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모 토요칼럼 2026.4.25 >
(한국의 보리고개의 역사적 의의)
1. 4일은 잔인한 달
세월이 하염없이 지나가는 가운데 개나리 진달래 살구 벚꽃이 피 고 지고하는 아름다운 4월도 지나갑니다.
그런데 영국의 유명 시인 T.S. 엘리엇(Eliot 1922 )은 그의 5부작으로 된 장문의 시 황무지( The Waste Land) 첫 구절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정을 뒤엎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이것은 엘리엇이 1차 대전 후 파괴된 폐허를 황무지로 일컫고 죽었던 것처럼 보이는 땅에서 새 생명의 새싹이 피어오르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영국의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한국의 보리고개에 대한 글을 쓰면서 한국인에게 4일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의 공대 화공과 2년 선배인 최희운 씨가 엘리엇의 황무지에서 잔인한 4월이라고 부른 것이 처음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최희운 선배님의 부음)
KIST 전 원장 박원희 박사님이 최희운 8회 동문이 작고하셨다고 알려 주셨었습니다.
최희운 보고 싶은 선배님!
김광모 후배는 생전에 선배님 신세를 너무나 많이 졌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배님 하느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 옵소서
최선배 님과는 48년 국가 서독파견 장학생 선발시험에 합격하여 서독 대학에서 Diplom 과정에 이어 박사과정을 대기 중에 있었는데 엉뚱하게 호남비료 서독파견 기술훈련생이 되어 같은 직장인 호남비료에서 일한 적이 있는 동지이기도 합니다.
그는 화공기술자로 KIST 연구윈으로 일하다가 KIST에서 연구한 것을 실지로 상품화하는 회사인 한국화학공업주식회사 사장을 역임한 바 있는 KIST의 공로자입니다.
그는 두뇌가 명석하고 천성이 착한 인품을 소지한 인사로서 문학에 조예가 깊어 저는 그를 공대의 엔지니어 보담은 문학 작가나 소설가로 나갔으면 더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한적적도 있습니다.
제가 보내는 글에 대하여도 늘 격려의 멘트를 해주셨습니다.
최선배와는 인생의 절정기에 대학 선배 및 직장 동료로서 지냈고 말기에 저는 KIST와 공대 8회 졸업 모임에 끼어서 자주 만나 세월을 보내는 둘도 없는 선후배 간의 동문이고 동지였습니다.
제가 혼자가 되어 어려웠을 때 박원희 원장과 더불어 친구가 되어 외로움을 달래 주셨습니다.
저의 집에서 모이는 저녁 먹기 위한 마작 친구였습니다.
저의 아파트 집에는 최형이 좋아하셨던 계수 씨는 없지만 마작방과 의자, 마작틀, 옛날 그대로 보관하여 오시면 언제든지 마작하실 수 있습니다.
최형은 몇 년 전부터 환향하여 일송이란 필명으로 서예에 열중하여 당선작품도 내고 글을 쓰시기도 했습니다.
<오늘 2026년 4월 25일 김광모의 토요칼럼을 대작으로 만들어 최희운 선배님 영전에 바칩니다.>
( 보리고개와 우리나라의 근대사 개관 참조)
보리고개란 말은 단군시조가 한반도에 나라를 세운 이래 가장 비참한 역사를 말합니다.
조선왕국 500년이 멸망하고 대한제국이 탄생하는 한국의 근대사는 약육강식의 역사입니다
1910년 군국주의 일본은 한반도의 대한제국을 병합하여 강제로 사실상의 36년간의 국권을 빼앗은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일본의 패망으로 1945년 815에 해방이 되었으나 해방의 기쁨도 맛보기 전에 국토는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남쪽에는 김구 여운형의 사회 공산주의 이념에 의한
세력이 기저에 깔려있는 상황에서 미군의 도움으로 1948.8.15에 상해 임시정부의 의장인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삼아 자유민주주의 국가(Democratic Republic of Korea)가 설립되었습니다.
