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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오직 하나님만이 평화를 보장해 주신다
장코뱅 추천 4 조회 315 26.01.17 08:01 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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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1.17 09:06

    첫댓글 즐거운 주말, 기쁜 주일 되세요!

    이 포스팅은, 초신자나 시간이 없는 분들은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아래의 댓글과 주석은 시간이 많은 분들께 다양한 이해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 26.01.17 09:20

    알겠습니다. 😁

  • 작성자 26.01.17 09:54

    <호크마 주석: 에베소서>

    ===2:13
    개역성경에는 '데'(* ,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이방 인의 이전 상태가 현재 반전(反轉)되었음을 시사한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 '멀리있던'과 '가까와졌느니라'의 원어는 구약에서 이방 국가들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것을 묘사하는 '라호크'(* , 신 28:49;29:22; 왕상 8:41; 사 5:26; 렘 5:15)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가까운 것을 묘사하는 '카로브'(* , 시 148:14)에서 유래한다. 과거에 이방인들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였으나 이제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존재가 되었다(Lincoln, Wood). 이방인의 상태에 대한 이런 반전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이루어졌다(히 10:19-22).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의 피다(1:7; 롬5:10; 골1:20-22). 그리스도의 피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서 화해된 상태로 바뀐 것은 구약에서 유대교로의 개종으로 인해 생긴 반전과는 전혀 다르다.

  • 작성자 26.01.17 09:55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롭게 창조된 공동체의 일원이 됨으로써, 이스라엘이 누리던 것보다 더 큰 특권(特權)을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Lincoln).

    ===2:14
    개역성경에는 '가르'(*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 이방인의 지위의 반전에 대한 이유임을 시사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 '화평'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레네'(* )는 구약의 '샬롬'(* , '평화')에서 유래한다. '샬롬'은 전쟁이나 적대 감정의 부재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총체적인 행복과 평안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절의 '화평'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적대 감정의 중지를 의미한다(Lincoln). 그리스도께서는 화평의 왕으로서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담당하셔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하나로 만드셨다(Mitton).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 '중간에 막힌 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있다. (1) 혹자는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와 이방인의 뜰(Court of Gentiles)사이를 분리하는 성전난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Robinson, Hanson, Abbott, Houlden, Mitton, Foulkes, Bruce)

  • 작성자 26.01.17 09:55

    (2) 혹자는 율법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Gnilka, Caird, Martin). 바울은 본 구절을 기록할 때 첫번째 견해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며, 또한 유대인의 성소와 이방인의 뜰 사이에 막힌 담은 영적으로 율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첫번째 견해와 두번째 견해는 모두 본절의 역사적이며, 영적인 의미를 적절하게 밝히고 있다.

    ===2:15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 '의문(儀文)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원수된 것'을 수식하는 것으로 (Foulkes, Bruce) 십계명과 같은 커다란 계명과 수많은 세세한 규정들로 구성된 모세 율법을 의미한다(Wood, Mitton). 그리스도는 자기 육체 즉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으로 '율법'을 폐하셨으며(롬 7:4; 갈3:13). 율법에 의해서 지배를 받던 옛질서를 폐하셨다. 그러나 율법을 폐지하셨다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지(롬 7:6) 율법을 없애버렸다는 뜻이 아니다(Bruce, Lincoln). 도리어 믿음 은 율법을 굳게 세운다(롬 3:31-4:25).

  • 작성자 26.01.17 09:56

    왜냐하면 율법을 행함으로 이신 득의의 복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 본절의 '히나'(* , '...하기 위하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대속적 죽음으로 율법을 폐지하신 목적을 명시한다. 그 목적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었던 벽을 허물어 화평하게 만드는(14절) 새 창조이다. '새 창조'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전혀 다른 새로운 그리스도인 공동체이다(Bruce, Lincoln, Foulkes).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 희생이 목적하는 바는 죄로 인해 생긴 원수된 것을 제거(除去)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는 것이라고 진술한다(롬 5:10; 고후 5:18-20; 골 1:20). 그러나 그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각각이 하나님과 이루는 화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새 창조로 이룬 한 인류,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한 몸'은 '교회'를 의미한다(4:4; 골1:18, Meyer, Mitton, Gnilka,

