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00주년을 맞이하는 어린이날이다. 다 같은 어린이날이지만 100회째 맞이하는 금년 어린이날은 더욱더 뜻깊은 날인 것 같다. 내 자녀들은 이제 모두 가정을 꾸려 자식을 키우고 있고 나와 함께 같이 늙어가고 있어 어린이날은 의미가 없지만 자식보다 더 귀한 손주들이 있기에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내가 손자의 입장이 되어 보고 부모로서의 반성 그리고 조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해서 글을 써 본다.
우선 내가 어렸을 때 기억을 떠 올려본다. 어린이날이라고 해서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으로터 특별한 선물을 받거나 이벤트에 대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모든 가정이 먹고살기 힘들어 크게 바라지도 않았고 그저 하루 학교에 가지 않고 쉬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여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는 어린이날이 따로 없고 친가나 외가를 방문하는 날이 어린이날이였다. 나의 친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였고 외가는 한동네였다. 즉, 아버지가 결혼하여 친가 동네에서 살다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어머님 동네로 이사를 온 것이다. 나의 조부모님 4명 중 친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외모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친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너무 어릴 때 돌아가시지 않았나 싶다. 우리 세 대 때의 손주들은 조부모님으로부터 크게 사랑을 받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손주들이 너무 많아 모두를 챙길 수 없는 입장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조부모님들은 나를 좋아하고 사랑했는데 내가 그분들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할머니는 나를 끔찍이 사랑해 주셨다. 1년에 방학을 맞이하면 1~2번 친가를 갔었는데 할머니는 우리 깡열이 왔나 하면서 엄청 반겨 주었고 맛있는 음식을 이불 속에 숨겨 두었다가 몰래 먹으라고 하면서 내어 주곤 하셨다. 어릴 때에 집에서 부르는 이름과 호적의 이름 2개를 사용했다. 전자의 이름이 창열이였는데 친할머니는 항상 깡열이라고 불렀다.
왜 그렇게 불렀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추측컨데 깡다구 있게 살아가라는 뜻이 아니였나 싶다. 돌이켜 보면 친할머니가 사용한 그 호칭이 나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를 잡아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근성이 있지 않나 싶다. 이 자리를 빌어 친할머니께 깊은 감사를 표한다.
친할머니는 그 당시 장수를 하셨는데 아마도 80세 이상 사신 것 같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참으로 점잖시고 잘 생긴 분이셨다. 그 당시 소장수를 하셔서 부유하게 사셨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하게 된 동기는 소를 팔면서 소를 사간 친할아버지와 사돈을 맺자고 해서 이루어졌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한동네에 살아 자주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너무 숙맥이라서 그런지 별로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외할아버지에게 좀더 애살스럽게 행동했더라면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고 내 운명도 달라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외할아버지는 60대에 돌아가신 것 같다. 내가 좀 더 손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더라도 기쁨이 충만되어 더 오래 장수했을지도 모른다. 일전에 집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그 느낌이 오버랩되었다.
집사람은 왜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 것 같다고 했다. 뜬금없이 왜 그런 말을 하는데 하고 물으니 지금 애완동물을 키울 입장은 아니지만 손주들하고 통화를 하거나 만나서 깔깔대며 웃으면 삶에 활력이 넘치고 아픈 통증이 사라진다고 했다. 무슨 뜻(사랑=만병통치약)인지 알았다. 손주들은 애완동물보다 몇배 이상으로 귀여운 존재이다.
그리고 내가 부모였을 때 자식들에게 못 다해 준 것을 대신할 수 있게 해 줘서 정말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번 어린이날에 부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남은 인생 부모로서 조부모로서 모범을 보이면서 충실히 살아갈 것을 다짐해 본다. 일본에는 손자의 날이 있어 조부모들이 손주들에게 푸짐한 선물을 사 준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그런 날을 제정하여 조부모들이 손주들에게 맘껏 사랑을 베푸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자식과 손주들에게 하고픈 말은 지금부터라도 운동을 통해 체력을 기르고 공부나 독서를 통해 뇌훈련을 시켜 죽을 때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번 어린이날을 다시 한번 축하하고 모든 가족들이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