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우리 민족의 유래에 대한 기사이다.
그런데 진돗개의 유래에 관한 여러 가지 학설을 종합해 보면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역시 개와 사람의 관계는 불가분인 것 같다.
게놈 분석으로 밝혀낸 한민족의 원형
UNIST 게놈연구소, 국제공동조사단 구성
2017.02.07 09:45 연합뉴스 제공
우리나라 고대의 건국신화를 보면 난생설화가 자주 등장한다. 고구려의 동명왕, 신라의 박혁거세·석탈해·김알지, 김수로를 비롯한 가야 6국의 시조 등이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 같은 난생설화는 동남아 지역에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우리나라처럼 구체적이고 오랫동안 원형을 유지한 사례는 없다.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쓴 승려 일연은 물론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는다는 유학자 김부식마저도 삼국사기(三國史記) 사론(史論)에 “그 말이 괴이하여 믿을 수는 없으나 세속에서 서로 전하여 그것을 사실로 여기고 있고, 그 전한 바가 오래인지라 역사를 편찬함에 그 말을 깎아 없애지 못하였다”며 삼국의 건국신화를 기록해놓았다. 이렇듯 난생설화는 한국 고대사의 주요한 특징으로 꼽힌다.
건국 시조들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비범한 인물이기에 출생 과정에서부터 기이하다. 학자들은 난생설화가 농경문화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알은 씨앗이라는 말로도 쓰여 신성함을 뜻한다고 한다. 씨앗을 보관했다가 싹이 트지 않으면 부족의 살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들은 알이란 말이 ‘아리’를 거쳐 ‘아기’란 단어로 변했다고 유추한다.
난생설화는 알이 어디서 비롯됐느냐에 따라 하늘로부터 스스로 내려온 ‘자연천생란적'(自然天生卵的) 설화와 인간에 의한 ‘인위인생란적'(人爲人生卵的) 설화로 나뉜다. 다른 말로는 ‘업둥이형’과 ‘사생아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박혁거세·김수로왕·김알지는 전자, 동명왕과 석탈해는 후자에 속한다. 전자가 알일 때부터 신성하게 떠받들어져 깨어나면서 큰 어려움 없이 왕으로 등극하는 데 반해 후자는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겨져 내버려졌다가 짐승들의 보살핌 속에 깨어난 뒤 온갖 시련을 딛고 건국 시조가 된다.
학자들은 자연천생란적 설화를 천손(天孫)신화를 믿는 북방 유목민족과 난생신화를 신봉하는 남방 농경민족의 결합으로 풀이하고 있다. 나뭇가지에 걸린 궤짝의 알에서 태어난 김알지 신화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나무가 하늘을 상징한다고 한다. 동명왕 신화는 인위인생란적 설화에 속하지만 어머니 유화부인이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와 가까이했다는 이유로 유폐됐다가 햇빛을 받고 임신해 알을 낳았다는 줄거리가 천손족과의 융합을 은유하고 있다. 바다를 건너온 궤짝의 알에서 태어난 석탈해는 전형적인 인위인생란적 설화의 주인공으로 남방계 이주민으로 추정된다.
신석기 시대 인류의 유골이 발견된 러시아 ‘악마의 문 동굴’ 입구. ⓒ 연합뉴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는 최근 러시아·영국·독일 등과 국제공동조사단을 구성해 두만강 북부 러시아 동단의 ‘악마의 문 동굴’에서 발견된 7천700년 전 동아시아인의 게놈(유전체)을 슈퍼컴퓨터로 분석했다. ‘악마의 문 동굴’은 고구려·동부여·북옥저가 자리 잡았던 지역으로, 1973년 이곳에서 신석기 시대 인류의 유골이 발견됐다. 악마문 동굴인 가운데 20대와 40대 여성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오늘날 한국인처럼 갈색 눈과 삽 모양 앞니를 지닌 수렵채취인으로 밝혀졌다.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전변이,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냄새가 적은 유전자, 마른 귓밥 유전자 등이 인근에 사는 원주민 울치족을 제외하면 한국인과 가장 가깝다고 한다.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게놈 종류도 한국인이 주로 가진 것과 일치해 모계가 똑같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단은 악마문 동굴인과 아시아 50여 가지 인종의 게놈 변이를 비교해 현대 한국인의 민족 기원과 구성을 계산했다. 동굴인과 현대 베트남과 대만에 고립된 원주민의 게놈을 융합할 경우 한국인의 특성에 가장 가깝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이 뒤섞이면서 한반도의 조상을 형성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는 난생설화, 그 가운데서도 자연천생란적 설화가 주류를 이룬 고대 건국신화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기도 하다.
박종화 UNIST 게놈연구소장은 “현대 한국인은 북방계와 남방계가 혼합된 흔적을 분명히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유전적 구성은 남방계 아시아인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수렵·채집이나 유목 생활을 하던 북방계보다는 정착 농업을 하던 남방계가 더 많은 자식을 낳고 빠르게 확장했기 때문이다. 수렵·채집이나 유목은 농업보다 인구 부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또 유목민족은 아이를 안고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므로 동기간의 터울도 2∼3년이 보통인 농경민족보다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박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동아시아인들은 수만 년 동안 북극, 서아시아, 남아메리카까지 광범위하게 이동하다가 농경이 본격화한 약 1만 년 전부터 각지에서 민족의 원형이 형성됐다. 한반도의 경우 동남아시아에서 북동쪽으로 이동한 남방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극동 지방으로 흘러들어온 북방계의 혼합이 일어나 한민족의 뿌리가 만들어졌다. 일각에서는 금관, 비파형 동검, 호랑이 모양 띠고리, 손잡이는 구리이고 칼날은 쇠로 만든 동병철검(銅柄鐵劍) 등 북방계 유물이 고분에서 출토되는 것을 근거로 기마민족 정복설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북방계 기마민족이 한반도에 들어와 남방계 농경민족을 지배했다는 것이다. 남방계 유적으로는 남방식 고인돌이 대표적이다.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다른 민족보다 동일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화로 보거나 유적·유물로 보거나 DNA의 구성으로 보거나 한민족의 원형을 분석하면 다문화적 결합을 거쳐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한민족의 시원을 바이칼호 근처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베트남 인근에서도 뿌리의 흔적을 뒤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