  • 작성자 26.01.17 09:56

    Merklein, Lincoln, Wood).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몸의 각 지체로 이루어진 유기체이다(고전 10:17;12:13; 골 3:15).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 '먼 데'와 '가까운 데'는 13절의 '멀리있던'과 '가까와졌느 니라'와 상관성을 갖는 것으로 본절은 70인역의 사 52:7과 57:19을 인용한 것이다.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의 평화가 유대인과 이방인 각 각의 그룹에 선포(宣布)됨을 강조하고 있다(Foulkes, Lincoln). 이러한 그리스 도의 평안에 대한 선포는 '하나님과 각 그룹간의 화해'를 전제로 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화해'를 시사한다(Lincoln). 한편 그리스도께서 '언제 전하셨는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동안 계
    속적으로 전한 선포라고 주장한다(Stuhlmacher, Lindemann). (2) 혹자는 사도들을 통해 전해진 예수의 선포라고 주장한다(Abbott, Gnilka, Caird, Wood). (3) 혹자는 화해의 죽음인 십자가 사건의 성취를 통해서

  • 작성자 26.01.17 09:57

    선포하셨다고 주장한다(Lincoln). 세 가지 견해 중 둘째와 셋째 견해가 타당하다. 그리스도는 자신 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서 멀리 있던 이방인들과 가까이 있던 유대인들에게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동시에 사도와 교회를 통해서 현재도 계속적으로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신다(행 10:36; 고후 5:18-20, Foulkes).

    ===2:18
    저로 말미맘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나아감'의 헬라어 '프로사고겐'(* )은 구약에서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표현으로 70인역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제사 드리는 경우에 사용되었다(레 1:3;3:3;4:14).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이요 길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요10:7, 9;14:6)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별하였던 옛 범주(範 疇)는 폐지되었으며 그 결과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한 성령 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감을 나타낸다(롬 8:15, 16; 갈 4:6, Lincoln).

  • 26.01.17 10:19

    공감합니다. 묵상 본문과 코드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습니다.

  • 작성자 26.01.17 09:58

    <호크마 주석>

    슥 6:12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아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 여호수아에게서 예표된 사람은, "순"(가지, Branch) 곧, 메시야라는 의미에서(3:8 해석 참조), 선지자로 예언케 하신다. 사11:1 참조. "자기 곳에서"라는 것은 "자기의 아래로부터"라고 직역되나 실상 자기의고향(메시야가 나시기로 약속된 곳이니 베들레헴)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겸하여, 아래로부터 (미천한 데서부터) 자라남을 암시 하기도 한다(Keil and Delitzsch).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시므로 교회를 세우실 것을 예언한다.

    슥 6:13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이것은 윗절 끝에 있는 말씀의 중복 이다. 이 중복은 이유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 때 현재에 재건되는 스룹바벨 성전으로는 상상될 수 없는 신약 시대의 신령한 성전, 곧, 교회 설립의 사실을 역설하는 것이다

  • 작성자 26.01.17 09:59

    히브리어에 있어서 역설체는 중복체로 나온다.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좌에서(하나님우편에서) 그의 교회를 다스리실 것을 가리킨다.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는, "또 그가 자기 보좌에서 제사장이 되리니"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한 몸에 양직을 겸하실 것이 여기 예언된다.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고 한 것은, 그의 왕직과 제사장직이 서로 충돌이 없고 제정일치의 이상적 형태인 것을 예언한다.

  • 26.01.17 14:28

    네, 좋은 설명에 공감합니다.

  • 작성자 26.01.17 10:01

    <매튜 헨리 주석>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 됨(에베소서 2:14-22)

    우리는 이제 본장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하였다. 본문은 회개한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위대하고 큰 적대관계에 있었던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화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모든 화해하지 않은 자들 사이에도 역시 적대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평을 이루셨고 화해를 이루셨다.

    1.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서로 적대적 입장에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서로 비방하고 미워하고 서로 비난하던 두 종류의 사람들은 화해시킴으로써 "하나가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 그들은 서로 불목하게 하고 또 유대인들에게는 특권 의식을 고취한 상징적인 것은 의식적 율법이었다. 여기서 "중간에 막힌 담"이라고 한 것은 성전 안의 담을 말한 것으로 그것은 유대인들만이 들어 갈 자유가 있는 곳과 이방인들의 회집 장소를 분리해 놓기 위하여 세워놓은 것이었다. 이같이 "그는 원수된 것을 자기의 육체로 폐하셨다"(15절).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고통을 당하심으로써 의식적 율법이 갖는 강제력을 제거하셨다(즉 그들 사이에 거리가 생기게 하고

