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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을 이용해 창촌: '창촌마을 → 황둔2리 노인정 → 임도 → 주 능선 → 990봉 → 매봉산 → 삼거리 → 1,064봉 → 삼거리 → 임도 → 황토방 → 오토캠핑장 → 황둔2리 (→ 감악산 막국수)' 12.5km, 5시간
석기동: '싸리치 → 북쪽 영월지맥 → 1,062봉 → 1.062봉 동릉 → 1,064봉 → 헬기장 → 정상 → 동릉 → 985봉 → 985봉 남릉 → 876봉 남릉 → 임도 절개지 → 밥남은골 → 황둔2리 마을회관'의 두 코스 중 상황에 따라 선택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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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산
높이: 1,095m
위치: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치악산 국립공원 동남쪽 끝에 위치한 매봉산은 남대봉 싸리재를 타고 내려온 능선이 감악산에 이르기 전에 솟은 봉우리이다.
가을이면 치악산에서 매봉까지 병풍처럼 펼쳐지는 오색단풍이 일품이다.
정상에 서면 북으로 당골계곡, 남으로 감악산, 동으로 사자산, 백덕산 등 주변 산악지대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 당골계곡 너머로 치악산 비로봉과 매화산이 단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매봉산은 늦가을 낙엽산행의 백미로도 꼽힌다. 낙엽산행의 백미는 매봉산 정상에 오른 뒤 하산길에 있다. 서남쪽 헬기장을 경유해 남동쪽 능선을 타는 것이 일반적인 하산길. 이 구간은 참나무 등 활엽수 들이 빽빽이 들어찬 수림 지역이어서 낙엽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 한국의 산하
10월 마지막 주 산행은 한 안내산악회의 묘봉에서 갈령까지 달리는 무박 속리산 종주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그 구간에 속리산에 속하나 쉽게 갈 수 없는 관음봉이 있고, 백두대간 종주에서 끊어진 천왕봉에서 피앗재까지 구간이 들어 있어 일거양득의 산행이라 기대가 컸다. 해서 9월 19일 그 산행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신청하고 산행 일만 기다렸는데, 10월 25일 회문산행 중 산행 일을 5일이나 남겨두고 신청이 저조하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2023년 1월 8일로 연기한다는 산악회의 문자를 받았다. 평소 산악회 성원 기준을 넘겼음에도 신청자 부족을 핑계로 연기하는 이유를 정확하지는 않으나, 대략 추측은 하고 있어, 그 문자를 받자마자, 나도 모르게 회문산 중에서 쌍욕을 뱉었으나, 못 가겠다는데 어쩌겠나? 대안을 찾아야지.
해서 같은 날 즉 10월 30일 일요일 출발하는 산행을 11개 안내 산악회에서 찾았으나, 당기는 산행은 신청이 저조하고, 성원을 채우고 출발하는 산행은 이미 다녀온 산이라, 전혀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다 한 산악회 게시판에서 다들 단풍 명소로 달려가는 중에 지리산 만복대 억새 산행 계획을 발견했다. 만복대야 3번이나 올랐으나, 현재 진행 중인 백두대간 종주에서 고리봉에서 주촌마을까지 구간이 끊어진 상태라, 백두대간을 연결하고, 덤으로 2022년 초겨울 억새도 즐기자는 두 가지 목적에서 신청했다. 물론 성원에는 조금 모자란 상태였으나, 어렵지 않게 채울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간신히 성원을 채웠으나, 출발 이틀 전에 신청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취소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예상했던 바다.
