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배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위치와 역할을 용인하며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거위 왕 함사Hamsa 는 물과 우유가 섞여 있을 때 우유만 골라서 마신다. 우리의 사귐도 다만 그러하면 된다.
벌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면서 꿀을 딸 때, 그 꽃이 예쁘다 밉다든지, 좋아하고 싫어한다는 차별을 하지 않고 다만 꿀만 취하듯 우리가 다양한 종파의 여러 스승들로부터 법문을 들을 때도 그러하면 된다. 다행히 일생동안 모시고 배울 스승을 만난다면 최상의 인연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인연은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예를 들면 황벽선사와 배휴 상공의 법인연이다.
황벽(黃檗: ?-850) 스님이 배휴(裵休:797-870)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과 일체 중생은 [이것]일 뿐 거기에 다른 어떤 법도 없다. [이것]은 본래로부터 생기거나 없어진 적이 없으며, 푸르거나 누렇지도 않다. 정해진 틀이나 모양도 없으며, 있고 없음에 속하지도 않고, 새롭거나 낡음을 따질 수도 없다. 또한 길거나 짧지도 않고, 크거나 작지도 않다. [이것]은 모든 한계와 분량, 개념과 언어, 자취와 상대성을 뛰어 넘어 바로 그 몸 그대로 일 뿐이다. 그러므로 생각을 움직였다 하면 곧 어긋나 버린다. 이것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끝이 없으며 재어볼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