  • 작성자 26.01.17 10:01

    적의를 갖게 하는 요인을 제거하셨다). 이 율법을 본문에서는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부른 이유는 이 율법이 무리들로 외적인 형식과 의식에 참여하게 하고 신을 예배하는 외적인 요소들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제도를 규약을 제정하였기 때문이었다. 율법의 의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됨으로 폐하여졌다. 그것은 폐하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이거나 유대인이거나를 막론하고 참여할 수 있는 믿는 자들의 교회를 세우셨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둘로 한 새 사람을 만드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둘로 나누인 무리들을 하나의 새로운 사회 즉 하나님의 백성의 몸을 만드시고 그 백성들이 그들의 우두머리와 함께 연합하도록 하셨다. 또한 그들을 성령으로 새로워지게 하셨으며 복음이 가르치는 새로운 예배 형식에 같이 참여하게 하셨으며 복음이 가르치는 새로운 예배 형식에 같이 참여하게 하셨으며 이전에는 여러 가지로 나뉘어 있던 두 무리 사이를 "화평케 하셨다."

    2.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를 막론하고 죄인과 하나님 사이는 절대적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원수됨을 제거하시고 그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고자 오셨다(16절).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 작성자 26.01.17 10:01

    다툼이 생기게 만든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해시킴으로 또 하나의 몸으로 모으심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을 격동시키고 그에게 범죄함을 그치도록 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또는 자기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원수된 것을 소멸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살해당함으로 또 희생되심으로 하나님과 가련한 죄인들 사이에 있는 원수됨을 소멸하셨다. 사도는 더 나아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보에 의하여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얻게 될 유익에 대하여 설명한다(17절). 십자가 위에서 평화를 이루신 그리스도께서는 가까이 있는 자들이라고 불리는 유대인들에게는 한편 천히 모습을 나타내심으로, 또 이전에는 멀리 있었던 자로 불리우는 이방인들에게는 다른 한편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사도들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평안을 전하셨다." 즉 하나님과 영생에 대한 화해를 선포하셨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진리를 전할 때,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직접 전하시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가져옴을 기억하자.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전도할 것을 명하시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며(그에게 사명을 위임받아 그의 메시지를 전하는)

  • 작성자 26.01.17 10:02

    제자들을 배척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멸시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화평의 결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자유로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18절). 즉 "저로 말미암아" 곧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그리스도의 증보되심을 힘입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공통된 화해의 아버지가 되셨다. 은혜의 보좌는 우리가 가까이 나아가도록 설립되었고, 그 보좌로 접근할 자유가 우리에게 허용되었다. 우리의 나아감은 성령에 의하여 가능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오도록 대속하시고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가까이 오고자 하는 마음과 나올 수 있는 힘을 주시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받아들이도록 은혜를 주신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왔음을 명심하라. 에베소인들은 그들의 회심을 통하여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도는 "너희는 이제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라"고 말한다(19절).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그들의 전에 이방인이었던 사실에 대하여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내기

  • 작성자 26.01.17 10:02

    위하여서이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특권으로부터 외인이 아니며" 유대인들이 자기들 이외의 주위에 있는 모든 나라 사람들을 대하는 것 같은 이방인이 아니며 다만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다." 즉 이 말씀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도가 되었으며 성도가 지니는 모든 특권을 받을 권리가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교회가 도시로써 비교되었음을 생각해 보자. 모든 회개한 죄인이 그 안에 자유로 거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집으로 비유되었다. 거기서 모든 회개한 죄인들을 가족의 구성원이 되며 하나님의 종이요, 자녀가 되는 것이다. 20절에서는 교회가 건물과 비교되고 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그집의 "초석"이 된다. 그 건물의 첫 번 기초는 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에 그들은 이차적인 뜻에서 초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건축물을 오히려 신약의 사도들과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전해진 교훈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다음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만나고 하나의 교회를 구성하였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권능으로

  • 작성자 26.01.17 10:03

    이 건물을 지탱하신다는 말이다. 또한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21절)라고 하셨다. 즉 그 집을 구성하는 모든 신도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서로서로 기독교인의 사랑을 나눔으로 연합하여 "성전이 되어가고"(21절) 거룩한 사회를 이루어간다는 말이다. 구약의 성전 안에서 그랬듯이 교회 안에서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와 봉사를 드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적인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총과 축복을 주신다. 이같이 건물은 그 성격상 그의 이름을 두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장소이며 또 그곳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은혜와 권능에 대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머릿돌로써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고 모퉁이 돌이신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보편적인 교회는 결국은 제일 으뜸가는 돌로서의 주님 안에서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니라"(22절)고 말씀되어 있는 것이다. 보편적인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불리울 뿐만 아니라 개개의 교회들도 하나님의 성전으로 불리운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 작성자 26.01.17 10:03

    그리고 모든 참된 신도들은 살아있는 성전으로 불리울 뿐만 아니라 개개의 교회들도 하나님의 성전으로 불리운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모든 참된 신도들은 살아있는 성전이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치소임"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은 복된 성령에 역사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간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는 것은 그들이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되는 보증이 되신다.