연기든 취소든 두 번에 걸친 취소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 이런 때를 대비해 만들어 뒀던 카드인 대중교통을 이용한 천고지 산행 중 하나인 원주 매봉산을 꺼냈다. 8월에도 갈 만한 산이 없어, 매봉산을 갈까 하다가, 낙엽산행이 백미라는 한국의 산하, 매봉산 소개 글을 보고, 가을로 미뤄두고 당시에는 횡성 오봉산에 올랐다[산행기]. 매봉산에 오르기 가장 적당한 시기고, 상황이다. 다만, 낙엽 산행이라면, 낙엽 쌓인 등산로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등산객이 많이 찾는 산도 아니라, 산행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리고 만복대를 같이 신청했다가, 같이 취소당한 친구에게 매봉산행을 타진할 예정이다. 산행 준비는 평소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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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일요일 갈 예정으로 산행을 준비했으나, 전날인 토요일 친구 딸내미 결혼식 피로연과 2차에서 과음하는 바람에 당일 기상이 힘들었다. 그런데도 안내산악회와 같이하는 산행이라면 벌떡 일어났겠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이라, 내일 즉 월요일 가기로 하고 더 잤다. 사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은 평일이 더 여건이 좋다는 것도 벌떡 일어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대도시를 제외한 소규모 시군의 버스는 휴일에는 운행 횟수가 줄어, 그나마 몇 대 다니지 않는 버스가 하루에 한 대로 주는 일도 있다. 고로 군내 버스를 이용한 오지 산행은 평일에 하는 게 그나마 가성비가 좋다! 아니면 택시비로 생각지도 않은 비용이 나가는 일이 발생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동안에는 토·일 등 휴일 외에는 시간 내는 게 쉽지 않았으나, 개점휴업 상태인 지금은 평일에도 시간을 낼 수 있으니, 굳이 여건이 좋지 않은 휴일에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을 할 이유가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오지 산행에서 서울에서 들머리까지 한번에 갈 수 있는 산은 사실상 없다. 두세 번은 버스를 갈아타야 도착할 수 있는 산이 대부분이다. 그보다 더 많으면, 당일 산행은 불가능이다. 문제는 버스를 갈아타는 것도 시간이 서로 잘 맞아야 길거리에서 차를 기다리느라 낭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차는 마지막 버스다. 즉 들머리에 데려다주는 버스! 그 차 시간에 따라 차례로 앞으로 나가며 시간을 맞춰야 해 쉽지 않다. 어쨌든, 이번 산행의 마지막 차량인 원주 24번 버스가 원주 대평교 정류장을 10시경 통과한다는 정보다. 그에 맞춰 버스를 계산해 보니, 동서울에서 7시 40분 버스를 타면 된다. 따라서 그 시각에 맞춰 기상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6시 10분경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서, 동서울 터미널로 향했다.
7시 22분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해 주위를 서성이다, 버스 출발 10분 전에 지정된 승차장으로 가 차를 기다렸는데, 7시 40분발
봉화. 춘양행 버스가 출발하고, 조금 있자, 원주행 버스가 나타났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처음부터 무언가 꼬이는 게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뒤통수를 갈겼다. 어쨌든 도착한 버스의 짐칸에 배낭을 넣고 차에 타 내 자리에 앉았는데, 옆자리 승객이 안 탄다. 분명 차에 타기 전에 매진이라는 걸 확인해서, 짐칸에 배낭을 넣었는데, 서너 자리가 비었다. 이후 버스는 예정보다 2분 늦은 7시 42분에 터미널을 떠났다. 그런데, 수도권을 빠져나가는 게 쉽지 않아 지체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함인지, 과하다 할 정도로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린 버스는 예정보다 조금 늦은 9시 20분경 원주 터미널에 도착했다.
