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 머뭇거리는 산마루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본다. 굴곡진 능선의 긴 자락들이 굽이굽이 살아온 인생길이다. 평탄한 길인가 하면 가파른 비탈길이 나오고 아슬아슬 절벽을 비켜나면 널따란 평원이 펼쳐지기도 한다. 꼬불꼬불 등고선, 그 길을 따라 수많은 날들을 총총하게 걸어왔다.
이제는 숨이 차다. 낡은 수레바퀴처럼 여기저기가 삐거덕거린다. 쉬엄쉬엄 쉬었다가 미련 없이 가려건만 팔부능선에 걸린 어스름 등불이 갈 길을 막아선다. 평생을 두고 저질러진 업보와 가슴에 응어리진 설움과 번뇌 그리고 못다 한 사랑의 밀어를 마음에 두지 말고 탈탈 털고 가라고, 이 풍진 세상 얽히고설킨 인생사를 묻어두고 가라고, 그것은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 문학의 길이었다.
일흔여섯 나이에 수필 문학 등단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소원하지도, 모색하지도 않았으며 예행연습도 없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무색해진다. 뜻이 없는 곳에, 길이 열렸으니 때로는 뜻하지 않은 인생길을 남이 열어주는 경우도, 있는가보다. 내가 가진 것을 내가 모르는데 남이 알고 끄집어 내어주는 것은 적선이다.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 했던가. 선을 쌓으면 반드시 경사가 일어난다는 뜻을 되새기며 선생님의 적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념 무계획의 은퇴 생활이 몸과 마음을 파괴시키고 있던 차에 우연한 기회로 인문학 선생님을 만났다. 어느 날 강의를 마친 선생님이 느닷없이 수필을 써 보라고 종용을 한다. 무심코 올린 단톡방의 댓글들이 선생님의 마음을 건드렸나 보다. 잔잔했던 마음에 파도가 인다.
운명적인 만남이었을까. 형식에 구애 없이 습작한 글이 월간문학지의 신인상으로 선정이 된다. 부끄러웠다. 생소한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체여 넘어질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필력과 유머가 있고 잠재력이 보여 선정했다는 심사평은 움츠러진 나의 마음을 작가의 길로 응축시켜 주었다.
문학의 잠재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머니의 고매한 자양분이 내게로 와 칠십육 년 동안 잠들어 있다, 이제야 깨어났을까. 아니면 벌써 깨어 있었으나 거들떠보지를 않아 가슴속에 숨어 있었을까. 아버지는 농사일만 아는 일자무식이었지만 어머니는 산골동네에서는 보기 드물게 한글을 깨우치셨다. 고서(古書)를 많이 읽으셨다. 가을밤이면 문풍지 객창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 벗 삼아 나긋한 음성으로 책을 읽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어머니를 닮았을까. 태양이 짧게 머무는 산골 초등학교 4학년 때 쓴 동시가 전교생의 대표작으로 뽑혔던 일, 군기 빡세기로 소문난 해병대 고참병들의 사랑편지를 대필해 주고 군대 생활을 편안하게 했던 일. 사고보고서 한 장에 매료되어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회사 사장님, 이 모두가 어머니의 DNA 효과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법조인의 꿈을 어렵사리 접고 중견기업 무역부에 입사했다. 무역을 하다 보면 통상마찰이나 품질문제로 국제적인 분쟁이 자주 일어난다. 자국 산업 보호책인 반덤핑제소 같은 경우에는 논리성과 설득력을 갖춘 답변서를 요구한다. 논거가 일목요연한 문장력이 필수적이다. 수출의 날에 정부로부터 수출공로상을 여러 번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거기에서 비롯된다. 이것 또한 잠재된 문학의 뿌리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한발 두발 걸어온 과거 속에서 등단의 뿌리를 찾아보았다. 삶의 궤적과 수필의 맥은 공동운명체가 아닐까. 뿌리가 깊은 나무일수록 크게 자라고 밑거름이 풍부할수록 튼튼하게 자란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자양분으로 뿌리를 내리고 사회경험을 통한 경륜이 밑거름이 되어 작가라는 이름으로 거듭나고 싶다.
연마되지 않은 칼은 종이를 자를 수가 없다. 종이를 힘차게 자를 수 있는 그날까지 쉼 없이 갈고 닦으리라. 나의 문학적 뿌리는 어머니였다.
첫댓글 곽 선생님은 애초에 작가의 소질을 타고 나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그리고 아무나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을 많이 쓰 주시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