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하는 하루
노현희
-엄마, 저 동전 집어 줘요.
-안돼, 저건 사람들이 소원을 담아 둔 거야.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며 작은 탑 앞을 떠났다. 길 위의 언덕에 자리한 탑과 주변 바위에는 소원이 담긴, 동전이 무수했다. 대개 백 원짜리였고, 어쩌다 십 원이나 오십 원짜리 동전이 앙증맞게 끼어 있었다. 저게 다 소원의 모습이란 말이지. 동전들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하지만 내 상상이 가닿은 소원은 종류도, 내용도 빈약했다. 건강, 행복, 합격 등의 몇 단어뿐이었다.
동전은 돌탑의 평평한 부분은 물론이고 모서리 기동, 심지어 바위의 급한 경사면에도 붙어있었다. 그랬다. 동전은 얹혀있다기보다 돌에 붙어있는 듯했다. 거기엔 어떤 질척임과 끈끈함이 느껴졌다. 아슬아슬한 경사면에 소원을 붙인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제 삶은 이처럼 위태롭습니다. 부디 저를 놓지 말아주세요.
그런 마음이었을까. 신은 그걸 절규로 들었을까, 위협으로 읽었을까. 사람들은 탑에 소원을 빈 것일까. 동전으로 소원을 구걸한 것일까.
제 돈으로 빼빼로 많이 사 먹을 수 있는데. 제 엄마 손에 이끌려가며 아이가 뱉은 말이었다. 돌에 붙어 있는 동전은 과자를 사 먹을 수 있다는 아이의 동전과 정녕, 다른 것인가. 동전에 기댄 두 마음, 과자를 먹고 싶은 아이의 마음과 소원을 빈 사람들의 마음 중 어느 쪽이 더 간절할까. 동전은 저곳에서 바람과 비를 맞으면서도 그 마음을 지켜낼 것인가. 그곳을 벗어난 아이나 사람들은 이미 동전의 존재를 까맣게 잊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나는 어물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동전을 붙이며 웃기도 하고, 합장을 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놓여있는 동전을 살살 밀어내고 제 동전을 붙였다. 그 작은 공간에도 명당의 기도처가 있는 모양이었다. 밀린 동전은 떨어졌고, 그 사람은 동전을 주워 다른 동전에 아무렇게나 포개 놓았다.
-소원이 밀려났다. 소원이 합쳐졌다. 내 소원이 우선이야.
그러자 소원에 자리와 순서가 매겨지는 것 같았다. 소원에 질서가 있고, 순서가 있다면 그건 우리의 논리로 풀 수 없는 것이어야 했다.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동전, 그것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길은 해수관음상이 있는 곳으로 이어졌다. 걷는 동안에 바람을 타고 향냄새와 염불 소리,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관음보살은 동해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수면 위로 햇빛이 반짝거렸다.
관음상은 거대한 높이여서 고개를 한껏 젖혀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높은 것 앞에서는 저절로 우러르게 된다. 관음상 앞에 선 내가 그랬다. 한없이 자애로운 모습으로 하늘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그분을 보자 뭔가 간절해졌다. 내 눈길은 관음상 아래에 있는 한 안내판에 가 닿았다.
두꺼비(삼족섬)를 만지고 가면 2가지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이 줄 지어 선 것도 그때문이었다. 자석에 이끌리듯 나는 그 끝자락에 섰다. 사람들은 차례차례 관음상을 향해 극진히 절을 올리고 불전함에 정성을 담았다. 나도 그들이 한 것처럼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합장을 했다. 미리 준비한 지폐를 넣고 무릎을 꿇었다. 불전함 밑에 몸을 숨기고 있는 두꺼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어깨를 한층 낮추고 손을 뻗었다. 손안에 들어온 두꺼비는 축축하지도 미끄럽지도 않았다. 살짝 오므린 손바닥 안으로 쏘옥 들어온 두꺼비의 머리는 맨들맨들했다. 일행이 카메라에 담은 그때의 내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이틀간의 여행에서 렌즈에 잡힌 내 얼굴 표정 중에 가장 경건한 모습이었다.
관음상을, 두꺼비를 뒤로 하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늦여름의 눅눅함을 씻어갔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경쾌해보였다. 내 옆을 빠르게 스쳐가는 무리중의 누군가가 말했다.
-에이, 두꺼비한테 돈 주지 말고 찐 옥수수나 사 먹을 걸.
나는 순간 당황했다. 나는 누구에게 소원을 빈 거지. 괄호 속의 삼족은 뭐였을까? 설마 발이 셋? 두꺼비는 발이 넷인데 그럼 불완전 두꺼비였단 말인가. 거기다 무엇을 빌었지. 바다며 숲에서 나온 습기가 내 온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
나는 돌에 붙지 못하는 지폐를, 돌로 만든 불전함에 정성스레 넣었다. 내가 뭘 한 거지. 뒤늦게 다시 묻고 있었다. 차라리 돌탑에 동전을 붙일걸. 햇빛을 받고 바람을 맞으며 때론 반짝이기도 하는 소원. 빼빼로를 생각하고, 장난처럼 차례를 바꾸고, 슬쩍 미끄럼을 타기도 하는, 동전들에 실린 소원이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가볍게 부탁하고, 부담 없이 들어주는 것, 소원이란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내가 빈 것은, 소원이 될 수 없는 것인지 몰랐다. 내 소원은 돌로 만든 불전함 속에서 햇볕도 바람도 쐬지 못한 채 음습한 기운으로 남아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뭐. 두꺼비든 뭐든 그 순간은 진심이었다고.
그렇게 터져 나오는 소리를 목안으로 밀어 넣어도 자꾸만 부끄러웠다. 그런 일은 그날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되돌아 나오면서 보니 절 입구에서 찐 옥수수며 호떡을 팔고 있었다. 호떡은 내가 좋아하는 군것질거리였다. 나는 일행에게 천 원 지폐를 구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