원주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 상황판에서 대평교 행 버스의 도착 시간을 확인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버스 외에도 많은 버스가 대평교를 통과하고 있었다. 해서 24번을 놓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아 안심하고, 6분여 후 도착한 19번 버스를 타고 대평교로 향해 9시 51분에 정류장에 도착했다. 막상 정류장에 내리고 보니, 허허벌판이라, 타거나 내리는 승객이 없어서인지 지나는 버스는 정차할 생각조차 없이 통과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이 정류장에서 24번을 잡는 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고, 버스가 오려면 16분 정도 남아, 걸어서 한 정거장을 더 위로 갔다. 그 위가 관설초등학교 앞 정류장으로 거기서 차를 기다려, 석기동행 24번 버스를 탔다. 결과적으로 정류장 이동이 이번 산행에서 첫 번째 잘한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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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 관설초등학교 앞 정류장에서 24번 버스를 탔는데, 승객이라고는 나를 포함 10명이 넘지 않아, 거의 무정차로 달린다. 덕분에 예정보다 이른 10시 40분경 신림터널을 지나자마자 있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석기동 정류장에 도착했다. 물론 내리는 승객은 나 하나. 분명 새벽에 확인한 기상청 산악날씨에 의하면, 치악산은 기온이 6도를 넘지 않고, 흐릴 거라는 예보였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기온은 20도에 육박하는 듯하고, 햇살은 따가워 눈을 제대도 뜨지 못할 지경이다. 해서 집을 나설 때 껴입은 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등산화 끈을 단단히 고쳐 매고, 길을 건너 싸리치 방향으로 갔다.
10시 43분 석기동으로 올라가는 임도? 마을 도로를 따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며, 정상과의 표고차를 확인하기 위해 등산 앱으로 석기동 입구의 고도를 확인해 보니, 534m다. 매봉산의 높이가 1,095m니 500m 이상을 올라가야 하나, 다른 천고지 산행에 비하면 표고차가 큰 건 아니다. 해서 별거 아니라고 안심하며,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등산화를 보고, 산행 준비가 덜 됐다는 걸 깨달았다. 낙엽산행이 백미라는 매봉산에 올라가며, 등산화에 이물질 침입을 막아주는 미니 스패츠를 착용하지 않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바로 스패츠를 착용하며 등산화를 보니, 가죽이 닳아 구멍이 났다. 하긴 창갈이도 한 번 하고, 주야장천 이것만 신고 다녔으니, 당연하다. 이번 겨울을 넘기고 등산화를 사기로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해 10시 49분에 치악산 둘레길 6, 7코스 갈림길에 도착했다.
아주 당연히 '싸리치옛길 표지석'이 있는 '7코스 싸리치옛길' 쪽으로 방향을 잡고 좌회전하며 보니, 치악산 둘레길 전체를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와 등산객? 둘레길 탐방객의 자가용으로 보이는 차량도 세 대 주차해 있다. 해서 가까이 다가가 지도를 보니, 표지석의 위치가 내 생각과는 달랐다. 구글링해도 몇 개 안 되는 산행기에 따르면 전부 표지석에서 산행을 시작하고 있어, 당연히 7코스로 방향을 잡았는데, 치악산 둘레길 전도를 보면, 그게 아니다. 매봉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표지석에서 이 방향으로 올라와야 한다. 과거 신림터널이 뚫리기 전의 산행기라, 시작을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바로 방향을 틀어 6코스로 향했다. 이 결정이 이번 산행 최고의 판단 실수다. 등산로는 코스 분기점에서 7코스를 따라 10여 미터 가다가, 갈림길에서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갈지자를 그리며 위로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 임도를 따라가며 매의 눈으로 왼쪽에서 등산로를 찾았다. 없다! 그런데, 등산 앱 지도에는 등산로는 있는데, 임도가 없다. 아직 지도에 임도가 등록 안 된 걸 보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어쨌든 수시로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하며, 거대한 뱀처럼 구불구불한 임도를 따라 올라가자, 좌로는 묘가, 우로는 문 같은 게 있다. 가까이 접근해 보니, 인증용인 듯한 치악산 둘레길, 6코스 매봉산 자락길 문이다. 그 문을 기록으로 남기고, 계속해서 굶주린 하이에나의 눈으로 왼쪽을 샅샅이 훑으며 몇 개의 이정표를 지나, 비포장 임도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임도 정상이라 생각되는 곳에 도착해 등산 앱으로 고도를 확인해 보니, 해발 794m다. 꽤 올라왔다. 물론 오는 동안 등산로로 보이는 흔적은 못 찾았다.