이에 북쪽에는 김일성의 윈시 공산주의에 의한 인민 민주주의 공산국가( DPRK)가 동년 9월 9일에 설립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남북에 이데올로기가 다른 국가가 형성되어 민족의 비극이 싹텄습니다.
남쪽은 힘도 없으면서 북진통일이나 신탁통치 반대의 플란카드를 들고 외치면서 사회는 혼란과 소요 속에 있었습니다.
해방 후 북쪽은 김일성의 원시 공산주의로 단결하여 전쟁 준비만을 하여은 상황에서 한반도가 미국의 극동 아시아의 방어선인 애치슨 라인에서 벗어나 미군이 1950년 1월 철수하자 바로 그해 1950년 6월 25일에 적화 통일을 목적으로 남쪽을 침범했습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혼자의 힘으로 미국의 힘을 빌려 UN군을 참전시켜 전국토가 공산화로 적화통일되는 위기를 벗어나 민주주의 국가가 소생하는 위대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3년간의 남북 혈전과 3년간의 전후 전쟁 복구에 힘썼고 미국과의 한미 상호방어 조약과 원자력 협정을 맺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남한은 경제적으로는 전쟁을 겪고 원래가 빈국인 관계로 자력으로는 힘이 없어 미국으로부터 대충 민간 원조 30억 불과 군사원조 20억 불의 윈도를 받아 나라를 살렸습니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은 재임 말기에 정치사회적으로 불안한 가운데 419 혁명으로 물러나고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총리의 내각책임제 정부가 들어섰지만 1 년도 버티지를 못하고 박정희 장군의 5.16 군사혁명을 맞아 붕괴되었습니다.
박정희 장군은 군사혁명에 성공하여 한국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자신이 저술한 "혁명과 나에서"에 의하면 국가와 국민과 역사를 위해 생명을 걸었노라고 하시고 6개 항으로 된 혁명공약을 발표하였습니다.
공약 1,2항에서 반공을 국시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UN 현장을 수호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4항에서 자립경제를 구축하여 보리고개를 타파하고 빈곤과 기근에서 방황하고 있는 국민을 구출한다고 했습니다.
박정희가 등장한 1961년 현재의 한국은 1인당 gnp가 81달러 밖에 안 되는 세계 최빈국중의 하나였습니다.
(한국의 보리고개란 무엇인가?)
한국의 조선조 봉쇄 자급자족의 농본지 국가에서부터 한국의 60년대 초까지의 기간 4일이 되면 먹을 것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빈곤의 농촌의 사회상을 읊은 것입니다.
먹을 양식을 만드는 농토가 좁아 추수하는 곡식이 적은 나라가 가을에 추수하여 긴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수확한 곡식이 모자라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보릿고개란 가을에 추수를 하여 월동을 하고 4월이 되면 봄의 5.6월에 보리 수확이 있기까지 식량이 떨어져서 굶고 지낸다는 잔인한
4월이 되어 이를 보리고개라 불렀었습니다.
가난한 농가는 4월이 시작하면 식량이 떨어집니다. 당장 먹을 저녁거리뿐만 아니고 내일도 모레도 먹을 양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물지 않은 보리 이삭을 주워 태워서 가루로 만들어 초근목피를 섞어 죽으로 만들어 먹습니다.
나도 너도 굶고 이웃도 굶고 농가도 못살고 이 동네만 못 사는 것이 아나라 저 동네도 못 삽니다.
도회지도 못살고 오늘만 못 사는 것이 아니고 내일도 못사는 기약 없는 고통의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의 지도자로 등단하여 18년 6개월의 재임기간
중 60년대의 62년부터 달러를 버는 오로지 방법인 수출을 하고 수출하는 공산품을 만드는 제조공장 건설을 motto로 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여 선진국이 되는 반석을 구축하였습니다
선배님 최근의 애매한 정치사회적 작태에 대하여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과 국토개발보다 더 중점을 둔것은 국가의 안보구축으로 부국강병의 철 학하에 방위산업을 육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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