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³⁴
상호경청과 대화²
그러면 시노드적 대화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까요? 국제신학위원회의 문헌이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다른 이들을 능가하거나 반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또 깊이 있게 들으면서 의견을 교환하는 것, 함께 생각하고 함께 일하려는 의도를 갖는 것, 그릭 대화 상대방에 대하여 공감과 존중과 신뢰를 가지는 것 등"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 110-1144항 참조)입니다. 요컨대 시노달리타스의 실현을 위한 핵심 요소인 '상호경청' 은 곧 '상호존중' 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인내' 가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내는 단순히 '이를 악물고 참는 것' 이 아닙니다. 사람이든 공동체든 인간 역사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변화는 거의 없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사건처럼 보여도 그것을 분석해 보면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일련의 과정과 에너지의 축적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브 콩가르 추기경이 교회 개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시노달리타스의 실현에도 유효해 보입니다. "삶에 대한 모든 것은 유예를 갖고 있고 이것은 피할 수도 간과할 수도 없다. 시간과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 일만이 시간을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에 대해서도, 교회 내 다른 구성원에 대해서도, 그리고 공동체 자체에 대해서도 우리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대화의 장(場)은 '여백과 기다림' 이 형성된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빨리빨리의 사회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진 우리는, 교회에서도 즉각적인 응답과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 의해 철저하고 치밀하게 계획하여 그대로 '즉시' 이루어진다면, 과연 하느님이 개입하시고 활동하시는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교회는 즉각적으로 효율적, 효과적인 결과를 내는 집단이 아닙니다. 때로는 더디더라도,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시는지, 하느님께서 나에게 우리 공동체에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할 것인지' 를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 (루카 1,29)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고 곰곰이 생각했던 성모 마리아의 태도가 신앙인의 자세이자 시노드적 삶의 태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서로, 그리고 함께 '기다리며 들을 준비' 가 되어 있습니까?
글 |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