6코스 22번 이정표를 지나, 1km가량 가자 저 앞에 정자가 있다. 처음에는 바로 직전 이정표에서 본 ‘매봉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가깝다. 길목에 있는 정자라, 가는 길에 편액을 보니, "물안정"이다. 6코스 종점에서 '물안정' 이정표를 보고, 물을 안정시켜? 중턱에 저수지가 있나 했는데, 물안이라는 정자다! 그때가 11시 51분으로 점심시간이다. 배도 고프고. 임도를 따라 아무리 가도 등산로는 보이지 않아, 거의 절망 상태다. 이대로 가다가는 매봉산은 오르지도 못하고, 치악산 둘레길 6코스 매봉산 자락길, 황둔에서 석기동까지 14.3km를 걷고 말 분위기다. 해서 6, 7코스 갈림길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까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라, 위장에서는 정자에서 컵라면을 먹고 가자고 아우성치나, 등산로를 찾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는 의지로 계속 길을 재촉했다.
등산 앱 지도를 보며 계속 임도를 따라가는 중에 가끔 지도상의 등산로 표시와 만나는데, 실제 주변을 둘러보면 등산로의 흔적은 없고, 낭떠러지에 가까운 직벽이 반겨줄 뿐이다. 과거에는 능선을 따라 등산로가 있었는데, 임도를 만들면서 능선을 깎은 덕분에 등산로가 사라진 거로 보인다. 그건 계곡을 만나도 마찬가지로, 분명 지도의 등산로는 계곡을 가리키고 있으나, 어디에도 흔적은 없다. 아주 돌아버리는 상황이다. 그대로 치고 올라갈까 고민도 해봤는데, 단독 산행에 너무 위험해 보여 포기하고 계속 황둔 쪽으로 갔다. 최근 산행기에서 '매봉정' 뒤로 등산로가 있다는 글을 본 기억이 있어, 일단 그걸 믿기로 했다. 그렇게 가는데, 등산 앱 지도의 등산로와 일치하는 테이프로 금줄을 친 갈림길이 나타났다. MTB 전용 코스로 일반 등산객 출입 금지 경고판도 있다. 과거 등산로를 MTB 코스로 개발한 거 같다.
갈림길 한쪽의 '코스 안내' 지도를 보니, 임도를 따라오다가, 여기와 같은 방식으로 테이프로 금줄을 친 갈림길에서 코스가 끝났다. 당시 거기를 지나며 어떠한 안내문도 없고, 지도에도 없는 갈림길이라 지나쳤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동안 혹시 거기가 등산로가 아니었을까? 계속 고민했지만. 어쨌든 MTB 코스 지도에 의하면 여기서 시작한 코스는 그곳에서 끝난다. 고로 MTB 코스를 따라가면 결과적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등산 앱 지도를 보거나, 실제 여기까지 오면서 저 위로 보이는 게 매봉산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봉우리를 지나쳐왔으니, 되돌아가는 게 맞다. 해서 망설임 없이, 길 상태가 좋지 않아 자전거 진입을 막기 위해 쳐놓은 금줄을 넘어 MTB 코스로 들어갔다. 그리고 저 아래로 보이는 지나온 임도를 보며 거꾸로 갔다. 물론 등산 앱 지도를 수시로 확인하며, 위로 향하는 자전거 길을 따라!
자전거 길을 따라가며 보니, 왜 금줄을 쳐서 자전거 진입을 막았는지 알 수 있었다. 만약 여기서 자전거를 타려면 목숨이 서너 개는 되어야 할 정도로 관리 상태가 좋지 않다. 밑에 '코스 안내'에 있는 경고 내용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런데, 수시로 위로 올라가며 고개를 돌았는데, 50여 미터 앞에서 다시 고개를 돌아야 하는데, 지세로 봐서는 거기까지 가면 매봉산에 오를 수 없다는 감이 왔다. 해서 지도를 유심히 보니, 나무로 진입을 막은 계곡을 향해 등산로가 있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계곡으로 진입하는 거, 다른 하나는 자전거 길을 따라 계속 가다가 다른 길을 찾는 거. 후자는 석기동으로 하산할 확률이 90% 이상으로 천고지 매봉산 정상에 오르는 건 다음으로 미뤄야 할 거라는 게 내 판단이다. 당연히 다음에 또 와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어, 차단 나무를 너머 계곡으로 진입해 조금 오르자, 기대하지 않았던 반가운 리본을 발견했다. 현재는 아니나, 과거에는 등산로라는 방증이다.
