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下心)의 인생을 깨닫는다
사람들의 모습이 참 예쁘다. 모랫길을 걷는 모습에 정이 넘친다. 처지고 지친 사람도 없다. 모두가 살갑게 이웃처럼 자유를 만끽한다. 밝게 웃으며 서로 교감한다. 가벼운 발걸음에 행복이 가득하다.
하루를 함께 한 회원들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들의 취향과 성격에서 철학과 인생관을 찾아본다. 걷는 동안 나눈 진솔한 이야기에서 힘을 얻는다. 동행의 웃음소리가 널리 퍼진다. 길 위에서 만난 모든 게 아름답다.
사진 몇 장만으로 기억이 새롭다.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추억이 가슴 안에 똬리를 틀고 견딘다. 꺼내 바라볼 때까지 내 속에 산다. 바람길은 이미 내 속에 추억이다. 나머지는 길을 걸은 각자의 몫이다.
잠깐 동안 구름이 몰려든다, 사위가 어둡다. 햇빛마저 살짝 색이 바랜다. 풍경이 한 장의 흑백 사진으로 변한다. 옷깃 여미듯 마음을 추스른다. 오감이 예민해지니 귀가 열린다. 해가 만들어 내는 소리까지 들린다. 봄을 맞는 바닷소리다.
길의 끝에서 단호한 절연을 한다. 상실과 연결된 끈을 잘라낸다. 좀처럼 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다. 바람의 유혹이 너무나 강하다. 장삼포 곰솔 향을 잊을 수 없다. 하루 종일 긍지를 느끼며 걷는다. 평화로우니 풍경이 더 아름답다.
진달래꽃과 제비꽃, 현호색, 민들레 향이 갯내음에 실려 바람으로 날아다닌다. 꽃 피고 바람 부는 길 위에서 꽃냄새로 거듭난다. 개펄 냄새와 희미한 꽃향이 따뜻한 사람 냄새로 바뀐다. 바람은 상큼하고, 풍경은 화사하다.
황포에서 시작한 길이 한참을 간다. 운여해변과 장삼포를 지난다. 장돌해변을 거쳐 바람아래 해변까지 내쳐간다. 황포항을 떠난 바람이 때마침 바람아래 해변에 닿는다. 여전히 바람의 질감이 촉촉하다.
바다가 서서히 해를 빨아들인다. 만물이 시적(詩的) 대상으로 변한다. 자세히 보고 생명들을 마주한다. 봄 길의 느낌을 담아내는 창작을 한다. 바람아래 해변이 유달리 싱그럽다. 모진 겨울을 견딘 덕이다.
바람길에서 청량(淸凉)으로 하심(下心)을 얻는다. 길을 걸으며 인생을 배운다.
함우석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