  • 작성자 26.01.17 10:07

    오시지만, 그들은 만일 그들이 그의 율법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계속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은혜에 합당하게 만들기 위해서 요구하시는 것은 계시된 그의 뜻에 대한 순종이다. 그리고 그것은 근면한 순종이어야 한다. 우리는 많은 주의와 고통없이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할" 수 없고, 우리의 순종은 우리가 애쓰지 않고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Ⅲ. 이에 대한 기억을 위하여 행해진 준비를 보자. 이 의식 속에서 사용된 "면류관들" 은 여호수아에게 주어지지 않고, "여호와의 전에 기념하기 위해 보존되어야" 했다(14절). 그들이 교회 보고 안에 간직되든지,(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모든 사람이 보도록 성전의 창문 위에 걸어야 했다. 즉 in perpetuam rei memoriam - 즉 영속적인 기념을 위해, 메시야의 약속에 대한 전통적인 증거를 위하여 또한 그 약속의 확인에 사용되는 이 전형적인 처리를 위하여, 그 재료를 찾아낸 자들에게 전해져서(혹자는 그들의 이름이 면류관 위에 새겨졌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경건한 봉헌에 대한 공적 증거와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집에 예물을 가져오도록 타인을 권면하는 뜻에서 보존되었다.

  • 작성자 26.01.17 10:08

    다양한 수단들이, 정해진 시간, 그때까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던 구약의 성도들이 믿음을 지지하기 위해 사용되었음을 주목하자.

  • 26.01.17 14:59

    긴 설명이지만 은혜롭게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 26.01.17 10:06

    <매튜 헤리 주석>

    슥6:13 "평화의 의논이 그들 사이에 있으리라." 즉,

    (1) "여호와" 와 "순이신 사람 사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이다. 그리스도의 중재에 의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어진 평화에 관한 의논은 구속의 언약 속에 있는 무한한 지혜에 의하여 협의될 것이다(즉, 협의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 문제에 있어서 완전하게 충분히 서로를 이해한다. 혹은 오히려,

    (2) 제사장과 보좌 사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격인 직임과 왕격인 직임 사이이다. "순이신 그분" 은 "평화의 의논" 을 수행하러 자라나리니, 땅의 평화와, 그것을 위하여 하늘과의 평화를 의논해야 한다.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화의 생각" 이며, 그것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그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며 동시에 구세주" 로 들어 올렸다. 그는 그에게 보좌를 주셨는데, 그가 그의 보좌 위에 제사장이 되어야 하며, 제사장과 왕의 두 직임을 수행함으로써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되고 그 안에서 복을 누리도록 하는 위대한 작업을 초래해야 한다는 조건 아래서 그렇게 하였다.
    혹자는 그것이 왕과 제사장의 분리된 직임자들이,

  • 작성자 26.01.17 10:06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지금 그러하듯이, 교회와 국가에 있어서의 평화와 번영을 유지할 목적으로 서로 의논을 하는 유대 국가의 이전 정사를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그들을 돕는다" 는 말을 덧붙일 수 있다. 그처럼 복음의 교회와 모든 신도들의 평화와 복지가, 비록 두 분리된 사람들에 의해서는 아니지만, 하나에서 만나는 두 분리된 직임 덕택에 시행될 것이니-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사장직에 의해 모든 평화를 사시며 그의 왕국에 의해 그것을 유지하시고 수호하신다. 펨블(Pemble)씨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예언자직은 이 위대한 계획 속에서 양자에게 봉사한다.