구 계곡 등산로를 따라 정상을 향해 가다, 의외의 걸 보고 놀랐다. 집터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다. 과거 화전민 주거지가 아니었을까?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양철 지붕의 흔적도 있다. 집터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재촉했는데, 지세로 보면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매봉산으로 갈 수 있는 건 확실하다. 다만, 언제 산꾼이 지났는지, 길의 흔적이 없어, 수시로 등산 앱을 확인했다. 지도상으로는 정확히 등산로를 따라가고 있어, 길이야 있던 없던 계곡을 따라 위로 올라가자, 다시 여기저기 돌로 쌓은 집터의 흔적이 보인다. 규모로 봐서는 꽤 큰 화전민촌이 있었던 거 같다. 그런데, 계속 계곡을 따라가면, 마지막 급경사 깔딱을 힙겹게 올라 고갯마루에 도착하겠지만, 깔딱이 무섭고, 매봉산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순간 매봉산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뒤에 있었다. 단맥 산행이라면 처음 시작 지점이 중요하나, 천고지 산행에서는 정상이 중요하다. 따라서 정상까지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계곡을 버리고, 능선으로 치고 올라갔다.
예상했던 바지만, 정상까지 가장 짧은 코스라고 선택한 능선이 힘든 건 상상을 초월했다. 계곡 길에 비해 경사가 급한 건 아니나, 애초 길이 없는데, 낙엽이 쌓여 미끄럽고, 잡고 버틸만한 나무도 없다. 결국 오랜만에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다듬어 지팡이를 만들어, 의지하고 올라갔다. 지팡이에 의지하며 힘들게 주 능선으로 향해 1시 3분에 그나마 등산로라고 부를 만한 능선 길에 도착했다. 기록을 위해서 그리고 고도를 확인하기 위해 등산 앱으로 확인해 보니, 해발 1,104m다! GPS 오차를 고려하면 비교적 정확하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만난 등산로와 이름을 내세운 리본이 반가워 기록으로 남기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데, 1시 5분에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등산 앱 GPS 기준 해발 1,115m로, 매봉산 정상 반경 50m 내라는 통보다.
정상에 오르기 위한 깔딱은 이미 지났고, 주 능선 도착 지점의 고도가 매봉산 정상과 큰 차이가 없다. 지난 온 길은 대단히 힘들었으나, 등산 앱이 고지라고 통보한 지점부터 실제 정상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올라, 1시 8분에 현 기준 171개 천고지 중 156번째 천고지인 매봉산 정상에 도착했다. 도착해 보니, 동편은 앙상하나 울창한 나뭇가지에 가려 조망이 좋지 않았으나, 북쪽과 서쪽, 남쪽은 탁 트인 탁월한 조망처다. 해서 주변의 절경을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을 남기고 생각해 보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온 것에 감격해 인증을 남기느라, 가장 중요한 정상석 단독 사진을 찍지 않은 걸 깨닫고, 바로 찍었다. 그런데, 정상석 옆에는 과거 산꾼이 넓적한 돌을 주위 만든 거로 보이는 정상석이 있어 그것도 기록으로 남겼다. 당연히, 과거 정상석은 글을 새긴 게 아니라, 알아볼 수는 없으나, 꿋꿋이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임무를 다하고 있다.
현재 시각 1시 13분, 기상해 현재까지 새벽 5시 30분경 끓인 누룽지 외에 먹은 거라곤 생수 300mL 정도가 다라, 대단히 허기진 상태다. 물론 중간에 먹을 수도 있었으나, 정상에서 먹겠다는 일념으로 달린 결과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정상에 올랐으니, 이제는 배를 채울 때라, 먼저 배낭에서 옷가지를 꺼내 정상석에 걸어 두고, 구 정상석 옆에 상을 차렸다. 그리고 옷가지 아래에 있던 디팩을 꺼내 컵라면과 김치, 사과, 마른 우엉 등을 펼쳐놓은 후, 컵라면으로 매봉산 정상에서 아주 만족스럽게 점심을 해결했다. 물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남은 물에는 마른 우엉을 넣어, 우엉차를 만들고, 컵라면이 부는 4분 동안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그렇게 대략 15분가량 점심을 먹고 1시 30분경 마지막으로 정상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긴 후, 매봉산을 떠나 하산을 시작했다.
정상에서 동릉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급경사가 뭐고, 거기에 낙엽이 쌓이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정확하게 보여주는 등산로다. 차라리 판초우의가 있다면 깔고 앉아서 내려가는 게 더 안전할 거 같았다. 그리고 정상을 떠날 때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중간에서 내려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다. 천고지에 오른다는 목표를 달성한 이상 굳이 빙 돌아갈 필요가 없어, 바로 하산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물론 그러면 하산이 너무 빨라, 일단 등산로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해서 오른쪽으로 등산로를 확인하며 내려가, 갈림길이 있는 곳에서 GPS로 몇 번이나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으나, 지도에는 있는 도로가 실제는 없다. 그리고 있다고 해도 워낙 급경사라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아, 계속 전진했다. 해서 본의 아니게 정상이 평평한 봉우리 하나를 넘었다.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자, 앞에 그보다 더 높은 봉우리가 나타났다. 제발 그 중간에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기를 바랐으나 없다. 힘겹게 정상에 도착해 보니, 이 봉우리 역시 평평하다. 매봉산 줄기의 대부분 봉우리 정상이 평평한 게 특징인 듯하다. 그리고 뒤를 돌아 매봉산을 바라보니, 높이가 거의 비슷해 보여 등산 앱으로 고도를 확인했다. 1,029m다. 오차를 고려해도 해발 1,000m 내외의 봉우리다. 그러니 힘들었지. 그 봉우리에서 100여 미터를 내려가자 산악회 리본이 달린 갈림길이 나타났다. 등산 앱 지도에는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만 표시되어 있으나, 산악회 리본은 직진하는 방향에 더 많이 달렸다. 단맥 산행하는 산악회라면 직진했을 테니 당연하다. 직진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지도에는 없는 길이라 거리를 예측할 수 없어, 포기하고 우회전해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낙엽 쌓인 하산길에서 미끄러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내려가자, 어느 순간 등산로가 없어졌다. 물론 리본 따위도 없다. 그리고 저 아래로 거대한 뱀이 구불구불 기어가고 있는 게 보인다. 어차피 등산로가 있던 없던 달라질 상황이 아니라, 중간중간 버티고 서 있는 나무에 의지하며 내려가 2시 34분에 임도에 도착했다. 갈림길에서 20분이 걸렸다. 분명 지도에 표기된 등산로에서 왼쪽으로 벗어나 있음에도 임도로 내려가는 인적이 있다. 나 같은 산꾼이 같은 코스로 내려오거나 올라갔다는 방증이다. 임도에 도착은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해서 지도의 등산로를 찾아 석기동 방향으로 가서 등산로 위치에 도착해서 보니, 암벽이다. 지도의 등산로 그대로 내려왔다면, 임도에 내려서기 위해 암벽을 타야 했다. 치악산 둘레길이라는 임도를 만들면서 능선을 깎는 바람에 등산로도 같이 사라진 거다. 산꾼들은 암벽을 탈 수 없어, 내가 내려왔던 곳으로 오르내린 거다.