    6.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복음의 교회 안에서 서로 행복한 연맹을 가질 것이며, 그들은 양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 그들의 일치의 중심으로서 그의 보좌 위에 제사장이 될 것이다(15절). "먼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혹자는 그것을 포로생활 뒤에 있는 바벨론에 멀리 떨어져 있는 유대인들도 이해하는데 이는 돌아와서 성전을 짓는데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제들에게 큰 실망이 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 다수와, 유대교로 개종한 다른 나라들도 들어와서

  • 작성자 26.01.17 10:06

    성전 건축에 돕는 손을 빌려 주고, 많은 손들이 가벼운 일을 할 것을 약속하신다. 바사의 왕들도 성전 건축에 기여했고(스 6:8), 그 장식을 도왔다(스 7:19, 20). 그 후대에 헤롯 대왕과 이방인들이 성전을 아름답고 풍부하게 하는 일을 도왔다.
    그러나 이것은 나아가서 장차 "순인 사람" 이 지을 "여호와의 성전"을 가리켰다. "먼 데 사람" 인 이방인들이 그 건축을 도우리니, 그 이유는 그들 중으로부터 하나님께서 그 건축에 대해 그리스도와 함께 할 일꾼들이 될 사역자들을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방인 개종자들 모두는 이 건물에 부착되는 돌들이 되어 "거룩한 성전으로 성장할" 것이다(엡 2:20).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져야 할 때 그는 먼 데 있는 자들로부터 데려올 것이며 그 건축에 그들을 기용할 것이다.

    7. 이 뜻의 성취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대한 강한 확신이 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그 약속, 먼 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성전 건축에" 있어서 그들을 도와주리라는 약속은 소위 "그들에게 표적을 주었다." 이에 의해 그들은 다른 약속들도 때가 되면 이루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 작성자 26.01.17 10:07

    이는 이제 매우 신속히 이루어져야 했다. 그것은 그렇게 되었으니, 그 까닭은 왕의 칙령에 순복하여서, 그들의 원수요 고소자들이었던 사람들이 그들을 돕는 자가 되었고, 그 일의 진척을 위해 명령받은 일을 신속히 행하였고, 그에 의해 그 일이 계속되었고 끝마쳐졌기 때문이다(스 6:13, 14 참조).
    이제, 그들은 성전 건축에 있어서 멀리로부터 감행된 이 놀라운 도움에 의해, 자기들이 이전에 들었던 것, 곧 스가랴가 하나님에 의해 보내졌고, 그리하여 "순" 이신 그 사람에 관한 그의 말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8. 이 약속들은 순종에 대한 의무를 요한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청종할진대 이같이 되리라(너의 성전 건축을 돕게 되리라). 너희는 만일 선한 열심을 스스로 품고 그 일을 하면 성전 건축에 있어서 이 외국인들의 도움을 얻을 것이다." 타인의 도움은, 우리의 나태에 대한 핑계가 되는 대신에, 우리의 근면에 대한 박차가 되어야 한다. "만일 네가 너의 의무를 양심적으로 행하면 저 모든 약속들의 유익과 평안을 향유하게 되리라." 그들은 선한 행실 위에 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비록 그들의 하나님께서 긍휼의 방식으로 그에게

  • 26.01.17 16:38

    길고 풍성한 내용이지만 설교처럼 잘 읽었습니다^^

  • 26.01.17 11:56

    엡 2:14과 슥 6:12,13절이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통찰력 있게 설명해 주셨네요. 아주 유익하고 훌륭한 묵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와 성자 간의 평화의 의논과,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을 이루게 된 것, 성도들도 교회와 가정, 사회에서 화평을 이루는 것이 하나로 연결되는군요.
    평화의 의논에 대해서 자세히 색 다른 모습으로 설명해 주셔서 좋습니다. 그리스도는 왕과 제사장으로서 보좌에 앉으셔서 교회를 통치하고 계시고, 만물의 주관자, 왕으로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평화의 의논에서 성부는 삼위일체의 대표격으로, 성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여 구속 언약을 체결하셨다는 것이 놀랍고 경외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평화는 하나님에게서만 오는 특징을 가지고 있군요.
    주님의 몸된 교회는 평화의 증인이 되어야 하고, 세상과 사회에 평화를 흘려보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대로, 교회도, 성도 개개인도 성령의 열매를 맺어서 화평케 하는 소임을 잘 감당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6.01.17 14:23

    공감합니다^^ 본문을 요약하고 포인트를 짚어 주셔서 도움이 됩니다.

  • 26.01.17 16:47

    매우 공감합니다22

  • 26.01.17 16:49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한 감사드립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아멘!

  • 26.01.17 20:26

    아멘 🙏 🙏

  • 26.01.17 21:43

    아멘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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