상황을 파악했으니, 반대쪽은 어떤가 보니, 내려가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해서 임도를 따라 석기동 반대편으로 가는데, 위에서 내려오며 본 임도가 떠올랐다. 구불구불 정신없는 임도를 따라가면 황둔이다. 직선으로는 얼마 안 되는 거리나, 실제 거리는 10km 가까이 된다. 그리고 목적지는 황둔이 아니라, 창촌이다. 분명 창촌으로 내려가는 임도도 있겠지만, 갈림길까지 얼마나 가야 할지 모른다. 바로 밑이 창촌인데, 빙빙 돌아가는 건 바보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지도의 등산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능선을 따라 내려갔다. 물론 길 따위는 없으나, 위에서와 같이 임도 직전에는 꼭 인적이 나타났다. 그 인적을 따라 임도에 도착한 후 일단 그늘로 갔다. 그리고 임도에 주저앉아, 스패츠와 신발을 벗고 이물질을 털어냈다. 스패츠를 착용했음에도 워낙 많이 미끄러져, 이물질 침입을 완벽하게 막지 못했다. 만약 스패츠가 없었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지금부터는 임도를 따라 내려갈 거라, 스패츠가 필요 없어, 배낭에 넣고 등산화를 신은 후 2시 51분에 하산을 시작했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며 계곡 쪽을 보니, 계곡 옆으로 펜션치고는 큰 건물과 시설이 보여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지도로 확인해보니, 역시 '매봉 힐링 쉼터 오토 캠핑장'이다. 주변의 노랗게 물든 낙엽송을 감상하며 내려가, 3시 7분에 캠핑장 갈림길에 도착했다. 갈림길 한쪽에 서 있는 지도로 현 위치를 파악한 후 다시 길을 재촉해, 저 앞으로 감악산이 보이는 창촌에 도착했다. 창촌은 2019년 3월 낙진과 둘이 감악산[산행기]에 오르기 위해 들른 후 두 번째다. 그리고 3시 15분에 창촌 도착하는 거로 천고지 매봉산행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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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창촌 버스정류장에서 24번 버스의 도착 시간을 확인해 보니, 34분 후다. 그럼 점심과 하산주 할 시간이 충분해 길 건너 식당으로 갔다. 산에서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배가 아주 고픈 상태다. 그리고 식당 앞에 차량이 주차해 있는 게 영업 중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일이다. 깜짝 놀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월요일이다. 말인즉 어제까지 등산객, 행락객을 상대로 영업하고 오늘 쉬는 거다. 그럼 이 식당만이 아니라, 다른 식당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배는 고파 주겠는데, 돌아버리는 순간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감악산 들머리에 있는 식당에도 가 봤으나 예상대로다. 이제 바랄 건 빨리 서울로 돌아가는 거다.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와 배낭을 벗어, 의자 한쪽에 두고 주변을 둘러보니, 버스 시간표가 보인다. 아까는 빨리 식당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어, 못 본 거다. 그 시간표에 의하면 15시 40분에 종점인 '섬안이'에서 출발하는 24번 버스를 타면 된다. 물론 섬안이에서 창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4시가 넘어 도착한 24번 버스를 타고 원주 풍물시장까지 간 후 시외버스 터미널행 버스로 갈아탔다. 그리고 시내버스에서 5시 20분 동서울행 버스를 예매했다. 터미널에 5시 6분경 도착해 볼일을 보고, 16분에 승차장으로 들어온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해 예정보다 35분이 늦은, 7시 25분에 동서울에 도착했다. 어디서든 서울로 진입은 쉽지 않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서울 진입에 시간이 많이 걸려,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집에 도착해, 빨갱이를 반주로 저녁을 겸해 하산주를 마셨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석기동 → 치악산 둘레길 6,7코스 분기점 → 둘레길 임도 → 매봉산 자락길 문 → 물안정 → MTB 코스 입구 → MTB 코스 → 구 계곡 등산로 → 능선 → 정규 등산로 → 정상 → 동릉 → 985봉 → 임도 절개지 → 오토 캠핑장 갈림길 → 창촌 버스정류장’'의 13.06km(트랭글) 오지를 4시간 41분 동안 달렸다. 이동 4시간 30분, 휴식 11분!
오랜만에 오지 산행을 즐겼다. 낙엽산행의 백미가 아니라 낙엽 때문에 죽을 뻔했다.
정상에서 탁월한 조망은 기대 이상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오지 산행은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걸 다시 절감했다.